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의 1+1은 2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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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요하S
작품등록일 :
2015.12.15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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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6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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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25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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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쪽

- Chapter. 5 - 영웅 (11)

DUMMY

용의 것처럼 거대하지는 않지만 차분한 분위기가 주변에 깔린다. 빈틈이 없는 기세에 위협을 느낀 악마들이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난다. 스스로의 행동을 깨달은 뱌하카라가 이빨을 갈았다. 거구의 가슴이 울리며 커다란 고함이 터져나왔다.


"웃기지마라!"


"멍청이! 그렇게 함부로 달려들면...!"


이라가 제지할 틈도 없이 뱌하카라가 돌진했다. 순식간에 유지의 앞에 도달. 두꺼운 다리가 한뼘은 넘게 땅으로 파고들며 광폭한 일격이 뿜어져나왔다. 공기를 말그대로 찢어갈기며 대검이 질주. 그러나 대검의 궤적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갑자기 목표가 사라졌다. 칼을 휘두른 악마의 눈에 당황과 의문이 떠오른다.


"어이."


무게감 없는 가벼운 목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뱌하카라가 그것에 반응해 고개를 돌렸을 때, 유지는 이미 그곳에 있었다.


뱌하카라는 숨을 삼키며 반사적으로 팔을 휘둘렀다. 유지는 슬쩍 몸을 틀어 피했다. 동시에 갑주를 걸친 몸이 좌우로 갈라지며 수십개로 분열되었다.


"......!"


접혀있던 부채살이 퍼져나가듯 은빛과 푸른빛이 섞인 철갑의 몸체가 환상처럼 그림자를 만들어나간다. 동시에 뻗어지는 양손. 어떻게 방어해볼 수도 없다. 사방에서 밀려든 손바닥의 파도가 악마의 거체를 집어삼켰다. 일격 일격이 몸을 때리며 안쪽으로 경력을 밀어넣는다. 강제로 주입당한 힘이 공처럼 몸속을 뛰어다니며 서로가 충돌해 증폭.


악마의 몸이 풍선처럼 부풀어올랐다. 증대된 힘을 견디지 못한 육체가 폭발했다. 조각난 살점이 땅을 도색하며 피안개가 피어오른다.


이전에 바햐카라에게 펼쳤던 폭열심장에 환기공을 조합한 것 뿐이었지만 수십, 수백배의 공력으로 펼쳐진 기술은 그것만으로도 차원이 다른 위력을 낸다.


일격에 뱌하카라가 당했다.


이라의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를 경악케한 것은 뱌하카라를 한번에 날려버린 기술이 아니라 최초의 회피에서 보여준 유지의 움직임이었다.


허리춤을 쓸어오는 칼을 피하며 급가속. 날아오는 칼날 아래 그림자에 숨어 한순간에 사각으로 파고들었다. 상대의 공격흐름을 읽는 통찰력과 그것에 반응하는 집중력. 순간이동에 버금가는 급가속, 급제동의 신법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가라앉기 시작하는 피안개 속에서 한쌍의 푸른 빛이 이라가 있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유지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안면갑은 그야말로 흉악한 생김새였다. 입가는 삐죽삐죽한 모양의 이빨문양으로 덮여있고 코는 없다. 번갯불로 이루어진 두눈은 좌우로 찢어져 무시무시한 불빛을 뿜었다.


위기를 직감한 이라가 뒤로 물러난다. 허나 유지는 그녀를 놓아주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발을 박차 한달음에 이라의 정면으로 쏘아져들어갔다.


너무 빠르다. 이라가 이를 깨물며 양손을 들었다. 두 팔이 춤추며 화려한 쌍검술이 유지를 향해 쏘아져나갔다. 그에 맞선 유지의 선택은 그야말로 단순. 그는 갑주의 방어를 믿고 검날을 두드려 맞으며 밀고들어왔다. 이라의 전력. 수백년 내공의 정수를 담은 강기의 칼날이 갑주를 베고 철조각이 튀는데에도 무시한다.


도망치거나 피하면서 상대의 빈틈을 노리는 기술만 있는 줄 알았더니 힘을 이용해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는 전술에도 능숙하다. 이라는 그 와중에도 허리를 빼며 짧은 하단차기를 하는 식으로 대응했지만 유지는 오히려 더 빠르게 다리를 뻗어 충격량을 줄였다. 그리고 일보 더 전진. 손을 내뻗어 이라의 목줄기를 움켜쥐었다. 팔을 올려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무지막지한 악력이 목을 조인다. 한순간에 숨구멍이 막히며 기력의 흐름이 끊어졌다. 이라는 발로 가슴을 걷어차고 칼로 목을 찌르며 발악을 했지만 기력이 담기지 않은 움직임으로 철갑의 방어를 뚫는 것은 무리다. 안면갑 안쪽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영혼을 통째로 날려주지."


유지의 손에서 전력이 분출했다. 푸른빛의 전류가 이라의 전신을 내달린다. 고온, 고압의 물리력으로 물건을 파괴하는 불빛이 아니라 영체에 직접 공격을 가하는 선술(仙術)이다. 용이 뿜어내는 번개는 차원의 경계를 넘어 지옥의 본체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이라의 입이 고통으로 딱 벌어졌다. 악마의 의지와 힘이 한순간에 이 세계에서 강제로 추방당한다. 뿔이 가라앉고 붉은 비늘이 지우개로 지우듯이 사라졌다. 악마의 빙의가 해제되자 인간으로 돌아온 은아가 흰 연기를 피우며 늘어졌다.


영혼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지만 뱌하카라처럼 몸이 몇배로 부푸는 식의 극심한 변형이 없어서인지 숨은 붙어있다. 유지는 은아의 몸을 가볍게 땅 위에 눕혔다. 섬뜩한 신장의 눈이 마지막 상대로 향한다.


"다음은 네 차례다."


천여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여자의 눈에 떠오른 것은 극심한 공포다.


각각이 일인군대라고 말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패천역륜몰옥자 둘을 어린애 목을 비틀듯이 해치웠다. 천년을 산 용이라고 하더라도 저렇게 쉽게 상위절정고수 두명을 죽이지는 못한다. 거기에 바른마음가짐을 익힌 정신력은 지배는 커녕 어설픈 최면마저도 통하지 않는다. 눈앞에 있는 것은 심(心), 기(氣), 체(體)가 모두 갖춰진 완성된 무인이다.


압도적이다. 너무나 압도적이다.


상식을 초월한 괴물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로 상식을 초월한 괴물 밖에 없다.


식은 땀을 흘리던 천여화가 허리춤에 걸어두었던 지팡이를 뽑았다. 손을 휘두르며 입에서 알수없는 주문이 흘러나왔다. 남아있던 여의주의 힘이 지팡이에 깃든다. 그 끝에서 새어나온 기운이 일렁이며 문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허나 유지는 천여화가 수작을 부리는 것을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철갑으로 감싸인 발이 가볍게 땅을 찼다. 광풍과 충격파가 몰아친다. 유지는 순식간에 천여화의 눈앞에 멈춰섰다. 여자의 눈이 경악으로 커지지만 신경쓰지 않고 손을 들었다.


단련되지 않은 육체를 찢어내는데에는 무기도 필요없다. 손날로 목을 쳐서 잘라낸다. 그렇게 생각하고 팔에 힘을 주었다.


순간, 눈앞이 까맣게 꺼졌다.


빈혈로 인한 현기증이다. 몸에 걸친 용갑의 힘으로 고통을 경감시키고 상처를 봉합. 회복의 선술로 어느정도 기력을 회복했지만 한번 입었던 육체와 뇌의 충격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날카로운 일격이 완전히 어지러져 어설픈 손짓이 되었다.


목을 날리려던 손이 여자의 가슴께를 스치고 지나갔다. 헐렁하게 걸쳤던 옷이 찢어지고 하얀피부가 드러난다. 현기증에서 회복한 유지가 기겁을 하며 팔을 들었다.


"이런 제기랄!"


욕설을 쏟아내며 눈앞을 가린다. 무언가를 보지 않으려 애쓰는 듯한 몸짓이었다.


공격이 멎었다.


연유를 알 수는 없지만 천여화에게 그것은 하늘이 준 기회였다. 유지가 내보인 잠깐의 틈새에 술식이 완성되었다. 천여화가 뒤로 물러나며 크게 지팡이를 휘둘렀다.


"데바투무라!"


지팡이 끝에 달려있는 손의 손가락이 모조리 잘려나가며 허공을 날았다. 그 지팡이는 과거에 죽은 성자의 시체로 만든 초고등급의 성령법구다. 제물로 바쳐진 성자의 손가락이 재로 산화하며 공간이 비틀렸다.


"어딜!"


유지는 한쪽 손으로 눈을 가린채 나머지 손을 뻗어 천여화를 향해 내질렀다. 전기가 휘몰아치는 장력이 흑마법사의 심장을 노리고 날아갔다.


불꽃이 솟아올랐다.


콰앙!


폭음과 함께 푸른 전류가 허망하게 사방으로 흩어졌다. 유지가 쏘아낸 장력을 막아낸 것은 화염으로 몸을 감싼 거대한 검이다. 공간의 일렁임과 함께 불꽃이 커졌다. 불꽃의 고리가 확장되어간다. 그곳으로부터 천천히 무언가가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검의 동체가 드러나더니 손잡이에 다다라 붉은 피부로 감싸인 큰 손이 따라나왔다. 곧이어 한손이 더 튀어나와 공간을 벌린다. 두꺼운 팔뚝이 나오고 이어서 거대한 어깨와 상체, 아래로는 끔찍한 발톱이 달린 발과 통나무 같은 다리가 땅에 꽂힌다. 마지막으로 뿔달린 머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황금색 용포가 바람에 휘날렸다. 점점이 떠오르는 불꽃이 주변을 춤추며 휘몰아친다. 2미터는 족히 넘을 대검이 가볍게 회전하며 땅에 꽂혔다.


황금색의 악마가 은빛의 신장을 가로막는다.


유지가 멈춰섰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눈앞에 선 괴물에게 향해있었다. 측면에서 흑마법사의 기척이 멀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아쉽긴 하나 그쪽에 신경 쓸 필요도, 여유도 없다.


대산시의 시청.


이곳은 곧 멸망의 땅이 된다.


도시를 무너트리는 거대주술따위는 더이상 펼칠 수 없다.


유지가 말했다.


"우선 너한테는 고맙다고 말해둘게. 네가 주사위에 대해 말하지 않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니까."


악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삐죽삐죽 돋아난 새하얀 이빨이 번뜩이며 안쪽에서 새빨간 고온의 숨결이 날름거렸다.


데바투무라는 불꽃과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건 이쪽이 할 말이다.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군."


유지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한쪽에 떨어져있던 마총, 마야가 비명을 지르며 날아온다. 어깨부분의 철갑이 비틀리며 앙상한 손이 일어나 마야를 붙잡았다. 갑주의 보조수를 조종하며 반철괴룡(半鐵怪龍) 쇄아(鎖雅)가 유지에게 전음을 걸었다.


-조심해라. 저번과는 달라. 이번에는 거리가 멀어서 축지로 힘을 너무 많이 썼단 말이다. 게다가 저 싸움에 미친 투귀는 더 강해진 것 같고.


-알고있어.


유지는 고개를 끄떡이며 등에 걸려있던 창을 끌러내렸다. 살짝 손목을 돌리자 은색의 창이 위아래로 늘어난다. 3미터가 넘는 장창이 되어 손가락에 걸렸다.


데바투무라는 땅에 꼽아놓았던 검을 뽑았다. 어깨에서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칼을 늘어트렸다.


서로의 거리가 좁혀진다. 양쪽 모두 딱히 조심스러운 기색도 없이 평온하게 발을 내딛었다. 가볍게 발소리가 울린다.


어느샌가 시청을 덮고있던 결계는 깨진 상태였다. 보라빛이던 하늘은 제 색을 되찾았다. 검푸른 밤하늘에 구름이 유유히 흐르고 환하게 떠오른 보름달이 빛을 내리쬔다.


달빛 아래에 두 고수가 마주보고 섰다.


황금색 용포를 걸친 악마의 키는 평균적인 신장을 가진 유지가 열살배기 꼬마로 보일 정도였다. 유지가 데바투무라를 올려다보았다. 표정을 알 수 없는 안면갑 안에서 메마른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해볼까."


악마가 웃었다.


"좋지."


초음속의 검이 질주했다. 이완된 근육을 긴장시킴으로서만 가능한 최초의 일격. 은빛의 신장은 공간을 압축하는 듯한 이동으로 검을 피한다. 그 손에서 뻗어지는 은색의 빛줄기. 불꽃과 섬광이 마주치며 찬란한 빛이 흐드러진다.


데바투무라의 양손이 길게 뻗은 대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묵광의 손잡이 풍차처럼 회전하며 그 끝에 달린 몸통이 웅장한 울림을 내며 움직인다. 창끝을 흘려낸 대검을 폭풍처럼 내리쳤다. 그곳에서 솟아나온 막대한 검압에 맞은 편에 놓인 건물의 외벽이 반으로 갈라진다. 유지는 가볍게 몸을 틀어 공격을 피하고 연달아 찌르기를 날렸다. 기관총처럼 날아든 찌르기가 악마의 겨드랑이 사이로 빠져나간다. 창끝에서 뻗어나간 번개가 충격파와 함께 공간을 찢었다.


둘을 둘러싸고있던 건물이 으스러져간다. 박살난 벽의 파편과 유리조각이 폭풍우처럼 쏟아졌다. 반짝이며 떨어지는 유리를 튕겨내며 작은 검날이 앞으로 나아갔다. 데바투무라의 허리끝에서 일제히 솟아오른 어검이다. 칼끝이 기하학적인 도형을 그리며 맹렬한 기세로 유지를 향해 날아간다.


유지는 창끝을 튕겨내며 후방으로 이동. 다리를 접고 옆으로 달린다. 환기공이 발동. 그의 몸이 신기루처럼 움직이며 수십개의 분신을 생성해나간다. 빽빽하게 공간을 메우는 어검의 춤사위를 무시무시한 움직임으로 빠져나갔다. 퇴로를 막는 악마의 대검을 뛰어넘으며 동시에 창을 뿌렸다.


데바투무라는 안면을 덮쳐오는 창날을 대검의 손잡이로 막아내며 곧장 검을 휘둘러 유지를 쫒았다.


검의 길을 쫒은지 수백년. 인간일 때부터 검과 함께 살아왔다. 아침이 오면 검을 닦고, 낮이 되면 햇빛을 맞으며 검을 손에 익힌다. 전장에서는 목숨을 지키는 전우요, 일상에서는 꿈을 쫓게 해주는 이상이다. 인간을 벗어난 존재가 되어서도 한시도 품에서 떨어트려놓은 적이 없다.


악마의 손끝에서 펼쳐져나오는 것은 검의 예술이자 극의에 다다른 파괴의 기술이다.


대검은 크게 공간을 자르고, 작은 어검이 잘라낸 조각을 분해한다. 주변에 작용하는 염력과 불꽃은 절구가 되어 나머지 파편을 뭉갠다. 검사의 기술이 쓸고 지나간 곳에 남는 것은 오로지 본래의 모습을 잃은 재와, 먼지 뿐.


길다란 쇳덩이와 잘 갈아낸 날붙이가 불꽃처럼 퍼져나간다. 치고, 베고, 찌르고 당기며 뻗어낸다. 3차원에서 구현가능한 모든 공격이 유지에게 쏘아졌다. 그것은 이미 자연재해다.


파도가 몰아치는 듯한 검기의 폭발.


그리고 그것을, 피한다. 막는다. 흘려낸다.


모조리 방어한다!


허리를 틀고 옆으로 고속이동. 발을 뛰며 팔을 떨쳐내고 몸통을 회전시키면서 끊임없이 창을 휘두른다. 긴 장대가 원을 만들고 몸을 지키는 방어막이 된다.


상대의 공격을 인식하고 그것에 맞춰 대응한다. 위험하지 않은 공간을 찾고 그곳으로 몸을 움직인다. 유지는 침착하게, 끝없이 침착하게 두가지 행위만을 반복했다.


오로지 기본. 기본을 쫓고 기본을 탐구하며 기본을 구현해내는 이상적인 방어다.


데바투무라에 비해 기술의 정묘함이 떨어지나 유지의 몸에는 긴 세월이 만들어낸 또하나의 기적이 숨쉬고 있다.


철갑의 어깨에 달린 보조수가 악마를 가리켰다. 여자의 비명이 울리며 검은 기운을 뿌리는 총알이 작은 어검을 쳐냈다. 갑주의 틈새사이로 뿜어져나오는 번개가 불꽃을 잘라냈다.


수백년의 검도와 인간을 초월한 육체가 천년의 선도와 인간을 초월한 정신과 맞서며 폭음이 터져나왔다.


콰콰콰콰콰!


창(戈)을 들고 진군(趾)한다 하여 무(武)라 하고, 창(戈)을 그치게(止) 한다 하여 무(武)라고 한다.


서로 다른 형태의 무가 얽히고 설키며 파괴의 이중주가 모든 것을 파괴해나갔다. 악마와 신장 주위에는 커다란 반구형태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반구에 닿는 모든 것이 분쇄되어갔다.


파괴의 반구가 건물의 측면에 닿았다. 빵을 크게 한입 베어문 것처럼 외벽이 깎여나간다. 점점 건물의 안쪽으로 파고드는 전투의 영역. 고요하던 사무실의 안쪽에 폭풍이 휘몰아친다. 바닥이 들고 일어나며 안쪽에 퍼져있는 전선과 수도가 겉으로 드러난다. 전기가 튀고 물이 쏟아졌다. 종이와 책, 펜과 각종 사무용품들과 뒤섞여 건물 내부에서 미친듯이 휘몰아쳤다.


천장이 무너진다. 기둥은 두 쪽나 바깥으로 튕겨져날아가고 가스로 작동되던 보온기계들이 충격을 받아 사방에서 폭발이 일었다.


파괴의 반구가 완전히 건물 밖으로 빠져나갔다.


네모나던 건물은 깨끗하게 파여 아치형의 다리가 되었다. 애초에 그런 모양으로 설계되지 않은 탓에 양쪽에서 밀어붙이는 힘을 견디지 못하고 가운데가 부러진다. 건물이 안쪽으로 기울어지며 완전히 붕괴했다.


붕괴의 충격이 힘의 파형으로 변해 대기와 지면을 휩쓸었다. 뿌연 흙먼지가 악마와 신장을 덮었다. 천둥을 부르는 먹구름처럼 안쪽에서 번갯불과 불빛이 번뜩인다. 이내 먼지가 나선을 그리며 휘말려들어가더니 폭발. 한순간에 바깥으로 흩어져나간다.


폭발의 중심축에서 황금색과 은색의 덩어리가 양쪽으로 흩어져 나왔다.


두 덩어리가 시청 옆의 호수에 착지. 내공을 제마음대로 다르는 무공고수에게 수상비 정도는 가벼운 기술이다. 유지와 데바투무라가 물방울을 튀기며 호수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비명을 지르는 총알과 번개, 강기로 몸을 치장한 어검이 둘을 오고가며 불똥을 튀긴다.


그러다 데바투무라가 물보라를 피워올리며 급정지. 악마의 입이 열리며 안쪽에서 막대한 불꽃이 쏘아져나왔다. 일자로 쏘아진 불기둥이 호수의 표면에 착탄. 직선을 그리며 한순간에 호수를 가로질렀다. 엄청난 증기가 피어오르고 전설의 광경처럼 호수가 반쪽으로 갈라졌다.


간격을 두고 평행선을 그리는 수면. 유지는 일시적으로 생긴 두개의 벽을 지그재그로 박차며 순식간에 접근했다. 악마의 머리 위를 뛰어넘으며 정수리를 향해 은빛의 창날을 쏟아냈다.


두꺼운 대검의 옆면이 창날을 막았다. 창대만큼이나 긴 손잡이가 회전하며 검끝이 유지를 가리켰다. 하강하기 시작하는 유지를 노린 찌르기. 유지는 창을 휘둘러 칼을 걷어내며 더욱 크게 옆으로 움직였다.


팽이처럼 회전하던 철갑의 몸체가 다시금 호수에 발을 딛었다. 데바투무라가 고개를 돌려 은의 꼬리를 쫓았다.


악마와 신장의 사이에는 아름다운 누각이 물 위로 솟아있었다. 유지가 창을 고쳐쥐었다. 데바투무라 역시 대검을 가볍게 흔들며 균형감을 다시 잡았다.


둘의 생각이 일치. 두개의 무기가 엿가락처럼 늘어지며 가속했다. 난간을 뚫고 가슴을 노리는 창끝. 데바투무라는 칼날을 살짝틀어 창을 빗겨냈다. 그대로 앞으로 나서며 곧게 내려친다. 유지는 흡기공을 발휘. 검날에 찰짝 붙은 창을 옆으로 끌어 내려치기를 피한다. 누각의 바닥이 두개로 나뉘며 물보라가 터진다. 악마는 흡기공으로 붙은 칼날을 잡아당겨 유지의 자세를 무너트렸다. 기를 뿜어 흡기공을 파해. 짧게 찔렀다. 곧게 솟은 창대가 칼끝을 막는다. 막자마자 짧게 내쥔 창을 양쪽으로 휘둘렀다. 기둥이 부러지고 천장이 기울었다. 곱게 놓여있던 기와가 쏟아진다. 떨어지던 기와가 휘둘러지는 검날에 스쳐 가루가 되어 날아간다.


찌르고, 흘리고, 막고, 치고, 베는 동작의 간격이 짧아져간다. 악마와 신장의 움직임은 눈으로 시인할 수 없는 영역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둘 사이에 끼인 누각은 이미 형체가 없다. 기둥은 조각이 되고 조각은 파편이 된다. 파편은 먼지가, 먼지는 분자단위로 부서져 허공에 뿌려졌다.


창날이 악마의 이마를 스친다. 검날에 맞은 신장의 어깨가 부서졌다. 허나 상처가 늘어가면 늘어갈수록, 위기가 고조될수록 두 전사의 집중력과 기술의 정교함은 끝을 모르고 상승해나갔다.


길쭉한 창이 은하수처럼 뻗어나가고 묵직한 대검이 불꽃처럼 피어오른다. 더해지는 속도. 타악기처럼 연달아 울려퍼지던 굉음이 합쳐지기 시작한다. 스피커의 볼륨을 키우는 것처럼 충돌음이 높아져간다.


그 끝은, 무음────


대기가 둘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한다. 연속된 충격의 파형이 공기를 찢어내고 그것이 회복될 틈도 없이 이어지는 충돌. 진공의 공간에서 대검과 장창이 질주. 격렬한 운동에너지가 부딪힌다. 소리로 변환되지 못한 힘은 그대로 열로 전환. 만년한철로 만든 창과 지옥의 강철로 빚어낸 검이 용광로에 들어간 것마냥 달아올랐다. 불빛으로 이루어진 무기가 뒤엉키며 열기가 들끓는다. 둘이 밟고 있는 수면이 증발. 전장이 가라앉으며 호수의 밑바닥까지 꺼진다. 엄청난 대결의 후폭풍에 바깥에 있던 물이 안쪽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공간이 비틀린 것마냥 호수 한가운데가 푹 꺼져 물의 벽으로 이루어진 투기장이 생겨났다.


과한 열기와 진공, 폭발하듯이 터져나오는 충격파에 빛마저 산란. 악마와 신장의 모습은 이제 불그스레하고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뒤엉켜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속에서 두 괴물이 무기를 고쳐쥐었다. 내공이 용솟음치며 전력이 모인다.


찌르기.


찌르기.


창끝과 검끝이 한치의 오차도없이 일직선으로 맞부딪혔다. 악마와 신장의 몸을 타고 빠져나간 힘이 지면에 스며든다.


굉음이 터졌다. 운석이 떨어진 것만 같은 충격파가 사방으로 몰아닥쳤다. 지면이 원형으로 일어난다. 지반이 붕괴해 뒤집히며 솟아오른다. 중력이 역전된 것처럼 거꾸로 쏟아져내리는 물방울.


호수가 통째로 지면과 분리되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유지와 데바투무라가 크게 도약해 뒤로 물러섰다. 그들의 머리 위로 떠올랐던 호수가 폭포수처럼 쏟아져내렸다. 거대한 물줄기가 땅을 때리며 홍수라도 일어난 것처럼 주변을 휩쓸고 지나갔다. 고요히 달빛을 반사하던 호수는 간데없고 물과 진흙으로 뒤덮인 진창만이 그곳에 남았다.


물벼락이 떨어지고 난 뒤에 드러난 둘의 모습은 참혹했다. 데바투무라의 장포는 넝마가 되었으며 허벅지가 크게 파여 피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우뚝 서 있던 뿔 중 하나는 뿌리부터 뽑혀나가 흔적만 남아있다. 유지 역시 몸에 걸친 갑주가 뜯겨나가 촘촘한 섬유질의 금속으로 덮여있는 내부의 몸뚱아리가 드러나 있고 안면갑주의 4분의 1이 날아가 맨얼굴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양쪽 모두 전투력이 감소할 정도로 치명적인 피해는 없었다.


둘의 힘과 속도는 막상막하.


기술이라는 요소를 계산한 전투력에서는 데바투무라가 유지를 압도한다. 검술로 표현되는 공간장악력과 내공을 다루는 데바투무라의 기술은 그야말로 신의 영역에 도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나 유지에게는 무기의 특성에서 얻은 미묘한 사정거리의 우위와, 거리를 마음껏 조절할 수 있는 타고난 신법이 있었다. 보다 높은 곳에서 전투의 흐름을 제어할 수 있는 고차원적인 이점. 그리고 그 이점을 완벽하게 이용할 수 있는 강인한 정신이 전투력의 간극을 메꿔주었다.


격렬한 난전 뒤에 찾아온 잠깐의 휴전. 데바투무라는 호흡과 내기를 조절하며 온몸의 감각을 재확인했다.


상태가 좋지 않았다.


싸움에서 얻은 피해 때문이 아니다. 영속력과 주술의 힘을 빌려 잠깐 이 세계에 나타날 뿐인 이세계 주민으로서의 한계다.


그것을 아는 유지는 맞서 싸우면서도 적당히 시간만 끌 뿐 목숨을 건 공격은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결국 이도저도 아닌 채 돌아갈 뿐이다.


데바투무라는 이 싸움을 결코 허망하게 끝낼 생각이 없었다.


그것을 위한 수는 찾았다.


악마가 칼을 끌어올렸다. 육중한 대검을 얼굴 옆으로 치켜들며 자세를 낮췄다. 황금색 눈이 유지에게로 향했다.


"끝을 보자."


막대한 기력이 퍼져나왔다. 장포가 펄럭였다. 무시무시한 압력에 꺼지는 지면. 악마의 전신에서 열기가 끌어올랐다. 젖어있던 진흙이 순식간에 바싹 말라 가뭄이 든 것처럼 갈라졌다. 세로로 눕혀놓은 대검이 휘황찬란한 기운으로 물든다. 그러나 그 검끝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유지가 아니었다.


데바투무라가 뿜어내는 살기는 한때 대도시의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쓸모없는 돌무더기일 뿐인, 시청을 향하고 있었다.


그 의도를 깨달은 유지의 입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이 자식, 치사하게...!"


번개같이 움직여 시청의 앞을 가로막는다. 데바투무라가 웃었다.


"네 녀석이 할 말은 아니지."


악마가 노리는 것은 시청이 아니라 무너진 돌무더기 속 어딘가에 쓰러져있을 유미와 유나였다. 고도의 경험을 쌓은 악마는 자신과 싸우던 와중에 유지가 특정한 방향으로 충격이 미치지 않도록 은근히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곳으로 최대의 공격을 쏟아넣어 순수한 힘의 대결로 몰아간다.


힘의 크기는 서로 비슷하나 제어력에서는 데바투무라가 위, 집중력에서는 유지가 위에 있다. 허나 변수는 그것 외에도 얼마든지 있다.


데바투무라는 도박과도 같은 승부를 걸어온 것이다.


유지 역시 데바투무라를 따라 힘을 끌어올렸다. 갑주가 아가미처럼 열리며 안쪽에서 뇌기가 튀었다. 오른팔에 붙어 있던 용의 머리가 바깥으로 벌어지며 앞으로 튀어나왔다. 용의 입가에 모이는 뢰광구(雷光球). 주변의 수분이 응집되며 새까만 먹구름이 신장을 둘러쌌다. 그 안에서 보이는 것은 길게 찢어져 번뜩이는 무시무시한 두 눈과 끝을 모르고 커져가는 번개의 공 뿐이다.


반대편에서는 불꽃의 화신이 용암으로 이루어진 검을 치켜들고 있다. 지옥에서 쌓은 극양지기(極陽之氣)를 수백년간 모아 빚어낸 내공이 집약되고 압축된다.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힘은 그것이 움직이고서 흘리고간 찌꺼기에 불과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대기가 들끓고 젖어있던 주변의 지면이 가뭄이라도 맞은 듯이 갈라져 사방으로 균열을 뿌렸다.


호수가 있던 지표면 위로 두개의 원이 그려졌다. 번개를 품은 먹구름이 부풀어오르고, 바짝 말라비틀어진 대지가 불타는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커지는 두개의 공간.


두 원의 경계가 합쳐지고 교집합이 태어나는 순간, 양쪽에서 최후의 일격이 뿜어져나왔다.

데바투무라가 검을 내지른다. 검의 몸체를 감싼 강기가 폭발적으로 부풀어오른다. 파괴의 물결이 되어 일직선으로 뛰쳐나갔다.


염화지검공(念化之劍功) 대초열지기(大焦熱地技)


황진흑용진검령(煌進釛熔瞋劍靈)


유지가 한 손에 모인 광구를 앞으로 뻗었다. 용의 아가리가 찢어지며 뇌신의 포격이 터져나왔다.


뇌룡선술(雷龍仙術) 오행파법(五行破法) 금기천도(金氣天道)


뢰하황전오살식(雷河㠩電鏖殺息)


검마의 파괴기와 뇌룡의 숨결이 맞부딪혔다. 불꽃의 기둥이 수평을 그리며 내달리고 전류의 물줄기가 뱀처럼 지면을 누볐다. 화염과 번개의 초고온에 복사열의 폭풍이 휘몰아친다. 세상이 붕괴하는 듯한 굉음이 귀청을 찢었다.


거대한 힘과 거대한 힘이 대항하며 그 종점에는 파멸의 영역이 생겼다. 뇌기와 화기. 법력과 기공이 뒤섞여 둥글게 퍼져나간다. 서로 밀어붙이는 통에 가운데에 끼인 공간은 지축에 끼인 것 같은 압력에 짓눌렸다. 탄소가 금강석으로 바뀔 수준의 충돌. 공 형태로 밀려난 기운이 지면을 판다. 용암이 넘쳐흐르고 기화된 물질이 원령처럼 떠돌았다. 신기루처럼 일그러지는 공간. 자연이 내지른 비명이 하늘을 뚫고 솟구친다.


"훕!"


데바투무라가 숨결을 내뱉으며 팔에 힘을 주었다. 두꺼운 악마의 근육이 맥동하며 핏줄이 튀어오른다.


시간의 힘은 절대적이다. 재능이건, 노력이건, 방법이건, 시간이 이루어낸 업적을 한순간에 넘어서려고 하는 것은 백만대군을 홀로 막아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억겁의 시간이 만들어낸 무의식 반응이, 검날이 종이를 관통하는 순간의 시간을 정확히 계산해낼 수 있을 정도의 섬세함으로 공력을 통제.


무한한 변수가 존재하는 전장에서와는 이야기가 다르다.


순수한 일 대 일의 기량 대결. 유지와 용에게는 데바투무라가 걸어온 전투의 시간을 뛰어넘을 것이 없었다.


멸망의 구체가 조금씩 유지가 있는 쪽을 향해 나아갔다.


그 순간에 데바투무라는 승리를 확신했다.


작은 구멍이 커져 댐을 무너트리듯, 평행을 잃은 팔씨름의 형세가 한순간에 종막으로 치닫듯, 팽팽히 이어지던 힘의 균형은 미세한 흔들림 하나로 결과가 결정된다.


이겼다.


그렇게 생각한 악마가 전신의 힘을 다시 쥐어짜 승부를 마무리 지으려 할 때였다.


신장의 몸을 감싸고있던 철갑이 변형했다. 등쪽의 갑주가 갈라지며 안쪽에서 피투성이의 유지가 바깥쪽으로 튀어나왔다. 패배가 결정되자 목숨을 구제하기 위해 도망쳐나온건가 싶었지만 아니다. 데바투무라의 전방에서는 여전히 번개의 방류가 불꽃의 파도를 견뎌내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신경이 분산된다. 무너트렸던 승기를 끝까지 몰고 갈 타이밍을 놓쳤다.


유지가 데바투무라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잘려나간 팔다리에는 가느다란 쇠막대가 팔과 다리처럼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갑주 바깥으로 빠져나온 쇳덩이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힘없이 늘어질 뿐이다. 유지는 남은 한 발로 땅을 박차 데바투무라와의 거리를 좁혔다.


일 대 일로는 이길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대 일이다.


신장의 힘은 순수하게 용의 것이다. 유지는 단지 그 힘을 다루기만 할 뿐. 제어력이 떨어지기는 하겠지만 잠깐 정도라면 용 혼자의 능력으로도 충분히 버틸 수 있다.


그 사이 홀로 떨어져나온 유지가 전력을 쏟고 있는 데바투무라의 빈틈을 찌른다.


그것이 유일한 승기.


마지막 승부수다!


"우오오오오!"


유지의 입에서 처절한 고함이 터져나왔다. 무지막지한 충격파가 몸을 갉아내는데도 멈추지 않는다. 피부가 뜯겨나가고 상처가 벌어졌다. 전신에서 피가 뿜어졌다. 달려나가면서 청년은 용에게 넘겨받은 힘을 그러모았다. 몸속에서 소용돌이치던 내공이 손바닥으로 모이는 것이 보였다.


"크윽!"


데바투무라가 이를 악물며 신음성을 흘렸다.


전방에 신경을 썼다간 옆에서 달려오는 유지에게 당한다.


유지에게 신경을 썼다간 전방에서의 힘싸움에서 밀려버린다.


어떤 수를 쓰던 최악의 결과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역전의 용사는 그 순간에도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했다.


유지가 빠져나온 덕에 전방에서 밀어닥치는 용의 숨결은 제어력의 부족으로 위력이 약간 경감된 상태였다. 그 힘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전력을 조절하면서 남은 힘을 그러모아 방어를 취한다!


초고속으로 커브를 도는 차 안에서 백미러의 각도를 조절하는 것처럼, 단순하면서도 위험한 곡예가 데바투무라의 몸속에서 펼쳐졌다.


"하아아아앗!"


유지가 비어있는 악마의 옆구리를 향해 찔러들어간다. 그 역시 다른 행동을 취할 여유는 없었다. 불꽃을 향해 몸을 던지는 부나방과 같이 달려들 뿐이었다.


누런 장포자락이 움직였다.


데바투무라의 곡예가 성공했다. 바닥에서 새빨간 그림자가 솟구쳐올랐다. 악마의 꼬리가 유지의 몸통을 향해 쏘아졌다.


기공을 담아 날카롭게 벼려낸 꼬리의 일격은 명검의 찌르기와도 맞먹는다. 방어 없이 맞았다간 관통상에서 끝나지 않는다. 단박에 상체와 하체를 분리해낼만한 위력.


그 필살의 일격이 적중하기 직전, 유지가 내공을 담은 손을 휘둘렀다.


측면으로 장력을 발사.


"......!"


손바닥에서 생겨난 추진력이 유지의 몸을 옆으로 밀어냈다. 데바투무라가 질러낸 공격은 유지의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충격으로 밀려나가며 유지가 비어있는 손가락을 까딱였다.


비명과 함께 날아온 마총이 손아귀에 잡힌다. 거리는 이미 충분히 가깝다. 자신이 발사한 총알에 자신이 맞는 일이 벌어질 일은 더이상 없다.


허공을 친 데바투무라는 자신이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장을 시청에서 떨어진 호수 방향으로 옮긴 것도, 시간을 끄는 전법으로 자신을 초조하게 한 것도, 충격파의 각도를 조절해 유나와 유미의 존재를 깨닫게 만들은 것도, 모두 유지의 계획 안에 있었다.


싸움을 끝내기 위해 힘싸움이라는 방법을 선택했을 때 이미 데바투무라는 진 것이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던질 정도로 감정적이면서 필요하다면 그 가족마저 미끼로 던질 만큼 냉철하다.


자신의 욕심과 승부에 집착할 뿐인 패천역륜몰옥자로서는 꿈에도 그릴 수 없는 사고의 유연성과 시야다.


전술이라는 작은 국면에서는 분명히 데바투무라가 유지를 앞선다. 하지만 전략의 단계에서 지고 들어가서야, 도저히 이길 수단이 없다.


완전한 패배다.


유지가 총구를 돌려 데바투무라를 가리켰다. 예의 악동같은 미소가 떠오르며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Go to hell!"


데바투무라는 씁쓸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 자식, 재미없는 농담을......"


저주의 총탄이 악마의 몸을 꿰뚫었다. 영속력을 갈취하는 저주가 기력을 흐트러트린다.


번개를 뿜어내던 용이 스스로의 전력을 쏟아냈다. 거세게 흐르는 번개의 강줄기가 불을 집어삼킨다. 어마어마한 폭음이 터져나오고, 빛줄기가 데바투무라의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유지는 고온 고앞의 전류가 만들어내는 대기의 폭풍우에 휘말려 멀찍이 날아가 가운데가 뚝 부러진 처량한 나무 등걸에 몸을 들이 받았다.


쿨럭 쿨럭 피를 토해낸다. 한계였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이, 그리고 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어떻게 움직이는 지도 모르고 나무에 기대어 몸을 일으켰다. 껌뻑이는 눈꺼풀을 들어 앞을 보았다.


새하얀 달빛이 내리쬔다. 그 아래로 불타오르는 대지가 일자를 그리고 있었다. 대지의 가운데에는 커다란 구멍이 파여있고 안쪽에서 녹아내린 흙더미가 끓어오른다. 그리고 사방에 널려있는 무언가의 파편. 사위는 조용하고 하늘은 별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끝없이 높았다.


어디선가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난장판 속에서도 살아남은 녀석이 있는 모양이다. 벌레의 작은 외침이 유지에게는 싸움의 끝을 의미하는 종소리처럼 들렸다.


서늘한 바람이 분다. 유지는 그 바람에 몸을 맡기고 다리에서 힘을 뺐다. 갈라진 입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쇄아야. 뒷처리를 부탁..."


그것이 끝이었다.


유지의 몸이 털썩, 바닥에 쓰러졌다.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훨씬 시간이 많이 걸렸네요... 지금까지 이 글을 쓰면서 한줄 한줄 쓰기가 이렇게 어려운 화는 처음이었습니다. 분량도 최초의 예상보다 훨씬 많이 늘어났고... 오래걸리긴 했는데 진짜 힘들었어요. 우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ㅠㅠ


그래도 어떻게 마지막 화를 마무리하게 되었네요.


앞으로 에필로그 한 편과 외전 한 편으로 이번 에피소드는 막을 내리게 될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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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 Chapter. 4 - 인연(9) +1 18.03.07 266 5 9쪽
95 - Chapter. 4 - 인연(8) +1 18.02.16 245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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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 Chapter. 4 - 인연(5) +3 18.01.22 259 4 9쪽
91 - Chapter. 4 - 인연(4) +2 18.01.15 260 7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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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 Chapter. 3 - 낭인(浪人)(4) +2 17.11.13 328 8 8쪽
85 - Chapter. 3 - 낭인(浪人)(3) +2 17.11.11 300 7 9쪽
84 - Chapter. 3 - 낭인(浪人)(2) +1 17.11.06 336 7 10쪽
83 - Chapter. 3 - 낭인(浪人)(1) +1 17.11.05 355 8 8쪽
82 - Side Chapter - 안지혜 +2 17.10.31 333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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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 Chapter. 2 - 소울링크(1) +3 17.10.16 337 7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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