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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와 모래시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완결

레이브란
작품등록일 :
2015.03.16 00:00
최근연재일 :
2019.06.18 13:30
연재수 :
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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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117
글자수 :
295,074

작성
19.03.27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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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DUMMY

"의료진!"

나와 마찬가지로 바닥에 쓰러진 학생들을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는 대기 인력에게 시선을 향했다.

"...네!"

다행스럽게도, 호명되는 순간 정신을 차린 건지 대기중이던 인원들이 별다른 말 없이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비현실적이라고 할만한 광경이긴 했지만 그들 나름대로 그런 상황에 대해 익숙한 듯도 보인다.

드러누운 학생들을 한 곳에 모으고 차례차례 상태를 확인하는 작업을 바라봤다. 흑조도를 가능한 한 온건하게 사용한다고는 했는데, 어느 정도 조절에 성공한 것인지도 감이 안 오니 불안하기 짝이 없다.

"괜찮을 겁니다. 제가 보기에도 이상은 없어요."

"아, 시타."

초조해 하는 게 티가 났던 건지, 학생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으려니 시타가 다가왔다. 어째 그륜트에 온 이후로 이럴 때마다 시타를 의식하게 되어 버리는 게, 벌써 시타가 하는 '괜찮다'라는 말에 기대고 있는 것 같다. 이 학생들을 눕혀놓은 건 나인데도 말이다.

"한 국가 규모의 최대 무력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여려도 되는 거에요?"

학생들은 신경쓰지 말라는 듯, 팔짱을 끼고서 그대로 걸어가 버리는 시타. 그에 속수무책으로 이끌려 마지막 전투를 위한 휴식을 취했다.

"브리도 참 문제란 말이죠. 당신도 물론 심각한 괴물인 건 알겠지만, 체력은 딱히 그 정도로 좋아보이지도 않는데. 게다가 딱 봐도 싸우는 것 자체가 몸에 부담인 스타일이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오래 싸워도 되는 거 맞아요?"

적당히 걸터앉아 물을 마시고 있으려니 시타가 뒤에서 내 머리카락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딱히 대답을 바란 질문은 아닌 듯한 수다가 이어졌고, 시타의 목소리를 따라 내 머리칼이 차분히 흔들릴 뿐이었다.

"잠깐 시간 괜찮으실까요?"

그런 우리 앞으로 방금 라운드에서 유일하게 멀쩡히(?) 탈락한 성직자 코스프레 학생이 다가왔다.

"콘이라고 합니다. 방금 수업 중에 말씀하셨던 게 신경 쓰여서 말이죠."

"아, '성직자'를 말하는 건가요?"

"네. 닮았다고는 하시는데 그게 뭔지를 모르니까요."

"저도 궁금하던 참인데,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머리 정리가 끝난 듯, 만족스런 얼굴로 날 돌아보는 시타의 눈이 빛난다. 처음 들어본 단어에 제법 흥미가 있어 보인다.

"그럼요. 다만, 조금 마이너한 역사 용어거든요."

"그것도 말씀하셨었죠. 그런데 그 '마이너'하다는 게 대체 얼마나...?"

"1990년 이상 된 유물에 가까운 개념인데, 어지간한 학자도 모르는 수준입니다."

"...그건 좀 심했네요."

역사학에 있어서 가장 배우기 편하고 내용이 적은 건 단연 역사 초기이다. 태초의 인류가 남긴 발자취 자체가 적기 때문에 배울 양도 적고, 현대에 비하여 간단하니까. 그런 만큼, 일반적인 상식 선에서의 학습으로도 초창기 역사는 제법 많은 부분을 알게 되기 마련이다. 추측해야 할 부분도 많으니 연구도 활발한 편이고.

그 와중에 인류 탄생 이후 10여 년 내외의 극 초창기 역사가 학자들도 잘 모를 정도로 마이너하다고 하면, 대체 얼마나 대중적이지 못한 주제인지 대강은 파악이 되는 법이다.

"아무튼, '성직자'라는 건 대략 그 시기 쯤에 있던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신'이라는 초자연적 존재들을 숭배하는 '종교'에 정통한 사람들을 뜻하죠."

"그런 게 있던 건 또 처음 알았군요. 숭배라..."

"과학의 본격적인 발전 이전, 여러 자연 현상 등에 대한 해답을 위해 생겨났던 개념이라는 연구가 지배적입니다. 마이너하다고는 하지만 나름대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기는 해서 몇 년에 한 번 정도씩은 새로운 연구 결과 같은 게 발표되고 있더군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이런 복장이었다는 말씀이신 거군요. 납득은 가는 일이네요."

콘은 새삼스레 자신의 몸을 돌아보았다. 마법사의 일반적인 복장에서 조금 더 통이 넓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편해 보이는 복장에 흰색을 베이스로 한 살짝 긴 로브. 마법 시전 중에 신경쓰이지 않도록 최대한 체형에 맞춘 디자인에 안경을 끼고 손에 책까지. 지금은 책을 들고 있지는 않지만 이미 이 상태로도 충분히 학구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모습이었다.

"뭔가 이상한 걸 떠올리신 건 아닌 것 같으니 안심이네요."

"초면부터 실례가 될 생각은 안 떠오르는 편이라서요."

"아무튼 시간 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전 이만 ㄱ..."

"용건은 하나 더 있잖아?"

콘이 만족했다는 듯 몸을 돌리려던 참이었다. 콘의 어깨 위로 손이 하나 떨어져 내리고 콘의 뒤에 서 있던 남자의 얼굴이 드러난다. 콘의 얼굴이 조금이지만 불만으로 구겨진다.

"난 싫다고 했잖아. 난 그런 거 반대야."

"그래, 그럴 줄 알았다. 이 샌님아."

콘과 갑작스레 등장한 남자 사이에서 의미 모를 대화가 지나가고 신경전이 이어진다. 아마 마지막 라운드 유일한 상대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용건이 하나 더 있다니?

"전 오드라고 합니다. 원래는 이 녀석이랑 같은 팀인 검사인데, 다음 라운드에 나올 겁니다."

자신을 오드라고 소개한 남자가 마주보고 있던 콘의 목에 팔을 얹어 자연스레 어깨동무를 하더니 시선을 내게로 옮겼다.

"반가워요. 이론 때 봤던 기억이 있네요."

아마 자율 연습 시간 때는 잘 보이지 않았던 학생으로 기억한다. 콘도 꽤 키가 큰 편인데, 그보다도 머리 반 개 정도 큰 체격의 학생을 못 보고 지나쳤을 리는 없으니.

"그래서, 아까 말한 용건은 뭐죠? 아마 저에게 있던 것 같은데..."

"이번 전투에서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말입니다. 이 녀석이 안 그래도 선생님께 말씀 드릴 일이 있다고 해서 같이 여쭤봐 줄 수는 없냐고 했었는데..."

오드가 눈을 살짝 돌려 콘을 보곤 다시 내게로 눈을 향한다. 슬쩍 본 콘은 얼핏 봐도 심각할 정도로 진지한 표정이다.

"보시다시피 이런 상태라, 예의도 그렇고 직접 말씀 드리러 온 겁니다."

"듣지 않으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정말이지 쓸데없는 말이라고 단언하죠."

콘은 퉁명스레 말을 끝마치고선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자리를 피했다. 오드의 그 '부탁'이라는 게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저 녀석 말대로 거절하셔도 좋습니다. 제 개인적인 부탁이니 직접 판단해 주셨으면 할 뿐입니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콘을 가만히 쳐다보던 오드가 콘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을 계속했다.

"저와의 전투에선 직접 목숨을 노리고 싸워주셨으면 합니다. 진심으로."

"...목숨이라고요?"

"네. 지금 밖엔 기회가 없다고 생각해서 말입니다."

내 반문에 멀어진 콘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눈을 마주한 오드는 더없이 담담해 보였다. 이번 전투에 목숨을 걸어보겠다는 말과는 위화감이 느껴질 정도로.


작가의말

오늘도 조금이나마 시간을 보낼 만한 순간이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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