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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수의 굴레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세스퍼
그림/삽화
발아현미우유
작품등록일 :
2014.08.2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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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5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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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26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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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33막) 겨울이 끝나도 봄은 오지 않는다 (1)

DUMMY

“아흐으으, 추버라, 추버.”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매섭게 휘몰아치는 눈보라. 거기에 살갗이 조각날 것만 같은 매서운 추위. 반도의 남부에서는 좀처럼 접할 수 없었던 혹한의 환경에 로빈은 장갑 낀 손을 연신 비비적대며 떨리는 신음을 흘린다.


“좀 참고 근엄하게 있을 순 없냐? 왕씩이나 돼갖고.”


“그러는 그쪽도 입술이 덜덜 떨리고 있습니다만, 나이트 마제스티?”


남편에게 역공을 당한 지나가 훌쩍-, 코를 삼킨다.


“어쩔 수 없잖아. 카나반에서 혹한기훈련이라고 해봤자 겨울숲에서 뒹구는 정도니까.”


“새삼 니에브의 기사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지네요, 질렌스키 경.”


로빈의 시선은 앞에서 부부를 안내하고 있는 질렌스키의 가벼운 차림과, 이런 가벼운 차림으로도 혈색 하나 변하지 않은 그의 강철같은 피부를 향해 있었다. 이에 질렌스키는 덩치와 인상에 걸맞은 걸걸한 웃음소리와 함께 목을 쓰다듬을 뿐이었다.


“하하핫, 기사들뿐만이 아니라, 플로닉스의 은총을 받은 니에브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렇습니다. 저희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그렇게 꽁꽁 싸매고 있는 남부 사람들이 더 신기하니까요.”


그에게 비웃을 의도가 있는 건 아닐 테지만, 눈보라의 한복판에서도 얇은 셔츠차림으로 껄껄 웃고 있는 눈의 기사와, 온갖 털옷으로 몸을 치장한 왕과 왕비의 모습은 부부에게 일종의 패배감을 안겨주고 있었다.


“뭐, 사람들을 보니, 진짜 날씨만 아니었다면 봄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지나의 태양 같은 눈동자는 기다란 벽돌계단 아래로 펼쳐진 도시의 정경을 담고 있었다.


니에브 공국의 수도, 눈의 도시 ‘버닝프로스트’.

반도의 대도시들 중 대부분은 그 역사가 국가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지만, 이곳 버닝프로스트는 제국의 수도인 ‘엔트라다’와 더불어 이전 ‘주인들’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역사를 간직한 도시들 중 하나였다.

거대한 도시를 감싸고 있는 외벽과 도로, 그리고 건물을 포함한 모든 도시요소들이 검은색의 돌로 통일되었다는 것이야말로 버닝프로스트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 물론 이는 단순한 돌이나 화강암이 아닌, ‘용혈석’이라는 이름의 암석이다.

처음 듣는 이름에 로빈과 지나는 의아함을 품었지만, 질렌스키는 당연하다며 웃었다. 애초에 이 용혈석은 니에브, 그중에서도 이곳 버닝프로스트에서만 존재하는 암석이며, 철광석보다도 단단하고 금보다 무겁기 때문에 채굴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인 데다가 운 좋게 조각을 얻는다고 해도 용광로에서도 녹지를 않아 제련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그럼에도 로빈은 흥미를 놓지 않았지만, 일반병사가 무기나 갑옷으로 쓰기에는 지나치게 무겁고, 이스누시아 연철과는 정반대로 영력이 아예 흐르질 않기 때문에 기사용 병기로도 적합하지 않다는 설명을 듣고 나서야 포기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제련이 어려운데, 그 돌로 도시 전체는 어떻게 만든 거죠?”


“하하, 예리하시군요, 왕비님. 하지만 순서가 잘못됐습니다. 용혈석으로 도시를 만든 게 아니라, 도시가 용혈석이 된 겁니다.”


이곳에 도시를 세운 과거의 어느 주인, 엘론이나 덜린보다도 더욱 과거의 주인들이 그 ‘주인됨’을 인정받지 못하여 ‘케테르의 용’에 의해 멸망을 앞두게 되었다. 용에 의해 도시가 불타는 와중, 어느 영웅의 요격으로 인해 용이 상처를 입게 되었고, 추락하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용의 피가 불타는 도시 위로 떨어지며 굳는 바람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전설이 아니냐는 지나의 물음에 질렌스키는 어깨를 으쓱했다. 애초에 니에브의 사학자들이나 고고학자들조차도 용혈석의 명확한 기원을 밝혀내지는 못했으니까.


“그럼 도시를 확장하는 게 엄청 까다롭겠네요.”


이번엔 행정적으로 접근하는 로빈이었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건 질렌스키의 걸쭉한 웃음이었다.


“하하, 신기한 게, 예전부터 버닝프로스트의 인구는 항상 일정 수준을 유지해왔습니다. 특별히 조치를 취한 것도 아니고, 방침이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도 말이죠. 심지어 대전쟁 이후에는 도시 주변의 인력피해를 충원하기 위해 대대적인 이주정책까지 동원했었지만, 결국 인구가 예전의 그 수준으로 수렴했다고 하지요. 혹자는 이 또한 플로닉스의 장난이라고도 하더군요.”


“허, 신기하네요.”


높은 밀도의 눈보라와 사방을 뒤덮은 하얀 눈으로 인해 도시의 능선을 읽기가 쉽진 않았지만, 로빈은 하얀 장막이 걷힌 이곳의 풍경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었다.

수천 년, 어쩌면 만 년이 넘을지도 모르는 긴 역사의 시간을 그대로 품고 있는 유적과도 같은 도시. 용혈석의 검은색이 도시 전체를 뒤덮고 있다지만, 로빈은 어째선지 이 눈이 걷히고, 먹색의 정경이 모습을 드러내더라도 이곳을 칙칙하다고 느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으아, 오셨네.”


길고 길었던 계단의 끝자락. 반가운 얼굴과 목소리로 부부를 맞이하는 남자가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대통령 각하.”


“뭔 반도 순방회도 아니고, 어째 맨날 모이는 얼굴은 똑같은데 장소만 바뀌는 거 같네.”


“꼬우면 대통령직 내려놓고 사임하시든가요.”


“야, 내가 이걸로 해 먹고 있는 게 얼만데. 니 상여금은 누구 똥꾸멍에서 나오는 줄 아냐.”


투덜거리는 대통령과, 그런 대통령에게 핀잔을 놓는 경호실장. 실로 익숙한 광경이었기에 로빈과 지나는 웃으며 그륜과 악수를 나눌 수 있었다.


“다른 분들은요?”


“블라고의 대머리할배는 안에 있고, 브린타이나는 왕 아가씨도 ‘미소’도 국경 때문에 바쁘다고 다른 사람을 보냈던데.”

그륜이 갑자기 악수를 하던 손을 그대로 잡아당겨 로빈을 앞으로 끌어내린다.

“그쪽 검성네 통합군도 거기에 묶여있는 모양이던데, 무슨 일 있나? 보통 이런 일엔 ‘변수’가 오는 게 맞지 않나 해서. 무슨 일 있는 겨?”


“아니, 뭐. 이래저래 바쁜가 보죠. 일단 들어갑시다. 추워 죽겠어요.”


로빈은 자연스럽게 넘겼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추위로 인한 다급함으로 놓친 사이, 대통령은 미묘한 미소를 입에 머금고 있었다.




=====



버닝프로스트 본궁에 마련된 회의실은 로빈과 지나가 일반적으로 봐왔던 ‘회의실’의 개념을 아득히 뛰어넘는 존재였다. 온통 검은 ‘용혈석’인 탓에 얼마나 높은 건지 제대로 가늠이 안 되는 천장, 니에브 모든 영주들의 군기로 장식된 벽은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으며, 마치 거대한 원반이 녹아내리다가 그대로 굳은 듯, 바닥과 일체화되어 회의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원형 탁자까지.

용혈석의 벽이 모든 색과 빛을 빨아들이는 덕분에 그렇지 않아도 어두운 실내였지만 조명조차 마땅치가 않아 실내의 공기는 칙칙하기 그지없었다. 그나마 안쪽에 위치한 벽난로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유일하게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게 도와주는 수준. 물론 난로벽의 위로는 영주들이 저마다의 술잔과 술통을 데우기 위해 마구잡이로 올려놓은 상태였기에 넓은 회의실 전체가 각종 증류주의 냄새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먼저, 바쁘신 와중에도 이런 곳까지 행차해주신 동맹국의 대표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먼저 전합니다.”

다부진 근육들로 이루어진 건장한 체격. 기다란 머리칼이나 눈썹 모두가 뿌리에서 멀어질수록 하얗게 탈색된, 특이한 외형의 소유자. 짐승의 가죽과 털로 만든 외투를 걸치고 있긴 하지만, 그것이 추위 때문이 아닌 대공으로서의 위엄을 세우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앞서 공지하였다시피, 얼마 전 제국으로부터 이런 내용의 전문이 올라왔습니다.”


홀덴의 신호에 한쪽으로 모여앉아 있던 ‘동맹국 귀빈’들의 앞으로 전문의 복사본이 전달된다.


“흐응.”


마치 버릇처럼 손에 든 전문을 읽어내려가는 로빈. 그에 비해 지나는 이어지는 홀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내용 자체는 간단합니다. 바로 ‘니에브 북부로 군을 움직여야 하니 길을 열어달라-’는 거죠.”

이미 한번 겪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회의실 내부로 영주들의 악의 짙은 비웃음이 넘쳐흐른다.

“처음엔 제국의 4군단장이 계속 막히니까 이젠 별 개지랄을 다 떠는구나- 싶었는데, 아래 인장 보이십니까? 이건 제국황제의 인장으로, 이 전문이 황제에게서 직접, 혹은 그의 이름을 빌린 우검성을 통해 직접 내려왔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나름 격조 있는 개소리라는 거죠.”


다시 흐르는 웃음소리들. 그 와중에 하나의 거친 손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든다.


“여기 전문 마지막에 자세한 사항은 후속으로 통보될 작계문서를 참고하라고 되어있는데, 이건 무슨 말이죠?”


전문의 정독을 마친 로빈이었다. 그리고 이 질문이 끝남과 동시에 홀덴의 얼굴에 남아있던 가벼움도 증발한다.


“네, 여러분을 모신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죠. 오늘 아침에 도착했습니다.”


이번엔 복사본이 귀빈들을 포함한 영주들 전원에게 전달된다. 몇몇은 데워놓은 술과 함께 가볍게 즐길 안주처럼 여기려는 모양이었지만, 곧 모든 이들의 얼굴은 그 특유의 넉살을 잃고 만다.


“.......이건........”


“네, 말 그대로 작계입니다.”

홀덴이 탁자 위로 펼친 ‘부록’의 내용은 한두 장이 아니었다.

“동원되는 군사의 숫자, 편제, 이동 경로, 보급수준, 보급로, 전투력 수준 모든 게 담겨 있습니다. 심지어 대외비에 해당되는 정규군 편제까지 그냥 대놓고 내놨어요.”


“거짓일 가능성은?”


지나의 질문. 그러나 홀덴은 고개를 젓는다.


“모르죠. 하지만 지금까지 누적된 정보를 통해 저희가 예상하고 있었던 4군단의 편제나 규모와는 어느 정도 일치하고 있습니다.”


“제국이 미친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신나게 치고받고 싸우다가 갑자기 길 좀 터달라? 이게 무슨 개수작이냐고.”


벽난로가에서 느긋하게 술을 삼키던 질렌스키였다. 그리고 그의 푸념 같은 목소리에 몇몇 영주들이 격하게 동의를 하고 있었다.


“상식이 있으면 적국에게 길 좀 비켜달라는 요청은 하지 않겠죠. 즉, 이런 행동 자체가 무언가 다른 의미가 있다는 뜻인데.”


홀덴의 말에 ‘작계’를 정독하고 있던 로빈이 고개를 든다.


“니에브가 다른 동맹국들에게 의심을 받게 만들 의도가 아니었을까요?”


“이런 거짓 전문 하나로 동맹이 흔들릴 거라고 생각했다면 저놈들은 더더욱 멍청한 거겠죠.”


“하지만 도무지 다른 의도를 생각할 수가 없는데요······.”


무언의 동의.

로빈과 지나를 포함한 니에브의 많은 영주들이 다시금 전문으로 시선을 옮기고 신음을 뱉기 시작한다. 하지만 동시에 모두가 가장 중요한 하나를 놓치고 있었는데, 그 ‘하나’를 집어낸 인물은 뜻밖에도 이런 대화 자체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던 얼굴이었다.


“근데, ‘목적’이 빠져있잖아.”


“응?”


모두의 시선이 몰렸음에도, 당사자는 반쯤 누워있는 듯한 자세를 바꿀 생각이 없었다.


“‘왜’ 길을 터달라고 하는지, ‘왜’ 자신들이 저기로 군을 움직여야 하는지, 그 목적이 안 나와 있잖아.”


목소리의 주인공은, 로빈과 지나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얼굴. 하지만 익숙한 만큼 도저히 적응을 할 수가 없는 얼굴.

브린타이나의 대표로 자리한 ‘렌’이었다.


“그러니까 이 기만행위에 대한 목적을 논하기 위해 이렇게 자리를-”


“아니아니, 이거 말이야. 작계. 얘들이 왜 북쪽으로 군을 움직여야 하는지가 안 나와 있잖아.”

각국의 대표가 모여있는 자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불손한 렌의 태도. 그는 옆자리에 있던 영주의 잔을 빼앗아 반쯤 비우더니, 검지와 엄지로 ‘작계’를 잡아 흔들기 시작한다.

“얘들이 말한 니에브의 북쪽, 그 목적지로 표시된 곳이 ‘에일로피아의 목’ 거기 아냐?”


“맞습니다.”


에일로피아의 목.

니에브공국의 북쪽 국경을 전부 아우르는, 일종의 거대하고 기다란 균열.

자연적으로 형성되었다고는 믿을 수 없는 규모와 깊이, 획일성을 지녔기에 그 기원에 대해선 수많은 추측이 있었지만, 자신들만의 ‘주인’을 만들어낸 사도와 악마가 반도의 대지모신이었던 에일로피아의 목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합심해서 만들었다는 이론이 정설로 받아들여 지고 있었다. 때문에 균열 너머 미지의 대륙은 반도인들에게는 개척의 엄두조차 내질 못하는 ‘금지된 땅’이었는데, 물론 종교적인 문제가 컸지만 반도인들의 진출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거대한 문제는 바로 대륙에 널리 퍼져 있는 ‘이전의 주인들’, ‘아니마플로른’이었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 니에브공국의 적은 제국뿐만이 아닙니다. 수천 년에 걸쳐 계속해서 반도로의 귀환을 노리고 있는 비인간 종족들, 즉, 아니마들이 활개를 치고 있기 때문이죠. 특히 공국의 겨울이 길어지면서 이들이 ‘목’을 넘어 침범해오는 횟수와 규모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권성께서 북쪽으로 파견 나가계신 이유죠.”


“그니까, 제국놈들이 왜 뜬금없이 에일로피아의 목으로 가게 길을 열어달라고 하겠냐고. 그쪽은 뭐 우회해서 우리나라를 칠 수 있는 경로도 아닌데.”


“그러니까 개소리라는 거다, 애송아.”


렌에게 잔을 빼앗겼던 중년의 여인이 다시 잔을 탈환하며 그를 윽박질렀지만, 렌은 오히려 그런 그녀를 가벼운 시선으로 흘깃 쳐다볼 뿐이었다.


“아니, 정말로? 그러니까 이게 그냥 찔러본 거다? 아무 이유도 없이?”


“그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 모두-”


“거꾸로 생각해봐. 왜 아무도 제국의 이 요청이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 거야?”


짧은 침묵이 흐른다.

회의실 안의 모두가 지금 렌이 한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가늠하려 노력하고 있었던 탓이다.


“.......그럼 렌 경께서는 목적도 밝히지 않고 적국에게 ‘당신네 심장부로 군을 움직여야 하니 비켜달라’고 하는 게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끝까지 정중함을 잃지 않고 있는 홀덴. 그의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렌은 기어이 양발을 탁자 위로 올려놓고 만다.


“이 아래에 있는 인장, 이게 제국황제의 인장이라고 했지? 다들 알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제국에선 황제의 입김을 빌려 공문을 내릴 수 있는 작자는 우검성 그 새끼밖에 없어. 그 외에 누군가가 멋대로 황제의 인장을 빌려 이런 짓을 벌였다면 불경죄로 당장 모가지가 날아가겠지. 그럼 즉, 이건 진짜 제국황제의 목소리라는 뜻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우검성의 입김이 들어간 목소리라는 뜻이겠지. 그런데 전자도 그렇고 후자도 그렇지만, 과연 단순히 교란을 던져주기 위해서 이런 일을 벌였을까? 난 아니라고 봐.”


“그럼 목적도 밝히지 않고 군사를 지나가게 해달라는 거에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겁니까?”


“그니까 거꾸로 생각해보라고. 목적을 일부러 말하지 않는 게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거’라면?”


“.......”


궤변이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나는 의심만큼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대공.”


“네, 블린저 경.”


이번엔 모두의 시선이 블라고슬로바의 대표기사, 블린저에게 향한다. 추위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니에브 사람들에게도 머리칼은커녕 눈썹조차 없는 노인의 모습은 충분히 이질적인 것이었으리라.


“겨울이 길어지면서 ‘아니마’들의 침략도 잦아졌다고 하셨지요.”


“네, 그렇습니다.”


“혹시 이번 제국의 요청이 이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상치 못한 방향. 홀덴은 침착하게 고개를 젓는다.


“글쎄요, 갑자기 제국이 ‘목’을 신경 쓴다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애초에 왜 이 요청의 진위 자체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어야 하는지 저로선 이해가 잘 안 되는군요.”


“자자자, 다들 열 올리지 마시고, 기분 좋게 모였는데 일단 한잔하고 좀 있다가 이어서 하죠?”


섬나라 대통령의 경박한 목소리가 대회의실에 울려 퍼지고, 경호실장 재규는 자신이 모시는 사람의 멍청함을 저주하며 이마를 짚는다. 하지만 영주들의 반응은 예상외로 호의적이었다.


“그래 뭐, 사람 일이 다 마시고 죽자고 하는 거지, 안 그래?”


“당신들 술은 가져 왔겠지? 욘의 청주가 그렇게 맛있다고 하던데, 응?”


“자자, 각자 잔들 챙기고!”


무겁게 가라앉았다가도 금세 왁자지껄 들고일어나는 영주들. 이러한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은 로빈과 지나는 당황한 듯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블린저는 가만히 차를 즐겼으며, 렌은 어느새 모습을 감추었다.


“자, 대공.”


그리고 그 소란을 틈을 타 어느새 홀덴의 옆으로 다가온 욘의 대통령 그륜.


“네, 뭡니까?”


“이제 슬슬 ‘진짜’ 회의를 시작하시죠.”


“.......”


비릿한 웃음과, 굳어지는 얼굴이 교차한다.

그륜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영주들에게는 알리지 못한 전문이 하나 더 있잖습니까.”


작가의말

언제나 미흡한 글을 봐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어색한 문장이나 문맥, 오타가 있다면 지적 부탁드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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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 (31막) 방관의 의도 (1) +2 17.12.27 226 7 20쪽
334 (막간) 전조 17.12.22 210 6 15쪽
333 (30막) 정말로 새롭게 피어난 향기는 역할 수밖에 (10) +4 17.12.17 201 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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