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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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BLOOD
작품등록일 :
2014.08.01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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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19. 둘째 날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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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지금이야!”

넘어진 탁자 뒤에서 몸을 일으키는 진수가 보였다. 여전히 권총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총구가 향하는 곳은 단얼이 아니었다. 진수의 총에서 연달아 불꽃이 튀었다.

단얼은 상체를 세우며 아이들 손을 잡았다. 진수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기 위해 막 일어서려는 순간 또 다른 벽이 앞을 막았다.

이번에는 그냥 번쩍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불길이 이글거리며 순식간에 단얼과 아이들 앞을 막았다. 뒤돌아 봤지만 이미 불길이 사방으로 퍼져 있었다. 세 사람은 완전히 포위되었다. 단얼은 붉은 불꽃 너머에 서 있는 검은 그림자를 봤다.

불길이 강해지며 점점 열기가 덮쳐왔다. 단얼과 아이들은 서로 끌어안은 채 꼼짝할 수 없었다.

또다시 총소리가 이어졌다. 마족의 고함소리도 들려왔다. 전투는 멀지 않은 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단얼!”

소음 속에서 진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쪽 불을 꺼서 길을 만들 거야! 아주 잠깐이니까 바로 빠져나와야 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이젠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도 모르겠다.

단얼은 그냥 진수가 시키는 대로 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불길이 너무 뜨거워 이젠 똑바로 쳐다보기도 힘들었다.

다시 진수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이번에는 마족어로 말하고 있었다.

앞에 보이는 불꽃이 하얀 수증기로 바뀌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흘러온 물줄기가 위에서 뿌려지며 불의 고리를 끊어 놓았다. 물줄기가 옆으로 움직이며 불을 거의 반 정도까지 꺼놓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꺼졌던 불꽃이 금방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므레! 므레!”

저 앞에서 마족 경찰이 팔을 흔들어댔다. 단얼은 딸기와 바닐라의 손을 꼭 잡고 뛰어나갔다. 불의 고리가 있던 자리를 빠져나오자 등 뒤에서 다시 열기가 확 덮쳐오는 게 느껴졌다.

단얼과 아이들은 경찰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꺄!”

바닐라가 그것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단얼과 딸기도 그것을 봤다. 경찰 제복 차림의 시체 한 구가 구석에 누워 있었다.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붉은 자국이 바닥에 길게 이어졌다. 시체가 입고 있는 제복도 붉게 얼룩져 있었다.

사람이 죽었다.

단얼은 특별히 뭔가를 기대하고 이번 단체 관광에 참여한 게 아니었다. 그냥 친구가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 나선 것뿐이었다. 역시 여림이 못 간다고 했을 때 돌아섰어야 했다. 마왕국에 오는 게 아니었다. 이런 위험한 곳에.

“괜차스미까?”

살아남은 마족 경찰이 말했다. 그의 옷 여기저기에도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때 머리위로 이글거리는 불덩어리가 날아와 방 한가운데 떨어졌다. 바닥에 나무가 깔려 있어서 불길이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유아바!”

경찰이 소리치며 단얼과 아이들을 진열대 아래로 밀었다.

어느새 그의 손위에 물방울이 돌고 있었다. 그것은 점점 커져서 거의 축구공만 해졌다. 앞으로 손을 뻗자 길게 물줄기가 되어 불 위로 쏟아졌다. 수증기를 일으키며 불이 잦아들었지만 완전히 꺼지지는 않았다. 커다란 물의 구슬을 두 개나 더 쏟아낸 후에야 간신히 꺼졌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마법의 신비함을 감상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이번에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총탄이 날아들었다. 가게 안에 있던 물건들이 깨지고 떨어지고 흩어졌다.

진수 오빠는 어디다 대고 쏘는 거야!

딸기와 바닐라가 단얼에게 안겨 떨고 있었다. 마족 아이들에게 이런 총격전은 듣도 보도 못 한 일일 것이다. 단얼에게도 영화에서나 가능한 경험이었다.

잠깐.

뭔가가 이상했다. 조금 전까지 단얼이 들은 것은 몇 초 사이에 여러 발이 연달아 발사되는 소리였다. 그런데 진수가 들고 있는 것은 권총 한 자루였다. 무기에 문외한인 단얼이 생각해 봐도 그런 권총으로 저런 요란한 연사는 불가능하다.

단얼은 옆에 있는 마족 경찰을 봤다. 무기래 봐야 허리에 찬 긴 칼이 전부였다. 그나마 뽑을 생각도 없어 보였다.

이때까지 들었던 그 총소리는 아군이 쏜 게 아니란 뜻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뿐이다. 어이없고 황당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진수는 적들이 쓰는 공격 마법이 약하다고 했다. 그 말이 맞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총을 든 마족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노예로 학대받고 천대받던 인간이 마족에게 대항할 수 있게 된 것은 총기와 폭탄 같은 무기가 개발되면서부터다. 인간은 마족의 마력을 능가할 수 있는 무기를 수 천 년 동안 연구해왔다. 마지막 인마전쟁에서 마족은 인간이 사용하는 강력한 화포와 폭탄에 밀렸고 결국 거대한 결계 안에 숨어버리는 것으로 패배를 인정했다. 이후에도 인간은 더욱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 왔다. 더 이상 마족과 전쟁을 벌이지 않는 대신 같은 인간에게 총구를 겨눈다는 게 문제지만.

어느새 총소리가 멈췄다.

단얼은 조심스럽게 진열대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가게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진수가 보였다. 넘어진 커다란 탁자를 방패삼아 몸을 숨기고 있었다. 아까 봤던 권총을 여전히 손에 들고 있었다. 다른 무기는 보이지 않았다.

왼쪽에 조금 전까지 아이들과 단얼이 갇혀 있던 불의 고리가 보였다. 거세던 불길이 잦아들어 거의 꺼져가고 있었다. 주변에 널린 물건들은 까맣게 타들어가 원래 용도가 뭐였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 너머로 단얼과 아이들이 지나온 골목이 보였다. 모퉁이에 세워진 수레도 그대로였다. 그 옆에 그것이 웅크리고 있었다. 검은 그림자. 그리고 그것이 들고 있는 무기도 확인할 수 있었다. 거리도 멀고 수레 옆으로 나온 일부분만 보였지만 눈에 익은 물건이었다. 주로 전쟁 영화나 액션 영화에서 많이 봤던 무기.

전투복을 연상시키는 검은 복장과 인간의 무기. 현호의 말이 맞았다. 그들은 테러리스트다.

건물 안에 숨어 있던 사람을 맞출 만큼 그림자는 인간의 무기를 능숙하게 다룬다. 그렇다면 어째서 단얼과 아이들은 무사한 걸까. 바로 앞에 엎어져 있었으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쏴버릴 수 있었을 텐데.

[소중한 인질을 해치진 않을 테니.]

단얼은 작은 남자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검은 그림자와 그 남자가 한 패라면 목적도 같을 것이다. 인질을 잡아 가는 것. 그래서 단얼을 직접 쏘지 않고 불의 고리로 가두려 했던 것이다. 방금 전에도 건물에 불을 질러 밖으로 끌어내려는 속셈이었겠지. 목적만 달성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저기 누워 있는 시체처럼 되어도 상관없다는 식이리라.

죽은 동료를 바라보는 마족 경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땀을 많이 흘리고 호흡도 가빠 보였다. 고작 불끄기 마법 몇 번 쓰고 벌써 지친 건가.

바닐라는 웅크린 채 벌벌 떨었다. 딸기가 옆에서 달래고 있었지만 겁먹은 표정은 다르지 않았다.

테러리스트에게 잡혀가면 무슨 일을 당할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았다. 죽게 내버려 두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대체 뭘 할 수 있는데. 여기서도 내내 이리저리 끌려 다니고 도망 다니기만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단얼은 딸기와 바닐라를 꽉 끌어안았다. 저들이 인질을 죽일 수 없다면 아이들을 위해 단얼이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다.

흑백 아저씨는 어떻게 됐을까. 저 밖에 있는 검은 그림자는 아까 봤던 놈들이 아니다. 그렇다면 아저씨는 아직도 거기서 싸우고 있을까. 이미 잡혀 갔을까. 아니면….

그 다음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건 더 이상 관광도 뭣도 아니다. 판타지 소설이나 마왕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이다.

옆에서 마족 경찰이 뭐라고 중얼거렸다.

경찰이면 경찰답게 지원 요청이라도 하라고. 동료의 뒤를 따르고 싶지 않다면.

대체 마왕은 뭐하고 있는 거야? 자기 왕국에서 테러리스트가 설치는데!

그때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이때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무서운 소리였다. 소총 정도가 아니라 뭔가가 터지는 듯한 소리였다.

“꺄!”

바닐라가 또 비명을 질렀다. 건물 벽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앞서 본 것의 몇 배는 되는 불덩어리가 떨어졌다.

순식간에 주변이 불바다가 됐다. 경찰은 불끄기를 포기하고 대신 물의 벽을 만들었다. 그것으로 다가오는 불길을 막아보려 애썼다. 그의 물은 빠르게 증발되어 갔다.

“거기서 나와!”

밖에서 진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경찰이 단얼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얼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경찰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머리 뒤로 불붙은 천장재가 떨어지는 게 보였다. 물의 벽은 이미 거의 사라져 가고 있었다.

나가면 죽는다. 단얼은 죽지 않을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고 여기 이대로 있다간 몸 안의 물이 증발하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인질이 목적이라면 설마 구이가 될 때까지 내버려 두진 않겠지.

딸기와 바닐라가 기침을 해댔다. 단얼도 점점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기어이 경찰은 마법을 포기하고 완력으로 단얼을 끌어내려 했다.

“안 돼!”

단얼이 그렇게 외치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아이들도 숨이 막혀 괴로워하고 있었다.

경찰이 바닥에 쓰러졌다. 살기 위해 산소가 필요하기는 마족이나 인간이나 마찬가지다.

단얼도 몸을 지탱하기 힘들었다. 눈앞이 점점 흐릿해졌다.

그때 바람이 불어왔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신선한 공기가 흘러들어 왔다. 단얼은 폐 속 깊이 산소를 채웠다.

딸기와 바닐라도 숨을 쉬고 있었다. 이제 막 숨 쉬는 법을 배우는 것처럼 빠르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마족 경찰도 바닥에 누운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주변 모습이 완전히 변해 있었다. 불길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검게 그을린 바닥과 천장만 남았다. 구석에 있던 시체는 차마 쳐다볼 수가 없었다.

“괜찮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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