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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수의 굴레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세스퍼
그림/삽화
발아현미우유
작품등록일 :
2014.08.20 17:22
최근연재일 :
2019.09.25 21:43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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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06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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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31막) 방관의 의도 (3)

DUMMY

“일어나 보니까 11시였다고?”


“예.”


“전날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예, 죄송합니다.”


본의 아니게 전방 15도 위를 주시하고 있는 에두의 시선. 집무실에 앉아 그런 에두의 얼굴을 올려다보는 근위대장 드렌턴. 드렌턴은 에두가 작성해온 경위서와 흔들림이 없는 그의 얼굴을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번갈아 바라본다.


“정말 그거뿐이야?”


이제 이 다음 반응이 중요하다.

에두는 시선을 움직이지 않고, 정말로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처럼 눈썹을 살짝 치켜올린다. 나름 혼신의 연기였다.


“예. 그것뿐입니다.”


“.......”


“.......”


무겁고 불편한 침묵. 하지만 지금 눈치를 보았다가는 지금까지의 ‘연기’가 모두 수포로 돌아갈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에두는 전혀 반응을 내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침묵은 점점 더 길어지더니 결국엔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에두의 안면근육에 경련이 올 때까지 이어졌는데, 그 끝에서 튀어나온 근위대장의 질문은 에두의 등줄기에 싸늘한 땀을 한줄기 선사해준다.


“어디서 마셨나?”


“예?”


“어젯밤에 술. 어디서 마셨냐고?”


“아, 그, ‘은벽의 낭만’입니다.”


“왜 거기까지 갔어?”


“거기 맥주가....... 아시잖습니까.”


라고, 가볍게 분위기를 전환시켜본다. 이것은 양날의 검. 통한다면 줄곧 무거웠던 분위기에 살짝 색채를 가미할 수 있을 것이고, 만약 통하지 않는다면....... 그보다 끔찍한 악몽은 없겠지.


“.......”


“.......”


“.......뭐, 그렇긴 하지.”

덤덤한 근위대장의 반응에 에두는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그래서 거기서 늦게까지 술 먹다가 방 잡고 그대로 자빠졌다?”


“예.”


“혼자서?”


“물론입니다.”


“흐음, 이상하네.”


“.......예?”


마침내 시선을 내리는 에두. 드렌턴은 탁자 위로 종이 한 장을 내던지며 말을 잇는다.


“아까 근위대본부로 영수증이랑 이게 날아왔거든.”


“.......이건?”


“크게 읽어볼 것. 실시.”


영수증과 함께 동봉된 것은 작은 쪽지였다. 명령에 따라, 에두는 별다른 의심 없이 그 쪽지의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점심에 일어나 보니 에두아르도 렐라바 중위가 술값이랑 방값도 안 내고 먼저 튀었길래 아르다르 근위대본부로 청구서를 보냅니다. 니에브 국립기사 ‘라셰’ 올......림........”


“추신도 있잖아. 어서 읽어봐.”


“.......추신. 너무 당연하게 피임을 하지 않았던데, 안전한 날이니까 에두아르도 중위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 주세요.......”


“다 읽었나?”


“.......예.”


“이에 대해서 할 말은?”


“.......”


여기서 더 할 말이 무엇이 있겠는가.

추한 회피방법으로 에두는 다시 전방 15도 위를 향해 시선을 옮겼으나, 현실로부터까지 눈을 돌릴 수는 없었다.


“이 ‘라셰’라는 분이, 지금 국빈의 자격으로 아르다르에 체류 중인 니에브 권성의 제자 그 ‘라셰’ 공, 맞나?”


“.......예.”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에두 너는 위수지역 이탈해서 국빈이랑 술 먹다가 하룻밤을 보내고, 그녀를 그냥 버려둔 채 반쯤 취해서 2시간 늦게 복귀했다-, 이거지? 내가 뭐 틀린 부분 있나?”


“.......없습니다.”


숨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는 무거운 침묵. 에두는 가능했다면 비명을 지르며 창문으로 뛰어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만약 정말로 그런 탈출을 시도했다면, 지금쯤 이 ‘대장’에게 발목을 잡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을 테니까.


“.......너도 알겠지만, 나는 네 상관이자 근위대장이기 전에 엘라로부터 직접 너를 부탁받은 몸이다. 이번 일만큼은 나도 그녀에게 전달하지 않고 넘길 수가 없겠어.”


“뭐? 아니, 예?!”

‘그 이름’이 나오자, 결국 에두도 다급한 얼굴로 드렌턴의 책상에 다가선다.

“대, 대장님! 죄송합니다. 그것만은.......”


에두에게 있어서 파견 나가는 것, 또는 근위대에서 쫓겨나는 것보다 더욱 두려운 일. 그러나 드렌턴은 에두의 절실한 반응을 확인했음에도 깍지를 낀 채 턱을 받치고 있는 두 손을 풀어 내리지 않는다.


“이번만큼은 어쩔 수가 없어.”


“아뇨, 정말 죄송합니다! 부디 제발....... 뭐든지 하겠습니다! 제발 좀.......”


살짝 번뜩이는 드렌턴의 눈빛. 그러나 당혹감에 휩싸인 에두는 이를 눈치채지 못한다.


“.......뭐든지?”


“예! 뭐든지!”


“.......”

그때까지도 에두는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깨닫지 못한 모양. 드렌턴은 충분히 뜸을 들이고 난 이후에 천천히 두 손을 책상 아래로 내려놓는다.

“.......뭐어, 엘라도 요새 ‘가정교육’으로 바쁜 모양이라 이런 일까지 신경 쓰게 할 수는 없지. 뭐든지 한다고 했으니, 그 말을 믿어도 되겠지?”


“예, 예! 물론입니다!”

에두가 이토록 충성스러운 태도를 보인 적이 있었던가.

씁쓸함과 만족감을 동시에 목으로 넘기며, 드렌턴은 ‘준비해두었던’ 봉투를 에두의 앞으로 내어놓는다.

“.......이건.......?”


“이번에 아르다르 외곽에 사병훈련소가 신설되었다는 거, 들었지?”


“예에......”

그리고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에두.

“대장님, 이거 설마-”


“그래, 겨울 동안 거기에 좀 가있어라.”


에두는 욕이 목 아래까지 차오른 것을 간신히 삼킬 수 있었다.


“아니, 대장님. 이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기사도 아니고 사병들 교관이라니, 나름 근위대 소속인데 어떻게 사병을-”


“교관? 뭔 소리야?”


씰룩이는 드렌턴의 입술.

그는 필시 웃음을 참고 있었으리라.




“훈련병으로 입소하라고, 인마.”





====================




“재교육?”


“그래.”

접대용 소파의 머리받이 위로 솟구친 발가락을 까딱이며, 벤은 옥수수과자를 한 움큼 입으로 털어 넣는다.

“아으쟈 애걔이으 아히 오하은 하아흐으-”


“.......뭐라는 거야, 미친놈아. 다 씹고 말해.”


“그러니까, 군인으로서의 재교육이 필요한 인원들을 중점으로 1기를 꾸리겠다는 거지. 실전에서 제대로 활약할 기회가 주어지지 못한 장교나 부사관들, 실전경험은 풍부하지만 군에서 멀어져 있던 예비역들 등등.”


“그게 뭔 의미가 있어?”


“의미야 많지.”

벤은 자세를 고쳐 바로 앉으려 했으나 왼쪽 무릎의 통증이 그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 공화국에 신병훈련소, 기사훈련소는 충분히 마련되어있지만, 다시 군으로 돌아오고 싶은 자들을 위한 재훈련소나, 기본지식, 기본상식이 부족한 장교, 부사관들을 위한 2차 훈련소는 존재하지 않아. 이건 귀족의 사병 등 다른 일을 하다가 군으로 복귀하고 싶은 사람들에겐 꽤나 골칫거리지. 예비군의 자격으로 돌아오자니 심사통과가 쉽지 않고, 그렇다고 다시 신병부터 재입대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조사를 해보니, 이번 귀족사병과 군비감축으로 인해 실업자가 된 예비역 기사, 병사가 아르다르에서만 2천이 넘어.”


“흐음.”


“그렇다고 대대적으로 군비를 감축하고 있는 요즘 이들 모두를 공화국의 예산으로 군에 편입시키는 것 또한 어렵잖아. 사병훈련소는 그걸 위한 대안이지. 당장의 설립 및 운용자금은 귀족가문들과 정부가 나누었으니 부담이 적고, 재입대를 위한 병사들을 군비감축기간에 재훈련도 시킬 수 있고, 결국 훌륭한 전력이 되어줄 테니까.”


“하지만 말 그대로 ‘사병훈련소’잖아. 기껏 훈련시킨 병사들이 나중에 모조리 귀족들에게로 붙는다면?”


“그럴 일은 없을 거야.”


확신과는 전혀 동떨어진, 가벼운 벤의 목소리. 결국 왕의 펜이 움직임을 멈춘다.


“어떻게?”


“1기의 훈련이 끝날 때쯤이면, 그들이 정규군과 계약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 테니까.”


또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구나.

로빈은 겉으로는 한적하기 그지없는 이 친구가 어째서 팔루뎀에 복귀하지 않고 이곳 아르다르에 남아있었는지 이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로빈의 펜은 다시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그의 친구를 ‘잘 알고’ 있었다.


“기사와 마법사, 그 다음은 일반병사인가.”


“.......”


“벤, 너는 정말로 통합군을, 제국의 군단과 정면 승부할 수 있는 정예군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


“.......”


과자를 집으려던 벤의 손이 허공에서 굳는다. 로빈은 굳이 시선을 돌리지 않아도 벤의 표정을 알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너를 포함한 지휘관들이 제한된 지원과 자원 안에서 훌륭하게 일을 처리해왔다고 생각해. 2군단을 벌써 세 번이나 물리쳤고, 역사상 처음으로 제국본토인 마즈다힐과 이스누시아까지 점령했지. 거기에 가장 굳건한 동맹구축까지 눈에 앞두고 있어. 예전의 지휘관이었다면, 아니, 한센 경이었더라도 아마 이 정도에 만족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


“그런데, 너는 그 앞을 보고 있어.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생각하지 않았던, 어쩌면 그 무엇보다 끔찍할 수도 있는 미래를 그리고 있어.”


“그게 문제가 되나?”


어느새 다시 과자를 씹고 있는 벤의 목소리. 로빈은 결국 고개를 돌려, 거꾸로 누워있는 친구의 먹색 눈동자와 눈을 마주한다.


“너는 검성이고, 나는 왕이야. 네가 최종적으로 무엇을 구상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나에겐 공화국의 시민들을 불안과 고통에 빠트리지 않게 할 의무가 있어.”


“알고 있어.”


“네가 알고 있다는 건 알아. 단지, 너는 나와는 다른 해결책을 구상하고 있는 거 같아서.”


“.......해결책이라.”

벤이 몸을 비튼다. 무릎의 통증은 그를 따라오지 않고 있었다.

“걱정 마. 그때도 지금도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똑같으니까.”


“그때?”


다시 눈이 마주친다.

벤은 미소를 짓는다.



목발을 짚는 그를 향해, 로빈은 차마 마주 웃어줄 수가 없었다.


작가의말

짧은 호흡 죄송합니다...

감기 기운이 점점 심해지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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