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수의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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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그림/삽화
발아현미우유
작품등록일 :
2014.08.20 17:22
최근연재일 :
2020.08.1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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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8.20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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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1막) 붉은 모래, 시린 달빛, 그리고- (1)

DUMMY

직각으로 내리쬐는 햇빛이 온기를 속삭이는 한낮의 시간.

시야 가득히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기둥을 가진 나무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다.

그 거친 활엽수들의 거대한 잎사귀들이 지붕을 이루는 숲의 한가운데에선 햇빛은 누릴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문명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이러한 태고의 풍경에서 약간은 이색적인 조화로움이 있었으니······,


그것은 거친 숨을 내쉬며 나무 사이를 헤집는 소녀의 그림자였다.


숲에 들어서자마자 뒤로 벗어버린 후드, 그리고 그 후드를 붙들고 있는 브릿지 위로 선명한 바닷빛 눈동자와 함께 소녀의 처참한 표정이 떠오른다.

창백해진 피부는 연약한 신체의 처참한 운동부족을 알려주는 경고이자 징표.

땀에 젖은 푸르스름한 머리는 이미 뒤로 묶어 올린 터라, 턱과 목을 따라 흐르는 땀을 방해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대학생이 수색임무라니 뭔 개짓거리야 이게······. 그 죽일 년은 왜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


소녀는 끊임없이 자신을 이곳에 보낸 누군가를 욕하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되도록 마법은 쓰지 말라는 지침이 있었지만, 그녀는 이미 성문을 나선 순간부터 전신에 경량화 마법을 걸어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마법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운동 따위 하지 않은) 소녀의 몸. 이미 피로는 쌓일 대로 쌓였다.


근신을 대신하여 떠맡은 수색 임무 열흘째.

애초에 남은 근신은 2주였지만, 열흘이 지난 지금 그녀는 할당된 수색 구역의 절반도 훑지 못했다.

처음 명령서를 받았을 때 상세하게 확인을 했어야 했다. 결국 ‘죽일 년’의 간계에 놀아난 셈이라고 자책할 수밖에 없다.


‘야생동물도 안 보이는 이런 곳에 사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임무에 대한 책임감 따윈 처음부터 없었던 그녀지만, 숲속을 헤맬수록 회의감이 그녀를 죄어온다.

사람의 웃음소리와 비슷한, 그렇기에 더욱 소름끼치는 이름 모를 새의 울음소리 말고는 어떤 동물의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때문에 그녀의 주변 환경에 대한 경계심은 점점 얕아지고 있었지만, ‘야생동물도 없는’ 이런 곳에서, 그것이 꽤나 치명적인 실수였다는 것을 그녀는 오래가지 않아 깨닫게 된다.


‘좀 쉬자.’


소녀는 이제는 무언가를 표현한 것인지 알아볼 수도 없는, 이끼가 가득한 고대석상을 등받이 삼아 털썩 주저앉는다.

목에서 새어나오는 욕지거리는 이제 버릇이 돼버린 모양이다.

내내 등 뒤로 매고 있었던 커다란 가죽자루를 열어보고, 그녀는 마지막 마을에서 사놓았던 보리빵과 육포가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식량이 다 떨어지면 왔던 길로 곧바로 되돌아가리라 다짐하고서, 그녀는 자루를 옆에 내팽개쳐놓고 눈을 붙인다.


어차피 기한이 정해져 있는 임무다.

대충 둘러보고 못 찾았다고 하면 그만일 것이다.

차라리 이 기회에 편안히 여행이나 하는 셈 치자고 생각하며, 그녀는 잔잔한 숲의 바람을 이불 삼아 선잠에 빠지려고 했다.

그러나 몸에 축적된 피로는 단순한 선잠마저 허락하질 않는다.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얼마나 헤맸을까.


‘!’


주변공기에 위화감을 느낀 소녀의 푸른 눈동자가 빛을 발하며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미 서늘한 어둠이 숲을 반쯤 삼키고 난 뒤였다.

그녀는 다급하게 자리를 박차며 일어나지만,

그뿐.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 소녀는 자신에게 수상한 공기의 방향을 잡을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다시 욕지거리가 섞인 짧은 신음을 내뱉으며, 그녀는 짧은 주문과 함께 작은 발광체를 만들어 머리 위에 띄워놓는다.

지금까지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숲이었지만, 완전한 어둠 속에서의 숲이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었으니까.

더 이상 지체했다가는 완전한 암흑과 추위 속에 내팽개쳐질 신세였다.


소녀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밤바람이 나뭇잎 사이를 휘저으며 스산한 비명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녀는 경량화 마법도 잊은 채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이런 ‘감’에 있어서는 둔해 빠진 자신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그녀였다.


‘아, 짜증나. 모르겠다.’


그녀가 손을 가볍게 흔들자, 머리 위의 발광체가 진동하며 상승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주변을 환하게 밝힐 정도로 밝아진다.

소녀는 계속 긴장된 상태로 움직이는 것이 끔찍이도 싫었던 것이다. 어차피 국경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의 숲이니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그녀였다.


갑자기 밝아진 주변에 적응을 마친 그녀의 눈이, 불길한 두 개의 그림자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슈테인울프!’


투박한 털로 온몸을 덮은 저 직립보행의 늑대는, 가련한 수습마법사가 밤중에 숲속에서 만날 수 있는 생명체 중에선 가혹한 편에 속하는 것이었다.

소녀가 있는 쪽을 바라보는 호박색의 눈빛들은 갑작스런 밝은 빛에 소녀 못지않게 놀란 듯 보였다.

아마도 조심스럽고 완벽한 사냥을 위해 서서히 접근 중이었을 터.


소녀는 공격마법스크롤이 자루 속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재빨리 허리를 더듬었지만, 허리춤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가 파랗게 질린 입술을 깨문다.

몸이 굳어버리고 식은땀이 흐르면서, 그녀는 자신의 가죽자루가 석상 옆에 남겨져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일반학생들은 공격마법을 외워서는 안 된다는 교칙이 지금처럼 원망스러울 때가 없었다. 하지만 결국에 원망해야 할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그녀에게 조금의 흥미와 호기심만 있었더라도 학회장의 서재정리를 하면서 어렵지 않게 수많은 공격주문을 외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귀찮음’이라는 무서운 병을 가진 그녀였다.


낯선 숲에서 슈테인울프 두 마리와 마주치는 상황은, 열흘 전까지 도서관이나 정리하던 그녀가 예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었다.


이제와서 높이 띄워놓은 발광체를 없앤다고 야행성의 슈테인울프들이 그녀를 놓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녀가 그들을 보지 못할 뿐이다.

경량화 마법을 걸고 자루 쪽으로 뛰어본들 의미가 없었다. 그녀가 동물도감에서 읽은 슈테인울프의 특성에 따르면, 그들은 사람의 다섯 배에 달하는 순간속도를 낼 수 있으니까.

또한 갑작스런 움직임이 그들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겹치면서 그녀는 쉽사리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그녀가 동물도감에서 읽은 슈테인울프의 다른 특성 중, 가장 잘 기억에 각인됐던 ‘식인’ 습성은 소녀의 심리상태를 최악으로 만들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이 조잡한 갈고리를 끌며 조심스럽게 그녀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음에도 소녀에겐 그것들에게서 도망치거나 맞설 수 있는 수단이 도저히 떠오르질 않았다.

수석 입학에 빛나는 그녀의 우수한 두뇌도 급박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그녀는 동물도감에서 읽었던 또 다른 슈테인울프의 중요한 특성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슈테인울프는 절대로 협동생활을 하지 않으며 종족을 불문하고 암컷은 절대 사냥하지 않는다.-


이것을 기억했다면 그녀는 지금쯤 두 가지 의문을 품고 지금 상황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었을 것이다.

첫째, 협동생활을 절대 하지 않는다던 슈테인울프가 어째서 두 마리 함께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가.

둘째, 종족을 불문하고 암컷은 절대 사냥하지 않는다던 슈테인울프가 어째서 고기와 피를 갈구하는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적어도 소녀는 이렇게 느꼈다)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인가.

물론, 사실 이 두 의문점을 깨달았다고 해도 지금당장 이 상황을 돌파할 묘책이 떠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부터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질 광경을 이해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됐을지도 모른다.


“야, 저리가.”


소녀는 갑작스레 자신의 등 뒤에서 들려온 낮은 목소리에 콧물이 삐져나올 정도로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 게걸스럽게 달려들던 슈테인울프들이 후다닥 달아나는 것을 보고 더욱 더 놀란다.

저 혐오스러운 짐승들이 시야에서 확실하게 사라졌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고, 그제야 소녀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뒤로 고개를 돌릴 수 있었다.


“이런 곳까지 들어오다니, 길이라도 잃으셨나.”


구질구질한 천 쪼가리를 옷이랍시고 걸친 모양새 하며, 덥수룩한 검은머리에 꾀죄죄하게 그을린 살갗까지.

수척한 그 모습은 영락없는 유랑민의 행색.

게다가 커다란 지게 위로 한가득한 정체 모를 잡동사니들은 안 그래도 왜소한 몸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고 있었다. 겉모습으로는 도저히 나이와 직업을 가늠할 수 없는 사내였다.

긴장감 없이 늘어진 몸짓으로, 그가 자신의 뒤를 가리킨다.


“제가 온 방향으로 개울을 따라 쭉 가면 아티카라는 작은 마을 하나가 나와요. 제일 가까운 마을이니 거기로 가보세요.”


그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소녀를 지나친다.

잠시 멀뚱히 그의 뒷모습과 슈테인울프들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던 그녀의 머릿속에, 하나의 매력적인 단어가 떠오른다.


“비스트 마스터?”

너무 작게 중얼거린 탓일까. 사내는 듣지 못했는지 사뿐사뿐 제 갈 길을 이어간다.

“잠깐, 잠깐만요!”


소녀는 석상 옆에 놓여있던 자루를 서둘러 회수했고, 곧이어 다급하게 그를 불러 세우며 무심코 발을 내딛다가 썩은 나뭇잎 속으로 발이 빠지며 휘청거리고 만다.

덩달아 머리 위의 발광체도 어지럽게 흔들렸지만, 남자는 그녀의 말에 반응하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왜요?”


퉁명스러운 대답.


“혹시, ‘비스트 마스터’세요? 숲속에 사시나요?”


소녀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사내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다.


“비스트 마스터? 그게 뭐예요? 여기 사는 건 맞는데.”


“하지만 저 슈테인울프들을······-”


소녀의 시선이 다시금 괴물들이 사라진 어둠으로 향했지만, 사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남자의 손톱 아래 위생 상태에 대해 상상하기 싫었는지 소녀가 얼굴을 찌푸렸으나, 돌아오는 건 여전히 무색무취의 목소리였다.


“아, 걔들이요? 그냥 어릴 때부터 숲에서 자주 보던 사이라서 친해요. 번식기나 한창 배고플 때 아니면 사람은 안 건드리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이런 곳에선 번식기가 아니라도 항상 배가 고플 거란 게 문제 아니냐······.’


본래 개인 활동을 하고 암컷은 사냥하지 않는다던 슈테인울프들이 자신을 노렸던 이유가, 단순히 번식기에 배가 고파서였다는 사실에 소녀는 기운이 빠진다.

물론 왜 주변의 동물들이 씨가 마를 때까지 슈테인울프가 이 구역을 떠나지 않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질 법했지만, 이런 심화 탐구를 진행하기엔 오늘밤 소녀의 심리적 공황은 다소 컸다.

탄식은 속으로 삼키고, 그녀는 쉬지 않고 걸음을 옮기는 사내의 뒤를 따라나선다.


“뭐에요? 왜 따라와요?”


일관된 태도로, 퉁명스럽게 쏘아보는 사내. 피어오르는 빡침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고, 소녀는 사글사글하게 웃어 보인다.


“아, 실은. 왕립마법대학에서 나왔거든요. 실례가 안 된다면 댁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도 될까요?”


“실례 맞는데요. 안녕히 가세요.”


‘저 망할 새끼가······.’

그녀는 순간적으로 튀어나오려는 욕을 간신히 억누르고, 다시 떨리는 미소와 함께 사내의 앞을 막아섰다.

“죄송해요, 잘 이해를 못 하신 것 같은데, 왕명으로 나온 거라 무.조.건-, 협조를 해주셔야 하거든요? 다시 물을게요.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시죠~?”


‘무조건’에 이 정도 강조를 했으니 충분하겠지- 라고 생각한 그녀는, 사내가 한 번 더 싸가지 없게 무시한다면 머리통을 한 대 후려치고 도망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내는 그녀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고는 말없이 걸음을 옮긴다.


소녀는 짧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그의 뒷모습을 따라 나선다. 긍정의 뜻으로 해석한 것이다. 도중에 그녀는 몇 번이나 뒤를 힐끔거리며 살펴보았지만, 다행히도 더 이상 짐승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



그렇게 그를 따라나선 지 얼마나 지났을까,

소녀의 숨소리는 이 숲에 들어왔을 때처럼 다시금 거칠어져 있었다.

반면에 사내는 경량화 마법도 없이, 커다란 짐을 등에 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색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수풀과 나무 사이를 날렵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 젠장. 돌아가면 운동 좀 해야겠다. 죽겠네.’


소녀는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 하찮은 푸념을 반복하며 간신히 그를 놓치지 않고 있었지만, 자존심 때문에 쉽사리 쉬었다 가자는 말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정할 겨를이 없는 발광체는 없애 버린 지 오래였다.

점점 빽빽해져가는 수풀과 나무들 때문에, 그녀의 드러난 살갗과 로브에는 이미 많은 생채기가 나 있었다. 자신의 초라한 행색을 내려다보며 전의 그 ‘찌질한’ 논문에서 언급한 왕에게 복종하는 개새끼(정확히 이런 표현은 아니었으나 그녀에겐 이렇게 읽혔다)가 바로 이런 모습을 보고 묘사했던 것이 아닌가, 자신도 모르게 슬퍼지는 그녀였다.


“저기요······.”

결국 소녀는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그 이상의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녀의 눈앞에, 도시 사람의 관념으로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계속 자신을 괴롭히던 억센 수풀들의 존재가 갑자기 사라진 것을 의아하게 여겨 무심코 앞을 내다보자, 방금까지는 생각지도 못했던 달빛이 그녀를 반긴다.

깊은 숲속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광활한 평원이었다.

허리높이의 온갖 수풀들과 꽃들로 이루어진 평원은, 눈앞에선 그렇게 커다랗던 나무가 지평선에서야 간신히 존재를 보일 정도로 드넓었다.

나무들이 동그랗게 둘러싸고 있는 형태의 이 공터는 숲이라는 장소의 상식을 깨는 곳이었다. 아마 하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다면, 이곳은 숲속의 커다란 구멍처럼 보일 것이라고, 소녀는 생각했다.

“와······.”

소녀의 입에서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감탄이 새어 나왔다.

그 장소는 무성한 풀과 이름 모를 꽃들뿐, 그렇게 웅장하거나 화려한 곳은 아니었지만, 그 이질감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어 보였다.

“신기한 곳이네요.”


“······.”


그녀가 대답을 기대하고 다시 청년을 바라보았을 땐, 이미 그의 그림자는 저 멀리 앞서나간 뒤였다. 소녀는 투덜거리며 그의 길어진 그림자를 따라 밟아야 했다.


평원의 한가운데쯤에 도달하자 수풀 사이에서 작은 오두막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말 그대로 숙식용의 오두막으로, 주변엔 어떠한 것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수수한 크기와 거친 분위기로 짐작해 보건데, 아마도 남자 혼자 살고 있는 곳이라고 예상해보는 소녀였다. 만약 여자의 손길이 닿았다면, 이렇게 아름다운 배경에서 이런 쓸쓸함이 느껴지진 않았을 테니까.


“들어와요.”


남자는 커다란 짐을 오두막 옆에 대충 던져놓고는 문으로 들어선다.

오두막의 입구는 남자보다 한 뼘은 작은 소녀가 지나가기에도 턱없이 낮아서, 그녀는 한참이나 머리를 숙여야 했다. 누가 지었는지는 몰라도 입구부터가 집주인의 첫인상을 잘 나타내줬다고 생각하며, 소녀는 오두막으로 스며들어갔다.


내부는 예상외로 깔끔했다. 하지만 처음 예상대로, 일인용 침대 하나와 작은 탁자, 의자 하나. 극단적으로 남자 혼자 사는 집의 분위기를 풍기는 집이었다.

그래도 어째선지 기대보다 쓸쓸함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퀴퀴한 냄새를 걱정했으나, 그것도 기우였다.


“앉아요.”


하나뿐인 의자에 자신이 앉는다면 그는?- 이라는 생각이 잠시 스쳐갔지만, 그런 예를 갖추기엔 소녀의 다리는 너무 피곤했다.


소녀는 남자의 눈치는 일절 보지 않고 집안 구석구석을 대담하게 구경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담한 벽난로와, 제목이 없거나 낡은 책들만 빽빽하게 꽂혀있는 책장뿐, 더 이상 흥미로운 것은 찾을 수 없었다.

집구경을 다 마칠 때쯤, 사내는 작은 컵에 벽난로에서 데운 주전자의 물을 담아 소녀에게 내밀었다.

“차에요. 먹을 만해요.”

소녀는 조심스럽게 찻잔을 받아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뜨듯한 온기가 잔에서부터 퍼져 나와 식었던 그녀의 온몸을 휘감는 것 같았다. 차의 향은 그녀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달콤하고 산뜻했다.


‘캬, 이런 게 바로 자연산이라는 건가?’


차라고는 평소 즐기지도 않았거니와, 그마저도 가공품밖에 접하지 못한 그녀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잠시 감상에서 벗어나 날카로운 눈초리로 찻잔과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곧 자신의 잔에도 물을 부어 한 모금 홀짝 마시는 남자를 보고는, 그제야 자신도 따라 다시 한 모금을 넘긴다.

너무 노골적이었던 것일까.


“왜요, 뭐 이상한 거라도 넣었을까 봐요?”


“아, 아뇨! 향이 참 좋네요······.”


정곡을 찌르는 남자의 말에 소녀는 당황하여 과장된 표정으로 두어 모금 더 차를 홀짝인다.

쌉쌀한 맛과 달콤한 향이 잘 어우러져 입안을 맴돈다. 그녀는 쌓였던 긴장이 씻기듯이 떠내려가는 기분에 황홀함을 느끼며 만족스러운 신음을 흘린다.

안식이라는 단어가 오랜만에 그녀의 혀끝에 맺힌 것이다.

그 와중에도 이거 돌아가서 팔면 돈 좀 되겠다- 고, 그녀의 실리적 이성이 속삭이고 있었지만.


“그래, 무슨 협조를 해드리면 될까요?”


남자가 주전자를 건네며 물었다. 소녀는 자신의 찻잔이 어느새 비었다는 것을 깨닫고, 재빨리 주전자의 차를 받았다.


“아, 소개가 늦었네요. 왕립마법대학 3학년의 제르나비 고도라고 합니다. 그냥 고도라고 부르시면 돼요.”


“벤입니다.”


“벤? 본명이세요? 성은 따로 없으신가?”


“네에. ‘그냥’ 벤입니다.”

순간 고도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떠올랐지만, 애초에 그렇게 기대했던 일이 아니었기에 그녀는 재빨리 다시 영업용 미소를 되찾는다.

성이 없다는 것은, 말 그대로 혈통에 귀족의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즉, 눈앞의 남자가 고도가 찾고 있는 ‘수색 대상’의 자격에서 크게 멀어졌다는 뜻이다.

“뭘 도와드리면 될까요?”


벤은 자신의 침대에 걸터앉아 차를 홀짝인다.

그가 이 상황에 흥미가 없어 보이는 것만큼이나 고도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이 시점에서 이곳에서의 고도의 임무는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형식적인 질문 후에 제2의 목표를 향하기로 했다.


“뭐 다른 건 아니고, 제가 인구조사 비슷한 것을 하고 있거든요. 여기에 혼자 사시나요?”


고도가 자루에서 수첩과 펜을 꺼내며 묻자, 벤이 차를 홀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뭐, 보시다시피.”


“아까 슈테인울프같이 다른 짐승들도 부리시나요?”


질문을 받은 벤의 표정을 보아하니, 애초에 그것들의 정식 명칭이 슈테인울프라는 사실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속으로 쉬는 한숨이 제발 저 무식한 놈의 귓가에 들리길 바라는 고도였다.


“부리는 게 아니라, 아까도 말했지만 그냥 어렸을 때부터 자주 보던 놈들이라 친숙한 것뿐인데요. 여기 근처 다른 동물이라고는 토끼나 광소새가 전부에요.”


‘비스트 마스터는 아니라는 거지······, 쯧.’

예상은 했으나 실망스러운 답변. 고도는 짧은 한숨에 이어서 차향으로 촉촉해진 입술을 열었다.

“언제부터 여기 사셨죠? 생업은요? 글을 읽고 쓰는 법은 아시나요? 전문교육을 받으신 적은? 조상 중에 귀족 혈통을 가지신 분이 있나요? 마법을 쓸 줄 아시나요? 나이는 어떻게 되시나요?”


“기억이 시작할 때부터요. 고물을 팔아 먹고삽니다. 네 알아요. 없는데요. 모르겠네요. 쓸 줄 몰라요. 대충 스무 살 정도?”


순식간에 오고 간 질답의 끝에서 고도가 얻은 결론은 하나.


‘전혀 쓸모없는 인간이네에······.’


뭐어, 짐작은 했지만. 그녀는 입맛을 다시며 무엇인가 적는 시늉을 하던 수첩을 덮는다.

역시나 앞에 앉아있는 남자는 그녀의 임무에 부합하는 인물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끝이에요? 뭐 그런 걸 물어봐요?”


벤은 싱겁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재차 주전자를 들이밀며 차를 권하는 그에게 살짝 손을 들어 거절하고서, 고도는 말을 이어간다.


“다 위에서 시킨 거라서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어볼 게 있는데······.”

그녀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느긋하게 주전자를 제자리에 갖다 놓는 벤을 조심스럽게 올려다본다.

“혹시 수습기사 대상자신가요?”


하위기사라도 상관없다.

지금 같은 총력전의 전황에, 기사의 피를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 자들을 끌어모으려는 기사단의 움직임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애초에 이 ‘수색임무’라는 명칭도 그저 ‘징집’을 위한 겉치레에 불과하다는 것을 고도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대상에 귀족 자제들은 포함이 안 된다는 사실이지만.

그녀는 왜소한 몸집에도 커다란 짐을 들고 가볍게 숲을 가로지르던 벤의 모습에서 작은 희망을 가져본 것이다. 하나 정도 건져서 데려가면 보상이 짭짤할 거라는 기대의 고도였으나,


“기사가 뭔데요?”


순진무구하고 감흥 없는 벤의 표정은 고도의 기대를 나락으로 빠트리기에 충분했던 모양이다.

여태까지 필사적으로 유지해온 무엇인가가 끊어지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기어이 역정을 내고 만다.


“아니, 지금 농담하세요? 기사가 뭔지 모른다구요?”


“네, 모르는데요.”


“하이고······.”

고도는 머리를 감싸 쥐며 나이에 걸맞지 않은 묵직한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곧 되돌아온 그녀의 이성으로, 벤의 무지에 대해 어느 정도는 납득할 수 있었다.

찾기도 힘든 오지에서 평생을 살며, 접한 문명이라고는 작은 마을밖에 없는 사람이잖은가.


물론 그녀는 이러한 벤의 무지에 장단까지 맞춰줄 생각은 없었다.

“기사라는 건요~, 오래전부터 내려온 특정한 혈통을 이어받은 사람들을 말하는 건데요, 일반인들보다 힘도 엄청나게 세고 엄청나게 오래 사는 사람들을 말하는 거예요.”

마치 어린아이에게 타이르듯이 말하는 것으로 고도는 나름대로 벤에게 복수를 한 것이지만, 사실 기사라는 족속들을 표현하기에 고도의 이 설명만큼이나 명확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벤이 알 리가 없었다.


“아, 힘이 센 사람들이요?”


벤의 얇은 눈썹이 살짝 올라간다.


“네 그런 셈이죠.”


끝에 한숨을 살짝 붙이며 퉁명스럽게 대답을 마친 고도는 조금 남은 차를 홀짝 마셔버린다.

바닥에 가라앉은 찻잎을 보면서, 자신이 찻잎점을 보는 법은 모르지만 이 모양이 그다지 길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그녀였다. 오늘은 일진이 그닥 좋-


“제 친구가 힘이 좀 세긴 한데.”


-구나!

고도는 잠시 행동을 멈춘다. 그리고 똘망한 눈으로, 갑작스런 그녀의 표정변화에 어리둥절한 벤의 얼굴을 향해 천천히 시선을 움직였다. 벤이 무심코 던진 이 한마디가 고도의 얼굴에서 탐욕을 피어오르게 만든 것이다.


“친구요? 무슨 친구요? 어디 사는데요? 힘이 엄청나게 센 거 맞나요?”


그녀가 오늘 낸 목소리 중에서 가장 크고 높은 것이었다. 이것은 자신이 한 말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리가 없던 벤을 약간 당황케 하고 있었다.


“······아까 말한 아티카라는 마을에 사는 친군데요. 지 몸무게보다 10배는 무거운 물건을 막 들었다 놨다 그래요.”


갑자기 뒤바뀐 고도의 태도에 다소 불편한 모습의 벤이었으나, 그가 그러든지 말든지 그녀의 머리는 세차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몸무게의 10배······? 아 씨, 애매한데······. 끽해야 하위기사 나부랭이일 수도 있겠지만······.’

‘하위기사’라고 속단했으나, 사실 고도가 전투마법사들이나 배운다는 기사역량측정법을 알 리가 없었다.

다만 도시에서 그녀가 접한 ‘기사’라는 존재들의 일반적인 인상에 기인한다면, 몸무게의 10배를 들어 올린다는 저 친구라는 사람은 그다지 매력적인 ‘수색 대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랴, 자신이 지금 그런 것을 따질 상황이던가.

“지금 만나 뵐 수 있을까요? 그 친구라는 분?”


지금이 한밤중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 듯한 그녀를 보며 벤은 헛웃음을 뱉을 수밖에.


“아뇨. 옆 마을에 고물 얻으러 가서 내일 아침에나 올 텐데.”


“그럼 실례지만 근처에 하룻밤 묵을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고도의 질문에 벤은 곤란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마을에 작은 손님용 빈집이 있긴 한데, 지금 마을까지 가기엔 너무 늦었으니 여기서 그냥 주무시죠. 전 밖에서 자면 되니까.”


“어머, 고마워요. 너무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싶네요.”


“뭐, 별로······.”


고도는 살랑살랑 웃으며 가식적인 말을 내뱉는다. 애초에 그녀는 벤이 그녀를 내쫓는다면 억지로라도 눌러앉을 셈이었으니까.


벤의 말대로, 밖은 이미 완벽하게 어두워져 있었다.

내일 마을에 들렀다가 곧바로 수도를 향해 출발한다면 일주일 안에는 도착할 수 있을 거란 그녀의 (희망적인)계산이었다.

아직 ‘수색’해야 할 구역이 많이 남긴 했지만, ‘성과’를 가지고 간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벤이 문을 닫고 나간 후, 고도는 모든 것이 잘 풀리고 있다고 느끼며 낯선 침대 위에 거침없이 몸을 뉘었다.

슈테인울프와의 조우 때문에 잔뜩 굳었던 긴장이 풀린 탓일까. 그녀의 몸은 숲에서의 달콤했던 ‘선잠’은 기억하지도 못하고, 그간의 여행(?)동안 쌓였던 피로에게 한꺼번에 짓눌리고 만다.


고도는 그녀가 누리게 될, 마귀할멈의 마지못한 칭찬과 임무보상에 대한 행복한 상상을 할 여유도 없이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처음 보는 낯선 이에게 거리낌 없이 집을 내어주는,

남자의 묘한 사회성에 대한 의구심은 잠시 접어둔 채로.


작가의말

부족한 글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색한 문장이나 오탈자 지적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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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 (막간) 저 너머 +2 19.08.13 101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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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 (막간) 만년설을 녹이는 방법 19.05.18 160 4 14쪽
357 (32막) 갈림길 (10) +3 19.05.12 139 5 15쪽
356 (32막) 갈림길 (9) +2 19.05.07 168 7 15쪽
355 연재 관련 +5 18.11.28 316 7 1쪽
354 (32막) 갈림길 (8) +2 18.11.20 284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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