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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와 모래시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완결

레이브란
작품등록일 :
2015.03.16 00:00
최근연재일 :
2019.06.18 13:30
연재수 :
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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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3
추천수 :
117
글자수 :
295,074

작성
18.12.14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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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77

DUMMY

누군가를 잃어버리는 건 무서운 일이다.

"내가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니, 무서운 일'이라고 한다'.

"...넌 알고 있을까?"

오래 알고 지낸 누군가든, 얼마 전 우연히 알게 된 친구든. 가끔 길거리를 걷다가 얼굴만 마주치든, 항상 주윌 둘러보면 옆에 있는 사람이든. 설령 내가 미워했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정말로 오랜만에..."

누군가를 '잃어버렸다'라고 표현할 일이 없었던 나로선,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감각일 뿐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공감하기 힘든 감정이지만.

"...내가 조금 미워져 버렸거든..."

지금만큼은, 나도 그 감정을 이해해 줄 수는 없는 걸까.


막 포근해지기 시작해 기분 좋은 바람이 공터를 채운다.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정도의 가벼운 바람이지만 상념을 깨는 데는 더없이 좋은 수준이다. 아마 이 바람이 조금만 더 세게 불어 눈가를 찌푸리게라도 만들었다면 정말로 곤란해 졌을 지도 모른다. 바람을 쐬면서도 브리의 눈이 날 향해 있었으니까.

"난 잃어버린 게 많은 사람이야."

날 바라보던 고개를 정면으로, 바람이 지나다닐 뿐인 허공으로 던진다.

"그래서 더더욱, 가능한 한 아무 것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

잠긴 목소리가 초연히 떨려온다. 기분이 좋지 않다는 증거다. 바닥에 앉아 모은 양 다리를 감싼 팔로 입을 가려 웅얼거리는 소리는 상황에 맞지 않게 귀여울 뿐이었지만.

"난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감상에 빠진 얼굴로 쓸쓸히 숨을 내쉰다. 오른쪽 입꼬리가 슬며시 들리며 미소가 지어지는 것이 보인다. 의아하게도.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난 너희가 소중해. 나 자신보다도 더. 시타나 안테는 물론, 이미 연락도 끊긴 전 길드원들부터 방금 보고 온 그 아이, 따스하기 그지없는 라휄, 그리고... 사랑스러운 너까지."

시선을 브리로부터 떼어낸 채 이야기만 듣고 있던 중 들려온 나에 대한 언급에 브리를 바라보려던 움직임은 왼쪽 뺨으로부터 전해져오는 감촉에 간단히 제지당했다. 어느 사이엔가 원래의 몸으로 돌아온 브리가 내 머리를 감싸안는다.

"가벼운 여자라고 욕해도 좋아. 하지만 난 진심이야. 누군가 단 한 사람만을 다른 누구보다도 깊게 사랑하고 위하는 건 아쉽게도 내 성미에 맞지 않지만, 내가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 모두를 내가 할 수 있는 한 깊게 사랑하는 건 가능해. 그리고 당연하지만, 그 사람들엔 너도 있어."

한없이 쓸쓸한 어조.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그 누구보다도 공정히 사랑할 수 있는 여인의 슬픔이 전해져온다.

"그 아이는 나 때문에 아파해야 했어."

순간이지만 브리의 팔에 힘이 들어간다. 자신 때문이라는 말을 뱉으며 몸을 떠는 것이 느껴진다.

"분명 그 아이는 자신의 노력으로 거기까지 도달했어. 하지만 그렇기에 상처입어야만 했지. 그건 분명 장한 일이었고 예상도 했던 것이지만 슬프지 않을 수는 없었어. 그렇다고 강해지고 싶어서 노력한 그 아이의 잘못인가? 내가 흑조도를 아이들에게도 가르치고 싶어했던 게 문제인가? 그럼 그 흑조도를 직접 지도한 레이는?"

감정이 격해진다. 말이 조금이지만 빨라지고 목소리에서 후회가 묻어난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이런 내가 미워서...!"

"브리."

"...레이야?"

내가 부르는 소리에 쏟아내던 말을 그치며 그나마 상념을 떨쳐낸 듯한 브리가 보인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순간까지도 브리다워.

"정말로 어이없는 고민이었네요, 길드장님."

허탈한 감정을 담아 싱긋이 웃어준다. 그에 반해 브리의 얼굴은 센티멘털하기까지 하던 얼굴에서 뚱한 표정이 묻어나기 시작한다.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요. 애초에 남 시선 신경도 안 쓰시는 분이 그러시면 안돼시죠."

"난 나름대로 깊은 고민이 있어서 한 말인데 그러기야?"

"그러니까 하는 말입니다."

브리에 품에서 빠져나온다. 브리는 내게 기대던 자세 그대로 팔짱을 낀 채 몸을 바로 세웠을 뿐이다. 질문에 어이없다고 대답해서 삐진 거려나.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요."

심호흡. 이미 들켰겠지만 가능한 한 차분하려 노력한다. 역시 내겐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일인 걸까.

"제가 보증하겠어요. 브리는 결코 가벼운 게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보기에, 브리는 그 누구보다도 무거운 사랑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무거운... 사랑?"

"네. 그 누구보다도요."

어린아이에게 설명하듯 단호하면서도 조금이라도 미소를 보이려 노력한다. 내가 누군가르 가르칠 입장은 아니지만. 그것도 특히나 브리라면 더더욱 그렇겠지만. 지금만큼은 내가 그녀에게 있어 누구보다도 의지가 되는 사람이길 바란다. 그것만이 그녀를 안심시킬 방법이라는 듯이.

"..."

침묵이 무겁다. 브리에게서 놀란 듯한 기색은 딱히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차분할 뿐이다.

"레이는... 어쩐지 정말로 많이 변한 것 같네."

굳게 닫혀있던 입이 열리고, 그녀에게서 드디어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역시 어색한가요?"

"응, 그런 편이야. 그래도 이번엔 고마워."

"어떤 점이요?"

"나를 긍정해준 거."

브리는 기분이 풀렸다는 듯, 살풋이 웃어주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담소는 끝나신 겁니까?"

"리퀴움?"

"네네, 접니다. 어디까지 가셨으려나 했더니만, 다행히도 여기 계시는군요."

의미 모를 미소를 띄운 채 장난스레 대꾸하는 리퀴움. 아무래도 사태 수습 직후 사라진 나와 브리를 찾으러 여기까지 온 듯하다... 현장엔 없었던 인물임에도.

"두 분이 갑자기 사라지셨다고 약간 소란스러워져서 말이죠. 심부름도 귀찮겠다, 핑계거리 삼아 찾으러 왔습죠."

상쾌하다는 듯한 얼굴로, 상큼하기 그지없는 스타카토의 목소리를 덤 삼아 자신의 게으름을 어필하는 리퀴움이었다.

"일단 돌아가시죠. 대충 보니 아까의 감상도 다 깨지신 것 같고, 사태 수습은 마지막까지 완벽하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 말하곤 먼저 앞장서 연습장으로 향하는 리퀴움. 대체 어떻게 하면 저렇게나 마이페이스로 살아나갈 수 있는 건지... 이제는 한숨조차 나오지 않는 광경이었다.

"...저걸 어떻게 말리나 싶다. 그... 카펠라라는 분 외에."

"동감입니다. 아마 카펠라 외엔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반 쯤 체념한 나와 브리가 한탄하듯 짧은 이야기를 나누는 지금도, 따스한 바람이 우리를 에워싸듯 지나쳐 갔다.


작가의말

  잠시나마 놀라운 시간이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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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55 15.09.13 225 1 8쪽
55 54 15.08.17 242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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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51 15.07.25 338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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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49 15.07.05 262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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