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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와 모래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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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레이브란
작품등록일 :
2015.03.16 00:00
최근연재일 :
2019.06.18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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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074

작성
15.09.13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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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DUMMY

'감정이란 건 인간을 비롯한 지성을 지닌 종족들의 특권과도 같아서, 그를 잃는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1247년경 중세의 빛이라 불리웠던 남자가 한 말이다. 이 말이 지금껏 남아왔던 이유는 그가 마법을 발견해내어 지금의 문명의 기초를 다졌던 것 뿐만이 아닐 것이다. 단순히 생각해보아도 저 말이 전적으로 옳기 때문일 것이다.

감정이란 것은 정의를 내리기 애매한 존재이다. 저런 말을 남긴 남자조차도 감정에 대해서 그리 많은 것을 떠들지 못했을 정도니까.

애초에 그가 저런 말을 했던 이유가 그의 업적과 관련이 깊었던 것도 있긴 하다. 그는 마법을 발견했다. 그리고 마법은 인간의 정신에 의해서 생성된 어떠한 염원 등이 물질계에 발현되어 물리력을 행사하는 현상이다. 당연하게도, 마법이란 것은 시전자의 감정에 휘둘리는 존재이다.

나 같은 경우, 특이 케이스로서 마법에 대해선 배울 수 없는 몸이지만 그럼에도 감정이란 것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감정이랄까, 그보단 기분 문제지만. 기분이 안 좋으면 능률이 떨어져 버리니까 말이야. 그 전에, 기분이 나쁜 걸 좋아하다니. 그런 건 말도 안 되니까 말이지.

뭐, 그런 나에게 찾아온 시련이란 건 꽤나 장대했다. 아스트랄계의 직접 침식. 일반적인 상황에선 절대로 겪을 수 없는 초특이 현상. 그리고 그 결과만 간단히 말하자면, 아스트랄계의 붕괴로 인한 정신 파괴.

...최악이다. 아스트랄계란 건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니다. 지적 생명체가 지니고 있는 의지 등의 정신에 의해서 생성된 세계. 그러면서 동시에 정신 그 자체이기도 한 공간. 마법을 통해 물질계에 물리력을 행사하는 근본.

"...그런 게 사라져 버린다고 한다면, 넌 그저 인형에 불과하지 않을까?"

오른쪽. 귀에 바로 입을 가져가 속삭이는 목소리. 가벼운 듯 하면서도 오히려 아무런 감정도, 의지도 느낄 수 없는. 이제는 쓸데없는 기계적인 노이즈나 인형의 것이라고 느껴지는 아이의 그것이 내 몸에 전율이 흐르게 하고 있었다.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처지는 아니라고 생각되는데요, 카펠라."

"미안하지만 난 예외거든. 최소한 그렇게 되버린 너보단 형편이 나을테니까."

저주의 말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말을 너무나도 건조하게 읊조리는 그녀. 오히려 그 탓에 상대에 대한 조롱조차 느껴지지 않는,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 듯한 느낌이 돼버렸다. 뭐, 그녀에게 있어선 '그저 사실을 말한 뿐'. 그 외의 목적이나 의미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은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것이지만.

"카펠라."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튀어나와버렸다. 하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다. 적어도 그녀와 대화할 때만큼은.

"당신에 대한 이야기, 다시 말해줄 수 있을까요?"

"어떤 거? 처음부터? 아니면..."

"당신의 감정만."

즐겁게 재잘거리는. 아니, '즐거워보이게' 재잘거리는 그녀의 말을 중간에 끊고서 대답했다. 역시나 그녀에게선 어떠한 불쾌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좋아, 이번엔 아까처럼 큰 충격을 받지는 않겠지?"

이제껏 내 오른쪽 어깨에 턱을 올리고서 뒤에서 달라붙어 있던 카펠라가 천천히 일어나 옆의 의자로 향했다. 그러더니 의자를 밟고서 책상에 걸터앉은 채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난 만들어진 존재야. 감정을 느끼지 못하도록."

완전히 똑같은 말을 완전히 똑같은 무미건조한 말투로 전해오기 시작하는 그녀. 이번이 두번째로 듣는 말이었지만, 난 또다시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거릴 수 밖에 없었다.

"난 원래는 평범한 인간이었어. 너처럼 그렇게 강한 육체도, 저 녀석같은 사기적인 마법 재능도 없는, 극히 평범한 시민이었지. 국적 같은 건 없었어. 그 당시에 내가 살던 곳은 이 바깥, 그러니까 그륜트의 땅이었거든. 물론, 그 때에 그륜트는 존재하지 않았고. 벌써 천 년도 전이니까. 하지만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지. 이 세상에 '가족'이라는 게 있단 거."

또 다시 그녀의 말에 반응하여 몸을 떠는 날 보며 작게 미소지은 그녀는 날 관찰하기 위해 멈추었던 이야기를 잠시 뒤에 다시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내게도 가족이 있었어. 아주 평범한 분들이셨지. 싸움 같은 건 할 줄 모르는 분들이셨고, 그게 치명적이었어. 일은 내가 너무나도 어릴 때 일어났지. 그 탓에 그들이 무슨 목적으로 그런 일을 했었는지는 알지 못해. 하지만 결과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우리 집, 내가 유일하게 알던 세계. 마을 전체가 불타올랐고, 난 버림받았다는 거. 다른 누구도 아닌, 어머니로부터 말이야..."

들려오던 이야기가 또 멈추었다. 그녀가 내게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가벼운 몸이 책상에 천천히 끌리면서 나는 마찰음. 그리고 다시 들려오는 그녀의 속삭임.

"왜 그래, 레이. 듣고 싶다고 한 건 너였잖아. 뭐, 눈을 감고 있는 것까지는 세이프라는 건가."

"...전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확실히, 듣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상관없지만~"

자신의 음울한 과거를 말하면서 오히려 듣는 사람보다도 차분하고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며 웃음까지 보이는 여유. 그 모습에 난 소름이 끼쳤다.

"당시까지만 해도 내겐 아직 감정이라고 할 것이 분명히 남아있었어. 오히려 누구보다도 감정에 잘 휘둘리는 성격이었을 거야. 여느 아이가 그렇듯, 수없이 많은 감정의 속에서 살아가는. 그런 아이였겠지. 그리고 그 많은 감정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으로 많이 느꼈던 것은, 지금도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어. 이젠 느낄 수 없지만, 그게 기쁨이었다는 것만큼은 생생하게 와닿아."

날 배려했던 것인지, 평소보다 차분하게 목소리를 조절하는 그녀. 내가 용기를 낸 것에 대한 그나마의 상일 것이다. 그 목소리로 전해져오는 이야기를 타고서, 난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의 눈을 마주보았다. 하지만, 역시 그 눈에 떠오른 것은...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불타올랐어. 온통 붉은 빛이 온 마을을 뒤덮고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어. 난 그 속에서 그저 죽을 때만을 기다리는 중이었지. 가끔 그런 생각도 해. 차라리 그 때 죽어버렸었다면 이렇게 골치아플 필요는 없었을 거라고 말이야. 이런 나따위, 필요로 하지 않는 세상일 테니까."

말을 끊지 않으며 카펠라는 시선을 리퀴움으로 향했다. 그의 얼굴은 평소와 같은 평온함이 있긴 했지만, 초조함이라던가 불안감, 혹은 분노와 같은 감정이 더 묻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난 죽지 못하고 이렇게 천 년도 넘게 살고 있지. 나타났거든. 누군가가. 멋들어진 금발의 왕자님이었을까? 맞다면, 그 왕자의 나라는 아마 지옥이었을텐데. 날 구해버렸거든. 죽고 싶은 사람을 의사도 묻지 않고서 무책임하게 살려냈다고. 그게 무슨 기분인지는 알고 있는 걸까. 묻고 싶어도, 이젠 분명 죽었겠지만 말이야."

'차라리 거기서 죽었으면 좋았을텐데'. 듣기 싫은 말이네. 그녀가 잠시 숨을 고르는 동안, 난 또 왜 이런 말에만 집착하고 있는 걸까.

"그렇게 난 죽지 못했어. 너덜너덜해진 감정을 꼭 쥐고 있는 주제에. 다른 누구보다도 섬세하고 거대했던 감정이란 게 한순간에 무너져 버린 주제에. 그 이후론 그 망가진 감정을 사용해서 끝도 없이 원망을 했어. 저주하고, 저주하고, 또 저주했어. 인간이 내뱉을 수 있는 모든 저주를 쏟아부어서 그를 원망했을 거야. 마주치기조차 싫은 현실을 알게 한, 그로부터 도망치는 것도 하지 못하게 한 그 남자와 이 세상에게."

모르겠다. 다시 들어본 이 말들도, 그녀의 입에서 쏟아지는 말들도. 그저 혼란스러운 파편일 뿐.


작가의말

오늘도 즐거우시길. 미소지을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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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58 15.11.19 201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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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56 15.10.14 268 3 8쪽
» 55 15.09.13 217 1 8쪽
55 54 15.08.17 237 1 7쪽
54 53 15.07.29 252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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