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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수의 굴레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세스퍼
그림/삽화
발아현미우유
작품등록일 :
2014.08.2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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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5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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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16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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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32막) 갈림길 (1)

DUMMY

유난히 혹독했던 겨울이 물러나고, 새롭게 만개한 푸른 생명들의 축가가 울려 퍼진지도 수개월. 어느새 숲의 하늘은 강렬한 태양의 축복 아래서 잔뜩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


이제 덥다-라는 말을 중얼거리기에도 지친 것일까.

장장 일주일에 걸친 ‘최종시험’을 치르고 살아남은 2천여 명의 병사들. 거추장스러운 수료식 따윈 하지 않는다는 공지를 듣고 안도를 했으나 그것도 잠시, 그들은 수료식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행사를 위해 피로를 무릅쓰고 연병장에 집결해야 했다.


“모두 알다시피, 제군들이 지난 6개월 동안 겪었던 모든 것은 하나의 목적을 위한 과정이었다. 바로 취업이지.”

확성기를 통해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훈련대장의 목소리.

“그리고 여기 여러분을 위한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 번째, 귀족사병으로 복무. 두 번째, 공기업 용병으로 고용되는 것, 세 번째, 정규군으로의 재입대이다. 여러분이 입소 전에 합의했듯이 해결사협회나 사기업으로의 재취업은 불가능하다. 만약 퇴소 후 3년 이내에 이 계약서를 위반한 사실이 발각되면 막대한 위약금을 물어야 하니 조심하길 바란다.”


“완전 노예양성소였구만.”


누군가의 장난기 섞인 푸념. 그러나 미소 짓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오늘 여기, 여러분의 선택에 도움을 주실 분들이 자리해주셨다. 먼저, 카나반 귀족당의 대표이시자 가슈펠라르 가문의 가주, 란다 가슈펠라르 경이시다.”


형식적이라 하지만 그 숫자가 수천에 이르면서 박수 소리는 곧 천둥처럼 숲을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이에 대해 밝은 미소와 손을 흔드는 것으로 대응하며, 란다는 천천히 단상 위로 걸음을 옮긴다.


“아, 아. 잘 들립니까? 아. 반갑습니다, 여러분. 란다 가슈펠라르입니다. 반년 동안 열심히 훈련받으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했던 거 또 하려니 고역이셨죠?”

얕게 흐르는 웃음들.

“하지만 훈련대장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여러분은 ‘의무’라는 거대한 짐에서 벗어나 ‘자유’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찾아오셨습니다. 지금까지 마땅한 대우를 받지 못하셨던 여러분들께서 마침내 가치에 걸맞은 대우를 받기 위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께 그 ‘가치’를 보상해드리고자 합니다.”

곳곳에서 의도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온다. 호응하는 인간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란다가 미소를 짓고 숨을 고르기엔 충분했을 정도의 흐름이었다.

“만약 여러분께서 귀족 가문의 사병으로 복무하게 되신다면, 3800 미트라의 연봉과 의료보험, 그리고 위험수당, 성과급 및 퇴직금까지 별도로 보장됩니다.”


“오오.”


“장난 아닌데?”


연병장 곳곳에서 이는 술렁임. 약간의 소란은 대부분 감탄과 기대에 들뜬 자들의 웃음이었다.


“거주는 어떻게 됩니까?”


그 와중에 누군가가 커다란 목소리로 란다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의 이름은 론. 그와 같은 내무반을 썼던 에두와 테넌은 곧바로 목소리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고, 실소를 흘린다.


“기본적으로는 합숙이 원칙입니다만,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희망자에 한해서는 아르다르 내에 별도의 거주지를 마련해드립니다. 물론 모든 임대료는 가문에서 부담합니다.”


역시나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을 내어놓는 란다. 소란의 농도가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그의 미소 또한 색을 더해가고 있었다.


“계약 기간은 얼마입니까?”


“기본 3년에 1년씩 연장입니다.”


“몇 명이나 모집합니까?”


“아, 자리는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 모집은 가슈펠라르 가문뿐만이 아니라 귀족당의 가문들, 거기에 왕당파의 귀족가문들까지 합의한 사항입니다. 자리는 널럴해요. 원하신다면 이곳에 계신 여러분 모두가 고용될 수도 있습니다.”


취업률 100%.

거기에 비교 불가능한 조건.

이쯤 되자 잠자코 설명만을 듣고 있던 이들까지 주변 분위기에 휩쓸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자, 정숙.”

결국, 보다못한 훈련대장이 확성기를 들고 나서야 연병장은 다시금 평화로운 여름날의 분위기를 되찾았고, 란다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후발주자’를 향해 승리의 미소를 머금었다.

“다음은······. 귀하신 손님이시다. 카나반의 검성, 벤 경.”


박수는 없었다.

환호도 없었다.


어째서 ‘변수’가 이러한 곳까지 찾아왔는지에 대한 의문과 경악만이 연병장에 남아있었다. ‘저게’ 진짜로 공화국의 검성이냐며 묻는 자와 어떤 귀족 가문에 지원할지를 논의하는 자들의 목소리만이 간간히 들려올 뿐이었다.


란다는 그런 벤의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비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처음 벤이 그에게 ‘재훈련소’의 안건을 들고 왔을 땐 경계심을 품었지만, 곧 검성의 의중을 파악하고서 란다는 흔쾌히 제안을 수락할 수 있었다.

검성은 이곳을 수료하는 인원의 2할이라도 정규군으로 건져내고, 나머진 최대한 왕당파의 사병으로 끌어들여 수지가 맞는 장사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는 벤이 작년에 새롭게 라즈팔라무스 가문의 가주로 임명된 덴쿠레의 입을 통해 귀족가문들 간의 사병충원에 대한 합의를 종용했다는 점에서 란다가 유추한 사항이었다. 당장 조건만으로는 재훈련소에 입소한 자들의 만족을 살 순 없으니, 정규군 편입과 군 재판기록 삭제 등의 미봉책만을 협상 카드로 들고 왔다는 소식은 훈련소 ‘내부 인원’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란다는 걱정하지 않았다. 분명 귀족가문들끼리 합의한 3800이라는 연봉은 이전과 비교한다면 동결수준의 대우. 그러나 가슈펠라르 가문, 정확히는 ‘란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재력은 검성이나 왕당파 귀족들이 예상하고 있는 수준을 훨씬 웃도는 것이었다.

귀족들 사이에서 논의된 중점은 오로지 ‘연봉’. 이에 란다는 개인적인 자금을 통한 상여금과 퇴직금에 가문 차원에서 가지고 있는 부동산을 이용한 거주지 혜택까지 내세워 차별점을 둔 것이다. 이 자리에서는 귀족들 모두가 동등한 대우로 이들을 고용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이미 ‘내부 인원’을 이용한 영업을 통해 오직 ‘가슈펠라르 가문’에서만 얻을 수 있는 혜택에 대한 밑작업이 완료된 상태.


‘2할? 흥. 군부는 오늘 여기서 50명도 얻을 수 없을 거다.’


터벅터벅, 여전히 구부정하고 힘없는 발걸음으로 확성기 앞을 향해 나아가는 벤. 란다는 그가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제안할 수 있는 수준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기에 미소만을 장전하고 있었다. 그가 입을 여는 것과 청중을 가로지를 비웃음을 기대하면서.



그러나,



“연봉 3850 미트라.”





벤의 입에서 튀어나온 첫마디는,

란다는 물론이고 아래에서 듣고 있는 모든 병사들의 숨을 삼키게 만들었다.




“정규군 복무 경험이 있을 시 호봉을 인정하여 연봉에 반영하고, 원한다면 자신이 복무했던 특기는 물론이고 자신이 복무했던 부대로도 복귀할 수 있도록 조치된다. 본인과 부양하는 가족 전원에게 의료보험 혜택이 주어지고, 전방 위험수당은 연봉의 2할, 진급 및 특수상여금은 별도로 지급된다. 최전방 복무 시, 가족을 위해 희망하는 지역에 무상으로 주택이 지원된다. 경범죄나 군기 위반 등을 이유로 진급이 취소되거나 불명예제대를 했던 인원들은 해당 재판의 철저한 재검토를 통하여 기록말소의 기회를 줄 거다. 이러한 혜택들은 이곳에 있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후배들은 물론이고, 의무복무기간이 끝난 인원들에게도 동등하게 제안이 주어질 예정이다.”


끔찍한 침묵.

벤은 무성의하게 머리를 긁적인다.



“질문 있나?”


“.......”


“없음 말고.”


그대로 뒤돌아, 목발을 짚은 팔을 낑낑대며 내려서는 벤. 란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검성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겁니까, 검성?! 저 조건들은......., 3850이라니, 혹시 아까 제 말을 듣고 즉흥적으로-”


“즉흥? 아닌데요? 원하신다면 통합군사령부에 통과된 예산안을 보시든가요.”


“통합군에게 그 정도의 예산이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란다의 격정도 일리는 있었다. 그가 사전에 조사했던 바에 따르면, 카나반에서 복무연장으로 정규군에 편입된 병사들의 평균 연봉은 2500 미트라. 벤의 제안이 사실이라면, 하루아침에 모든 통합군소속 정규군의 급여가 5할이 넘게 오른다는 뜻이다. 이는 통합군의 예산을 넘어서 국고 차원의 문제라고도 볼 수 있는 수준.

그러나 대답하는 벤의 입가엔, 미묘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뭘 위한 증세안과 뭘 위한 세제 개혁이었다고 생각하세요?”


“.......예? 그게 무슨-”


“지난 10개월은, 저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치열한 ‘전시’였습니다, 의원님.”


“.......”


국지적이었던 수군거림이 들판의 화재처럼 사방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시장통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소란이 일어난다. 뒤늦게 다시 올라온 훈련대장이 무어라 고함을 내질렀지만 이미 병사들의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드높아져 있었다.



“자, 이제 집에 갈 시간이네요.”


모두가 떠들썩한 와중,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던 이들 중의 하나인 테넌이었다. 마치 이제야 모든 일이 끝났다는 듯 경쾌하게 기지개를 켜는 그를 보며, 에두는 걸죽한 욕을 씹을 뿐.


“집? 개뿔, 다시 좆뺑이 치러 가는 거겠지.”


“하하, 우리 같은 군바리에겐 부대가 집이나 다름없지 않나요.”


“흥.”


콧방귀를 뀌긴 했지만, 에두 역시 마침내 이 지옥같은 곳을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하고 있었다.


“어이, 욕쟁이. 나중에 술이나 한잔해야지?”


“좆까, 꺼져.”


“아하하, 끼부리기는. 나가서 연락해라?”


“지랄.”


그리고 사방에서 에두의 머리를 치면서 지나가거나 연락처를 쥐여주는 병사들이 있었다. 처음엔 기사출신이라는 점과 거친 태도 때문에 같은 내무반의 동기들과도 벽을 쌓고 지냈던 에두였지만, 테넌의 노력과 함께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인상은 그저 ‘욕 잘하는 귀여운 동생’ 정도가 되어있었다.


“.......집이라.”


받은 연락처들을 차마 버리진 못하고 꾸깃꾸깃 주머니에 쑤셔 넣는 에두.

그의 시선은 어느새 숲의 하늘을 넘어, 회색도시의 성벽을 향해 있었다.




“.......씨발.”




===========




“결과적으로 1500여 명의 지원병이 통합군 편입의 심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훈련대장으로부터의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훈련과정의 단축을 위해서는 전문인력의 추가투입과 훈련소 자체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원하는 수준은?”


“초기 지원자의 수는 늘리되, 훈련 기간은 4개월로 단축, 수료하는 인원의 수는 그대로 유지하는 방향으로 잡은 것 같습니다.”


“양보단 질을 더 우선하겠다는 뜻이네요. 의회에 말해볼게요.”


무의식적으로 총리를 향해 손을 내미는 로빈. 그러나 또 다른 문서가 그의 손위로 내려앉는 일은 없었고, 로빈이 시선을 들자 고개를 끄덕이는 노인의 눈빛이 있었다. 오전 업무는 모두 끝났다는 의미였다.


“고생하셨습니다.”


“네에~ 총리님두요.”


라고, 로빈이 짧은 기지개를 켜려는 찰나,


“왕비님이 말씀하신 건 고려해 보셨습니까?”


“.......글쎄요. 그걸 고려한다는 것 자체가 개인적으론 생각지도 못했던 거라······.”


“하지만 왕비님의 말씀도 일리는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검성에게 너무 많은 군권남용을 허용해주고 계십니다.”


하늘로 뻗었던 손을 내려 그대로 얼굴을 감싸쥐는 로빈.


“하지만 제가 뭐라고 개입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애초에 왕과 검성은 서로 견제하는 입장이라면서요.”


“견제는커녕 거의 매번 지원만 해주다 보니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겁니다.”


“그치만-”


“물론 ‘변수의 검성’이라는 존재 자체가 특수한 경우이긴 하지만, 그가 다방면에 걸쳐 자신의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모두가 달갑게 보고만 있진 않을 겁니다.”


두 손바닥의 그림자 아래서도 구겨졌다는 걸 느낄 수 있는 로빈의 미간이었다.


“귀족파 의원들 말인가요?”


“그들뿐만이 아닙니다. 지방군을 포함한 모든 군부가 통합군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니까요. 당장 왕비님의 불만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흐으으음.”


물론 ‘그 사건’이 지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엘라가 먼저 지나에게 상담을 했고, 지나가 그것에 대해 동의하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들었으니까. 물론 엘라의 의견이 크라트, 즉, 베르달의 의견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벤의 주도로 새로운 기사훈련소장의 직책까지 맡았던 엘라가 직접적으로 반기를 내비쳤다는 건 의미하는 바가 꽤 클 터.


“아무튼, 빠른 시일 내에 왕비님과 다시 이야기를 해보시길 바랍니다.”


“아, 네. 그건 걱정 마세요.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진득하게 마주 앉아서 얘기를 해야 하거든요.”


“.......? 예,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네, 쉬세요. 오후에 봬요.”


가벼운 목례와 함께 집무실을 빠져나가는 마누앙.

로빈은 긴긴 한숨을 쉬며 다시금 얼굴을 쓸어내렸지만,


무게감은 도무지 씻겨질 생각이 없었다.


작가의말

부족한 글을 봐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어색한 문장이나 문맥이 있다면 지적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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