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수의 굴레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세스퍼
그림/삽화
발아현미우유
작품등록일 :
2014.08.20 17:22
최근연재일 :
2020.08.1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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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1.04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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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30막) 정말로 새롭게 피어난 향기는 역할 수밖에 (2)

DUMMY

“아, 진짜 더럽게 걸리적거리네.”


“그쪽 커다란 궁둥이가 걸리적거리는 거겠지.”


국경을 넘어선 뒤로 낮에는 엄폐하고 밤에 움직이기로 합의한 오즈카와 일행들이었지만, 서로를 향해 있는 악랄한 혀는 24시간 동안 쉴 기세가 보이질 않는다. 이동을 위해 일어나자마자 바로 옆에 누워있던 반즈를 향해 비난을 퍼붓는 라셰와, 그에 지지 않고 곧바로 응수하는 반즈의 날선 목소리. 나무 위에서 보초를 섰던 그레이는 그런 그들을 내려다보며 밤하늘을 낀 채 비웃음을 뱉는다.


“서로 껴안고 잘 때는 언제고 뭐 그리 이빨을 터실까?”


“내가? 이런 아줌마랑? 지랄.”


“누구더러 계속 아줌마라는 거야?”


라셰의 도발에 반즈는 군장보다 먼저 검부터 챙겨 든다. 라셰 또한 덤벼보라는 듯 반즈의 턱 아래로 주먹을 들이밀었고, 그레이는 다소 커져가는 이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마냥 재미있다는 듯 킬킬 웃으며 자신의 민머리를 쓸어 올린다.


“그만하세요.”

그러나 이번에도 단번에 험악한 분위기를 정리하는 오즈카의 목소리. 홀로 숙면도 취하지 않으면서 주변정찰을 계속해오던 그였지만, 오즈카의 굳은 얼굴에서는 그 어떤 피로의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제국의 국경지역입니다. 언제 적의 정찰대와 조우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좀 더 주변에 신경을 써주십시오.”


“아, 예에.......”


“죄송합니다.......”


어째선지 그의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어버리는 동맹의 기사들. 세 여인이 이동준비를 마치는 걸 가만히 서서 지켜보던 오즈카가 마른 바닥 위로 전술지도를 펼쳐놓는다.


“지형을 확인하니, 지금 저희의 위치는 대략 이쯤으로 판단됩니다. 마즈다힐군과 검성님의 통합군, 제국2군단의 대치상황이 명확하질 않으므로 진입로 또한 가변적일 것입니다.”


“그 말씀은.......?”


반즈의 의문에, 오즈카는 고개를 끄덕인다.


“예, 저희가 상황에 맞춰서 임의로 경로를 설정하여 이동해야 합니다.”


“멋지네.”


라셰의 말에 비꼬려는 의도는 없었다. 그녀는 순수하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즐기고자 했을 뿐이었다.


“임무도 임무이니, 적절한 규모의 적과 조우할 시엔 적극적으로 교전에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교전 시엔 그레이 경이 후방화력지원, 저와 반즈 경이 1선에서, 라셰 경과 에두가 측면입니다. 알겠나, 에두?”


어둠 속을 향한 오즈카의 마지막 말은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듯이 홀로 늦잠을 자고 있을 에두를 향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화들짝 놀라 일어나며 라셰의 비웃음을 사는 에두의 몸짓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의아한 표정의 그레이가 바닥으로 내려서며 대신 대답을 했을 뿐.


“어, 에두는 저와 교대하고 오즈카 경에게 명령받은 게 있다면서 동쪽으로 따라 나갔는데요?”


“예? 저는 명령을 내린 적.......”

말을 맺지 못하고, 대신 서서히 굳어져가는 오즈카의 입술. 욕을 씹지는 않았지만, 그는 길고 긴 한숨으로 눈앞에 없는 에두를 향한 원망을 뱉는다.

“.......죄송합니다, 바로 움직여야겠습니다.”




==================




“아니 뭐하러 밤중에만 깨작깨작 움직여? 그냥 한 명이 미리 정찰해서 한꺼번에 들어가면 되는 거지.”


마른 숲을 헤집으며 도약하는 에두. 그는 혼잣말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화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그는 특별히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이 처한 상황이 답답하여 빠져나온 건 아니었다. 그저, 동맹의 다른 기사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고픈, 결과적으로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증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어디 한 새끼 안 걸리나.......”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제국군 정찰대, 정확히는 제국군의 기사를 때려잡음으로써 자신을 무시하는 기사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는 것. 마치 사냥감을 찾는 사냥개의 심정으로 밤의 숲을 뚫고 나아가는 에두의 진정한 의중이었다.


“.......!”


밤 내내 내달릴 기세였던 그의 발이 급격하게 멈춰 선다. 여전히 주변엔 스산한 마른 숲의 바람과 어둠뿐이었지만, 기사의 피가 선사하는 감각과는 별개로 에두라는 이름의 ‘미친개’가 갖고 있는 본능이 어둠 너머의 무언가를 탐지한 것이다. 예전의 그였다면 영력의 은폐고 뭐고 무작정 일직선으로 돌진했을 테지만, 일련의 사건들(그 대부분이 가르침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엘라의 ‘체벌’이었지만)을 통해 에두는 이런 상황에서의 접근법을 훌륭하게 생각해낼 수 있었다.

그는 기척을 감추고, 조심스럽게 ‘대상’의 진행방향에서 벗어나 측면의 어둠으로 자신의 몸을 흐려놓는다.

이어지는 ‘기다림’.

에두는 자신의 전술에 뿌듯해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전투는?”


“아직도 소규모 교전 몇 번이 전부입니다. 마즈다힐군의 시선을 남쪽에 묶어두고, 댄 장군이 이끄는 부대가 서쪽의 적군을 우회하여 찌를 계획이-”


“작계는 나도 들어서 알고 있어. 내가 묻는 건 어느 쪽 전투가 더 치열할까-라는 거야.”


가볍지만, 어째선지 가볍게 흘려버릴 수만은 없는 젊은 청년의 목소리. 그러나 중사는 이 청년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서쪽의 전선에서 먼저 대규모 교전이 벌어질 겁니다. 아직 마즈다힐군의 움직임은 포착된 바가 없습니다.”


“좋아, 그럼 서쪽으로 가자.”


“하지만 대위님, 군단장님께서 파견 나온 ‘학살단’ 단원은 예비대에서 대기하시라고-”


“난 그 인간 지시나 받겠다고 파견 나온 게 아니야. 평생 엔트라다에서 검 한번 못 휘둘러보고 인생이 끝나는 단원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이게 무슨 낭비냔 말이지.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실전 기회인데 뒤에서 팔짱끼고 구경만 할까보냐.”


“그러나 명령이.......”


“명령이고 자시고 내가 아무리 본가의 사람은 아니더라도 명색이 달고 있는 이름이 있는데 미쳤다고 그쪽 부자 손에 놀아나겠냐고.”


“.......”

젊은 나이에 걸맞은 곱상한 외모. 붉은 기운이 감도는 짧은 머리카락에 짙은 눈썹, 보다 짙은 눈동자. 본래 용의 문양과 휘장이 새겨진 전투복을 걸치고 있어야 할 이 청년을 향해 부관인 중사는 더 이상 잔소리를 늘어놓을 수 없었다. 만류를 대신하여 그가 선택한 방향은 다름 아닌 타협.

“그렇다면 대위님, 적어도 소속 예비대에 먼저 보고를 하심이.......”


“내가 왜?”

그러나 역시, 돌아오는 건 청년의 구겨진 미간뿐.

“아무리 우검성이 직무를 대신하고 있다고 해도 나는 어디까지나 황제폐하 직속이야. 폐하나 선배들의 간섭이 없는 이상 전장에서의 내 행동은 자율이라고. 애초에 나한테 니들이 붙어있다는 것 자체도 전혀 이해가 안 되는데?”


“저희는 그저 대위님을 보좌하고자-”


“보좌가 아니라 감시겠지.”


“.......”


청년의 말이 예리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터무니없었기 때문일까.

어느 방향이든, 중사는 말을 잃고 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내가 능력이 안 되서 못 벗어나고 니들이랑 같이 다니는 줄 아냐? 니들이 날 놓치면 돌아가서 갈굼당할까 봐 나름 배려해주고 있는 거라고.”


“.......감사합니다.”


“감사한 줄 알면 닥치고 댄 스파인의 부대가 어디인지 안내나 좀 해주-”


청년의 말은 이어지지 못한다.

밤바람이 좀 거세지나 싶더니, 좌측면에서 검은 그림자 덩어리 하나가 불쑥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짐승인가 싶었으나, 가장 먼저 희생양이 된 병사의 비명소리가 짧게 울려 퍼지면서 마침내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적이다!”


가장 먼저 검을 뽑아드는 중사. 그러나 청년은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가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갑자기 나타난 저 ‘사냥개’는 ‘적’이라기보다는 흥미의 대상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허, 맨손?”


그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어떠한 무기도 없이 주먹으로만 자신의 ‘감시자’들을 때려잡고 있는 모습이었다. 미처 대비를 하지 못한 병사의 팔뚝을 부숴버리고,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는 것으로 마무리를 한다. 일반적인 타격이었다면 희생양이 된 병사는 의식을 잃는 것으로 끝났겠지만, 엄청난 영압으로 인해 두개골이 함몰된 병사의 모습에서 생환의 가능성은 조금도 보이질 않았다.

두 번째 이유는,


“적은 혼자다! 포위해!”


말 그대로 아무런 병력도 없이 혼자서 싸움을 걸어왔다는 점이었다. 세 번째 병사의 비명이 흘러나올 쯤에는 이미 중사의 재빠른 지휘로 인해 열 명의 병사가 완벽하게 대형을 이룬 뒤였다. 기사들끼리 서로의 기량을 가늠하기 위한 눈치싸움이 끝나기도 전에 이런 준비된 대형의 한복판으로 달려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저 ‘사냥개’는 망설이지 않았다.


“온닷!”


세 번째 병사의 목을 부러트리자마자 거침없이 이쪽을 향해 돌진해오는 그림자. 대형의 선두에 있던 두 병사는 각각 발차기와 팔꿈치 공격에 턱이 부서지고 말았고, 소총수의 총탄은 영력의 두께를 뚫지 못하고 빗겨갔으며, 돌진을 저지하기 위한 방패는 산산이 조각나며 허공에 흩뿌려진다. 그야말로 하나만을 위한 돌파.


“중사, 비켜봐.”


“옛?”


“됐으니까 비켜봐.”


느긋하게 웃으며 두 자루의 세검을 꺼내드는 청년. 그리고 그의 명령대로, 중사는 바깥으로 물러나 그에게 ‘길’을 터주었다. 그리고 빠르게 다가온, 충돌의 순간.


“.......”


마침내 에두의 발이 멈춰 선다. 그의 오른쪽 팔 보호구의 중앙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청년의 세검. 만약 보호구가 없었다면 피가 흐르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았을 것임이 분명한 날카로움.


“너, 카나반의 기사냐?”


상대가 자신의 공격을 막아냈다는 사실이 즐겁다는 듯, 질문을 던진 청년의 입가엔 짙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물론 에두는 그런 청년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 어쩔 건데?”


“북쪽의 니에브에는 주먹으로 검성의 지위에 오른 자가 있다고 했었지. 너는 그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러셔?”


세검의 끝이 박혀있는 채로 보호구를 뒤틀어 벌어진 틈을 파고드는 에두. 그러나 또 다른 한 자루의 세검이 곧바로 그의 눈을 노리며 찌르고 들어왔기 때문에 침투는 저지되고 만다.


“중사.”


“예, 옛.”


“본대로 복귀해서 북부능선까지 적의 정찰대가 침투해있다고 보고해.”


“.......알겠습니다.”


편안히 지시와 대답을 주고받는 두 제국군의 모습에 에두의 눈동자엔 불꽃이 튄다.


“씨발 누가 보내 준데?”


에두는 양손등을 이용하여 검들을 쳐내고, 그대로 앞으로 돌진하면서 무릎으로 청년의 턱을 노려보지만, 에두 검을 쳐낸 반동을 이용하여 뒤로 뛰어오른 상대를 쫓아가기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에두는 청년의 세검이 가지는 살상범위에 정확히 위치하게 된 셈이었다.


“멈춰보든가.”


이어지는 세검의 폭풍.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듯하지만 그 궤적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영력과 악의를 지니고 있었다. 팔 보호구의 면적만으로는 그 모든 공격을 막아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에두의 어깨와 허벅지로 얇은 자상이 늘어가기 시작했고, 에두는 그런 수세를 견디기엔 참을성이 부족했다.


“아오, 씨발!”


기합처럼 욕설을 터트리는 에두. 그에 에두의 후방으로 접근하려던 제국의 병사들은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지만, 청년의 표정엔 그 어떤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너같이 기본도 안 되어있는 놈이 계급장을 달고 기사노릇을 한다니, 카나반 수준도 알만하네.”


“뭔 개소-”


짧은 신음이 대신 에두의 뒷말을 메꿔주었다. 간신히 목에 박히는 것은 피할 수 있었지만, 그 대가로 왼쪽 어깨를 세검에 꿰뚫리고만 에두.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 그 회색의 날을 빼내려 했지만 그마저도 청년의 계산이었던 모양. 그는 에두의 후퇴에 맞추어 본격적으로 발을 움직인다.


“입만 살았지, 도망칠 생각이나 하는군.”


“누가 도망친데 좆같은 새끼야.”


에두가 갑작스럽게 뒷걸음질을 멈추자 그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한 청년의 세검이 더욱 깊숙이 에두의 어깨를 파고들었고. 두 기사는 가까운 거리에서 눈을 마주한다. 물론, 먼저 상대의 얼굴을 후려친 것은 에두의 주먹이었다.


“-!”


충격에서 벗어나 뒤로 물러나려 했던 청년이었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는 세검에 붙들리고 만다. 에두가 자신의 왼쪽 손으로 어깨를 관통하고 있는 세검의 검신을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혀 잘리기 싫으면 아가리 꽉 깨물어라.”


다른 쪽의 세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에두의 주먹이 청년의 관자놀이와 턱, 그리고 인중을 연달아 강타한다. 지켜보고 있던 제국군의 입술 사이로 탄식이 새어나올 정도로 충격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육중한 타격음이었다.

그러나 에두의 공세는 길게 이어지지 못한다.

청년의 영력이 실린 전투화에 복부를 직격당한 에두가 뒤로 내팽개쳐졌고, 자연스럽게 두 기사를 묶어주었던 세검의 속박에서도 벗어나게 된 것이다.


“이야, 아프네에.”


살짝 부어오른 눈두덩이. 터진 입술과 찢어진 입안에서 흘러나온 피를 옆으로 뱉어내며, 청년은 만족스럽게 웃는다. 에두 또한 복부의 통증으로부터 비롯된 호흡곤란을 애써 내색하지 않으며 마주 웃었지만, 그는 다른 의미로 심기가 불편해져있었다.


‘.......씨발, 죽일 생각으로 때린 건데.......’


“하지만 무기 없이 날 죽이려면 그 정도로는 안 될 거야.”


“좆만한 게 뭐 대단한 거라도 되는 것마냥 지랄이시지?”


“뭐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널 죽이기엔 충분한 거 같네.”


초인적인 동체시력이나,

영력의 흐름을 읽어내는 능력도 아닌,

오직 본능.

바로 그 본능 덕분에,

에두는 심장과 목 대신 귀와 어깨가 찢겨나갈 수 있었다.


“.......!”


“오, 이걸 피해?”


같은 얼굴, 같은 표정, 같은 목소리.

그러나 눈앞에 있는 저 남자의 존재는 방금 전 자신이 주먹으로 두들긴 남자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있었다. 너무나 순수한 적의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오직 이쪽의 죽음뿐.

턱선을 따라 흘러내리는 뜨거운 핏줄기와 두 번이나 세검에 의해 농락당한 왼쪽 어깨의 격통보다도, 에두는 순간 움직임이 멎어버린 자신의 의지를 향해 격한 분노를 내뱉고 있었다.


“지랄-!”


명백한 죽음으로의 전진. 청년의 입가에서 만족스러운 미소가 사라지고, 에두는 베인 상처로 미끌거리는 주먹을 쥔다. 하지만, 그의 주먹이 앞으로 나가는 일은 없었다.


“응?”


내지르던 세검의 방향을 바꾸어 자신에게 날아드는 화살을 튕겨내는 청년. 그 작은 충돌의 끝에서 확실하게 피어오르는 영력의 잔향으로, 청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감각을 끌어올린다.


“핫!”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새로운 얼굴이 사각에서부터 검을 찌르고 들어선다. 공격 자체가 위협적이진 않았지만, 재차 인식의 공백을 노리고 들어오는 화살 때문에 청년은 곧바로 반격태세를 갖출 수가 없었다.


“에두, 뒤로!”


어둠 속 어디선가 울려 퍼지는 중후한 목소리. 청년은 이 목소리와 함께 눈앞의 ‘사냥개’의 표정이 짜증으로 가득 차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

그들의 움직임은 신속하고 정확했다.

‘사냥개’가 뒤로 빠질 때까지 짧은 머리의 여기사와 어디선가 날아드는 화살이 계속해서 청년의 움직임을 묶어두었고, 직접적인 전투에 참가하지는 않으면서 노골적으로 외각을 돌며 영력을 흩뿌리는 두 명의 존재가 추가적으로 신경을 거스르고 있었다. 이미 주변의 제국병들은 모두 퇴각하거나 죽임을 당한 상태였지만, 중사가 이쪽의 상황을 제대로 전달했는지, 동쪽의 끝에서 이쪽을 향해 거대한 움직임이 접근하는 중이었다. 이 상황에서, 청년은 이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걸 막을 생각이 없었다.


“흐음.......”


짧은 머리의 여기사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주변을 맴돌던 두 개의 영력도 자취를 감추었다. 오직 화살만이 마지막까지 이쪽의 움직임을 교란시키고 있었지만, 청년이 크게 반응하지 않으면서 곧 그마저 끊기고 만다.


“대위님, 괜찮으십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정찰조 하나를 동원해온 중사가 현장으로 돌아온다. 그는 제국병사의 흔적이 대부분인 현장을 둘러보면서 걱정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정작 청년에게서 볼 수 있는 상처라고는 찢어진 입술뿐이었다.


“난 괜찮아. 보고는?”


“아, 예. 군단장님께서 각 지휘관을 호출하셨습니다. 적에게 움직임이 노출되었으니, 아마 가까운 시일 내로 서쪽을 향해 진군하실 겁니다.”


“좋아, 맘에 들어.”


“예?”


“맘에 든다고.”

다시금 만족스러운 미소를 되찾은 청년. 그는 허리춤으로 자신의 세검들을 돌려놓으며 자연스럽게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리고, 더욱 만족스럽게 웃을 수 있었다.

“하하, 이 새끼 봐라?”








“추격은?”


“없습니다.”


그레이의 대답에 오즈카는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숨을 헐떡이는 에두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선다. 깊은 어둠 속이었지만, 모두가 똑같이 둔탁한 소리를 예상한 그 순간.


“괜찮나?”


“.......예?”


“괜찮냐고 물었다.”


잔뜩 아랫배와 턱에 힘을 주고 있던 에두는 벙찐 표정으로 고개를 든다.


“아, 예에......”


“혼자서 멋대로 행동한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


“아니, 뭐....... 그냥 조금 답답해서....... 혼자 정찰대 하나는 잡을 수 있을 줄 알고........”


“전장은 뒷골목의 개싸움이 아니야. 상대가 정말로 정찰대의 일부인지, 상대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안 되는 상태로 덤벼드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로 너는 그 적을 잡지도 못했고, 도리어 우리 모두를 위험에 노출시켰어.”


“.......”


“지휘관으로서, 나는 보고서에 이번 일을 기록, 제출하고 군법에 의거하여 너를 근위대 후보는 물론 군에서 퇴출시킬 의무가 있다. 네가 정말로 그거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그렇게 해주지. 물론, 엘라 경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셈이 되겠지만.”


“.......”


조금 전 경험했던 죽음의 근접보다도 더욱 강한 한기가 에두의 등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 침묵의 의미를 이해한 오즈카는 짧은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이걸 지킨다면, 보고서에 단순한 교전으로 기록하지.”


“......조건?”


“나머지 세 분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거다.”


“뭣-?”


순식간에 일그러지는 에두의 표정. 그러나 오즈카의 목소리는 여전히 굳어있었다.


“나는 괜찮다. 하지만 나머지 세 분에게 이번 처사는 같은 국적의 기사이자 후배가 될지도 모르는 너에 대한 특혜라고 보이겠지. 나는 이미 이에 대해 세분께 개인적인 양해를 구하고, 사과를 했어. 그리고 그 조건으로, 동맹의 기사분들께서는 너의 사과를 바라신다.”


“씨발, 그게 무슨 개소리-”


“이게 유일한 조건이다.”


“.......”

어둠 사이로 낮게 흐르는 라셰의 웃음소리. 에두는 피가 스밀 정도로 아랫입술을 깨문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굴욕감보다도 더욱 무거운 것이 바로 스승을 향한 공포감. 결국, 에두는 옆으로 한걸음 물러나 고개를 숙인다.

“....................미안.”


“정중하게.”


“죄송합니다.”


“오냐~”


결국 라셰와 그레이는 웃음을 터트렸고, 침묵을 유지하려던 반즈도 새어나오는 웃음을 모두 참아낼 수는 없었다. 만약 빛이 있었다면, 그들 모두가 벌겋게 달아오른 에두의 얼굴로 또 한 번 놀려댈 수 있었을 터. 그 모든 능욕의 웃음 사이로, 오즈카는 조심스럽게 에두의 목을 감싸고 다가선다.


“우리가 조금만 늦었다면 너는 그 기사에게 목숨을 잃었겠지.”


“잉? 아뇨, 난 지지 않았-”


“아니, 넌 패배했다. 기사와 기사의 일대일 대결에서.”


“.......”


“직접 무기를 맞댄 것은 아니었지만, 내 쪽을 경계하는 그의 영력은 분명 일반적인 정찰대의 기사라고하기엔 불길함이 짙었어. 그의 이름을 들었나?”


“아뇨, 듣지는 못 했지만.......”

조심스럽게 아직까지 쥐고 있던 자신의 주먹을 앞으로 내미는 에두. 주먹을 펼치자, 그곳엔 에두의 피가 뒤섞인 천조각이 구겨져있었다.

“이건 뜯어왔어요.”


“.......”


오즈카가 그것을 집어 들어 펼친다. 제국군 전투복의 조각, 정확히는 명찰과 약장이 달려있던 제복 가슴 위쪽의 조각이었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그곳에 새겨진 이름을 읽기는 어려웠기에, 오즈카는 걸음을 옮겨 달빛의 도움을 받아야했다.

그리고 그가 아무런 의식 없이 읽어 내려간 하나의 이름.

그 짧은 이름이,

웃음이 번져있던 모든 이들의 의식을 빠르게 잡아당긴다.




“.......데커드 드리브달.”


작가의말

언제나 미흡한 글을 봐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어색한 문장이나 문맥, 오타가 있다면 지적 부탁드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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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9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9) +4 20.06.22 136 4 16쪽
378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8) +4 19.09.25 123 5 10쪽
377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7) +2 19.09.20 195 4 15쪽
376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6) 19.09.15 89 4 11쪽
375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5) +2 19.09.09 99 4 10쪽
374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4) 19.09.04 106 2 12쪽
373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3) 19.08.30 85 3 12쪽
372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2) 19.08.24 104 3 13쪽
371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1) +2 19.08.18 173 3 12쪽
370 (막간) 저 너머 +2 19.08.13 101 4 14쪽
369 (33막) 겨울이 끝나도 봄은 오지 않는다 (11) 19.08.07 115 3 19쪽
368 (33막) 겨울이 끝나도 봄은 오지 않는다 (10) 19.08.02 96 3 14쪽
367 (33막) 겨울이 끝나도 봄은 오지 않는다 (9) +2 19.07.28 111 3 13쪽
366 (33막) 겨울이 끝나도 봄은 오지 않는다 (8) 19.07.23 96 3 13쪽
365 (33막) 겨울이 끝나도 봄은 오지 않는다 (7) +5 19.07.19 148 2 16쪽
364 (33막) 겨울이 끝나도 봄은 오지 않는다 (6) 19.07.13 135 1 15쪽
363 (33막) 겨울이 끝나도 봄은 오지 않는다 (5) 19.07.07 139 2 13쪽
362 (33막) 겨울이 끝나도 봄은 오지 않는다 (4) 19.06.16 131 1 12쪽
361 (33막) 겨울이 끝나도 봄은 오지 않는다 (3) +2 19.06.09 122 4 11쪽
360 (33막) 겨울이 끝나도 봄은 오지 않는다 (2) +1 19.06.02 164 4 15쪽
359 (33막) 겨울이 끝나도 봄은 오지 않는다 (1) 19.05.26 154 3 17쪽
358 (막간) 만년설을 녹이는 방법 19.05.18 160 4 14쪽
357 (32막) 갈림길 (10) +3 19.05.12 139 5 15쪽
356 (32막) 갈림길 (9) +2 19.05.07 168 7 15쪽
355 연재 관련 +5 18.11.28 316 7 1쪽
354 (32막) 갈림길 (8) +2 18.11.20 284 5 13쪽
353 (32막) 갈림길 (7) +2 18.11.15 187 4 11쪽
352 (32막) 갈림길 (6) 18.11.10 180 6 14쪽
351 (32막) 갈림길 (5) 18.11.05 192 6 12쪽
350 (32막) 갈림길 (4) +1 18.10.31 226 7 12쪽
349 (32막) 갈림길 (3) 18.10.26 202 5 11쪽
348 (32막) 갈림길 (2) 18.10.21 204 6 14쪽
347 (32막) 갈림길 (1) +1 18.10.16 232 6 13쪽
346 (막간) 자격 18.10.11 213 5 13쪽
345 (31막) 방관의 의도 (11) 18.10.06 205 8 15쪽
344 (31막) 방관의 의도 (10) +1 18.10.01 230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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