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수의 굴레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세스퍼
그림/삽화
발아현미우유
작품등록일 :
2014.08.20 17:22
최근연재일 :
2020.08.11 17:50
연재수 :
389 회
조회수 :
447,884
추천수 :
12,219
글자수 :
3,143,319

작성
17.10.02 17:28
조회
232
추천
12
글자
17쪽

(29막) 빛과 진실이 흐르는 땅에 그 아이의 이름이 울려 퍼지기를 (8)

DUMMY

“아, 오셨군요.”


천막에 들어서자마자 들려오는 묘한 울림에 고도는 로브를 벗으려던 손을 멈춘다. 고개를 들자, 그녀와 마찬가지로 로브를 눌러쓴, 그러나 그 속의 안광만큼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한 망자가 간이침대에 앉아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어쩐 일이에요, 마스ㅌ-”


“어떠셨습니까?”


“임무요? 뭐어, 그럭저럭.”


“임무를 여쭤본 게 아닙니다.”


“.......”


예상은 했다.

비공식적인 ‘임무’였지만 그 짙은 마력의 잔향을 이 망자가 놓쳤을 리 없으니까.


“고도, 저는 지금 학자로서, 당신의 스승으로서 묻는 게 아닌, 과거 한 사람의 인간이었던 자로서 묻고 있는 겁니다.”


얼굴의 모든 근육과 피부는 사라졌고 안구를 대신하여 푸른 안광만이 남아있는 망자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고도는 오캄푸스의 목소리로부터 전해져오는 긴장감을 통해 그의 말이 어떤 의도를 지니고 있는지 예측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는 괜찮았어요. 몸에 무리가 오는 건 아닐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후유증도 없는 것 같은데요. 살짝 근육이 땡기는 정도?”


“육체의 피로와 영혼의 피로는 다르게 보아야 합니다. 고도가 내어준 것은 어디까지나 ‘영혼의 자리’. 영혼의 그릇인 육체를 망가트리지 않고 돌려받았다고 하여 안심해서는 안 돼요.”


“그들에게 악의는 없을 텐데요.”


“그건 모르는 일.”

망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도에게 다가오더니, 이내 딱딱한 손뼈로 고도의 손목을 붙잡는다. 그의 푸른 안광은 그녀의 손목에 자리 잡고 있는 ‘팔찌’를 향해 있었지만, 그가 진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단순한 팔찌나 그녀의 피부가 아닌, 더욱 깊은 곳의 상처였다.

“제아무리 장인정신을 외치는 덜린족이라 할지라도, 마땅히 소멸했어야 할 본인의 영혼이 그저 새로운 주인들의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반기지 못하는 자도 분명히 있기 마련입니다. ‘움브라스톤’이 아직 이 땅에 남아있는 그들의 후손 입장에선 시대를 바친 걸작이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소멸할 권리조차 박탈당한 저주로 느껴질 수도 있지요. 특히, 그 연결고리가 영혼 그 자체를 인질로 삼는 혈마법이라면 더더욱.”


“마스터, 저 정말로 괜찮다니까요. 의식을 잃지도 않았고, 주도권을 내주지도 않았어요.”

오캄푸스에게 붙들린 손을 거두고, 고도는 자신의 로브를 벗어 내린다. 조잡한 문양의 팔찌들과 목걸이, 그리고 그들 사이를 잇고 있는 회색빛의 사슬. 그러나 그녀의 말처럼, 그 어디에도 물리적인 상처나 근육의 떨림, 또는 비릿한 마력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 예상보다 훨씬 수월해서 깜짝 놀랐을 정도였는데요? 당황하지 않고 운용에 익숙해지기만 하면, 혈마력이 아닌 일반 마력으로도 충분히-”


“부족하겠지요.”


“.......”


오캄푸스는, 여전히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력은 연결고리. 움브라스톤은 담고 있는 그릇. 몇 명이나 해치우셨죠? 열 명? 그 정도 숫자로는 그릇에서 빌린 영혼의 갈증을 달래주기엔 턱없이 모자랐을 테죠. 고도는 혈마법사였기에 그 부족한 대가를 본인의 마력으로 충당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일반마법사라면? 만약 그 영혼을 다루는 게 일반마법사였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부족한 갈증을 무엇으로 충당했을까요?”


“.......”


물론 고도는 알고 있었다.

벤도 고브나이도 이 ‘대가’에 대한 맹점을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요소라고 당부했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시범운용’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고도는 알고 있었다.


“.......악마의 속삭임을 받는 자들에겐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 모두가 야심가이며 능력자이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맹목적이라는 점이죠. 그리고 본인들은 충분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페어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든가, 더 이상 월경이 오지 않는다든가 하는 것들은 진정한 계약의 대가가 아닙니다.”


팔찌와 목걸이를 분리하던 고도가 빠르게 고개를 돌려 날카로운 시선으로 망자를 쏘아본다. 하지만 그건 수치심이나 치부를 들킨 것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다.


“하고 싶은 말씀이 뭔데요?”


오캄푸스는 다시 한 번 고도의 앞으로 다가가, 그녀를 ‘구속’하고 있던 팔찌와 목걸이를 대신 풀어주고 그것들을 침대 위에 내려놓는다. 그리곤, 살며시, 살가죽이 남아있었다면 분명 따스했을 손으로 고도의 어깨를 부여잡는다.


“고도, 이 대가에 대한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전까지는 움브라스톤의 활용은 전적으로 고도에게만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당신은 매번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전장에 나가는 셈입니다. 제가 도와드리고 싶지만, 보다시피 저는 더이상 그들을 담아낼 그릇이 없는 존재. 이 과정은 카나반 전체에서 오직 고도만이 짊어져야 할 굴레입니다.”


“제 역할이 그거인데요, 뭐.”


“정말로 그렇습니까?”

고도의 어깨를 붙들고 있는 뼈에 힘이 가해지기 시작한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자신의 눈동자를 봐달라는 듯이.

“당신은 합리적인 마법사입니다. 아니, 합리적인 마법사였습니다. 그랬던 당신이 어째서 연구자나 교수가 되지 못하고, 전장에서 피를 흩뿌리는 사신이 되어야 했습니까?”


“.......그랜드마스터였던 분이 그런 말을 하는 건 좀-”


“전투마법사 그 자체를 비난하려는 게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고도 당신은, 목적과 수단의 관계가 심히 뒤틀려있어요.”


“.......”


“왜 ‘변수’는 당신에게 이러한 것들을 명령합니까? 왜 총장이 당신에게 전투마법사로서의 재능이 있다는 이유로 그랜드마스터라는 미끼를 물게 방치했습니까? 왜 이리저리 휘둘릴 미래를 알고 있으면서도 저항하지 않았나요?”


“왜냐면요, 마스터.”

고도는 천천히, 무례하지 않을 정도의 강도로,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려진 망자의 손뼈를 바깥으로 밀어낸다.

“저는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좆같은 고아였기 때문이에요. 장학생이든 수석이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어요. 저는 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저라는 그 자체로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마법대학에서 뼈져리게 느꼈고, 벤과 학회장님은 그 절망에 대한 원인과 구원의 손길을 동시에 주었어요. 제가 거기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겠어요? 모든 걸 포기하고 거리로 돌아가 몸이라도 팔면서 지냈어야 했을까요? 그랜드마스터가 되어야 하는, 실로 보잘것없는 이유에 대해 설명회라도 하고 돌아다녀야 했을까요? 이 세상에 던져진 이후로 가질 수 있었던 인연이라고는 평생의 친구라고 믿었던 인형밖에 없었던 저에게 스스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어요? 심지어, 아직도 그 인연에 얽매여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해골바가지 앞에서 소리나 지르고 있는데!”


“.......”

폭풍이 지나간 후에 깊은 정적이 흐른다. 정말로 할 말이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턱뼈를 움직여줄 근육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오캄푸스의 침묵은 길고 굳건했다. 때문에, 그 침묵의 끝에서 이어진 그의 목소리는 더욱 깊게 고도의 미간에 박혀올 수 있었다.

“그 본질이 무엇이든, 본인을 본인답게 만든 첫 번째 인연은 분명 소중한 법이죠. 하지만 말씀처럼 그 첫 번째 인연에 집착하여 다른 모든 인연과 감정을 무시해서는 안 되며,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다른 인연?”


“네. 예를 들면, ‘변수의 검성’ 벤은 고도 당신에게 있어 어떤 존재입니까?”


“.......”

고도는 망자의 손길에서 벗어나 한걸음 뒤로 물러난다.

그리고

생각한다.

기억을 뒤지고 감정을 헤집어가며 생각한다.

본인은 자각하지 못한 채로 흐르는 침묵과 고민의 시간 끝에서,

그녀는 마침내 입술을 뗀다.

“.......저는 그의 멘토죠.”


“멘토와 멘티. 그뿐입니까?”


“........친....구......이기도 하고요.”


고도가 ‘친구’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다는 것에 얼만큼의 노력이 필요했는지 오캄푸스는 알고 있을까.


“친구, 좋아요. 그렇다면, 고아원에서의 인연과 벤하고의 인연, 둘 중에 어떤 것이 고도에게 더 소중합니까.”


“그거야-”

쉽게 대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어왔다.

“.......그거야.......”


“바로 그겁니다, 고도. 혼자 쌓아두면서 어느 하나에만 집착할 필요는 없어요. 벤은 물론이고 저나 다른 사람들도 고도가 손을 뻗으면 답을 해줄 겁니다. 다시 이기적인 당신으로 돌아가세요. 고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서 당신만 희생할 의무는 없습니다.”


“뭔가 잘못알고 계시네요, 마스터.”

고도의 입가로, 그녀의 눈빛처럼 퍼런 미소가 번져나간다.

“전 아직도 이기적이에요. 처음부터 희생 따위 할 생각 없었어요. 아까 제 수단과 목적이 뒤틀린 것 같다고 하셨죠? 죄송하지만, 이게 바로 저만이 할 수 있는, 제가 판단한 수단이자 목적이에요. 제가 원하는 건 오직 ‘진실’. 남들은 별거 아닌 동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바로 지금까지의 저를 움직이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든 거라구요. 그걸 위해서면, 사신이든 실험체든 다 받아들일 거예요.”


그녀의 미소는 엇나가있다.

그녀의 시선도, 엇나가있다.

그러나 오캄푸스는 그 이상 목소리를 꺼내지 않는다.


그녀 스스로 깨닫기 전까지는, 결코 알려줄 수 없는 답이었으니까.





================





“그렇게 인간들은 빛이 흐르는 축복을 따라 살게 되었답니다.”


“.......”


“........음, 역시 아직 너한텐 너무 어렵지?”


대답을 대신하는 말똥말똥한 눈망울. 엄마를 쏙 빼닮은 샛노란 눈동자를 볼 때면 언제나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온다. 결국, 로빈은 또다시 참지 못하고 읽던 책을 덮은 뒤 요람 안으로 얼굴을 넣어 아들의 통통한 볼에 입을 맞추어야 했다.


“뭐해?”


개인훈련과 샤워를 마치고 돌아온 지나였다. 그녀는 침실의 문을 닫은 후, 수건으로 샛노란 머리에 남아있는 물기를 털어내며 두 남자에게 다가선다.


“우리 애기 책 읽어주고 있었지.”


로빈의 손가락이 코를 건드리자, 그 간지러운 느낌이 무척이나 재밌었는지 레이븐이 방실 웃음을 터트린다. 그리고 그 웃음은 마치 날카로운 검처럼 로빈과 지나의 심장을 관통했고, 동시에 두 사람의 표정을 허물어버린다.


“아, 진짜 내가 낳아서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레이 너무 심각하게 귀여운 거 아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견제를 물리치고, 먼저 아이를 안아 올리는 데 성공하는 지나.


“울지도 않아, 보채지도 않아, 이렇게 착한 아이가 세상에 어디 있어?”


“그러니까. 웃는 건 많이 봤는데 우는 건 못 봤지. 아, 한 번 있었다.”


“벤이 안았을 때.” “벤이 안았을 때.”


동시에 같은 대답을 내고, 동시에 웃음을 터트리는 부부. 로빈은 그 틈을 타 레이븐을 빼앗으려고 했지만, 지나의 턱과 어깨에 의해 저지되고 만다.


“그전에도, 그 후로도 레이가 운 적이 한 번도 없었지? 졸리거나 배고플 때도 조금 보채는 정도였고.”


“응.”


“.......벤 그 새끼는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로빈의 장난 어린 질책은 그 이상 이어지지 못한다. 레이븐이 지나의 품속에서 끙끙거리기 시작했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지나는 알고 있었기에 셔츠의 단추를 풀어 가슴을 꺼내었다. 로빈은 지나와 아들을 위해 의자를 끌어와야 했다.

“그건 그렇고, 내일부터 복귀한다며?”


“응.”


“더 안 쉬어도 돼? 육아휴직도 신청할 수 있을 텐데.”


“몸 다 멀쩡한데 뭐 하러 쉬어? 다들 긴박하게 돌아가는데 나 혼자 멍때리고 있을 순 없잖아.”


“그래도-”


“너야말로 요새 증세안 때문에 머리 아프다며. 내가 뭐 도와줄 거 없어?”


기껏 의자를 끌어다줬으나 지나의 선택은 안락의자가 아닌 로빈의 옆이었다. 덕분에 로빈은 꿀떡꿀떡 젖을 삼키는 아들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뭐, 그거야 나보단 총리님이 고생하실 일이니까.”


“라즈팔라무스의 새로운 가주는 어때?”


“벤이 괜찮은 녀석이라고 했으니 믿어보는 거지 뭐. 총리님도 맡아서 키워주실 생각인 것 같고.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그래....... 그럼 문제는 마즈다힐이네.”


그 이름이 나오자, 로빈은 자신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뱉는다.


“정확히는 ‘벤’이 문제지.”


“증원은?”


“못 해. 지금은 회복기라고 의회에서 당당하게 선포했으니까.”


“크라트 대장은?”


“.......나도 못 하는 걸 그 인간한테 부탁하라고?”


“하긴.”

쪽쪽, 짧은 침묵 뒤에,

“.......그럼 북부군사령관은?”


“.......”

자히르 드라흐마 경.

벤, 그리고 크라트와 더불어 공화국내에서 독자적으로 군을 움직일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은 지휘관 중의 한 명. 그러나 아르다르 본궁에 머무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로빈이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정도였다. 물론 그 시작은 선출식 당시에 자히르가 지나에게 저질렀던 ‘만행’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지금까지 마음에 담아두고 있을 정도로 로빈이 속이 좁은 인물은 아니었다.

그가 자히르를 껄끄러워하는 유일한 이유. 그것은 바로,

“.......그 인간은 좀처럼 속을 알 수가 없어.”


“왜? 우리 레이한테는 잘 해주던데?”


“어떨 때는 든든한 아군이지만, 직접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할 수가 없다고. 카나반 제2도시의 영주를 포기하면서까지 계속 북부군사령관을 맡고 있는 것도 그렇고, 애초에 그 끝이 어떻게 될지 알고 있으면서도 선출식에 나왔던 것도 그렇고........”


“그 사람을 못 믿겠다는 거야?”


“지휘관으로서의 자히르 드라흐마는 신뢰해.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자히르는 잘 모르겠어. 앞을 맡길 수는 있지만, 뒤를 맡기기엔 좀 꺼림칙한? 그런 느낌.”


“예리하기도 하셔라.”


배가 불렀는지 레이븐이 젖에서 입을 떼어낸다. 그리고는 안아 올릴 필요도 없이 거하게 끄윽- 트림을 터트린다. 지나는 그 귀여운 소리가 참을 수 없이 사랑스러웠는지 연신 레이븐의 뺨에 입을 맞추었고, 로빈 또한 아빠미소로 둘을 지켜보았다.


“.......확실히,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


“레이가 태어나고?”


“응.”

한 손으로는 지나의 뺨을, 다른 한 손으로는 레이븐의 머리를 쓰다듬는 로빈.

“이전까지는 왕이라는 직책만으로도 무거워서 정신을 못 차렸지. 당장 눈앞에 닥친 일들만 생각하고, 그걸 해결하는데 모든 힘을 쏟고, 해결하고 나면 끄읕- 이었지. 그런데 아빠라는 무게가 더해지면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


“보이지 않던 것들?”


“응, 바로, 미래야.”

로빈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나간다.

“나의 시간이 끝나도, 더 이상 그게 끝이 아니야. 나의 뒤엔 레이가 있고, 레이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어. 나는 더 이상, 나의 대에 현재를 마무리하는 것에서 끝낼 수 없어. 바로 그 책임이 나를 조급하고 바쁘게 만들어버린 거야. 왜냐면, 나는 내 아버지가 나에게 하지 못한 걸 레이에겐 해주어야 하니까.”


“.......”


피의 광란에서 수많은 목숨을 담보로 빠져 나왔다.

십수 년 동안 아무것도 모른 채 시골에 처박혀 있다가

급류에 휩쓸리듯 돌아와 왕의 자리에 오르고

인연을 만들고

사랑을 했으며

결실을 맺었다.

이 남자의 시간은 자신과,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와 그 어머니가 사랑했던 자의 대가를 치렀다. 그는 구원했고, 구원받았다. 그럼에도, 그의 미래는 이제 시작했을 뿐이었다.

지나는 그 누구보다도 그의 시간을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레이가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존경받았으면 좋겠어. 이 녀석에게 절망이 아닌, 새로운 세상에서 시작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 싶어. 전쟁이나 피로 얼룩진 세상이 아니라, 빛이 흐르는 땅에서 이 녀석의 이름이 울려 퍼졌으면 좋겠어.”


“.......”


“역사에 내 이름과 업적이 단 한 줄로 끝난다고 해도 상관없어. 이 아이가 카나반의 빛이 되어줄 수만 있다면, 나는 남은 내 평생이 그림자가 된다 해도 행복할 거야. 그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삼켜버릴 준비가 되어있어.”

지나와, 지나에게 안겨 있는 레이븐.

그 둘을 한꺼번에 품에 안으며, 로빈은 미소를 거둔다.






“설령, 모든 죄악과 오명이 나의 몫이 된다고 해도.”


작가의말

해피메리추석!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7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변수의 굴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휴재 공지 +1 19.10.14 176 0 -
공지 악마와의 대담 -2- (배경설정집 / 노잼주의) +15 15.03.05 1,643 0 -
공지 악마와의 대담 -1- (배경설정집 / 노잼주의) +4 15.03.05 2,367 0 -
공지 안녕하세요. 감히 공지란 걸 올려봅니다. (지도 첨부 02/06 수정) +4 14.09.11 4,099 0 -
389 (35막) 성급한 각성 (7) +3 20.08.11 112 4 10쪽
388 (35막) 성급한 각성 (6) +1 20.08.03 74 2 11쪽
387 (35막) 성급한 각성 (5) 20.07.28 60 2 10쪽
386 (35막) 성급한 각성 (4) 20.07.22 62 1 12쪽
385 (35막) 성급한 각성 (3) 20.07.16 61 3 12쪽
384 (35막) 성급한 각성 (2) 20.07.10 63 4 12쪽
383 (35막) 성급한 각성 (1) 20.07.05 70 3 12쪽
382 (막간) 조련 +2 20.07.01 75 3 11쪽
381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11) +1 20.06.27 73 2 12쪽
380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10) +1 20.06.25 67 2 12쪽
379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9) +4 20.06.22 136 4 16쪽
378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8) +4 19.09.25 123 5 10쪽
377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7) +2 19.09.20 195 4 15쪽
376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6) 19.09.15 89 4 11쪽
375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5) +2 19.09.09 99 4 10쪽
374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4) 19.09.04 106 2 12쪽
373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3) 19.08.30 85 3 12쪽
372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2) 19.08.24 104 3 13쪽
371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1) +2 19.08.18 173 3 12쪽
370 (막간) 저 너머 +2 19.08.13 101 4 14쪽
369 (33막) 겨울이 끝나도 봄은 오지 않는다 (11) 19.08.07 115 3 19쪽
368 (33막) 겨울이 끝나도 봄은 오지 않는다 (10) 19.08.02 96 3 14쪽
367 (33막) 겨울이 끝나도 봄은 오지 않는다 (9) +2 19.07.28 111 3 13쪽
366 (33막) 겨울이 끝나도 봄은 오지 않는다 (8) 19.07.23 96 3 13쪽
365 (33막) 겨울이 끝나도 봄은 오지 않는다 (7) +5 19.07.19 148 2 16쪽
364 (33막) 겨울이 끝나도 봄은 오지 않는다 (6) 19.07.13 135 1 15쪽
363 (33막) 겨울이 끝나도 봄은 오지 않는다 (5) 19.07.07 139 2 13쪽
362 (33막) 겨울이 끝나도 봄은 오지 않는다 (4) 19.06.16 131 1 12쪽
361 (33막) 겨울이 끝나도 봄은 오지 않는다 (3) +2 19.06.09 122 4 11쪽
360 (33막) 겨울이 끝나도 봄은 오지 않는다 (2) +1 19.06.02 164 4 15쪽
359 (33막) 겨울이 끝나도 봄은 오지 않는다 (1) 19.05.26 154 3 17쪽
358 (막간) 만년설을 녹이는 방법 19.05.18 160 4 14쪽
357 (32막) 갈림길 (10) +3 19.05.12 139 5 15쪽
356 (32막) 갈림길 (9) +2 19.05.07 168 7 15쪽
355 연재 관련 +5 18.11.28 316 7 1쪽
354 (32막) 갈림길 (8) +2 18.11.20 284 5 13쪽
353 (32막) 갈림길 (7) +2 18.11.15 187 4 11쪽
352 (32막) 갈림길 (6) 18.11.10 179 6 14쪽
351 (32막) 갈림길 (5) 18.11.05 192 6 12쪽
350 (32막) 갈림길 (4) +1 18.10.31 225 7 12쪽
349 (32막) 갈림길 (3) 18.10.26 202 5 11쪽
348 (32막) 갈림길 (2) 18.10.21 204 6 14쪽
347 (32막) 갈림길 (1) +1 18.10.16 232 6 13쪽
346 (막간) 자격 18.10.11 213 5 13쪽
345 (31막) 방관의 의도 (11) 18.10.06 205 8 15쪽
344 (31막) 방관의 의도 (10) +1 18.10.01 230 6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