마드레의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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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4.04.06 23:55
최근연재일 :
2014.06.22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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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4.28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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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어둠, 국경 정찰대장 라주르 자비에.(2)

DUMMY

“로랑,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와서 도와줘. 내가 진짜…. 반드시 복수할 테니까…. 대장의 원수는 너의 원수이기도 하잖아…. 그러니까…. 와서 장례식을 도와줘….”


로랑은 조제를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마니아코를 보며 하마터면 실소할 뻔 했다.

유치해도 너무 유치했다.

이제 곧 스물을 앞두고 있는 이 남자는 열살 먹은 어린아이처럼 싸운 친구를 눈앞에 두고 안 보이는 척 행동을 하고 있었다.


“꼭 계속 놀던 사람 취급하네, 마니아코? 조금 전까지 내가 하고 있는 거 봤잖아.

잠시 쉬는 거니까. 너도 조금이라도 쉬면서 해.

장례식 한두 시간 만에 끝나는 것 본 적 있어? 벌써 이렇게 손이 닳아버리면 남은 시간은 어떻게 일을 도우려고 그러는 거야?”


마니아코는 다 쉰 목소리로 억지로 대답했다.


“난 괜찮아…. 손이 헤져 밧줄을 잡을 수 없으면 이빨로 밧줄을 끌면 되고, 이빨이 다 부러지면…. 몸에 밧줄을 걸고서라도 장례식을 마칠 테니까….”


조제는 그런 마니아코를 한참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아무리 자신과는 화해하지 않았다고 해도 오랜 친구였고, 그 친구가 시뻘게진 눈으로 보고, 다 갈라진 목소리로 말하고, 밧줄에 닳아 피가 맺힌 손으로 잡고, 풀린 다리로 비틀거리며 걸어 다녔다.

조제는 자신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마니아코!”


조제는 자신에게 이러한 용기가 있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자존심이며, 기 싸움이며, 잘잘못이며 모조리 핑계였을 뿐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먼저 손을 내밀 용기가 없었다.

평행선을 긋던 두 사람은 한 명이 다가감으로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왜! 왜왜, 왜 날 갑자기 날 부르는 거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마니아코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어찌 보면 마니아코가 화를 낸다고 느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한 걸음을 다가선 조제가 한 걸음 더 다가가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조제는 슬프지만 따스한 표정을 지었다.

차분한 그의 목소리가 마니아코의 귀를 자극했다.


“이제야 내게 말을 해주는구나.”

“바빴잖아.”


마니아코는 진심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제는 신경 쓰지 않았다.


“상관없어.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나도 많이 슬펐고 감정이 격했고 너를 더 자극했던 것 같아. 그건 내가 미안하다.”


마니아코는 인상을 구겼다.

하지만 이미 그의 마음은 조제가 말을 거는 시점에 이미 풀려있었다. 얼핏 듣기엔 화를 내는 것 같은 그의 말투에서도 그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 고?”


마니아코의 물음에 로랑은 다시 터져나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덕분에 잘생긴 그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우스꽝스럽게 변했다.

사춘기 소녀도 이런 식으로 사과를 받아들이진 않을 것이다.

조제는 마니아코의 말투도, 로랑의 표정에도 상관없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그때 널 너무 많이 때려서 미안하다. 그렇게까지 때릴 건 없었는데.”

“너, 그렇다고 네가 나보다 강하다고 여기는 거 아냐?”

“마니아코. 그건 사실 아닌가. 주먹은 네가 날 이긴 적이 없잖아.”

“뭣!?”


조제의 말에 마니아코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려다가 숨을 참았다.

기껏 조제가 내민 손을 뿌리쳤다간 정말 사이가 멀어질지도 몰랐고, 해본 적은 없지만 화를 내기보다는 논리정연하게 말하는 것을 선택해보기로 했다.


“아니, 일단은…. 그때 난 몇 시간을 대장을 업고 쉬지 않고 걸었잖아.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나보단 네가 상태가 좋았고. 난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았어. 원래의 조건이라면 넌 우습게 당한다고. 그리고 그 이전은…. 우리가 너무 어릴 때였잖아.”


뭐든지 처음이 힘들다고 했던가. 마니아코의 말은 논리적으로 조제를 설득하기는커녕. 로랑의 비웃음을 막기에도 힘들어 보였다. 조제는 피식하고 웃었다.


“그럼 지금 다시 해 보던가.”


고인돌을 옮기며 또다시 녹초가 되어있던 마니아코는 두 번째 망신을 당할 수도 있었다. 아니, 그럴 일은 없었을 것이다.

마니아코는 이미 조제의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 다 필요 없고…. 그냥 지나간 일이야…. 앞으론 나도 조심할게. 미안하다. 너한테 막말했던 것 정말 미안하다.”

“그래. 알았다.”


긴 갈등의 시간에 비해 둘의 화해는 급속히 이루어졌다.

오랜 시간을 친구로 지내왔던 둘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로랑은 둘에게 이제 일하러 가자며 채근했고 셋은 고인돌이 세워지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고인돌은 이제 온전히 지줏돌 위로 올려졌고, 이제 경사로를 제거하는 작업만이 남았다.

조제가 삽을 집어드는데 마니아코가 조제를 불렀다.


“조제!”

“왜?”

“넌…. 내 사람이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마니아코는 삽을 집어들며 손의 통증에 잠깐 신음을 흘리더니 이내 표정을 가다듬었다.


“너 나를 위해 싸워줄 수 있냐?”


조제는 멀쩡한 손으로 삽자루를 집어들더니, 이내 삽질을 시작했다. 말없이 경사로의 흙을 퍼내 마대에 담았다. 마대가 어느 정도 채워지자 조제는 마대를 번쩍 들어 어깨에 이었다.

마니아코는 조제가 답이 없자 그를 뒤쫓으며 물었다.


“그래 줄 수 있겠냐?”

“음…. 글쎄다. 생각해보지 않았어.”

“로랑은 대답했어.”


마니아코가 로랑을 언급했고, 조제는 걸음을 멈추고 로랑을 바라보았다.

로랑은 어깨를 으쓱했고, 조제는 다시 마니아코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나도 대답하라고?”

“강요하진 않겠어, 조제.”

“넌 이미 강요하고 있어.”


조제는 고개를 저었고 다시 몸을 돌려 마대자루를 이고 갔다. 그리고 구덩이에 마대자루의 흙을 쏟아부었다.


“어쩔래?”

“난 항상 네 사람이었어, 마니아코.”

“그런 내 사람 말고.”

“설마…. 너 사랑 고백하는 건 아닐 테고….”

“조제…. 죽이자. 그 놈을….”


흙을 모두 쏟아내고 마대자루를 집어들던 조제는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눈썹을 씰룩거리며 물었다.


“대장을 죽인 그 기사단장 말하는 거야?”

“그 개자식의 이름은 미첼이다. 우릴 비웃기까지 했지. 단지 우리보다 힘이 강하다는 이유로. 나는 그놈을 살려둘 수 없어. 아니 그놈이 아끼는 모든 것을 부숴버릴 거야. 내 모든 것을 부어서 내 뜻을 이룰 거다. 네가 나를 도와줘. 내 소원이다.”


마니아코는 조제의 눈앞에 주먹을 들어보이며 강하게 움켜쥐었다.

손의 상처에서 따끔거리는 통증이 느껴졌지만, 조제는 그것도 기분 좋게 분노로 승화시켰다.

조제는 냉랭하게 몸을 돌리며 다시 고인돌의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아.”

“여기서 무슨 고민이 더 필요해?”


마니아코는 조제가 반드시 넘어왔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조제는 마대를 펼쳐 흙을 담기 좋게 벌렸다.


“이 것 좀 벌려줘.”


마니아코가 엉거주춤하게 마대를 잡자 조제는 다시 삽질을 시작했다.

흙의 양이 상당했는데 많은 이들이 동시에 흙을 퍼내자 고인돌의 모습은 순식간에 형태를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조제는 삽질을 잠시 멈추고 이야기했다.


“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지. 정찰대원의 목적은.”

“정찰이라고. 정찰로 적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방어해야 한다고 했지, 조제.”


이미 예전에 조제와 했던 이야기였기에 마니아코는 조제의 말을 끊고 들어갔다.

조제는 다시 흙을 마대에 쓸어담으며 말을 이었다.


“맞아, 마니아코. 우리는 적을 먼저 치는 게 아니야. 루즈족은 강해. 우리가 선공해서 이길 수 있다면 난 얼마든지 하겠어. 하지만.”

“하지만 난 우리가 져도 할 거야. 우리 마음속의 영원한 정찰대장. 라주르 자비에를 위하여.”


마니아코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조제는 흙이 가득 담긴 마대를 움켜쥐려 했으나, 마니아코가 낚아채 등에 짐을 메었다.


“그를 위해 힘을 빌려달라는 거야?”

“최정예 타격대를 꾸릴 거다, 조제.”

“자살 타격대겠지.”

“도와줄 수 없냐?”

“미안해. 넌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야. 그리고 난 네 사람이기도 해. 언젠가 네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족장이 된다면, 그때 내가 살아있다면 난 너의 가장 충실한 종복이 되겠어.

그렇다고…. 벌써 네 말에 충성하며 너를 죽음에 들게 할 수는 없어. 이미 죽은 사람 때문에는 더더욱.”


마니아코는 울컥했다.

하지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조제의 눈빛이 진실하였고, 차분하게 이어지는 그의 말은 진심으로 마니아코를 걱정해주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냥 죽은 사람이 아니야. 우리 대장이었고, 그의 나이는 겨우 스물네 살이었어. 복수심이 없었다면 난 애초에 어떠한 그릇도 될 수 없었을 거다, 조제. 그는 내 두 번째 아버지이기도 해.”

“알아. 자비에 대장과 네 복수심이 널 지금의 너로 만들었다는 걸. 그리고 그게 네 목숨을 앗아갈 거라는 건 벨포흐의 모든 대원도 다 알고 있을 거야.”

“죽음은 피한다고 피해지지 않아. 그렇다면 정면으로 덤비는 것이다.”

“절벽에서 뛰어내리지 않는다고 꼭 죽지 않는 건 아니지만 뛰어내린다면 반드시 죽지. 그리고 너 손에서 피가 너무 난다. 이리 내.”


조제는 마니아코의 손에서 마대를 빼앗았다. 마니아코의 손은 이미 상한 상태로 마대자루의 거친 면에 쓸려 피가 베어 나오고 있었다. 마니아코는 얼얼한 손을 바지에 두드리며 조제를 바라보았다.


“희망이 전혀 없는 건 아니야, 조제.”

“미첼은 내가 본 루즈족 중에 가장 강해. 네가 아니라 나까지 힘을 합쳐도, 로랑까지 함께 해도 이기기 힘들어.”

“그래서 네 도움이 필요한 거야. 메리즈빌로 가는 길은 네가 제일 잘 알잖아. 가서, 메리즈빌을 무너트리고 돌아올 거다. 넌 메리즈빌에 있다는 기사단원의 거처를 염탐했었잖아.”


마대자루를 구덩이에 쏟아부으며 조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불가능해. 절대 그 누구도 이 작전을 허가해주지 않을 거야.”

“알아. 하지만 정찰대장의 자리는 공석이야. 그리고 난 정찰대장이 될 거야. 그렇다면 그 작전은 내가 허가하면 된다.”


특유의 몸짓으로 당당히 편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두들기는 마니아코.

조제는 더는 그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재로서는 마니아코가 가장 유력한 차기대장이었다.

마지막 흙을 털어내고 나서 조제는 당당히 편 마니아코의 가슴에 빈 마대를 들이밀었다.


“좋은 동기부여가 되었어. 고마워, 마니아코.”

“정말이야?”

마니아코의 환한 표정은 조제의 다음 말로 산산이 부서졌다.



“나, 정찰대장의 자리에 지원하겠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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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16화. 어둠, 국경 정찰대장 로랑. 14.06.15 33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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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3화. 빛, 오(汚)를 들키다.(下) +2 14.06.08 476 2 11쪽
18 12화. 어둠, 미녀 군단, 그리고 조제, 그리고 마니아코. 14.06.07 213 0 13쪽
17 11화. 빛, 오(汚)를 들키다.(上) 14.06.01 16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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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3화. 빛, '오(汚)'를 느끼다.(1) 14.04.28 371 4 10쪽
» 2화. 어둠, 국경 정찰대장 라주르 자비에.(2) 14.04.28 411 3 11쪽
4 2화. 어둠, 국경 정찰대장 라주르 자비에.(1) 14.04.27 326 4 9쪽
3 1화. 빛, 정화 기사단장 크리스토프 미첼.(2) 14.04.27 341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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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8 14.04.12 917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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