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수의 굴레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세스퍼
그림/삽화
발아현미우유
작품등록일 :
2014.08.20 17:22
최근연재일 :
2020.08.1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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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1.15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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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2)

DUMMY

“.......삼촌에게 서자가 있는 줄은 몰랐어.”


“아버지가 인정하지 않았으니까.......”


구호천막 바깥에 마련된 작은 원형탁자. 한여름임에도 아델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지나가 그녀를 담요에 품고서 바깥으로 데려나온 참이었다.

아델의 이야기를 들은 지나는 눈물조차 말라버린 그녀를 가만히 끌어안는 것 외에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자신과 살며시 겹쳐 보이는 아델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는 그녀였기에 그 고통 또한 애처롭게 가슴에 아려온다. 이 아이가 받은 상처는 평생을 짊고 살아가야 할 거대한 미련으로 남아버릴 것이다. 시간조차도 보듬어주지 못할 비극을, 이 약하고 작은 몸으로 버텨낼 수 있을까.


“.......야노르 사건 때 시즈키치 가문의 경우엔 카니아라는 확실한 보증과 버팀목이 있었지만, 가슈펠라르는 그렇지 못했지.”

그녀들을 바라보며, 로빈은 무거운 표정과 어투로 입을 열었다.

“단지 혈육이라는,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죄 없는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을 줄은 몰랐어. 단편적인 징벌구도에만 신경을 쓴 내 불찰이야 이건.”


“로빈.”


그의 자책을 막기 위해 지나가 이름을 부르지만, 로빈의 입은 멈추지 않는다.


“아델의 말대로, 올란 경에게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어. 어디까지나 중앙에 있던 사람들이 넓고 깊게 생각하지 못한 탓이니까. 반역자의 직계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를 당해서는 안 된다는 거야. 그들을 괄시하고 혈육이라는 이유로 엮어버리면 증오라는 형태로 악순환은 계속되겠지. 이 문제는 총리님과 한 번 이야기를 해봐야겠어.”


“뭔 말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올란 아저씨한테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건 납득할 수 없어.”

보급형 육포 하누를 잘근잘근 씹으며 리즈가 로빈을 노려본다.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탁자 위로 시커먼 맨발을 올려놓은 그 자유분방함과 더불어, 왕이라고 밝힌 로빈에게도 ‘어쩌라고’라는 표정으로 말을 높이지 않은 그녀가 로빈은 어째선지 불쾌하지 않았다.

“짜증나는 상황에도 그 아저씨가 정신만 제대로 차렸으면 일이 이렇게 까진 되지 않았을 거야. 별다른 의지도 없이, 다른 귀족들 꽁무니나 쫓아다니면서 아델을 팔아먹을 생각이나 하니까 제대로 될 리가 있나. 조엘도 결국 그 의미 없는 집착과 고집에 희생된 거라고. 아델 너도 제발 정신 좀 차려, 언제까지 아저씨를 감싸고 돌 거야?”


“........”


지나의 가슴을 적시는 얇은 숨소리뿐, 아델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녀는 누굴 탓하거나, 누굴 원망할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다른 방향으로 감정을 쏟아내 봤자,

그는 돌아오지 않으니까.

이 먹먹한 가슴은 고쳐지지 않으니까.


다시금 무거워지는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로빈은 리즈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리즈의 어머니는 어디에 계세요? 마을을 구해주신 것에 대해서 따로 감사의 인사를 전해드리고 싶은데.”


“몰라. 마실 것 좀 구해오겠다고 나가더니 여태 안돌아오네. 감사는 대신 전해줄게.”


무심한 듯 육포를 뜯는 리즈였지만, 사실 그녀는 한참 전부터 저 멀리에서 이쪽을 지켜보고 있는 엄마의 시선을 눈치 채고 있었다. 기사임을 숨기면서 평생을 살아온 자신과 엄마. 그 의도를 제대로 알고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엄마가 저렇게까지 경계를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이 장소가, 그리고 이 사람들이 그리 편하지는 않다는 이야기니까. 리즈는 그 의도를 망가트릴 생각은 없었다.

묘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로빈의 검붉은 시선은 느끼지 못한 채로.




=================




피난민과 대책회의로 어수선해진 군영에서 다소 떨어진 평야의 외곽. 죽어버린 대지는 그 어떤 계절의 향기를 뿜고 있지 않았지만, 조용하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도에겐 충분히 안식을 주고 있었다. 자신의 배와 가슴을 배게 삼아 따스한 햇빛아래 낮잠을 자고 있는 이리스와, 바닷빛 머리칼을 간질이는 시원한 바람. 휴식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순간이었다.

옆에서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소름끼치는 얼굴만 아니었다면.


“.......저기, 계속 그렇게 쳐다보고 있을 거예요?”


“아, 신경 쓰이나요? 그럼 신경 쓰이지 않도록 노력해 보세요.”


‘뭐 이딴......’


끈질기게 쫓아다니며 고도를 관찰하고 있는 망자의 이름은 제르나비 오캄푸스.

카나반 마법협회의 마지막 그랜드마스터이자, 마법대학교 아스트로바톰의 총장‘이었던’ 남자.

혈마법을 연구하고 가르쳤다는 이유로 보직해임당한 그가 아르바티앙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 지 20년. 그동안 카나반에서 ‘그랜드마스터’의 칭호를 얻은 마법사는 나오지 못했다. 그만큼 그가 카나반 마법사에 남긴 족적은 거대하면서도 위험한 유혹과도 같았던 애증.

처음 그가 지휘막사로 들어섰을 때 고도가 느낀 충격과 환희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랜드마스터를 만난 것은 처음이었기에, 그리고 그가 남긴 명성 또한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녀였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오캄푸스라면, 자신이 대학에서 찾지 못했던 그 모든 진실들을 전수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고도였다. 한동안 꺼내놓지 않았던 그녀의 이기적인 환상 속에서 오캄푸스라는 존재는 단연 월등하고 완벽한 전설이었다.


그랬던 그가

이런 변태 또라이였을 줄은.


“혹시 아직도 신경 쓰여요?”


“지금 막 신경 쓰이기 시작했네요. 아 도대체 왜 그래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시라구요, 계속 옆에서 변태같이 보고 있지만 말고!”

잠든 이리스 때문에 고도는 따지는 목소리를 일정이상으로 높일 수가 없었다. 어설픈 방부제 덕분에 반쯤 썩어 들어간 오캄푸스의 얼굴과는 별개로 구역질이 일 지경이었다.

“아니 뭐 물어봐도 대답도 안 해주고, 그냥 그렇게 뻔히 보고만 있을 거예요?”


“그야, 고도가 내성이니 적성이니 재미없는 것만 물어보니까 그러죠.”


태연하게 뒤틀리는 오캄푸스의 얼굴근육.


“그럼 재밌는 건 뭔데요?”


반사적인 고도의 신경질에, 오캄푸스는 올 것이 왔다는 듯 순식간에 얼굴의 거리를 좁힌다. 고도가 비명을 지르지 않은 것이 기적이었다.


“재밌는 거야 많죠. 그럼 고도의 이름부터 시작해볼까요? 그 제르나비라는 이름, 누가 지어준 겁니까?”


질렸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고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 고아원 출신이에요. 누가 지어줬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사람이 악취미라는 건 이제 알겠네요.”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

확실하지 않지만, 고도는 그가 미소를 짓고 있다고 느낄 수 있었다.

“편한 답이네요. 아, 고도를 믿지 않는다는 건 아니에요. 자신의 이름을 누가 지어줬는지, 언제 지어줬는지 모른다니 뭐 일상적인 일이죠.”

비꼬는 건가?

살짝 고도의 미간이 구겨지려는 순간, 오캄푸스의 두 번째 질문이 먼저 파고든다.

“그 혈마법 입문서 말인데요, 누가 준 건가요?”


고도의 행동과 표정이 멈춘다. 오캄푸스의 시선은 분명 자신이 들고 있는 붉은 표지의 책에 박혀있었을 터이다. 그러나 삼류연애소설의 제목이 아닌 그 실제 내용물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과 학회장뿐일 텐데, 어째서 그는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것인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죠?”


“그 책, 내가 쓴 거니까요.”


도대체 이 망자는 자신을 얼마나 더 놀래 줄 셈인가.

고도는 바닷빛 눈동자를 빛내며 오캄푸스의 공허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럼......, 이 책이-”


“예에, 제자들한테 몰래 혈마법 연구하라고 줬던 책입니다. 가르칠 때 교재로 삼기도 했고. 아직도 가지고 있는 놈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도대체 누가 준 겁니까?”


“이건-”

제자들에게 줬던 책.

분명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는 것은-

“비공식적으로 혈마법을 연구해보라며 지금 아스트로바톰의 총장인 디쿠젠님에게 받은 거예요. 누군지 아시나요?”


“.......디쿠젠? 디쿠젠 니바르토?”

처음으로 듣는, 그의 쳐진 목소리.

고도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오캄푸스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멍하니 공허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흐음.......”


실로 오묘한 반응. 고도는 순간적으로 자신이 내렸던 판단에 회의가 들었다. 그가 썼다는 혈마법 서적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 분명 디쿠젠이 오캄푸스의 제자 중 한 명이었다고 추리해냈던 것이다.

헌데 지금 오캄푸스의 반응은 무엇인가.

제자가 자신의 뜻을 따라 위험을 무릅쓰고 혈마법을 연구하려고 했다는 사실이 기쁘지 않은 건가?

고도는 오캄푸스의 입에서 스스로 대답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지만, 다시 튀어나온 그의 목소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해 있었다.


“고도, 그 책을 모두 읽어봤다면 대답해 보세요. 혈마법이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예?”

너무도 광범위하고 뜬금없는 질문이었기에 고도는 그가 지금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인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녀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망자를 바라보았지만, 오캄푸스의 얼굴은 미동조차 없이 고도를 향해 있었다.

“.......음, 뭐어, 한마디로 정의내릴 수는 없겠지만, 다른 마법들이 시전자가 가진 항체를 매개로 마력을 구현시키는 방식이라면, 혈마법은 시전자 스스로와 주변의 ‘생명’을 매개로 하는 마법이라고 봐요. 그렇기에 ‘악의’가 강할수록 더욱 발현이 짙어지는, 일종의 사술인거죠.”


그녀다운 학술적이고 객관적인 분석. 하지만 오캄푸스는 낮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책은 어디까지나 원론적인 부분만을 파고들 수 있게 도와주는 입문서. 당신이 제 제자였다면 그 대답에 만족을 했겠지만, 고도는 엄연한 ‘계약자’입니다. 당신이 혈마력을 분출했을 때, 그리고 그 불길한 마력을 머금고 있었을 때를 기억해 보세요.”

‘절망’을 대가로 받았던 붉은 힘. 손끝을 통해 퍼져나가는 그 불길한 기운을 제어할 수 있게 되었을 때의 그 두려운 쾌감.

고도는 자신도 모르게 새하얀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다시금 오캄푸스의 느긋한 목소리가 흐른다.

“혈마력은 시전자와 주변의 생명을 매개로 거치는 것이 아닙니다. 혈마력 그 자체가 하나의 매개체라고 볼 수 있어요. 그 차이가 무엇인지 이해하시겠습니까? 어째서 혈마법을 통해 망자를 다스릴 수 있는지, 그걸 생각해보신다면 쉬울 겁니다.”

숨을 삼키는 고도.

그녀는 책을 덮고, 조용히 망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공허에 비친 그녀의 표정은 흥분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이 이제야 마음에 들었다는 듯, 오캄푸스는 낮게 웃음을 터트렸다.

“영력과 마력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항체’를 통해 다른 ‘생명’을 다스리는 마법. 그것이 바로 혈마법의 본질. 하나의 거대한 생명을 다스리기 위해 스스로와 주변의 생명들을 연료로 소모하는, 실로 자기희생적인 색깔이죠. 누구나 습득할 수 있지만, 동시에 누구도 습득할 수 없는, 실로 모순적인 존재입니다. 때문에 고도와 같이 외부자극에 의해 그 억압된 힘을 뚫어낸 자들에게만 허락된 권능이라는 형식으로 존재하죠. 방금 말한 ‘외부자극’이 무엇인지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아시겠죠?”


“......계약.”


데로로부터 혈마력을 처음 주입받은 그 순간, 이미 자신은 내재돼있던 혈마법의 활로를 뚫어버린 것이다.


“어느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은 내성. 가장 순수에 가까운 그 체질이야말로 혈마법을 운용함에 있어 최적의 조건이란 겁니다. 디쿠젠은 그걸 알고 당신에게 혈마법 연구를 부탁했던 거겠죠. 자신은 도저히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없으니까.”


고도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모든 짜증과 의심이 한순간에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학회장은 그저 자신을 괴롭히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데로는 자신의 얕은 고집을 들어주기 위해 계약을 맺은 게 아니었다.


해답은 자신에게 있었다.


그리고 그 해답을 깨닫게 해준 오캄푸스를 향해,

고도는 이성의 바닥에서 새로운 그림자가 피어오르는 것을 느낀다.


“.......오캄푸스, 그러면 당신은.......”


대학의 총장이자 대표전투마법사로서,

그랜드마스터로서,

혈마법 본질에 대한 이해에 다가가기 위해 그가 할 수 있었던 가장 크고 확실한 ‘자극’은 무엇이었을까.


그녀의 시선을 눈치 챈 오캄푸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태양을 등진다.


“일국의 그랜드마스터를, 금지된 학문을 연구했다는 이유만으로 파직시키고 유배를 보낼 만큼 이 나라는 강압적이지 않습니다.”

속으로 도출해낸 결론을 들켰다는 사실에 고도는 당황하지 않는다.

이제는 뼈와 약간의 살점밖에 남지 않은 대마법사가 내민 것은, 어떠한 질책도, 요구도 아닌,

비교적 말끔한 손.

“자, 허락하신다면 이제부터 당신을 제 해답의 세계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위로 떠오른 것은 분명한 미소였다.



“선배 계약자로서 말이죠.”




========================




달의 그림자도 자취를 감춘 짙은 밤하늘. 그 적막으로 뒤덮인 베르메스 평원.

천막과 순찰대에서 퍼져나가는 빛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빛을 비추는 존재가 없는 그곳에서 ,어둠보다 짙은 그림자를 눈치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군영의 빛이 멀리 멀어지고 나서야, 작은 그림자에게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엄마, 이렇게 아델한테 인사도 없이 그냥 사라지는 거, 별로 안 내켜.”


“어쩔 수 없어. 이제 그 아이는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 마.”


“내가 걱정되는 건 아델이 아니라 우리야, 엄마.”


앞서가던 그림자가 멈춘다. 리즈의 야생동물에 가까운 밤눈이 아니었다면, 자신의 엄마가 뒤돌아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을 터.


“.......남쪽은 따듯해서 더 살기 좋을 거야. 오두막 지을 돈은 충분히 있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나, 평생 동안 묻지 않은 거 알지?”

엄마의 목소리를 끊으며, 리즈가 덤덤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엄마가 그러자고 했으니까, 엄마는 대부분 옳으니까. 그러니까 묻지 않았어. 그런데 이제 슬슬 궁금해지려고 해. 엄마,”

짧은 한숨.

“왜 이렇게 나를 감추려고 하는 거야?”

그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리즈는 ‘우리’라고 하지 않고 ‘나’라고 말했다.

평생에 걸친 은둔생활, 그리고 지금 그것이 더 이어지려고 하는 그 이유를 자신이라고 확신한 그녀였다. 딸에게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것이 정답이었기 때문에.

“로빈이라는 사람한테 들어보니까 이 나라의 기사들은 징병제가 아니라더라. 지원하고 싶으면 지원하고, 싫으면 그냥 묵묵히 살아가도 된데. 그런데 엄마는 내가 기사라는 이유로 전쟁터에 바로 끌려갈 것처럼 만날 얘기했잖아. 왜 그런 거야?”


“.......그럼 너는, 지금 이런 세상에 휘말리고 싶은 거야?”


“아니, 말 돌리지 말고. 대답해봐. 왜 그랬냐니깐?”




“아, 그 대답은 저도 듣고 싶네요.”


두 그림자 사이를 파고드는 느긋한 목소리.

하지만 앞서가던 그림자가 당황하여 뒷걸음친 것에 비해, 리즈는 이상할 정도로 반응이 없었다. 마치, 다가오는 존재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암흑을 찢으며 전등이 빛을 발한다. 목소리의 주인공인 로빈 말고도, 지나와 드렌턴의 그림자도 함께였다.


“리즈의 어머니 되시죠? 리즈와 함께 마을사람들의 피난을 도와주신 것, 깊이 감사드립니다. 다만 그 어떤 정부관계자와의 자리도 피하시면서 결국 이렇게 밤중에 사라지시려는 그 의도는 영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어요. 무례를 용서하세요.”


“........”


왕의 앞에서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갑작스런 빛에 얼굴을 가린 채로, 그녀는 가만히 밤을 삼키고 있었다.


“이봐, 약식이라고는 해도 폐하의 앞이다. 조금 더 예를 갖추도록 해라.”


보다 못한 드렌턴의 굵직한 한마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분명히 리즈 어머니의 가슴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긴 호흡과,

긴 한숨.


그녀는 천천히 빛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려놓았다.



“.........”



드렌턴의 얼굴이 굳는다.

우락부락한 눈동자에서, 굵은 영혼이 빠져나간다.

자신이 들고 있는 이 전등이 환상을 보여주는 마물이 아니라면,

이 빛이 비추는 얼굴은 분명한 현실일 텐데-


“.........리반나?”


그는 도저히 이 현실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흔들리는 불빛.

그 얕은 그림자 사이로 비추는 여성의 입술은

분명히 아무것도 품고 있지 않았지만

그 목소리만큼은 그 어떤 전등의 빛보다도 확실하게 모두의 머릿속으로 퍼져나갔다.




“오랜만이야, 여보.”


작가의말

언제나 미흡한 글을 봐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어색한 문장이나 문맥, 오타가 있다면 지적 부탁드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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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3) +4 15.04.01 936 27 20쪽
141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2) +6 15.03.27 969 28 19쪽
140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1) +8 15.03.22 1,154 30 22쪽
139 (막간) 내가 너희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은- +4 15.03.18 1,064 25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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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13막) 고동을 시작하는 불꽃이 족쇄를 끊는다 (12) +8 15.03.09 1,197 26 19쪽
136 (13막) 고동을 시작하는 불꽃이 족쇄를 끊는다 (11) +10 15.03.04 969 27 21쪽
135 (13막) 고동을 시작하는 불꽃이 족쇄를 끊는다 (10) +4 15.02.27 1,320 38 19쪽
134 (13막) 고동을 시작하는 불꽃이 족쇄를 끊는다 (9) +9 15.02.22 1,164 29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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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13막) 고동을 시작하는 불꽃이 족쇄를 끊는다 (4) +6 15.02.03 1,299 31 19쪽
128 (13막) 고동을 시작하는 불꽃이 족쇄를 끊는다 (3) +12 15.01.31 1,300 33 20쪽
127 (13막) 고동을 시작하는 불꽃이 족쇄를 끊는다 (2) +15 15.01.30 1,503 40 17쪽
126 (13막) 고동을 시작하는 불꽃이 족쇄를 끊는다 (1) +9 15.01.29 1,341 28 19쪽
125 (막간) 지나가야할 시간 +14 15.01.28 1,177 32 12쪽
124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12) +8 15.01.27 1,359 35 21쪽
123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11) +10 15.01.26 1,283 31 18쪽
122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10) +8 15.01.24 1,389 30 20쪽
121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9) +8 15.01.23 1,309 34 20쪽
120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8) +12 15.01.22 1,490 41 15쪽
119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7) +6 15.01.21 1,336 28 18쪽
118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6) +7 15.01.20 1,318 33 20쪽
117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5) +4 15.01.19 1,323 30 20쪽
116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4) +10 15.01.17 1,444 27 18쪽
115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3) +13 15.01.16 1,438 40 18쪽
»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2) +13 15.01.15 1,540 43 17쪽
113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1) +6 15.01.14 1,377 29 19쪽
112 (막간) 따스한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9 15.01.13 1,414 28 13쪽
111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10) +11 15.01.12 1,381 39 24쪽
110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9) +6 15.01.10 1,254 31 20쪽
109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8) +6 15.01.07 1,294 36 19쪽
108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7) +8 15.01.05 1,452 33 24쪽
107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6) +9 15.01.02 1,566 38 18쪽
106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5) +10 14.12.31 1,329 39 21쪽
105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4) +9 14.12.29 1,184 39 18쪽
104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3) +2 14.12.26 1,224 39 17쪽
103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2) +7 14.12.24 1,293 45 17쪽
102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1) +4 14.12.22 1,439 32 16쪽
101 (막간) 피지 못한 목소리는 달길 따라 조각배 태워 보내고 +3 14.12.20 1,515 41 15쪽
100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11) +10 14.12.18 1,456 39 25쪽
99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10) +6 14.12.16 1,534 45 21쪽
98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9) +6 14.12.14 1,317 43 18쪽
97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8) +6 14.12.12 1,467 40 20쪽
96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7) +4 14.12.09 1,426 44 17쪽
95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6) +3 14.12.07 1,503 50 16쪽
94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5) 14.12.05 1,628 42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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