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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와 모래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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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레이브란
작품등록일 :
2015.03.16 00:00
최근연재일 :
2019.06.18 13:30
연재수 :
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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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07
추천수 :
117
글자수 :
295,074

작성
19.06.04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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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DUMMY

팔수스와의 여행은 순조롭기만 했다. 길을 잘못 든다던가 하는 흔한 사고조차 없이 마차는 일정한 속도로 계속해서 나아갔고, 예상 범위를 조금도 벗어나지 않은 채 여러 도시와 마을을 지나쳤다.

항상 시간에 맞추어 식사를 하고, 잠을 잘 때도 정해놓았던 마을 같은 곳에 정확히 도착해 편하게 보낼 수 있었다. 집 한 채 없는 허허벌판에서 마차만 덜렁 세운 채 하룻밤을 보낸다던가 하는 일은 팔수스 쪽에서 용납할 수 없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지던 대목이다.

지금도 피크닉 기분을 내며 넓게 펼쳐진 돗자리 위로 호화로운 음식들이 줄지어 놓일 정도니 정말 말은 다 했다.

"이건 또 언제 준비한 거야? 샌드위치도 그렇고 디저트들 양이 엄청난데?"

"어제 들렀던 마을에서. 재료는 매번 보충하고 있으니까 어지간한 요리는 하루 정도만 시간을 주면 할 수 있어."

별 거 아니라며 막 완성한 생과일주스까지 건네는 것으로 식사 준비를 마무리하는 팔수스. 솜씨 좋게 과일들을 손질하며 씻어내던 것까진 봤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 다 갈린 주스가 팔수스의 손 위에 있었다.

"역시 마법은 편리해... 이런 것까진 간단하다는 거려나...?"

"그렇게 간단한 건 아닌데? 아무나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난 애초에 평범한 마법은 못 쓰니까 괜찮아."

한 손엔 샌드위치, 한 손엔 주스를 건네받아 들고서 식사를 시작했다. 어제 산 재료들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하나같이 식감이 살아있었다.

"좋은데? 얘도 맛있네."

"다행이네."

팔수스는 어쩐지 조금 굳은 얼굴이긴 했지만 맛있다고 하니 황급히 얼굴을 고치며 기쁜 내색을 보였다. 나 뭔가 잘못했나?

팔수스가 꺼낸 샌드위치만 해도 양이 꽤 되었지만 디저트는 더 푸짐했다. 각종 쿠키에 푸딩, 식사로도 충분했을 마들렌 같은 게 얼마나 쌓여있는 건지 끝이 보이지를 않았다. 팔수스가 직접 신경 써서 보관하는 것들이라 보존 가능 기간도 길다고는 했었는데 그걸 감안해도 엄청난 양이다.

"장기 여행이란 게, 원래 이렇게 편한 거였나..."

"어차피 전부 가이드 차이야. 적당히 유능한 가이드기만 해도 이 정도 편의는 봐줄 수 있어야 하는 게 정상인걸."

"...그렇다기 보다는 네가 너무 유능한 게 문제 아닐까 싶기도 한데..."

자잘한 일들이야 나도 돕고는 있다지만 정말 대부분의 일들을 팔수스 혼자서 감당하고 있다. 기본적인 이동부터 경로 탐색, 식사 준비와 숙소 문제까지. 정말 까다롭다 싶을 만한 일들은 팔수스가 이미 처리하고 없는 경우가 현재다.

"어차피 나는 아수리온으로 돌아간 후에도 할 일이 없으니까 괜찮잖아? 레이 너야 말로 아수리온에 도착한 이후부터가 진짜 일 시작이고."

"네가 그렇다면 나야 상관 없긴 한데..."

주스를 한 입 마시며 먹을 디저트를 차례대로 둘러보았다. 팔수스가 만들어 놓은 주스가 아마 아직 꽤 남아 있는 걸로 아니까 마들렌도 조금 먹을까. 잘 만들어졌다고 엄청 자랑하던데.

"그냥 쉬어. 아수리온 도착했을 때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나한테 보답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알았어-"

초콜릿이 얇게 발라져 있는 쿠키를 집어들었다.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운 게 먹기 편했다.

"그러고 보니 카펠라랑 리퀴움은 지금 어쩌고 있을까?"

"대충 언제나와 같지 않겠어? 리퀴움 녀석이 뭐하는 놈인지는 간부들 중에서도 몇 명만 알고 있기로 했고, 오늘 아침부터 안 보였잖아. 뭔가 일이라도 있었겠지."

카펠라도 그렇고 마차에 오르는 순간까지 그 둘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림자 일족이라던 쪽은 아예 그륜트로 데려오지도 않았던 것 같고.

"혹시 모르지. 우리 나가는 타이밍에 맞춰서 여행이라도 시작했을지도."

"뭐, 생긴 건 어리지만 반신이라고 했으니까... 사실 아직도 믿긴 어려운 이야기지만."

직접 싸워봤던 건 아니지만 처음 봤던 그 순간에 카펠라가 사용했던 마법이 얼마나 위력적인지는 당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애초에 리퀴움까지 붙어있을 테니 그 둘을 걱정하는 건 여러 모로 낭비다.

"언젠가 또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여행이라도 떠난 거면 힘드려나?"

팔수스는 별 말 없이 다 먹은 접시와 꺼내놓았던 것들을 그 때 그 때 정리하며 내 말을 듣고만 있었다.


"레이- 곧 아수리온이야. 입국 준비해."

노크 소리와 함께 앞쪽으로 작게 난 창이 열리고 팔수스가 도착을 알린다. 아직 갈 길이 조금 멀긴 하지만 귀국이다.

"분명 여행용으로도 지급된 정복이 있었던 것 같은데, 걸치는 편이 좋지 않겠어?"

"...그건 또 어떻게 알았는데..."

팔수스가 다 아는 방법이 있다며 가방을 하나 건넸다. 그 안엔 정갈하게 개어진 채 보관된 기사 정복이 있었다.

"그거 입고 불러. 밖에선 마차 안이 안 보이니까 신경은 안 써도 되지만, 혹시 모르니까 서둘러서."

"아니, 그..."

팔수스는 내 말을 무시한 채 재빨리 창을 닫고 잠궜다. 보통은 안에서만 잠글 수 있을 창문이 이 마차는 특별 사양인 건지 양쪽에 별도로 잠금장치가 달려 있었다. 이렇게 되면 팔수스가 열 때까지 내 쪽에서도 창문을 열 방법이 없다.

"정말이지, 이런 것만 고집이 있어선..."

다른 건 알아서 하라는 느낌이지만 묘하게 이런 건 특히나 챙겨주는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당장 내가 정말 입고 싶지 않다면 얼마든지 거부할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곤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다행히 지급받은 옷 자체가 나만 생각하고서 만들어져서 그런지 복잡하거나 장식이 많이 달린 편이 아니었다. 심지어 별도로 반바지까지 포함한 사양.

"내가 이런 성격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요즘 들어 주위 사람들에게 어리광이랄까, 폐를 끼치는 일이 늘어난 기분이다. 팔수스는 말할 것도 없고, 여왕 폐하나 브리까지 전부.

차려 입은 정복은 망토 같은 느낌의 재킷까지 한 벌 걸치면 완성이었다. 전반적으로 하얀색 원단에 실이나 버튼 등을 전부 밝은 청록색으로 한 게 내가 평소 입던 옷과 흡사한 느낌이 있어 생각 이상으로 친숙했다.

"팔수스, 다 입었어. 이제 잠금 풀어."

"생각보다 순순히 입어줬네? 그래도 꽤 걸릴 거라곤 생각했는데."

"나도 애는 아니야."

팔수스는 그 말에 옅게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다시 창문을 닫고는 마차 운행에 집중했다. 창문을 통해서 저 너머로 아수리온의 방벽이 보였다.


작가의말

오늘도 즐거운 시간이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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