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장. 암중의 피바람-01
경계를 넘는 자들! 타키온
1장. 암중의 피바람
응급처치가 끝난 후에 간신히 죽음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지만 그 편이 훨씬 나았다.
든든한 보호자가 있는 상황이고, 유체이탈을 통해 내가 원하는 것을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후 후작가를 돌아볼 수 있었다. 영혼의 상태인지라 그 누구도 나를 발견할 수 없었기에 마음껏 돌아다녔다.
후작가를 돌아다니며 어떤 곳인지 파악을 해나갔다.
제일 먼저 파악한 것은 사람들이었다.
퍼스트원과 만난 이상, 이제 이곳에서의 경험은 현실이 될 수도 있을 것이기에 어떤 곳인지 살펴놓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살피면서 특히나 집중한 것은 계모인 나타샤의 일상이었다.
모든 것이 이 아이, 아니 내 예상대로다. 잉그만과 나탸샤가 범인이다.
그렇지만 묘한 느낌이다.
아티팩트로 연락을 하는 것을 보면서 나를 죽이려 했던 이들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분노가 일지 않으니 말이다.
마치 남의 일 같다.
아무래도 현실에서의 내 의지가 이 아이보다 더 확고해서 그런 모양이다.
나타샤는 자신의 아들을 후작으로 만들기 위해 이번 암살에 가담했다. 베르카 후작가의 가법을 대로라면 장자가 있는 한 그녀의 아들이 후작령을 계승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잉그만공작은 암살을 지원했고, 나타샤는 그가 지원해준 독을 사용해 나를 죽이려 했을 것이다. 독약을 사용했다고 하지만 그녀가 과자를 직접 가져다주지 않았을 테고…….’
증거가 드러나면 모든 것을 잃는다. 제국법에 따르면 귀족의 승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검증된다.
만약 그 과정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다면 그 처벌은 보다 엄중하게 적용된다.
권력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공작가의 인물이라 할지라도 직접 관여한 것이 밝혀지면 사형을 면하지 못한다.
나타샤가 직접 행동은 안하고 누군가를 이용했을 것이다.
그녀가 이용하기 위해 적당한 사람은 나와 상시 접촉이 가능해야 한다.
‘역시, 그들이 조사한 것이 맞는 건가?’
나타샤에게 오기 전에 군단에서 파견을 온 자들을 살폈었다.
베르카 후작가의 숨은 힘이라고 할 있는 이들로 매우 뛰어난 능력을 지닌 것으로 보이는 자들이다.
말이 제국의 군대이지 그야말로 후작의 사병이나 마찬가지인 자들이다.
군에 속한 자들 답지 않게 대단한 능력을 가진 것 같다.
이렇게 일일이 돌아다니며 확인을 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전해진 정보를 바탕으로 그 짧은 시간에 독살에 관여했던 이들을 전부 파악했으니 말이다.
후작의 명령으로 온 그들은 정황과 사람들의 동선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알아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이 알아낸 것을 일일이 확인하는 중이다.
확인을 하는 작업도 놀랍기만 하다.
후작가의 그 누구도 그들의 움직임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제국의 그 어느 무력 집단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기사단과 마법병단의 그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다.
현실 세계의 정보전문가들 못지않은 상황판단 능력에 가공할 실행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능력을 보면서 이 세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함을 알았다.
마법이 사용되기는 하지만 중세나 다름없는 시대라고 여겼지만 생각이 달라졌다.
현대에서도 보기 힘든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어쩌면 이 세계에 속한 자들이 더욱 나을 지도 몰랐다.
현실세계에서는 능력자들이 이면세계라는 곳에 감춰진 것과는 달리, 이곳은 일상적이니 말이다.
조금 전만 봐도 그렇다.
평범해 보이는 귀걸이로 말을 타고 거의 한 달이나 걸려야 갈 수 있는 잉그만 공작가와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원격통신장비를 사용했다. 그럼에도 장비를 들킬 까봐 부셔버렸다.
후작가를 돌아다니는 동안 현대의 첩보전에서 사용되는 장비들을 훨씬 능가하는 아티팩트들을 보았다.
한 번 사용된 아티팩트들은 가차 없이 폐기되었고, 기운의 흔적도 모두 제거되었다.
그만큼 신경을 쓴다는 소리였다.
‘정밀한 기능을 가진 아티팩트들이 아무렇지 않게 사용이 되고 있다. 군단에서 파견을 온 자들도 가공할 능력을 가졌는데 정체를 숨기며 조심을 하는 것을 보면 이 세계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
뭐가 더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내 상태를 감지할 수 있는 장비도 있을지 모르니 주의를 해야만 할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진행이 될지 모르겠군. 좌우지간 최대한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독살 실패로 인해 베르카 후작령이나, 잉그만 공작가가 어떻게 움직일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뭔가 움직임이 있을 것은 분명하다. 그것도 나나 이 세상에 큰 여파를 움직임이 말이다.
단순한 링크가 아니다.
이번일로 인해 현실 세계의 내가 위험할지도 모르겠다.
퍼스트원과 동화된 상태라 현실의 나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 * *
아버지인 잉그만 공작과 연락을 취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샤에게 연락이 왔다.
전갈을 가져온 것은 후작을 돌보는 하녀장이었다.
“마님, 각하께서 부르십니다.”
“어디 계시느냐?”
그레고리가 자신을 부른다는 하녀장의 전언에 나타샤는 차분하게 물었다.
“소영주님 방에 계십니다.”
“어떻다고 하더냐?”
“소영주님께서 많이 좋아지셨다고 합니다.”
“알았다. 앞장서라.”
나타샤는 서둘러 시아니온의 방으로 향했다.
방 앞에는 예의 자신을 저지했던 호위기사가 삼엄한 눈초리로 경계를 서고 있었다.
“이제는 들어가도 되는 건가요?”
“전에는 죄송했습니다. 후작부인. 들어가십시오. 각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핀잔 어린 나타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문 앞을 지키던 호위기사는 무표정한 모습으로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어 주었다.
“흥!”
나타샤는 불쾌했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방으로 들어갔다.
‘살아 있구나.’
방으로 들어서자 커다란 침대가 보였다.
침대 옆에서 창백한 안색으로 시아니온을 지켜보고 있는 그레고리의 얼굴도 눈에 들어왔다.
“여, 여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연유를 묻는 나타샤의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자식의 아픔으로 인해 불안함에 떠는 어머니처럼 자연스러웠다.
“으음, 왔소. 누군가 시아니온을 해치기 위해 독약을 사용한 것 같소. 다행이 늦지 않게 발견되어 어느 정도 해독은 시킨 상태지만 경과가 그리 좋지는 않소.”
타나샤는 안타까운 눈으로 침상에 누워 있는 시아니온을 바라보았다.
“우, 우리 시아니온이……. 흐흑!”
나타샤는 참담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시아니온의 곁으로 다가갔지만 그녀의 마음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얼굴이 저모양이라니…….’
침대에 누워 있는 시아니온의 얼굴이 이상했다. 얼굴의 한쪽 면이 완전히 일그러져 보기가 흉할 정도였다.
“흑! 어, 어떻게 된 거에요? 신관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독상으로 인해 신경이 상한 것 같소. 내가 막고 있는 동안 신관들이 왔었지만 워낙 강력한 독이라 이정도 밖에는 회복을 시키지 못했소.”
“그래서요?”
“신관들의 말로는 이 상태로 영원히 살아야 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하니 정말이지 걱정이오.”
말을 마친 그레고리는 안타까운 듯 입술을 깨물며 시아니온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흑흑흑!”
“지금 상태도 불안정하기 마찬가지요.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것이 아니니까 말이요.”
“시아니온, 흐흐흑!”
나타샤는 안타까운 듯 구슬 같은 눈물을 연신 흘렸다.
누군가 나타샤의 모습을 본다면 그녀의 모성애에 눈시울이 뜨거울 만큼 그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안타깝고 애절했다.
‘호호호, 손을 쓰면서도 기분이 찜찜했었는데 차라리 잘 됐다. 가문에서 손을 썼다는 증거만 없애면 이 상태로 있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누워 있는 모습을 보면 사람구실을 하기는 애시 당초 글러 먹어 보였다.
후계자를 정할 때 장자를 우선하는 베르카 후작가라고는 하지만 이런 상태라면 후계자로 내세우기 곤란할 것이 분명했다.
죽이지는 못했으나 나타샤는 어느 정도 자신이 계획이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능력 있는 자를 후계자로 내세우는 것이 브리턴제국의 관습이다. 시아니온이 이런 상태라면 가신들을 부추기기만 하면 된다. 제국의 관습을 예로 들어 압박을 한다면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있어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속내를 감춰야만 했다.
“흑, 여보. 도대체 어떤 놈들이 이토록 무참한 짓을…….”
“아직은 모르오. 하지만 반드시 밝혀내고 말 것이오. 범인이 누구이든 간에 베르카가문의 후계자를 건드린 것이 얼마나 큰 실수인지를 반드시 가르쳐 줄 것이오.”
분노한 탓인지 그레고리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방안이 모두 떨릴 만큼 진하고 강렬한 살기였다.
능력도 없는 여인의 몸인 나타샤로서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여, 여보!”
나타샤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레고리를 불렀다.
세상은 하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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