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 5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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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나와 이 남자가 동아리 오리엔테이션에 가는 날이라고 한다. 같이 가기로 했다고 한다. 뭐 당연한 일이긴 하다. 근데 뭔가 좀 이상하다.
내가 가지도 않는데 나를 나라고 부르는건 뭔가 잘못된 거 같다.
"수아가...."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순간적으로 내 혀를 내 이빨로 깨물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너무 아플 것 같아서 이빨로 혀만 살짝 집듯이 물어볼 뿐이다. 이빨이 가렵고, 온 몸이 근질거리는것 같고, 옷속으로 무언가 벌레 한마리 떨어진 것 같이. 기분이 이상하다. 도저히 이 말은 할 수 없다.
자기 이름을 자기가 직접 부른다니......대체 다른 사람들은 이게 어떻게 가능한거지? 게다가 자기 이름에 조금 이상한 억양과 악센트를 넣어서 말하는 애들은 이런 고통을 매번 겪고 있다는거잖아?
"수아씨가......"
이건 뭐라 말 할 수 없는.....뭐라 말할 수 없는 거부감이 밀려온다. 방금전까지는 너무 발랄해서 거부감이 일어났다면, 이건 너무 갑작스럽게 선자리에 나온 것 같은 기분이다. 나인데 너무 멀어진 나를 말하는 것 같다. 물론 멀긴 하다.
쉽게 내뱉을 게 아닌거 같다. 한 마디 한 마디 생각한 걸 내뱉을 떄마다 온 몸에 두려움이 밀려온다. 게다가 이 곳은 너무나도 조용해서 내 말 하나하나가 메아리치는 것 같다.
"음.....그녀가...."
거부감이 덜하다. 확실히 덜하다.
"그녀.....그녀.....그녀가....그녀에게.....그녀를......"
확실히 괜찮다. 부를수록 익숙해지는 것 같다. 자신을 3인칭시켜서 말하는 건 괜찮은거 같다. 당사자인 내가 괜찮으니 사용해도 될 듯 하다. 화자이기도 하지만 당사자이다. 누구에게도 권한을 물어볼 필요가 없는 거다.
그럼 다시 말해보자. 그녀가 이 남자가 봉사동아리 오리엔테이션에 가는 날이라고 한다. 좋으면서도 나쁘다.
동아리라니, 동아리라니, 나조차도 그런 건 해본 적 없는데, 그녀는 동아리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니. 조금 SNS적 표현을 빌려서 [나에게 주는 선물] 이라고 표현한다면...기뻐해야 할 일이긴 하지만. 나는 여기 있다. [나에게 주는 선물] 이 아니라 그저 [그녀에게 주는 선물] 이 될 뿐이다.
동아리가 좋냐 생각하면....아니다.
하지만...싫냐 생각하면...아니다..
좋지도 싫지도 않지만...말해보면...누군가 나에게 물어보면. 좋지 않다고 답하겠지만.. 표현해보자면....싫은 것보다 싫지 않은게 크다.
그녀와 이 남자는 동아리 오리엔테이션에 가서 무엇을 하게 될까.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수많은 것들을 할 것이다. 내 시간이 흘러가지 않는 그곳에서 수없이 길고 긴 시간이 흘러갈 것이다. 서로 대화를 하겠고, 서로 소개를 하겠고, 서로의 일을 말하겠고, 앞으로의 의지를 다질 지도 모른다. 새로운 방식을 알려주고, 다음 모임도 정하고, 규칙을 알려줄지도 모른다. 오리엔테이션은 왠지는 모르겠지만 [기쁨] 이라는 단어도 가지고 있으니 같이 술을 마실지도 모르겠다. 아닌가? 확실히 봉사동아리랑 술은 너무 안어울리잖아? 회비가 있었던가? 회비?
'회비도 있어?'
'어. 만원이던데.'
만원이면 술을 마실 가능성이 높다.
'장소는?'
'XXXXX'
잠깐 거기라면 술을 마실 가능성이 너무 높잖아? 거기 너무 번화가 근처잖아. 게다가 대학가로 유명한 곳이고. 이거 문제 있는거 아니야? 봉사동아리랑 음주행위는 너무 안어울리잖아. 자고로 봉사동아리라면 오티는 고아원이나 보육원같은 곳에서 아이들과 놀아주며 그 즐거움을 공유하면서 과자파티정도로 끝내야 되는거 아니야? 음료는 쿨피스에다가. 조금 사치를 부려봤자. 치킨,피자에 콜라 사이다를 먹는게 봉사동아리에 원래 그거 아니겠냐고.
하여간...정말 마음에 안들어. 이거 나를 위한거 맞긴 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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