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수의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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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그림/삽화
발아현미우유
작품등록일 :
2014.08.2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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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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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2.26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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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3)

DUMMY

곰팡내가 느껴지지 않는 도시의 공기, 흐린 전등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찬란한 여름의 태양. 그의 인생 중에서 가장 길고 참혹했던 1년이 끝난 순간이었지만, 조엘의 표정은 겨울보다 건조했다.

그가 그저 형식적으로 끌려온 볼모라는 사실은 수사관들도, 심지어 경비병과 간수들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반역자의 핏줄이라는 무거운 형틀을 지울 수 있는 면죄부는 되지 못했다.

혐오와 증오에서 비롯된 멸시와 모독. 귓가로 새어 들어오는 목소리는 그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는 부정의 속삭임들. 순전히 악의만으로 그를 무너트리기 위해 닥쳐온 정신적 고문을, 조엘은 정작 본가에서는 정식으로 부여받지 못했던 가슈펠라르의 이름으로 모두 받아들였다.

밝은 미래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희망 때문이 아니었다. 가문의 보상 따위 기대하기 힘들다는 사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 그를 고통의 무저갱에서 간신히 끌어내준 것은, 오직 한 사람의 얼굴뿐이었다.


“자네가 조엘 가슈펠라르인가?”


멍하니 익숙지 않은 자유를 들이쉬고 있는 중,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조엘은 눈을 뜨고 소리의 방향을 바라본다. 자신과 같은 금발, 그러나 붉은 눈동자. 마지막으로 본 것은 1년 전이었지만, 그 공백 사이에 조엘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별다른 인물이 없었기에 그는 쉽게 상대의 이름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냥’ 조엘입니다, 란다 가주님.”


고개조차 숙이지 않는 조엘의 태도가 무례함이나 적의를 품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란다에게 단순히 아무런 감흥이 없을 뿐이었다. 그 공허를 읽어낸 란다는 쓴웃음을 짓는다.


“요즘 시대에 서자라고 가문의 이름조차 갖지 못하다니 윌리안도 어지간히 꽉 막힌 인간이었군. 1년간 고생 많았어. 가문을 대신하여 감사하네.”


조엘은 그의 감사를 사양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은 채 가만히 가주의 붉은 눈동자를 바라본다.


“저를 회유하여 전 가슈펠라르 본가의 세력을 끌어들이려고 하셔도 소용없습니다. 주변에서 떠드는 것처럼 전 그들이 대신 내놓은 대용품에 불과하니까요. 저를 보낸 ‘그 사람’에게나 여쭤보시죠.”


란다는 다소 놀란 눈으로 이 당돌한 청년을 바라본다. 그 무표정 속에서 아무런 감정도 읽어내지 못한 그는, 결국 웃음을 터트리며 조엘의 어깨를 두드린다.


“재미있는 소릴 하는군. 예전 본가의 세력이라-, 1년 동안 박혀있었으니 모를 만도 하네.”

약간 꿈틀거린 조엘의 입가를 확인하고서, 란다는 말을 이어나간다.

“네가 말한 ‘그 사람’, 그러니까 자네 아버지는 윌리안과 함께 반군세력을 주동한 혐의로 투옥되었다가, 불가피성을 인정받아 지위와 재산을 박탈당하는 조건으로 석방되었어. 몰수된 재산의 일부가 이쪽 가문에 이전되었지. 무슨 소린지 알겠나? 이제 ‘전 가슈펠라르 본가’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본가 자체가 무너졌단 말일세.”


그리고 란다는 처음으로 조엘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그럼, 본가에 있던 그의 가족은 어찌되었습니까?”


“감시조치 하에 놓이긴 했지만 나도 오랫동안 소식을 못 들었네. 농사라도 지어서 먹고 살려나? 게다가 얼마 전엔 본가에서 가까운 베르달이 제국에게 함락 당했으니, 아마 사유지를 버리고 피난이라도 갔을 테지.”


“베르달이 함락.......? 아니, 아무런 재산도, 연고지도 없는 그들이 어디로 피난을 간단 말입니까?”


다소 격앙된 목소리의 조엘이었지만, 돌아오는 란다의 표정은 싸늘하기만 하다.


“내 알 바 아니지 않나. 애초에 본가의 그 저택이나마 남길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나와 폐하의 배려였으니까.”


“.......”


란다는 잠시 조엘의 침묵을 용인한다. 그는 나름 청년에게 돌아갈 장소가 마땅치 않아졌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시간을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조엘의 어두운 눈동자가 다시 빛을 받아 자신을 바라보자, 란다는 밝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자네에게 제의할 것이 있는데.”


“제의?”


되묻는 조엘의 얼굴엔 다시 표정이 지워져있었다.


“윌리안이 숙청된 이후로 가슈펠라르 가문의 중점이 여전히 굳건하지 못한 건 사실이네. 반강제적으로 가주라는 직책을 떠맡긴 했지만, 무너진 기틀부터 세우기 위해 귀족파로서가 아닌 한 명의 귀족으로서 왕가와 왕당파에 협력해왔지. 그리고 이제 어느 정도 대표가문으로서의 명성을 되찾기 시작했어.”

본론을 기다리는 조엘을 향해, 란다는 씨익 웃으며 무언의 재촉을 받아들인다.

“문제는, 아직도 가문 내에서 나의 입지가 ‘임시가주’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한 거야. 나의 임명에 폐하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사실이 크지. 그러기에 나는 가문 내에서 나만의 세력을 더욱 굳건히 할 필요가 있어.”


“즉, 전 가주의 핏줄인 제가 가주님의 측근이 되어 그 구심점을 이뤄달라는 말씀이군요.”


이해가 빨라서 좋다-는 말 대신 란다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엘의 어깨를 붙들었다.


“여태까지 서자라는 이유로 그곳에서 받았던 모든 부당함을 내가 보상해주지. 정식으로 가슈펠라르의 이름을 받고, 내 곁에서 마땅히 누렸어야 할 인생을 시작해봐.”


어투에 깔린 자신감, 그리고 이미 웃고 있는 표정. 란다는 조엘의 입에서 나올 대답을 확신하고 있었다. 남아있는 것이라곤 저주받은 핏줄밖에 없는 그에게 선택권이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랬기에, 이 차가운 청년의 대답은 란다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분에 넘치는 말씀입니다만, 거절하겠습니다.”


“.......뭣?”


높이 떠오른 태양마저도 순식간에 싸늘해지는 란다의 표정을 데워주지는 못한다. 그는 조엘이 조심스럽게 어깨에서 자신의 손을 치우는 순간까지도 그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선대 가주의 핏줄이 아니더라도, 버림받은 서자의 지원이 없더라도 가주님은 충분히 세력을 다잡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제가 이곳에 남아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제가 어떻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가주님이 그걸 보상해주시고 저를 넓은 아량으로 보살펴 주셨는지 떠벌리고 다니는 것밖엔 없을 것 같군요.”


“......그 무례함은 둘째 치고, 궁금하구나. 지금의 너에게 남아있는 미련이 있다는 말인가? 돌아갈 곳은 없어. 네가 살던 본가는 이미 제국의 세력권이야. 아직도 그곳에 종속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네가 스스로 저주받았다고 생각하는 그 핏줄을 제외하면, 너는 그곳에서 아무것도 아니지 않느냐?”


언성이 높아진 란다. 조엘은 그에 반박하지 않는다. 그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늘보다 먼 곳을 바라보며 읊조렸을 뿐이다.


“미련이라......, 저는 지난 1년을, 그 미련 때문에 버텨온 겁니다.”




=================




“너무 깊이 들어온 거 아닌가요?”


제국병사의 목에서 월도를 뽑아내며 늑대의 ‘큰’딸 올리가 걱정스럽게 속삭인다. 하지만 듀라는 고개를 저으며 엘론족 특유의 흐린 눈동자로 전방의 숲속을 담아두고 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도 아직 ‘나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그들에게서 듣지 못한다면 우리가 직접 해야죠. 갑자기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원인도 파악할 겸.”


숲의 그림자가 드리웠다고는 해도 한낮의 시간, 엘론의 흐린 눈동자는 좀처럼 시야를 넓힐 수가 없었기에, 둘은 올리의 시야와 듀라의 후각에만 의지하여 베르달의 숲속을 헤집고 있었다.

듀라가 나무로 되돌아간 엘론족들의 목소리를 통해 베르달 전체의 상황을 주시하며 정보를 수집하고, 그 정보를 올리의 통신대가 아르다르로 보고한다. 베르달이 함락당한 이후로 이 과정을 쉴 새 없이 해왔던 그들이지만, 저번 주부터 선조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는 듀라의 말에 둘이 직접 숲으로 진입해야했던 것이다.

여러 번 마주한 적의 정찰대에선 기사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 허술함 덕분에 이틀 만에 바크달룬성 근방까지 접근할 수 있었던 그들이었지만, 돌아오는 건 수월함에 대한 안심이 아니라 커져가는 불안뿐.


“이상한데요, 성에 근접했는데도 이런 정찰병들뿐이라니.”


월도에 눌어붙은 피를 털어내는 올리의 눈동자가 주변을 크게 훑는다. 나뭇잎을 스치는 적막이 너무도 크게 다가온 덕분이었다.

대답 없이 걸음을 옮기던 듀라가 멈춰 선다. 올리는 언제나 그랬듯, 무기와 자세를 낮추며 새로운 적의 등장을 예감했지만, 그녀의 시야에 검은 제복은 들어오지 않았다.


“왜 그래요?”


불안을 담은 올리의 질문에도, 듀라는 답하지 않는다. 그는 서서히 몸을 세우더니, 허공을 향해 날카로운 콧날을 세운다. 그는 그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함께 한참을 멍하니 있고나서야 올리를 향해 뒤돌아보았다.


“.......냄새가 납니다.”


“냄새? 무슨 냄새요?”


올리의 반문에, 듀라는 다시 뒤를 돌아 숲으로 시선을 향했다.


“.......기분 나쁜 냄새입니다.”


그 애매모호함을 윽박지르고 싶은 올리였지만, 듀라의 표정은 그녀가 봐왔던 그 어떤 때보다도 굳어있었다. ‘기분 나쁜’의 정체에 대해선 잠시 함구한 채로, 그녀는 빨라지는 듀라의 걸음을 따라 숲을 가로지른다.

몇 개의 냇가와 강을 지났을까. 작은 언덕이 그들의 시야를 가로막는다. 그 언덕너머로 바크달룬의 전경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올리는, 곧바로 듀라를 이끌고 언덕을 오르기 시작한다.


“.......!”


그리고 그 끝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정경이었다.


푸른 하늘에 번지고 있는 검은 구름. 그 줄기가 바크달룬 성의 뒤로 수없이 이어져있다. 숲과 경계를 이루지 않고 동화되어있던 성벽은 그을린 표면과 함께 외롭게 남겨져있었고, 그 주위로 울창했던 푸른 물결대신 새카만 대지만이 간신히 숲의 흔적을 말해준다.


베르달 숲의 절반이,

재로 변해있었다.


“이게 뭔.......”


경악하던 올리는 듀라의 표정을 돌아보고는 차마 아무런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

선조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게 아니었다. 목소리 자체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종족의 기억이, 종족의 기원이 사라진 검은 대지를 바라보며, 듀라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만다.


“........이건 아니지....... 붉은 장미여 이건 안 되는 것이다........”


“듀라......?”


“.......단순히 보급로의 개척 따위가 아닙니다, 이건....... 생명을, 아종의 목소리를 용납하지 않는 군주의 길. 피의 군주가 강림하는 길.”


“피의 군주라니?”


올리가 다가오며 물었다. 그러나 이미 식은땀으로 차가워진 듀라의 몸은 그녀의 손길로 어쩔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자세히 봐요, 저 검은 구름....... 저건 단순히 숲을 태우고 있는 게 아닙니다. 타는 냄새가 하나도 나지 않잖아요? 하지만 우리 엘론은 이 역겨운 냄새를 느낄 수 있습니다. 놈은 생명의 기틀 자체를 지우고 있어요. 아시겠습니까? 놈의 목적은 단순히 국경의 침략이나 영토의 확장이 아닙니다.”


“놈? 놈이라뇨? 누굴 말하는 겁니까?”


다급한 올리의 반문에, 듀라는 깊은 한숨과 함께 먹색 참경을 바라보았다.



“피의 군주 ‘아펜타우스’. 놈의 계약자가 이곳에 있습니다.”




================




차가운 침묵은 타오르는 벽난로로 인해 벗겨졌다. 하지만 마법사를 포함한 간호사 그 누구도 한여름에 무슨 벽난로냐며 푸념하는 자는 없었다. 병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한기는, 벽난로로도 어찌할 수가 없는 흐느낌이었으니까.

차갑게 식은 그녀의 몸을 위해 같은 이불을 덮고 벽난로까지 태웠지만, 싸늘한 지나의 살결은 도무지 혈색을 되찾지 못했다. 옆으로 누운 채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그녀의 오열을 닦아주기만을 몇 시간. 빨갛게 부은 눈가를 바라보며, 로빈은 눈물에 지쳐 잠들어있는 지나의 곁을 한참동안 지키고 있었다.


마른 입술로 새어나오는 숨소리는 로빈의 가슴이 아플 정도로 미약하다. 그녀의 영력이 얇아진 것이 단순히 부상 때문만은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도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가 더욱 괴로웠던 건,


그 상처를 준 사람이 다름 아닌 자신이었으니까.


그녀에게, 그리고 그녀의 할아버지에게 맹세했다. 두 피에 얽혀있는 역사를 넘어 반드시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그리고 처음으로 그가 내보인 결과가 이것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받을 필요도 없었던 고통에 힘겨워하는 그녀를 보며, 로빈은 착잡한 표정과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


어떠한 목소리도, 어떠한 노크소리도 없이 살며시 열린 병실 문. 그 사이로 고개를 내민 얼굴을 알아보고, 로빈은 조심스럽게 일어나 침대를 벗어난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시선과 발걸음, 하지만 입술을 깨물고, 그는 그 한기 가득한 병실에서 나설 수 있었다.




“고생 많았어.”

문을 닫으며 오랜 친구에게 처음 내뱉은 로빈의 말이었다. 형식적인 인사는 아니었다. 그 어투에 담겨있는 진심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지만, 벤은 한동안 대답 없이 묵묵하게 로빈의 초췌한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덕분에 살았다고 드라흐마 경이 그러시더라. 근데 고도는 괜찮아? 다시 혈마력을 개방했다며?”


“......이 와중에도 남 걱정이냐, 넌?”


벤이 긴 한숨을 내쉰다. 로빈의 걱정에 순간적으로 짜증이 솟구쳐 올랐고, 그리고 그 짜증을 있는 그대로 내뱉은 것에 대해 약간의 후회가 스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로빈을 향해 해줄 위로의 말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은 자신에 대해 화가 나고 있었다.


“고민하지 않아도 돼. 이미 일어난 일이고, 힘들지만 나도 지나도 받아들이는 중이니까.”


그리고 그런 자신을, 이 검붉은 눈동자는 언제나 그렇듯 곧바로 꿰뚫어본다. 결국 벤은 덥수룩한 머리를 벅벅 긁으며, 이미 깊숙이 파인 상처를 들추지는 않기로 한다.


“베르달은 어때?”


“이상하리만큼 잠잠해. 저번 주부터 자세한 척후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외부적인 움직임은 전혀.”


“아르바티앙을 먹지 못한 탓일까? 나는 당연히 양동으로 동시에 들어올 거라 예상하고 있었는데.”


“날 노린 자객들의 시기가 우연찮게 맞물렸어. 생각해보면 나를 포함한 수뇌부를 먼저 제거하고 들어올 예정이 아니었을까?”


“아아니, 그랬다면 너 뿐만이 아니라 대표귀족의 가주들이나 총리도 노렸겠지. 애초부터 그 전부를 노릴 전력이 되지 않으니, 가장 효과적인 머리를 자르기로 한 걸 수도 있고.”

두 청년의 깊은 신음이 복도에 흐른다. 둘이서 결론을 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윤곽조차 잡히지 않는 상황에 고민이 깊어져가고 있었다. 물론, 그 근심의 깊이는 벤보다는 로빈 쪽이 더 무거웠지만.

그 미묘한 시선의 차이를 느낀 벤이, 헛기침과 함께 입을 연다.

“오로메님에게 들었는데, 너 계속 본궁에 오지도 않고 있다며.”


“........”


로빈은 대답대신, 그림자가 드리운 시선으로 친구의 질책을 기다린다.


“네 심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닌데, 상황이 급박하잖아. 총리도 너도 없이 의회가 동결된 상태로는 아무것도 진행할 수가 없어. 일단 복귀해서 정리를 좀 한 다음-”


“그래 ‘그깟 일’보다는 나랏일이 더 중요하고 급하겠지. 이해해달라고 할 생각도 없어. 애초에 이해할 수가 없을 테니까.”


“야, 그런 말이 아니잖아.”


벤의 무거운 목소리. 로빈은 잠시 그의 먹색 눈동자를 바라보더니, 이마를 쓸어 넘기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아 알아. 그냥 좀......., 힘들어서 그래. 모든 게 날카롭게 들려.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벤은 이 친구에게 아무런 위로의 말도 건넬 수가 없다. 로빈의 말대로, 자신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상처로 인해 고통 받고 있었으니까.


“......재촉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데, 하나 처리해줄 일이 있어.”


벤의 나긋한 목소리에 로빈은 얼굴을 덮은 손가락 사이로 시선을 흘린다.


“뭔데?”


“고도말이야. 저번 종교재판 땐 어찌어찌 넘어갔는데, 요번엔 규모가 너무 컸잖아. 또 이단이니 뭐니 떠들기 전에 미리 결정해놨으면 해.”


“결정이라니?”


“아스트로바톰의 총장님과는 이야기를 나눠봤어.”

창가를 등지고서, 벤은 그 특유의 먹색 눈동자를 빛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도를 중심으로, 이번 전쟁기간한정의 혈마법특무대를 꾸려보는 게 어때?”


작가의말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어색한 문장이나 문맥, 오타가 있다면 지적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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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3) +4 15.04.01 936 27 20쪽
141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2) +6 15.03.27 969 28 19쪽
140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1) +8 15.03.22 1,154 30 22쪽
139 (막간) 내가 너희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은- +4 15.03.18 1,064 25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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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13막) 고동을 시작하는 불꽃이 족쇄를 끊는다 (12) +8 15.03.09 1,197 26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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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13막) 고동을 시작하는 불꽃이 족쇄를 끊는다 (1) +9 15.01.29 1,341 28 19쪽
125 (막간) 지나가야할 시간 +14 15.01.28 1,177 3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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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11) +10 15.01.26 1,283 31 18쪽
122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10) +8 15.01.24 1,389 30 20쪽
121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9) +8 15.01.23 1,309 34 20쪽
120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8) +12 15.01.22 1,490 4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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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6) +7 15.01.20 1,318 33 20쪽
117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5) +4 15.01.19 1,323 30 20쪽
116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4) +10 15.01.17 1,444 27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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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2) +13 15.01.15 1,539 43 17쪽
113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1) +6 15.01.14 1,377 29 19쪽
112 (막간) 따스한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9 15.01.13 1,414 28 13쪽
111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10) +11 15.01.12 1,381 39 24쪽
110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9) +6 15.01.10 1,254 31 20쪽
109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8) +6 15.01.07 1,294 36 19쪽
108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7) +8 15.01.05 1,452 33 24쪽
107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6) +9 15.01.02 1,566 38 18쪽
106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5) +10 14.12.31 1,329 39 21쪽
105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4) +9 14.12.29 1,184 39 18쪽
»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3) +2 14.12.26 1,224 39 17쪽
103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2) +7 14.12.24 1,293 45 17쪽
102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1) +4 14.12.22 1,439 32 16쪽
101 (막간) 피지 못한 목소리는 달길 따라 조각배 태워 보내고 +3 14.12.20 1,515 41 15쪽
100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11) +10 14.12.18 1,456 39 25쪽
99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10) +6 14.12.16 1,534 45 21쪽
98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9) +6 14.12.14 1,317 43 18쪽
97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8) +6 14.12.12 1,467 40 20쪽
96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7) +4 14.12.09 1,426 44 17쪽
95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6) +3 14.12.07 1,502 50 16쪽
94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5) 14.12.05 1,628 42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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