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렌 산맥
해가 저물면서 어두워지려고 하니 수현은 타마할로 돌아왔다.
도시에는 성벽마다 횃불을 크게 밝히고, 상점들이 있는 거리에는 마법 등불로 인해 오묘하게 빛나고 있었다.
“맛좋은 과일을 사세요!”
“거기 여행자님. 육질이 기가 막힌 고기 구이를 드셔보시고 지나가시죠.”
성문 안쪽에서부터 큰 규모의 저녁 시장이 열렸다.
수현은 시장의 음식들에 잠시 눈길을 돌렸다.
‘이곳의 음식 맛은 어떨까? 냄새는 좋아 보이는데.’
알 수 없는 고기에 소금과 향신료를 뿌려서 숯불에 굽는 모습들이 보였다.
고기가 노릇노릇 익으면서 기름이 숯불로 떨어진다.
새로운 세상, 마치 해외 여행을 떠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수현은 약간의 식욕이 동하기는 했지만 이내 지나쳤다.
‘이런 곳에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지.’
하늘 전장의 열린 시간은 단 4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냥을 하기 위해 준비를 했다. 게다가 식사도 배낭에 챙겨온 칼로리 과자를 젬버들을 해치우며 먹은 후였다.
“아니. 이게 무슨 냄새야.”
“으... 역겹군.”
수현이 지나가면 사람들이 비켜났다.
젬버들을 해치우고 나서 씻을 시간이 없었다. 사실 씻을 생각도 없었지만.
“이곳에도 있겠지?”
수현이 찾은 장소는 타마할의 하수구!
길가의 구석에 있는 커다란 돌 뚜껑을 열고 지하로 내려갔다.
띠링!
< 충분한 사전 지식을 입수하여 던전의 정보가 공개됩니다. >
< 타마할의 하수구
도시의 오물이 빠져나가게 만든 지하 구역입니다. 유명한 건축가 레오날 카퍼가 17년의 대공사 끝에 완공했습니다.
초창기에는 깨끗하게 관리가 되었지만 백여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면서 몇 개의 통로는 폐기물로 인해 막혔습니다.
다양한 대형 벌레들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난이도 : 3-10?
출현 몬스터 : 빌리그, 라이머드, 우커, 그 외 다수. >
“던전 정보라.”
수현은 모트라보다 넓은 하수구를 보면서 씩 웃었다.
“밤새도록 사냥을 해야지.”
데논의 검과 방패으로 무장했다.
토후의 단검은 공격력이 좋지만 넓은 장소에서는 활용하기가 어렵다.
검은 공격과 견제, 방어까지 다양하게 쓸 수 있어서 다용도로 쓸 수 있는 무기.
‘하수구는 경험도 있으니 사냥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겠지.’
수현이 주변을 살피면서 살금살금 걸어갔다.
신중하면서 과감하게, 던전의 몬스터들이 나온다면 해치우리라!
슈샤샤샤샥
하수구의 물이 흐르는 소리 외에도 미세하게 작은 소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몬스터다.’
수현은 벽에 마법 횃불을 걸어놓고 전투 준비를 갖췄다. 그 직후 모습을 드러낸 건 시커멓게 생긴 40센티정도 크기의 몸에 열두 개의 다리, 정면에는 길고 얇은 더듬이까지 있었다.
수현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저건 생긴 게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바퀴벌레잖아! 게다가 모트라보다... 더 커!’
@
타마할의 햇살이 밝은 아침.
땅바닥에 깔린 두꺼운 돌이 들썩들썩하더니 옆으로 밀려났다.
하수구에서 기어서 올라온 수현은 그대로 도로에 드러누웠다.
“끄응.”
몸에서 나는 악취 같은 건 더 이상 느낄 수도 없었다.
밤샘 사냥!
‘어릴 땐 게임을 하면서 자주 밤을 새웠는데.’
밝고 뜨거운 햇빛에 PC방에서 심야 정액을 끊어놓고 컵라면 하나에 밤새도록 게임을 했던 20살이 떠올랐다.
어둡던 PC방을 나서면 아침 햇빛이 그렇게 붉게 충혈된 눈에 따가울 수밖에 없었다.
기숙사까지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서 3정거장 정도를 걸어가면서 몸은 피곤하고, 폐인처럼 느껴지던 생활.
수현은 입가에 씩 미소를 띄었다.
‘그래도 이번 사냥은 보람이 있었어.’
바퀴벌레 같다고 놀라던 것도 잠깐이었다.
“상태 확인.”
< 지식을 통해 몬스터의 정보를 확인합니다. >
< 빌리그
종족 : 중형 벌레
레벨 : 9
공격력 : 3-15 방어력 : 25-45
생명력 : ???
타마할의 하수구에서 살아가는 벌레다.
모든 것을 먹어치우고 매일 알을 낳는다.
빛을 꺼려하지만 금방 적응한다. 불을 싫어하지만 약점은 아니다.
생존력이 매우 뛰어나고 나이를 먹을수록 크기가 커지면서 단단해진다.
때때로 출현하는 대왕 빌리그의 크기는 3미터에 달한다는 소문이 있다. >
수현은 빌리그라고 이름이 붙은 대형 벌레와 싸웠다.
데논의 검으로 아무리 내려쳐도 잘 죽지 않는 모습을 봤을 때의 당황이란.
하지만 타마할의 주민들로부터 빌리그의 약점을 미리 알아온 덕분에 뒤집어놓고 배를 찌르는 방식으로 제압할 수가 있었다.
빌리그를 비롯한 각종 벌레들의 공격력은 대단한 게 아니라서 둘러싸이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무지막지하게 해치웠다.
레벨을 한 개 올렸고 현재의 경험치 상태는 87.6%.
앞으로 조금만 사냥을 하면 10레벨이 될 수 있었다.
“크으. 진짜 심했다. 이 모습으로 도시를 돌아다닐 수는 없겠지.”
수현의 옷과 갑옷에는 하수구의 오물도 들러붙어 있었다. 미리 준비한 것을 빼기 위해 배낭을 뒤적거렸다.
“어디 보자. 여기 있구나.”
배낭에서 꺼낸 까만 봉지에 담긴 것은 물티슈와 깨끗한 평상복, 그리고 레쓰비!
물티슈를 이용해서 자신의 몸과 트레거 왕국 병사의 갑옷 세트를 닦아내고, 옷은 사람들이 없는 골목길에서 갈아입었다.
지저분하던 원래 입던 옷은 물품 목록에 집어넣는 것으로 대충 정리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레쓰비를 한 캔 따서 마시는 것으로 깨끗한 아침의 시작.
“제대로 씻지 못해서 찝찝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겠지.”
수현은 근처 분수대로 가서 간단히 세수를 하고 머리만 감았다.
이른 아침, 집집마다 음식을 하는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거리에 사람들이 돌아다녔다.
‘4일 중에 하루가 지났다. 매일 밤을 샐 수는 없겠지만 버티는 데까지는 버텨보자. 저녁에 해가 지고 나서 조금 자야지.’
따로 피로 회복을 위해 챙겨온 홍삼쥬스를 마시면서 거리를 걸었다.
하수구에서는 각종 껍질류와 더듬이, 작은 보석 하나, 광물을 조금 주웠다.
‘돈이 별로 안 될 것 같아. 아쉽기는 해도 지금은 몬스터를 가려가며 싸울 때는 아니야.’
타마할에는 식당을 비롯해서 많은 상점들이 있었다.
길가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표정만 하더라도 생동감이 느껴진다.
기쁨, 즐거움, 분노, 짜증, 귀찮음, 거만함.
말이나 개, 동물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의 주민들 역시 살아 있다. 나와 초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지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어쩌면 하늘 전장의 비밀과 관련이 있을지도.’
하늘 전장은 존재에서부터 많은 것이 베일에 싸여 있다.
수현은 당장은 궁금한 것도 뒤로 미룬 채 잡화점과 마법 상점에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손님.”
“네. 물건을 팔러 왔습니다.”
“어떤 겁니까?”
수현이 내놓은 물건들은 젬버를 사냥하면서 얻은 전리품들과 하수구에서 벌레들의 부산물이었다.
“오래된 은 장식이로군요. 다른 물품들 대부분이 쓸모는 없지만 몇 가지는 구매하겠습니다.”
젬버를 사냥하고 얻은 물품들은 주로 잡화점에서 팔 수 있었고, 마법 상점에서는 벌레들의 부산물을 처분했다.
수익금은 26골드.
빠르게 움직인 탓에 별로 시간을 소모하진 않아도 됐다.
“자. 이제 즐거운 사냥 시간이다.”
동쪽 성문을 나가서 수현은 돌아다녔다.
조금은 피곤하긴 했지만 들판에서 일어나는 젬버들을 보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몽땅 쓸어주마! 경험치들아!”
아침부터 도시 주변을 돌면서 안정적으로 사냥, 점심 때가 되었을 무렵이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이제 10레벨. 3일이 남았는데... 타마할의 사냥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민첩보다는 힘을 늘리자.”
하수구의 까다로운 벌레들을 제압하기 위해 공격력을 강화하는데 초점을 더 맞추기로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메시지창이 생겨났다.
< 검술 스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검을 다루는 기술이 향상되어 예리한 공격력이 8% 높아집니다. >
“좋군.”
젬버들을 베는데 훨씬 수월해졌다.
제대로 때리면 한 대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서너 번은 정확히 공격을 가해야 했다.
젬버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팔다리의 부상은 신경도 안 쓴다.
힘이 늘어나고, 검술 스킬이 향상되면서 젬버들을 잡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강해진 게 조금은 느껴지는구나. 이 정도라면 하수구에서도 속도가 확실히 오르겠어.”
수현이 내심 흐뭇하게 여기면서 사냥을 했다.
졸리고, 피곤했지만 강해지는 재미에 정신없이 푹 빠졌다. 그리고 오후의 한창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동쪽 성문에서부터 일단의 무리들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타마할의 주민이나 병사들이 아닌, 초인들 스물 두명으로 구성된 무리.
“우리가 이제 가는 곳은 소렌 산맥입니다. 다들 지휘를 잘 따라주세요.”
“예. 걱정 마십시오.”
어제 타마할에서 봤던 초인들이 사냥에 나서고 있었다.
“위험하다는 건 모두 알고 있을 테니 산기슭에서부터 천천히 수색을 하면서 올라갑시다. 150마리니까 서두르지 않고 오늘부터 매일 50마리씩만 사냥을 해도 될 겁니다. 안정적으로요.”
“예. 전부 각자 맡은 방위들을 잘 살펴봐요.”
“사제분들은 안전한 안쪽에서 치료에 전념해주세요. 절대 다치지 않게 하겠습니다.”
수현은 나무와 수풀 뒤에 몸을 숨겼다.
사냥에 나선 그들과 괜히 마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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