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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works
작품등록일 :
2015.06.21 20:32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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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회
조회수 :
10,953
추천수 :
198
글자수 :
252,815

작성
18.11.08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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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4쪽

사랑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는 자신이

DUMMY

아이는,

내가 그녀를

자신의 진짜 엄마가 아니라고 알려주어서,


그녀가 자신을 낳지 않았음에 대해

아주 어릴 적부터,

솔직하게 말해주어서,



사실은 그녀가 자신의 진짜 엄마처럼 생각되었지만,

자신에게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어린 그때도, 나이든 지금도, 그 사람 밖에 없었지만,


자신이 그렇게 여기고 있었던 것과는 상관없이,


그녀가 자신의 진짜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조금도 감추지 않고 알게 해주어서,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곁에 그 사람뿐이었음에도


그녀를 엄마로 여기지 않았고,

모르는 사람처럼 사랑을 주지 않았고



그래서 실망하지 않을 수는 있었으나,


끝내 자신은 어느 누구에게도

- 나에게서조차 -

사랑을 배우지 못했다고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아이에게

그래서 나를 원망 하냐고 물었다.


그런 사실을 알게 한, 나를,


엄마가 필요하다고 했던 그때부터

그런 사실을 끊임없이 말해왔던 나를,

원망하고 있냐고 물었다.




아이는,

그런 사실을 모른 채


그녀를 엄마로 여기고,

그래서 그녀로부터 사랑을 배우고,

그녀를 엄마로서 사랑했다면


그녀가 자신의 진짜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서는

무척 실망하게 되었을 거라고 말했다.



배운 사랑과,

받은 사랑을,

믿지 못한 채,



모든 사랑을 의심하게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고


그랬다면, 그 사실을 말해주지 않은 나를

많이 원망했을 것 같다고


그러니 모든 걸 말해준 나를

지금은 원망하고 있지는 않다고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자신이 그렇게라도 사랑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면,


어떻게든 사랑을 배울 수 있어서,

다행스럽게 생각했을 것 같다고

그렇게 말했다.




지금의 자신은

사랑을 배우지 못해서,


그녀를 엄마로서 사랑하지 않은 걸

그래서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은 걸

오히려 더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고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사랑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는 자신이

조금은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아마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도

사랑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일 거라고 했다.




사랑을 배웠다면

어떻게든 사랑을 알게 되었다면,


진짜 엄마가 아닌 사람을 사랑한 걸 후회하고

자신을 속인 모두를 진심으로 원망했겠지만,


끝내 사랑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고

머리로만 배운 사랑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그래서 지금처럼 이렇게 뿔뿔이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 진짜든, 아니든, 그런 건 상관없이 - 용서하고

인정했을 수도 있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자신의 모습이,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서,

헤어짐에도 상처받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지금 이런 모습이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최악의 모습이 아니냐고


그렇게 물었다.




나는 아이에게

대답대신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 역시 사랑을 알지 못해,

사랑을 줄 수 없었고


그래서 미움이라도 받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는데,

너에게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해 온 것도

미움을 받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것인데


이렇게 되어 버려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아이는

내가 사과할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나와, 자신과,

진짜가 아닌 엄마 사이엔


그저 사랑이 없었을 뿐,


그 뒤로 일어난 모든 일은

사랑이 없는 곳에서

당연히 일어나는 일들일 거라고



모두 가장 나쁜 모습이 된 채로


자신이 어디 있는지도 모를 진짜 엄마를 찾아 떠나고

진짜가 아닌 엄마가 다른 사랑을 만나 떠나고,

당신이 혼자가 되어버리는 것은



사랑이 없으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모두에게 사랑이 없었으니

그 누구도 미안해하거나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자신도 정말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나를 떠난 두 명의 부인이 했던 것과

비슷한 말을 끝으로


아이는 나를 떠났다.



나는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았으나

내가 가질 수 있는 최악의 모습으로


버스가 떠난 정류장에 홀로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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