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까마귀와 모래시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완결

레이브란
작품등록일 :
2015.03.16 00:00
최근연재일 :
2019.06.18 13:30
연재수 :
91 회
조회수 :
19,071
추천수 :
117
글자수 :
295,074

작성
15.11.19 20:08
조회
210
추천
1
글자
7쪽

58

DUMMY

카펠라에게서 다시 한 번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난 후, 그녀에게서 조금은 다른 면이 보였던 것으로 나와 그녀의 사이는 생각보다 쉽게 가까워졌다. '나같은 인형은 되지 마', 라니.

"그녀도 사실은 꽤나 자조적이었단 건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인형이라고 부르던 그 모습은, 확실히 너무나도 불안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그 '신격화'는 감정조차도 배제하는 의식이었다고 했다. 즉, 지금의 그녀는 감정을 포함하여 불완전하다고 누군가가 멋대로 판단한 요소들을 강제로 빼앗겼다는 것이 된다.

그 상태로 살아온 시간이 천 년. 그 스스로조차 놀랄 만큼 기나긴 세월을 감정도 없이 지냈단 것이 된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의 난, 솔직히 말해 너무나도 놀랐다. 온 몸으로 느껴져 오는 소름에 치를 떨고서 얼어붙어 있었을 정도로. 분명히 그 때의 내 시선에선 경멸이 섞여 있었을 것이다.

분명 그 일은 그녀가 원했던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녀는 죽기를 바랬다. 흔히 말하는 자살기도. 그리고 그걸 누군가에게 제지당한 채 죽지도 못하는 몸이 되어 버렸다.

"난..."

조용히 읖조리려던 말을 다시 삼키며 입술을 깨물었다. 분명 알고 있었다. 그녀가 원했던 일도, 당연한 일도 아니었단 걸. 전혀 예상치 못하게 일어난 기적이었단 걸.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 대해서 혐오감을 느꼈던 걸 부정할 수가 없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난 그런 모습을 보였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너무나도 이기적이었다. 단순히 내게 일어날 일을 부정하고 싶던 것 뿐이잖아!

그녀는 단순히 보아서 감정이 배제된 것 외에 다른 특이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 외라고 하면 성장이 멈추었다는 것과 죽지 않는다라는 것, 그리고 강하단 사실이 전부. 하지만 이것들은 엄연히 생각했을 때 '불사'만 제외한다면 이미 브리 덕에 익숙해진 것들이었다. 그래서 그것들은 이제 놀랍지도 않아.

단지 보기 괴로웠던 모습은, 그래. 감정이 배제된 모습이었다.


"흐음- 레이는 어떻게 하려나아-?"

"...너무 변태적이신 건 아니신지요."

한껏 즐거워 보이는 얼굴로 만족했다는 목소리를 내는 카펠라. 그리고 그 옆에선 옛 그림에서나 보이던 중세 때의 집사, 완벽한 하인의 모습인 리퀴움이 있었다.

"너도 한 500년만 더 살아서 딱 지금 내 나이 되어 봐. 성격이 안 삐뚤어지고 배기나."

"사양하죠. 아니, 그 나이가 되더라도 성격은 지금처럼 올곧을 거란 말이니까 진은 저리 치우시고요."

쓰레기를 주워 치우듯, 자신에게 던져진 불길한 빛의 진을 손으로 잡아 툭툭 터는 리퀴움. 잿빛의 가루가 흩날리는 듯 싶더니 진은 빛을 잃고서 사라져갔다.

"칫. 한 200년 전까지만 해도 통했던 게. 이 녀석도 오래 살더니 아주 도가 텄구만."

"당연한 일입니다. 당신은 애초에 '신'으로서 탄생된 존재이니까요. 전 그 하인이니, 신의 직속 하인이 되는 셈입니다. 이 정도는 되어야 변덕스런 신님의 명령을 곧이 곧대로 수행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 은근히 긁고 앉아있어-"

"칭찬으로 듣죠."

주인과 그 하인인 집사의 대화론 들리지 않는 특이한 대화가 조용히 오가고 있었다.

"그것보다도, 제가 하고 싶던 말은...!"

"뭐야, 아직도 내 성적 취향이 궁금하단 말이야? 그건 이미 100년 정도인가 전부터 네가 알아서 찾고 ㅇ..."

"하아, 이상한 말씀은 그 쯤 해 두시죠? 간식, 드시기 싫으신 겁니까."

"에- 치사하네, 리키는. 또 간식으로 협박하는 거야?"

"이런 게 아니면 제 말은 안 들으시잖습니까."

얼굴을 살짝 찡그리면서 카펠라를 노려보는 리퀴움. 그 모습에 여전히 재미있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 입을 여는 카펠라.

"당연하지. 난 네 주인이고, 창조주. 넌 내 하인이자, 피조물. 어떻게 되든 내 맘대로 잖아-"

"기각입니다. 당신은 제게 자유의지를 주셨으니 전 절 만들던 그 때의 당신의 그 의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제 의지대로 행동할 겁니다."

"난 참 불운한 신님이야, 안 그래?"

어쩔 수 없다는 뜻으로 한숨을 내쉬는 카펠라. 그녀를 모셔왔던 시간이 길었던 리퀴움답게, 한숨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그는 입을 열고 있었다. 그리고 내뱉어진 질문.

"레이브란 님의 상태, 알고 계셨죠?"

"당연하지. 그 인간'들'이 내게 줬던 것들 중 그나마 쓸만한 게 겨우 이런 것인 걸?"

"그런데, 본인의 상태를 일부러 왜곡해서 감정이 없다고 하신 겁니까?"

담담하게 내뱉은 말이지만 상당히 구겨져 있는 얼굴. 그 본인도 살아온 시간이 길었던 게 사실이긴 한 듯 하지만 이런 것엔 꽤나 익숙치 못한 듯 했다.

"일단 감정이 배제된 건 사실이잖아?"

그리고 이러한 논쟁에 너무나도 익숙한 듯한 카펠라. 그윽하게 미소가 묻어나는 얼굴은 완벽한 능구렁이의 미소였다.

"...이런 늙다리가."

"뭐래, 지도 늙다리인 주제에 말이지."

꽤나 그런대로 넓고 아늑한 방. 바로 옆에선 여전히 팔수스가 기절한 채로 안정을 취하고 있는 침대가 놓여져 있기까지 한 공간에서 결코 평범하다 못할 대화를 주고받는 카펠라와 리퀴움이었다.


"난 그저 날 보고 있던 뿐이었을까."

카펠라의 배려로 차디차게 얼어붙어가고 있는 공기에 자조 섞인 입을 통해 튀어나온 말이 던져진다. 맞닿은 그 사이에서, 하얗게 김이 서린다.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카펠라의 능력을 통해 마치 겨울과 같은 상태로 변한 방 안에서 지끈거리기 시작하는 감각에 신음한다.

"...쯧."

가볍게 혀를 차고서 침대로 몸을 던진다. 쓰러지듯이 침대에 올라 차갑게 식은 이불의 느낌에 집중하려 애를 썼다. 차디찬 그 감촉이 언제나처럼 편안하게 느껴져 두통을 잠시간은 잊을 수 있었다. 그러자, 이번엔 다른 방식의 고통이 다시 상기된다.

"...카펠라..."

난 지금도... 솔직한 심정으로 그녀가 무섭다. 대하기 어렵다. 그건 공포 뿐만이 아니라 나 때문이기도 하다. 천천히 옅어져 가고 부서져만 가는 '나'라는 존재 그 자체가 결국 마주하게 될 결말 중 하나일 듯한 카펠라의 모습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작가의말

오늘도 즐거우셨으면.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까마귀와 모래시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다시 시작하렵니다. 19.06.18 90 0 -
91 89 19.06.18 73 0 7쪽
90 88 19.06.14 30 0 7쪽
89 87 19.06.11 21 0 7쪽
88 86 19.06.07 19 0 7쪽
87 85 19.06.04 13 0 7쪽
86 84 19.05.31 20 0 7쪽
85 83 19.05.28 24 0 7쪽
84 82 19.05.24 19 0 7쪽
83 81 19.05.21 42 0 7쪽
82 80 19.03.27 25 0 7쪽
81 79 19.03.16 23 0 7쪽
80 78 19.02.28 28 0 7쪽
79 77 18.12.14 21 0 7쪽
78 76 18.01.08 45 0 7쪽
77 75 17.01.27 234 0 7쪽
76 74 17.01.22 305 0 7쪽
75 73 16.09.18 181 0 7쪽
74 72 16.07.27 194 0 8쪽
73 71 16.05.14 339 0 8쪽
72 70 16.03.27 272 0 7쪽
71 69 16.03.20 251 0 7쪽
70 68 16.02.25 301 0 7쪽
69 67 16.02.22 294 1 7쪽
68 66 16.02.21 168 1 8쪽
67 65 16.02.18 222 1 7쪽
66 64 16.02.17 213 1 8쪽
65 63 16.02.16 235 1 7쪽
64 62 16.01.07 276 1 7쪽
63 61 16.01.03 230 1 7쪽
62 60 15.12.31 219 1 8쪽
61 59 15.12.29 222 1 7쪽
» 58 15.11.19 211 1 7쪽
59 57 15.11.16 226 1 7쪽
58 [할로윈 특전] 또다른 레이브란의 이야기 15.10.31 230 1 10쪽
57 56 15.10.14 283 3 8쪽
56 55 15.09.13 228 1 8쪽
55 54 15.08.17 246 1 7쪽
54 53 15.07.29 265 1 10쪽
53 52 15.07.27 395 1 7쪽
52 51 15.07.25 342 1 7쪽
51 50 15.07.09 363 1 7쪽
50 49 15.07.05 269 1 7쪽
49 48 15.06.21 362 1 7쪽
48 47 15.06.19 388 1 8쪽
47 46 15.06.17 288 1 7쪽
46 45 15.06.13 265 2 7쪽
45 44 15.06.10 274 1 7쪽
44 43 15.06.09 257 1 7쪽
43 42 15.06.05 314 1 7쪽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레이브란'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