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126)제18장 사일록의 고뇌
일시에 조용해졌다.
간헐적인 숨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여기에 대해서 누구도 일언반구조차 항변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황상 그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사일록이 밝힌 말이 진실이란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었다.
만약 사일록이 거짓말을 했다면 지금 당장 생포되어
어디론가 이끌려가고 말았을 것이다.
저들이라면 얼마든지 그럴 수가 있었다.
한데 그들은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들은 사일록에 대해서 어려워하고 있었다.
아니 두려워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정확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말을 함부로 하다니 이건 말도 되지 않는
법이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보다 황실과 국법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일록이란
인물이 그 모든 걸 어겼다.
황족들이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 국법을 어긴 셈이었다.
그러나 황족들이나 병부상서나 모두가 잠자코 있다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가?
지금 사일록은 황족을 향해서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말을
내뱉은 것이었다.
책임 질 수가 없다면 저런 허튼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저런 허튼 소리를 하지 않을 사람이 했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었다.
더욱 문제는 그 어느 누구도 저 멀에 항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라도 나서서 짹 하고 소리라도 쳐야 할
입장이었다.
“사대인? 지금 우리더러... 거짓말을 했었다고 말 한
것인가?”
“그러하옵니다, 숙녕왕 전하.”
주찬은 잠시 멈칫했다.
사일록의 어감에서 자신감에 차 있는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니 여기에 모인 모두가 느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이토록 조용한 것이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장난을 치던 모용충과 연묘화까지
조용한 시선으로 사일록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탓이었다.
모용충과 연묘화는 순간 움찔했다.
그들의 어깨에 따스한 기운이 넘쳤기 때문이었다.
“걱정 하지 말거라.“
윤슬아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양손을 그들의 어깨 위에
올려놓으며 다독거렸다.
“아아, 모두 조용히! 그럼 어디... 사대인이 말을 꺼낸 그 말!
우리가 거짓말을 했다는 그 이유나 어디 한 번 들어 보세.”
주교가 마무리를 잘 해냈다.
일제히 사일록을 노려보고 있는 저것이 화살이라면 그는
이미 고슴도치가 되어서 나가 떨어졌을 것이다.
“여보게, 사대인? 이제 새해(음력)도 얼마 남지 않았네.”
숙녕왕 주찬이 은근하게 위협을 가했다.
“그 다음 새해가 오더라도 사건 해결은 해야 하지 않사옵니까,
전하?”
사일록이 노골적으로 진실을 드러내자 할 말이 없었다.
사실 그가 말하는 것이 진실이기 때문이었다.
진실을 밝히지 않고 사건을 마무리 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건 살수국의 창설 의지와 그 규범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소신이 허튼 소리를 한다고 보시옵니까? 제가 가지 정보는
수하들이 몇 개월 동안 고생고생하면서 알아온 진실이옵니다.”
여기서 일단 끊고 나서 사람들의 동태를 살핀 이후 곧 이어
나갔다.
“먼저 말하자면, 이곡상에 대한 경로는 오리무중이옵니다.
허나 종천상은 하현 마을, 아... 하현 마을은 북경과 하북성의
경계 지역에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옵니다. 거기에서 무려 두
달 하고도 열흘 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종천상은 애초에
북경에 들어오지도 않았다고 하옵니다.”
갑자기 냉기류가 흘렀고, 주룡과 반옥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곧 희열이 번지는 것이 주룡의 얼굴에 선명하게
나타났다.
하나 반옥의 표정은 다시 본래의 차분한 모습으로 돌아왔을
뿐이었다.
사일록은 반옥을 되도록 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태연하게 사람들의 다음 반응을 기다렸다.
그때 의외로 모용경이 나섰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명확하고 뚜렷한 증거가 있습니까,
사대인?”
“그렇군! 증거는 없지 않나? 그리고 과인은 분명히 그 자를...
사흘 전에 보았네. 내 눈으로 똑똑히 말일세.”
숙녕왕 주찬의 주장이었다.
“그렇네. 난 나흘 전에 보았다네, 이 두 눈으로 분명하게!”
영평왕 주교도 거들고 나섰다.
“본 공주는... 이틀 전에 보았어요, 사대인.”
주영평까지 거들고 나서자 졸지에 사일록은 궁지에 몰리고
말았다.
그들이 처음 진술서 작성에 임하면서 밝혔던 그 날자가
정확했다.
다른 사람들도 서로 수군거리며 사일록의 편파적인 태도에
반기를 들 태세였다.
점점 사태는 악화되어 갔고, 상황은 불리하게 되어가고
있었다.
하나 사일록은 태연하게 버티고서 해명을 시작했다.
“아, 물론 당연히... 증거가 있사옵니다.”
그 한 마디에 모두가 잔뜩 긴장했다.
박혁로가 두 장의 용모파기를 건네주자 그것을 숙녕왕과
영평왕에게로 건네주었다.
“거기에 표시가 되어 있고, 백성들의 이름이 직인처럼 자필로
적혀 있을 것이옵니다. 한데 이곡상의 용모파기는 깨끗하옵니다.
하나 종천상의 용모파기 뒤편에는 빼곡하게 증언록이 적혀
있사옵니다. 두 달 하고도 열흘 전에 분명히 하현 마을에서
보았다는 것이옵니다.”
“됐어!”
국주 주룡이 박수를 치면서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형님들, 그리고 평아야? 아, 그리고 병부대인? 그 외의
다른 사람들 모두... 공식적으로 감금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는 것을... 다른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두 분
형님도 인정하죠? 평아, 너도?”
갑자기 조용했다.
주찬과 주교가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 글씨체는 조작할 수가
없는 명확한 백성들의 삐뚤삐뚤한 필체였다.
그 어느 누가보아도 배우지 못한 백성들의 필체가 틀림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들이 믿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은 하현 마을
누구누구라고 이름까지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었던 것이다.
거짓 보고를 하고 증거를 들이댔다면 거길 당장 파발마를
보내서 알아보면 금세 들통 날 일이었다.
다시 말해서 황족을 향해 거짓말을시켰다가는 그 이후
형벌이 어떤 줄 삼척동자도 아는데 누가 감히 거짓을
아뢰겠는가?
주룡조차도 사일록 편을 전적으로 들지는 못할 것이다.
“아니 그럼 대체 내가 보았던 것은 누구였지?”
“저도 그렇습니다, 큰형님? 대체 난 누굴 본 것이지?”
주찬과 주교가 덩달아 어리둥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천혜공주 주영평도 의아함과 의심스러운 눈길로 어딘가를
모호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록이 보기에 저들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았다.
여기서 사일록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하나 그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꿋꿋하게 지키고
있었다.
주영평은 다시 생각해도 이상했다.
그녀는 염치수가 살해되기 이틀 전에 종천상을 분명히
보았다.
그때 시종들이 들어와서 야식과 차를 준비하여 모든
사람들의 탁자에 내려놓고 조용히 물러갔다.
황실에서 주찬이 직접 데리고 왔다던 그 시종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시종은 여러 번 차를 나르고 따르고 찻잔을 거두어가곤
했다.
익숙한 행동반경이었기에 사일록은 다시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의문점 하나는 있었으나 그걸 무시했다.
왜냐하면 그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일록은 박혁로와 모용이슬, 육경과 추몽향의 수고에 감사의
표시로 눈짓을 보냈다.
그리고 놀랍게도 사람이 다 모인 자리에서 칭찬했다.
“자네들은 모두 수고했어. 오늘은 가서 편히 들 쉬어. 그리고...
여러분들은 가택 연금을 하겠습니다!”
일방적인 선전포고였다.
그것도 황족과 병부대신을 향하여!
第 十八 章 사일록의 고뇌(苦惱)
사일록은 홀로 집무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여유롭고 자신감에 넘치는 태도였지만 실상
그의 마음은 매우 무거웠다.
운이 좋게도 박혁로와 다른 일행들이 아주 좋은 단서를
제공하여 저들을 다시 잡아둘 수가 있었고,
그나마 체면을 구기지 않았다.
하나 지금 용의자들은 폭약을 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떤 일이든지 도화선에 불만 붙인다면 사일록을 날려버릴
수도 있었다.
사실록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하루 정도 자지 않는다고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다.
최대한 이레 동안 자지 않아도 충분히 버틸 수가 있었다.
하나 박혁로와 모용이슬, 육경과 추몽향이 가지고 온 단서로서
현재 상황은 끝이었다.
적절한 시기에 더 이상 단서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실패로
이대로 그냥 흐지부지 끝나고 말 것이다.
저들을 지금은 거주지로 보내서 잠을 자게하고 이른 아침에
모이라고 했지만 정말 다급했다.
‘아니 조수사관과 여수사관은 대체 뭐하는 거야? 아니,
아니, 섭수사관이 뭔가 찾아내야 하는데.......’
너무나 답답하여 벌떡 일어나서 창가로 향하여 문을 활짝
열었다.
살얼음이 얼 것 같은 차가운 냉기가 온 몸을 감싸고서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번쩍 정신은 들었으나 그의 뜨거운 열정을 식혀주지는 못했다.
그는 지금 너무나 초조하여 볼타 오르는 불길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사건 미결, 이 한 마디가 지금 그의 뇌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오늘 이 밤, 그가 얼마나 괴로워하며 밤을 샐 것인지 누구도
모를 것이다.
‘달은 여전히 밝고 화사하구나.......’
오늘따라 왜 달빛이 처량하게 보이지 않고 화사하게 보이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여인향은 본 뜬 것을 보내고, 비검의 자루 부위의 잘못된 것도
지적하여 조석무에게 모조리 보냈다.
잠시 동안 검시실의 검시 침상에 기대어 멍하니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여긴 정말 좋다.
마음에 쏙 들었다.
그럴수록 불안했다.
본래 좋은 일에는 언제나 불행이 따르기 마련이라고 누가
농담을 했던가, 속담이던가?
‘하여튼, 왜 마음이 이렇게도 허전하지? 뭔가... 빠진 듯해.’
다시 한 번 주변을 살펴보았다.
분명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모조리 마쳤다.
그런데 왜 이리도 마음이 허전하고 마치 톱니바퀴 한 조각이
빠진 기분이 드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다시 살펴보았다.
검시실에 있는 물건들을 일일이 기억하기 위하여 다시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생각으로 기억해 나가기 시작했다.
‘검시대(해부 침상), 검시용 내 도구, 진열된 장식장들에는
화학 약품과 약초 등이 있고... 용기(容器)도 있으며 그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었다. 아, 물론 아직도 이곡상의 시신 발에
묻은 것은... 지금도 그 해독 작용이 진행되고 있지만... 시간이
필요해.’
그때 음향(음성) 천리음성전환기의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랐다.
“예, 차주님?”
“아직도 그 흙인지 뭔지 알아내지 못했나?”
‘지금이 대체 몇 신데 아직도 주무시지 않고......!’
대답을 잊고서 멍하니 다른 생각에 일시에 빠졌다.
“뭐하나, 내 소리 듣지 못했나?”
여인향은 깜짝 놀라서 얼른 대답했다.
“아, 예... 이틀 정도면.......”
“이틀, 이틀 같은 소리하고 있네! 여수사관 정신 차려! 잘 들어?
오늘 유시 말엽(오전 7시)까지 완성해! 이건, 명령이야!”
그리고 끊었다.
잠시 동안 멍하니 서서 있다가 얼른 화학 약품 처리를 하는
용기로 달려갔다.
아직은 시간이 필요했다.
한데 사일록은 오늘 오전까지 처리하라고 명령까지 내렸다.
그녀는 얼른 서책들이 꽂혀있는 장식장으로 향했다.
더 빨리 성분 분석을 위해서는 다른 약품이 존재할 것이다.
서책을 뒤지기 시작했다.
한데 여전히 마음은 송곳에 뚫린 듯 아리 했다.
대체 무엇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곡상의 신발에 묻은 그 흙의 성분 분석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뭔가 이리도 허전한가?
스스로를 뒤돌아보아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금 전 하던 말을 계속했다.
“내 외출복... 장식품, 그리고 반지 목걸이 팔찌도 있고......?“
갑자기 숨을 멈추었다.
자신도 팔찌를 찬다.
한데 왜 팔찌란 단어에 이리도 숨이 막힐 듯이 흥분되는
것인가?
‘뭐, 뭐, 뭐였지?’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가슴을 탕탕 내리치며 다시 팔찌를 향해 시선이 갔는데
이질적인 것이 있었다.
동공을 흔들어 놓는 그 무언가가가 거기에 있었다.
순간 모든 기능이 정지했다가 펄쩍 뛰었다.
“아이쿠! 이런. 내 정신 좀 봐라! 제기랄!“
조석무는 점점 완성되어 가는 두 개의 살인 무기를 보면서
흥분에 젖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드디어 살인무기를 보게 되는구나 싶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어서어서, 끝내야 한다.
어서 끝내서 완성하여 차주에게로 가져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기라도 한 듯이 흥분의 절정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슴이 조여 온다.
흥분의 도가 넘어서 협심증이라도 생긴 듯이 가슴이 조여
오고 숨도 가빠 온다.
‘후욱, 후욱... 다 됐어, 다 됐어!’
쓱쓱쓱.
마지막 사포(砂布)질로 마무리를 하면서 빛나가는 살인무기가
점점 완성되어 드러나자 놀랍게도 그 반대로 서서히 흥분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점점 침착성을 되찾고 완성된 무기들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런 감정이 이어나지 않았다.
비검을 보는 순간 숨이 막혔다.
숨겨져 있는, 아니 숨겨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화’ 문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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