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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와 모래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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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레이브란
작품등록일 :
2015.03.16 00:00
최근연재일 :
2019.06.18 13:30
연재수 :
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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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글자수 :
295,074

작성
19.03.1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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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79

DUMMY

단 한 명 뿐인 상대를 두고서 여러 명이 달라붙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상대가 한 명이기 때문에 유효한 타격 범위는 정해져 있는 데 비해 그 유효 범위로 공격을 하려는 수단들이 많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다간 서로 우왕좌왕하다가 한 번씩 손해를 보게 되곤 한다. 물론, 공격을 받는 쪽도 곤란한 건 매 한가지이긴 하다만.

여러 명인 쪽이 이득을 보려면 실력 이전에 '그러한 상황'에 익숙해야 한다는 조건이 따라붙는다. 즉, 센스다.

캉!

레이피어로 후려친 단도가 쇳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뜬다. 휘두르는 게 아닌 찌르는 방식 위주로 움직여 한참을 성가시게 하던 녀석이다.

"앗..."

단도를 들고 있던 단검사의 시선이 순간 날아가는 단도로 향하다 돌아온다. 하지만 늦었다.

"자, 당신도 아웃입니다."

만도의 휘어진 안쪽, 칼등 방향을 목에 둘러 전투 불가를 고했다. 실제론 그리 큰 위협이 아니지만, 이번 대련에선 학생 보호라는 명목으로 학생들의 패배 조건으로써 잘 써먹고 있는 중이다.

"감사합니다!"

"수고했어요."

이 단검사를 마지막으로 이번 라운드도 종료. 벌써 몇 라운드였더라? 그나마 남은 인원이 별로 없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된다. 생각한 것보다도 인원 배치가 적절하다.

처음엔 일반적인 팀 연계로 내 움직임이나 전투를 관찰하는 듯하더니, 마도사만으로 이루어져 처음부터 끝까지 폭격만 반복하는 팀, 스피드 위주의 단검사만 우르르 달려와서 난타를 하는 팀 등 점점 더 다채로운 연계가 이어졌다.

"후우..."

다음 팀의 준비까지 생긴 짧은 휴식시간. 물을 마시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일대다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상대는 어디까지나 일반 길드원. 흑조도의 스텝까지 밟아가며 상대하는 건 너무한 일이다. 브리가 특별히 선정한 '미래가 창창한' 아이들이라곤 해도 말이다.

"하지만..."

지친다. 아니, 이미 지쳤다. 멍하니 바라본 '아직 싸우지 않은' 길드원 무리는 다들 생기가 넘쳐 흐른다. 이러다간 스텝까지 밟아가며 싸워야 할지도. 검은 발걸음을 포기한 건 욕심이었던 걸까...

검은 발걸음이 흑조도의 '기본'인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말그대로, 다른 모든 기술들을 쓸 때 동반되기 때문이다. 즉, 검은 발걸음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패널티 하나로 지금까지 흑조도를 전혀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생님! 준비 끝났습니다!"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나를 돌아보는 시선들이 하나같이 의기양양하다. 내가 지쳐가는 것 정도는 학생들도 다 눈치챈 듯하다.

"...브리가 이런 부탁 하는 거 다시는 들어주나 봐라..."

힘없이 의지를 다져보며 무대로 향했다. 다행히도 남은 라운드 자체는 적어 보인다. 당장 눈앞에 서있는 인원이 지금껏 세어 왔던 남은 인원의 대부분이기에.

"지쳐 보이시는데, 조금만 힘내 주세요. 다음 라운드는 한 명 뿐이니까요. 아, 그 전에 쓰러져 주시면 더 좋습니다."

깔끔하고 샤프한 느낌을 물씬 풍기는 안경을 낀 채 한 손에 책을 든 학생이 다른 학생들을 앞세운 채 멀리서 도발 비스무리한 것을 내뱉었다. 나름 다정한 맛이 있는 말투긴 했지만, 그 조곤조곤함이 지금은 오히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입은 옷도 그렇고, 성직자 코스프레입니까? 하는 말도 그렇고, 너무 많은 걸 배운 걸지도 모르겠네요."

"...성직자?"

"모르면 됐습니다... 마이너한 역사 용어라!"

대화하며 무기를 다듬는 척 만도 날을 훑어 보다가 그대로 앞으로 뛰어들었다. 가장 앞에서 내가 만도를 제대로 오른손에 들고 있던 시점부터 경계중이던 검사들이 잘 대응해준 탓에 바로 저지되었지만.

"이번이 가장 정예들을 모은 팀인가 보군요?"

만도에 실리는 힘이 무겁다. 만도의 특성은 그 특유의 휘어진 날을 활용한 틈새 공격과 '베기' 특화. 간단히 막는 걸로도 모자라서 거리를 벌리지도 못하게 눌러대는 걸 보면 꽤나 실력이 있는 축으로 보아야 한다.

섣불리 거리를 벌리려고 하면 대치중인 상태 그대로 저 칼에 베이겠고, 레이피어를 뽑으려고 하면 힘도 힘이지만 저번처럼 손에 뭐 날아올 것 같은데...

"...뭔가 내기라도 한 것 같은데, 저한테도 조금 떼주는 겁니다?"

"감사합니ㄷ..."

여전히 멀게만 보이는 곳에 선 성직자 코스프레 학생의 대답이 끝까지 들리지 않는다. 감각이 무너지고, 시야가 울렁인다. 모든 감각이 멀기만 한 위화감이, 역설적이게도 지금의 내가 누구보다도 자유로움을 약속한다.

"학생들 상대로 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만..."

울렁이는 시야에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뜬다. 바로 옆으로 성직자 코스프레 학생이 보인다. 검은 이미 목 옆에 세워둔 상태다.

"제가 흑조도를 쓰냐, 안 쓰냐로 내기라도 한 것 같더군요. 맞나요?"

"정답입니다. 밥 한 끼 쏘겠다던 친구가 있는데, 선생님도 오시죠."

"학생에게서 돈 뜯는 취향은 없습니다만..."

"선생님보다도 연장자입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괜찮을 겁니다. 아마도."

내기에서 이겼다는 것만으로 만족한 듯, 그 학생은 미련 없이 경기장에서 벗어났다. 겉보기론 이번 팀의 오더를 담당하고 있던 것으로 보였는데, 생각보다 싱겁게 대치가 끝났다.

"흑조도까지 썼는데 이제 한 명인 건 좀 슬프네요."

그래도 빠르게 한 명을 처리한 건 좋은 일이다. 신경 쓰이는 건 신경 쓰이는 거고, 지금은 집중해야 한다. 아직 돌아본 무대 위엔 많은 배우가 있다. 지금의 난 악역 배우. 실력 차이가 나더라도 마지막까지 절대 다수를 상대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어차피 이미 쓰기 시작한 거, 빠르게 가겠습니다... 원망은 듣지 않는 걸로 하죠."

눈을 지그시 감는다. 왼손엔 레이피어, 오른손엔 만도를 든 채 발을 모으고 곧게 선다. 흑조도를 쓸 때 균형을 잡을 생각으로 자세를 낮추는 건 오히려 더 위험하다. 애초부터 사용자 본인을 생각한 적 따윈 없는 전투법이니까.

숨을 크게 들이켜고, 전부 내쉰다. 지금이 타이밍. 숨을 몰아쉬는 때에 맞추어 온 몸의 피가 거꾸로 도는 듯한 착각에 휩싸인다. 온통 위화감 뿐인 감각 속에서 지금껏 흑조도를 써왔던 감에 모든 것을 맡긴다.

무언가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하지만 그 감각은 한없이 멀고, 물 속에 울려퍼지는 소리처럼 둔탁하기 그지없다. 무시한다.

"후우..."

감각이 돌아온다. 생각을 방해하는 현기증이 잠시 지나가고, 주위로 시선을 돌린다. 학생들이 끙끙거리며 신음하는 소리가 들리고, 널브러진 무기가 온통 상처투성이다. 크게 다친 학생은 보이지 않는다. 전원 전투 불가다.


작가의말

그저 언젠가 이 소설을 깔끔하게 완결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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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55 15.09.13 225 1 8쪽
55 54 15.08.17 244 1 7쪽
54 53 15.07.29 263 1 10쪽
53 52 15.07.27 392 1 7쪽
52 51 15.07.25 340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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