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가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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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과을
작품등록일 :
2014.06.09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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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4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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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04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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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의 세바퀴 - 15

DUMMY

Channel 1. 로키


가을을 건너뛰고 겨울이 된 것 같은 그의 태도에, 나는 혹시나 해서 손바닥을 살펴봤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닦은 덕분에 손은 깨끗했다. 그런데 저 남자는 대관절 무슨 이유로 얼굴을 싹 씻은 것일까?


“세상 달라진데 뒤처지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쓴 덕분에 하샤신과 마피아들하고 겸상하는 것 까진 참을 수 있었는데 말이야...... 이건 도저히 참아줄 수가 없네?”


....... 뭐? 하샤신과 마피아?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어떻게 녀석의 입에서 그런 단어들이 튀어나오는 거지? 뭔가 일이 거지같이 돌아가는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 슬픈 예감이 뭔고 하면......


“......눈치 채고 있었냐?”

“당연한 거 아냐? 어찌나 패기 있게 라스알게티로 들어오던지. 이야..... 처음엔 내가 착각을 다 한 줄 알았어? 그 하샤신놈이 당당하게 심사대를 통해서 들어온다고? 그것도 이렇게 허접한 가짜 신분증을 가지고? 대체 뭘 믿고 저렇게 깡을 부린 거지?”


내 질문에 알 샤인은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보였다. 그 서류가 뭔고 살피려는 차에, 그는 내게 그것을 던지듯 건네주었다. 서류철에는 우리 필그림들이 전입 심사를 받으면서 보여주었던 신분증의 사본이 들어있었다.


“얼마나 허접한지 이야기 하려면 밤이 새도 시간이 부족하니까. 더는 말하지 말자고. 충고하자면, 앞으로는 제대로 된 브로커를 이용하는 게 좋을 거야.”

“하하 참...... 나름 감쪽같이 속인다고 했는데 속은 건 오히려 우리 쪽 이었네? 그럼 이 사실은 기사단 전부가 알고 있는 건가? 체포영장 발부되기 전 까지 이렇게 시간을 끌어볼 참인 거고.”

“생각보다 법률에 밝은 것 같은데, 아직 보고는 안했어. 내사 단계거든.”

“,,,,,,,그래? 그럼 내가 여기서 널 죽여 버리면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로 해석해도 되는 거냐?”

“어..... 틀린 말은 아닌데, 내가 이렇게 하샤신 앞에서 죽일 테면 죽여 봐라 하는 거 보면, 깡을 넘어서는 뭔가 믿는 구석이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해 봤냐?”

“......”

“......”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녀석의 말은 그저 정론들 뿐 이어서...... 도저히 뭐라 논리적으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질 않았다. 객관적으론 찰나였었겠지만, 체감 상 긴 침묵이 흘렀다.


“나름 잘 해냈다고 생각했는데...... 이거 참 지독한 장난에 놀아난 기분이군. 내가 수비대 청사를 휘젓고 다닐 때 왜 체포를 하지 않은거지?”

“사실..... 하려고 했지...... 그럴려고 했었어.”


그 말을 하는 알 샤인의 얼굴은...... 조금 기묘하게 비틀려져 있었다.


“그런데, 모종의 이유가 있었다?”

“니가 우리의 예상을 빗겨나가는 행동을 해서 그래. 난 처음에 네놈이 청사 유치장에 수감되어있는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잠입해 왔을 거라고 짐작했거든..... 그래서 유치장 입구에 우리 팀을 잠입 시켜놨었단 말이야? 그런데 네 놈은..... 주설이 용무를 마치는 그 순간까지도 유치장에는 발걸음도 하질 않았거든......”

“그래서 ......맥이 빠졌다?”

“당연하지. 니가 그쪽으로 발을 디디는 순간, 우리는 현행범으로 너를 체포할 작정이었는걸.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너의 그 행동이 결과적으론 너 스스로를 구한 셈이 된 거야.”

“억세게 운이 좋았구먼.”

“마침 둘만 남기도 했고 하니, 하나만 물어보자. 네 동료도 구하지 않을 거면서, 경시청 청사는 무슨 이유로 휘젓고 다닌 거냐?”


이 말을 하는 알 샤인의 얼굴에는, 아까의 기묘함으로 뭉뚱그려진 근육의 궤적이 시나브로 녹아내리고, 좀 더 분명한 색채를 띄어가기 시작했다. 녀석에게서 허탈감과 짜증 그리고 그 속에서 짙은 농도의 호기심이 용출되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면서 나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있는 그대로 사실을 말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주설이 판단을 내릴 때 까지 대답을 유보해야 할 것인가. 사실 후자 쪽이 합리적인 선택지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마 과거의 나라면 당연히 후자를 선택했겠지...... 하지만,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의 그 어딘가의 시점에, 내 ‘비정한 마음’이 금이 가 버렸다.


“음......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기사단에서 말이야. 까리한...... 뭐랄까, 보물 같은 거...... 있지 않냐?”

“뭐? 갑자기 무슨 개소리야?”

“니가 궁금하다며, 니가 궁금해 하는 거와 관련이 있는 거야.”








Channel 2. 아이리스


꿈 치고는 현실처럼 생생하다는 것, 그리고 제가 만난 시점보다 과거의 그녀를 만났다는 것, 제가 말한 것들 중 어느 하나도 쉽게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쉬운게 하나도 없지만, 저는 그냥...... 이해하기 보다는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인간이 신앙을 가지는 것 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을 리가 없으니...... 신앙을 가진 저로서는 뭐, 그러려니 하는거죠. 그편이...... 머리가 덜 아플 테니까요.


“차라도 한 잔 마실래? 여긴 토양이 제법 좋아서 꽤나 질 좋은 녀석이 나올 것 같거든.”

“.......차요?”

“응. 너희는 이것의 잎사귀를 따서 물에 달여 먹는다면서?”


그녀는 자신의 옆에 떡하니 자라있는 차나무를 가리켰습니다. 으응? 제가 부주의했던 걸까요, 아니면 정말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 이기라도 한 걸까요? 마치 거짓말처럼, 아니 ‘애초부터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차나무의 줄기는 제법 단단하게 여물어 있었고, 새잎사귀는 아기 손처럼 보들 거렸습니다.


“아.....예......뭐 그렇죠.”

“그럼 한 잔 하자구.”


어디서 꺼내왔는지 그녀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찻주전자에서 물을 따라서, 새 잎사귀를 올려 제게 건네주었습니다. 저는 늘 그러했듯이 차를 마시기 전에 냄새를 맡았습니다. 흠...... 이제껏 맡아보지 못한 깊은 향기가 제 코끝을 타고 기도로 흘러들어갔습니다.


“냄새 좋네요.”

“그래? ‘차’라는 식문화를 만든 존재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니 뭔가 뿌듯한 걸?”

“식문화를......뭐라구요?”


그녀는 대답대신, 자신의 차를 한 모금 마신 뒤에 눈을 감고 맛을 음미했습니다. 그녀의 얼굴에는 아까 제게 들었던 것과는 결이 다른 ‘뿌듯함’이라는 감정이 어른거렸어요.


“수많은 유기화합물을 만들어냈지만, 너희는 정말 특이해. 어떻게 이 피조물을 따뜻한 물에 불릴 생각을 한 걸까? 그걸 의도하고 만든 게 아닌데 말이야.”

“유기.....화.....네?”

“아니야. 어차피 네가 이해할 만한 단어는 아니었어. 그냥 쉽게 말하면, 나는 네가 속한 유기체 군락에 상당한 흥미를 가지고 있다는 거야. 다른 피조물들은 어지간하면 내가 규정한 ‘숙명’에 크게 벗어나지 않거든? 근데 네 족속...... 아니, 네가 기분 나쁘지 않게 겨레라고 하자구, 네 겨레는 ‘숙명’이고 뭐고 다 때려 부셔버린다니까? 여태까지 너희 겨레는 내가 의도한 대로 움직인 적이...... 손에 꼽을 거야 아마.”

“뭔가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말이네요. 정확히 이해하긴 어렵지만.”

“아냐 아냐. 그 점이 내 흥미를 돋우는걸. 지금 생각해도 초창기에 안테바란의 말을 듣길 백번 잘한 것 같아. 그때는 무슨 놈의 자유의지냐고 투덜댔는데, 이런 결과물을 만들어 낼 줄은......”

“저기......”

“응? 뭔데?”

“솔직히 말하면, 지금 무슨 말씀을 하는지 반도 못 알아먹겠거든요. 좀 쉽게 설명해 주면 안 돼요?”


제 말에 그녀는 뭐가 그리 우스운지 이마를 치며 박장대소를 터뜨렸습니다. 아니...... 모르는 걸 모른다고 물어본 게 뭐 그리 우스운 걸까요? 그 모습을 보다보니, 기분이 스멀스멀 나빠지려고 해요. 아니, 사람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유기물이 어쩌고 숙명이 어쩌고,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해놓고, 그걸 못 알아듣는다고 비웃는 건 대체 무슨 처사란 말입니까?


“하...... 진짜 한 방 크게 먹었네. 유기물한테 이런 소리를 들을 줄이야.”

“어...... 음...... 제가 사과할 타이밍인건가요?”

“아니야, 너는 할 말 다 해놓고 무슨 사과니? 그냥 컨셉 잡아서 쭉 그대로 밀어 그냥. 어줍잖게 사과하면 캐릭터만 흐려질걸? 따지고 보면, 너의 의식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막 지껄인 내 잘못이 더 크지 뭐.”


그녀는 자기 잘못이라고 겸손한 말을 썼지만, 그 말을 입에 담는 그녀의 얼굴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마치...... 뭐랄까? ‘내가 이만큼 관대하다...... 빨리 알아봐줘.’라고 보채는 애 같다고 할까요? 그런 그녀의 빤한 속셈을 들여다보다보니, 그녀의 말에 공감해주고 싶은 생각은 티끌 수준으로 작아져만 갔습니다. 그래서인걸까요? 제 입에서는 다시 한 번 그녀의 의도에 어깃장을 놓는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가 땅을 기는 지렁이를 보면 ‘이 넓은 세상을 조망하지 못해 불쌍하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렁이 입장에서는 새를 보면서 ‘니가 다이나믹한 땅 속 사정을 알기나 하냐?’라고 말할지도 모르죠.”








Channel 1. 로키


어차피 이판사판이었다. 나름 밑장을 잘 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상대는 내 손에 들려있는 패에 루페를 들이밀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니 손모가지에 도끼날이 파고들기 전에 뭐라도 해봐야지 않겠어? 하지만 내 질문은 녀석에게는 이렇다 할 반향을 이끌어 내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녀석은 ‘이 새끼 어떻게든 넘겨보려고 용쓰고 있구만.’이라는 태도를 놓지 않고 있었고, 대화가 지속될수록, 시간은 내 편이 아니라는 슬픈 예감이 현실의 겉옷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하..... 뭐라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내가 나빠. 안 되겠다. 그냥 얌전히 은팔찌 차고, 나라에서 지급해주는 무상급식이나......”

“유품 말이야.”

“뭐? 난 아직 가족상은 안 치러봐서 그런 건 해당 사항이 없는데?”

“아오..... 그게 아니라.”


나는 녀석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이게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녀석이 드디어 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거든. 알 샤인은 아까의 ‘아 네 열심히 사세요.’라고 말하는 듯 했던 태도를 내려놓고 내 말에 열중해가며 들어갔다. 내가 이렇게 달변가의 기질을 가지고 있는 줄은 나조차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그 유품인가 뭔가를 ‘자유길드’에서 보관하고 있고, 그 물건을 가질 자질이 있는 사람들이 연합해서 ‘흑성왕’인가 뭔가를 물리쳐야 한다......?”

“이제야 좀 대화가 통하는 것 같군.”

“에라이 미친놈아. 이게 무슨 판타지 소설이냐? 이제 보니까, 심신미약으로 감형 좀 받으려고 하는 거 같은데 우리가 호구로 보이지?”


기분 나쁜 시점에 마주친 도돌이표에, 내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어져선 안 될 것이 끊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래 뭐, 어차피 ‘세상을 현혹하는 거짓된 물건’이라면서? 그럼 내가 이걸 알 샤인에게 보여도 그가 사람들에게 이것에 대해 떠벌려 보았자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명분은 확실하고, 나는 그걸 실행에 옮길 수 있을 만큼 흥분해 있었다. 나는 알기에바를 발동해, 그 촉수를 알 샤인의 눈앞에 대고 흔들어보였다. 녀석은 그걸 보자마자 움찔했다.


“다시 한 번 말해보지 그래? 판타지 소설이라고.”

“어억...... 이게 그.....”

“입조심 하는 게 좋을 거야. 얘는 제법 앙칼지거든.”


내 말에 무게감을 주고 싶었는지, 알기에바는 내가 지시하지도 않은 - 녀석의 볼을 촉수로 햝는 -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알 샤인은 촉수의 감촉에 전율했지만 그 이상 가는 행동은 보여주지 않았다. 아니 뭐 정확하게 말하자면 ‘못’한 것에 가깝겠지.


“그래...... 알겠어. 이게 판타지 소설 같은 공상 속 이야기가 아니란 건 이제 인정하겠다고. 그런데 이런 것과 비슷한게......”

“그래, 너희 기사단에도 이와 같은 물건이 잠자고 있다.”

“확실해?”

“아무렴. 다만...... 나로선 못 찾겠다는 게 문제겠지만.”

“그걸 찾아서 뭘 어쩌겠다는 건데? 탈취라도 하겠다는 건가?”

“이제야 좀 대화가 되는 것 같구먼. 하지만 접근 방식이 잘못됐어. 그걸 직접 다루겠다는 게 아니라, 그걸 다루는 이를 찾고 싶다는 거다.”

“.......”


알 샤인은 내 말에 공감을 하는 만큼, 말 수도 그에 비례해서 줄어들었다. 그래,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사고의 지평이 크게 확장되어 버린다면, 누가 됐든 간에 그럴 것이다. 헤세라는 작가는 새는 자신의 세계인 알을 깨고 신에게로 날아간다고 말했지만, 실제 새라면....... 우선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알 밖의 신세계에 어안이 벙벙해지는 과정을 거쳐야 하지 않겠어?








Channel 2. 아이리스


분명 비꼬려고 한 이야기였는데, 그녀는 제가 의도한 것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여주었습니다. 제 말을 한참동안 곱씹더니...... 이마를 탁 치며 감탄을 했거든요.


“맞네 맞아. 하늘을 난다고 다 잘난 게 아니지. 이야...... 진짜 대단한 걸? 이 정도 똘끼면, 충분히 가능하겠어. 전임자 녀석들이 이번에는 제대로 된 후임을 뽑은 것 같구나.”

“제대로 된 후임? 그게 무슨 말이에요?”

“차차 알게 될거야. 그나저나 저번에는 네가 내 미래와 만났다고 했었지? 흠...... 근데 왜 그 미래는 실패한 걸로 된걸까? 이렇게 똘끼가 충만한 아이가 내 곁으로 오는데 말이지. 무슨 내가 알지 못하는 변수가 있는 걸까?”

“아니 사람이 말을 하면......”


스멀스멀 화가 나려고 했지만, 그녀는 내가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는 이미 안중에도 없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녀는 혼잣말을 해가면서 자신의 생각을 이어나갔고, 생각이 펼쳐나가는 만큼, 귀는 굳게 아물려지는 게 눈에 보였어요.


“어쨌거나, 시간축이 제대로 맞은 건 잘 된 일이야. 덕분에 나도 나름의 대책을 세울 수 있게 됐으니까. 이번만큼은 실패하면 안 돼...... 소멸까지 간당간당 하거든.”

“소멸?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녀석을 거기로 보낸 게 또 의도치 않게 신의 한수가 된 셈이네? 하하, 내가 ‘신’이라는 단어를 운운하다니 기가 차는구먼.”

“아니 진짜, 저랑 뭐 싸우자는 거에요?”


그녀는 한참동안 미친 듯이 혼잣말을 늘여놓다가, 제가 버럭 하고 나서야, 비로소 ‘저’라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는 듯 화들짝 놀랐습니다. 세상에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고 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정도면 혼자서 오케스트라도 다 찜 쪄 먹겠어요.


“어? 어어? 아! 미안. 너랑은 어디까지 이야기 했더라?”

“우리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적이 있기나 했나요?”

“야 그래도 내가 사과하잖아. 물론 지금의 너는 알 도리가 없겠지만, 미래의 너라면...... 나라는 존재가 한낱 유기물에게 사과를 한다는 것에 몸 둘 바도 모르게 될껄?”

“......내가 말을 말아야지.”


내 한탄에 그녀는 낄낄대며 제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렸습니다. 나름 애정을 가지고 한 친교적 행위인 것 같은데, 그걸 받는 제 입장에서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어디 보자....... 여기에도 경시청 청사가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말이에요.


“사과의 뜻으로 네 미래를 알려줄게.”

“미래요? ‘아드님’께선 공중을 나는 새는 씨도 안 뿌리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쌓아두지도 않지만 ‘아버님’께서 다 먹이고 재우시는데 쓸데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는데요? 그런 가르침을 받은 제가 미래에 대해서 궁금해 할 것 같아요?”

“.......”


으......응? 나름 확신에 차서 한 말인데, 이건 또 엉뚱한 반응이 나오네요? 그녀는 ‘아드님’ 그리고 ‘아버님’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눈썹에 힘이 들어갔고, 제 말이 끝나자마자......


“내 앞에서 그 더러운 이름은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네가 앞서 내게 귀여움을 어필하지 않았다면, 너는 존재 자체가 지워질 뻔했어. 충고컨대, 앞으론 스스로를 위험에 처하게 만드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


그녀는 나름 조근 조근하게 말한다고 했겠지만, 그 말속에는 서릿발 같은 서늘한 따끔함이 짙게 묻어 나와서, 저는 더 이상 입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그녀가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쨌거나, 나와 시간축이 들어맞은 건 흔한 일은 아니니, 이 시간대에 너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은 줘야지. 네게 다가올 미래는, 내가 아는 한 가장 확실한 미래니까 알려주려는 거야. 그걸 미리 알고 있는 편이 너희에게도, 그리고 내게도 좋거든. 곧 너희에게 나의 의지를 담은 사자가 갈 거야. 잘 지내긴 힘들겠지만, 그래도 잘 지내려고 노력하는 게 좋을 거다.”

“네? 의지를 담은 사자요?”

“그래, 너희는 이제까지 내가 본 녀석들 중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사실 그걸론 많이 부족하거든. 그 부족한 간극을 나의 사자가 메워줄 거야. 그가 너희의 각성을 도와주겠지.”

“우리의 각성? 그게 뭔데요?”


제 질문에 그녀는 또다시 이상한 뻘소리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수족관에 한 종류의 물고기만 놔두면, 그대로 폐사해버려. 그걸 막기 위해선, 그 물고기보다 상위포식자에 위치하는 다른 물고기도 합사해야 해. 그들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열심히 발버둥 치는 쪽이 그렇지 않은 쪽 보다 수명이 더 길다고 하더라. 내 사자는 앞서 말한 그 물고기들처럼 너희에게 그럴듯한 자극과 도전이 될 거란다.”


작가의말

이번편은 좀 짧습니다. 연재를 하다보니, 한 편 속에 두개의 날자가 연결되는 부분이 전부터 거슬려서, 이번에는 그런 것에 단락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끊어주는 것이 연재의 흐름에도 더 자연스러울 것 같기도 하고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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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사막의 어금니 - 02 17.07.20 194 0 24쪽
46 사막의 어금니 - 01 17.07.17 197 0 26쪽
45 당랑포선 황작재후 - 10 17.06.21 223 0 22쪽
44 당랑포선 황작재후 - 09 17.06.06 336 0 31쪽
43 당랑포선 황작재후 - 08 17.05.06 222 0 21쪽
42 당랑포선 황작재후 - 07 17.03.22 293 0 25쪽
41 당랑포선 황작재후 - 06 17.01.29 373 0 25쪽
40 당랑포선 황작재후 - 05 16.11.24 376 0 27쪽
39 당랑포선 황작재후 - 04 +2 16.11.07 610 1 22쪽
38 당랑포선 황작재후 - 03 16.10.18 543 1 25쪽
37 당랑포선 황작재후 - 02 16.09.26 561 1 25쪽
36 당랑포선 황작재후 - 01 16.09.11 494 0 30쪽
35 실마리 - 06 16.08.11 516 0 35쪽
34 실마리 - 05 16.07.21 575 0 30쪽
33 실마리 - 04 16.06.27 397 0 23쪽
32 실마리 - 03 16.06.09 393 0 28쪽
31 실마리 - 02 16.05.29 318 0 19쪽
30 실마리 - 01 16.05.23 467 0 13쪽
29 운터 브룩에서 - 04 16.05.22 301 0 12쪽
28 운터 브룩에서 - 03 16.05.08 462 0 28쪽
27 운터 브룩에서 - 02 15.11.04 528 0 21쪽
26 운터 브룩에서 - 01 15.10.10 478 0 11쪽
25 운터 브룩으로 가는 길 - 03 15.04.30 425 0 24쪽
24 운터 브룩으로 가는 길 - 02 14.07.18 620 0 19쪽
23 운터 브룩으로 가는 길 - 01 14.07.10 430 0 25쪽
22 뉴 빌리지와 뉴 빌리지 - 07 14.07.09 418 0 14쪽
21 뉴 빌리지와 뉴 빌리지 - 06 14.07.08 537 1 22쪽
20 뉴 빌리지와 뉴 빌리지 - 05 14.07.07 471 0 24쪽
19 뉴 빌리지와 뉴 빌리지 - 04 14.07.06 675 1 17쪽
18 뉴 빌리지와 뉴 빌리지 - 03 14.07.05 599 0 17쪽
17 뉴 빌리지와 뉴 빌리지 - 02 14.07.04 560 0 32쪽
16 뉴 빌리지와 뉴 빌리지 - 01 14.07.02 837 0 21쪽
15 운터 브룩과 무르짐 산맥 - 02 14.06.30 715 1 40쪽
14 운터 브룩과 무르짐 산맥 - 01 14.06.29 626 0 36쪽
13 이븐타운과 무르짐 산맥 - 03 14.06.28 571 2 43쪽
12 이븐타운과 무르짐 산맥 - 02 14.06.27 769 0 30쪽
11 이븐타운과 무르짐 산맥 - 01 14.06.26 519 0 14쪽
10 피아제와 비고츠키 14.06.25 567 0 13쪽
9 이스트 민스터와 이스트 민스터 - 05 14.06.24 700 1 45쪽
8 이스트 민스터와 이스트 민스터 - 04 14.06.23 349 0 37쪽
7 이스트 민스터와 이스트 민스터 - 03 14.06.20 512 0 32쪽
6 이스트 민스터와 이스트 민스터 - 02 14.06.19 384 1 10쪽
5 이스트 민스터와 이스트 민스터 - 01 14.06.14 592 3 23쪽
4 운터 브룩과 이스트 민스터 - 02 14.06.13 405 2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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