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143)제5장 수사관들의 동분서주
第 五 章 수사관들의 동분서주(東奔西走)
봄비가 내렸다. 흥미로운 파란 하늘에서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란 존재는 먹구름을 몰고 와서 불청객처럼 내리는 것이
당연했다.
한데 파란하늘이 보이는 와중에도 봄비가 촉촉이 대지를
적셨다.
봄 처녀가 숫총각 애간장을 녹이듯이 그렇게 가슴에
스며들었다.
업무에 지쳐서 녹초가 되어 창밖을 보며 식히고 있는 섭문은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구름은 음흉한 총각 새끼들처럼 시커먼데 비는 왜 이리
촉촉해?’
피식 웃었다.
그러다가 간혹 회의가 들곤 했다.
한 해가 갔고, 한 살이 더 들었다.
이제 이십 오 세가 되었는데 여전히 그는 혼자였다.
올해 들어서 유독 혼자라는 게 쓸쓸했다.
가족들은 이제는 포기하고 아예 재촉하지도 않고 있었지만
그게 더욱 가슴 아팠다. 왠지 모르게 요즘 들어서 쓸쓸함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했다.
가을을 타는 것도 아니고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싱숭생숭 하는지 모르겠다.
‘가야 하나?’
의문을 달자마자 무거운 책임감이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혼인(婚姻)을 하지 않고 자식을 생산하지 않는 것은
가문에 누가 되는 것이었다.
갑자기 힘이 쭉 빠지면서 아무 것도 하기 싫었다.
이제부터 서류 심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하는데 이렇게
힘이 빠져서야 어디 제대로 일이나 하겠는가?
“휴우.......”
봄은 계절의 시작이고 계절의 여왕이기도 한데 저 봄비를
보니 더욱 마음이 허전했고 쓸쓸하기만 했다.
‘계절의 시작? 이런, 멍청이!’
자신의 머리를 탁 쳤다.
그 말이 갑자기 가슴에 와 닿았다.
일순 그는 번개처럼 다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잊고 있었다.
무조건 무언가 찾으려고 한 것을 후회했다.
자신의 무지(無知)라고 생각했다.
분명히 어딘가에 서류로 지시했거나 보고를 받았든지
하는 시점이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몰라서 실종이나 혹은 매정한 부모들의 자식
판매(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까지
보고를 받았다.
하나 그 보고서는 보관용으로 작성한 서류가 남아 있을
것이다.
“개보다 못한 짓이지! 근데 섭문?! 이 바보! 멍청아!”
팍팍팍!
연신 자신의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왜 그걸 먼저 생각해내지 못했는지 한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연신 자신의 머리통을 쥐어박으며 서류 조사를 면밀하게
검토해 나가기 시작했다.
조석무는 그 하얀 막대기, 일종의 작은 연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전번 것과 비교, 분석, 조사하다가 문득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하나 갑자기 그 생각이 사라지고 말았다.
‘아닌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잔해물질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런 걸 만드는 작자는 노련한 전문가가 아니라면 어림도
없었다.
천하에서도 연금술로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자만이 이걸
만들 수가 있었다.
조석무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그토록 만나기 어려운 물건이었는데
오늘 다시 한 번 그 물건을 보게 된 것이었다.
‘가만, 가만, 가만!’
순간 무언가 뇌리를 스쳤다.
어지럽게 휘감으며 질서정연하게 만들려고 정리를 시작했다.
그리고 차분하게 마음을 안정시켰다.
이런 재질로 만든 다른 무언가를 본 기억이 난 것이었다.
그것이 누구였는지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 답답했다.
더 깊이, 더욱 깊숙이 파고들어서 자신의 머리를 해부했다.
어느 순간 섬광이 뇌리를 스쳤다.
“아, 그놈!”
고개를 번쩍 든 그는 곧장 연금실을 태풍처럼 박차고 나갔다.
국주 주룡의 표정이 매우 침통했다.
사일록은 말없이 기다렸다가 벌떡 일어섰다.
주룡이 흠칫 하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하나 그냥 나가지 않았고 주변을 걷기 시작한 것이었다.
주룡은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 무슨 생각에 골몰해 있다가
결국 결심을 굳힌 듯이 사일록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불쑥
불렀다.
“사차주, 이리로 와서 앉아 보게.”
사일록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걸어 와서 조용히 앉았다.
“말씀하십시오, 국주님.”
“자네가 오해할 수도 있네.”
사일록이 가만히 주룡을 쳐다보다가 물었다.
“소신이 아는 사람입니까?”
“그렇네.“
“말씀하시기가 곤란한 사람입니까?”
“미안하네.”
“기다리겠습니다.
국주 주룡은 자신이 여태 살아온 삶보다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그는 엄청난 고통을 겪으면서 일그러진
표정으로 사일록을 쳐다보았다.
늑장도 잘 부리지만 일단 결정되면 망설임이 없는 것이
주룡의 장점이기도 했다.
순간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이윽고 사일록을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치중 소통일세.”
미동도 하지 않았다.
사일록은 아무 말도 없이 모호하게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약 일 각의 시간동안 그는 침묵했다.
본래 침묵과 묵비권 행사는 황족들의 전통 율법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일록이 그걸 인용하여 시행하고 있었다.
막상 당해보니 주룡은 가슴 답답하여 미쳐서 죽을
지경이었다.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보게!”
사일록은 그저 멍하니 다른 곳만 응시하고 있었다.
엄청난 무례한 짓이지만 주룡은 묵과했다.
“어쩔 수가 없었네.”
“정치색이겠죠.”
“할 말이 없네. 허나 내 생각으로는... 소통은 아니라고
보네.”
“국주님, 누구라도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의식적으로 그가 전번 사건에 관련되어 있었으니 의심하기
마련이겠지만 의식적이란 게 고의적인 것과 같은 맥락의
뜻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아닙니다, 국주님. 제가 말하고자 하는 그런 어원의 뜻을
말함이 아니라 왜 하필이면 그, 사람이란 말입니까?”
“인재가 없다는 말은 아니지만... 부족하네. 그리고 실상
소통은 뛰어난 관료일세.”
“그런데 폭발사건과 관련된 인물입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네.”
“소환 통보 해주십시오.”
“관련된... 전부이겠지.”
사일록은 예를 표하고 일어섰다.
주룡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문제가 커지겠지?”
“북경부의 외무 ‘치중’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더 높은, 고위 관료가 연관되어 있을지 두렵다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할 말이 없네.”
“단지... 연관이 없기를 바라야죠.”
밖을 나섰다.
여전히 봄비가 오고 있었다.
파란 하늘에 하얀 비가 내리고 있었다.
파란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아이가 고개를 숙이고 걷고 있었다.
눈물을 뿌리고 있었다.
그 눈물이 빗물이 되어 그의 가슴을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
슬픔이 적시고 있었다.
울분이 적시고 있었다.
복수의 눈물이 그의 가슴에 고여 있었다.
사일록은 입술을 살짝 다물며 이제는 뛰어가고 있는 그
아이를 보고서 중얼거렸다.
“반드시 널 웃게 만들어 줄 게. 다른 아이들도.”
그리고 급히 집무실로 향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다급하게
뛰어오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자신에게로 뛰어오고 있음을 눈치 차리고서
빠른 걸음을 멈추고서 천천히 걸었다.
“차주님!‘
사일록은 의외의 인물이 뛰어옴에 살짝 놀랐으나 여전히
천천히 걸었다.
약 삼 보 정도 뒤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더 다가와.”
“하, 하지만.......”
“그런 예의는 줄여도 돼.”
한 보 뒤로 다가와서 조심스럽게 보고를 올렸다.
“그 아이가 단추로 작용했다던 그 하얀 연통 같은 것 말입니다.”
“알아냈어?“
“재질에 대해서는 아직...입니다.”
“그럼, 뭐가?”
“이걸 만들어서 자랑했던 연금술사를 알아냈습니다.
“뭣이?”
사일록이 갑자기 돌아서며 조석무의 두 팔을 거머쥐었다.
순간 조석무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따악 벌렸다.
그 자신도 무공을 익힌 인물이었다.
누구에게도 뒤지고 싶지 않은 내공과 무공을 겸비하고
있었다.
살수국 제일 차 요원들 모두가 자신을 숨기고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거의 서로가 서로의 무공에 대해서 저울질하며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저절로 호신기공이 작동하여 온 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사일록이 거머쥔 두 손은 그야말로 만년한철
(萬年寒鐵)로 만들어진 쇠 조이개처럼 꽉 물었던 것이다.
도저히 빠져나갈 수가 없는 죽음의 조이게였다.
“다시 말해 봐, 조수사관?!”
그와 얼굴을 마주보고 말을 함과 동시에 표정을 보고난 후
자신이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지 알았다.
“아아, 미안하네.”
“아, 아닙니다... 차주님.”
근육은 이미 깊은 상처를 입었고, 뼈가 부러지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 다행스런 일이었다.
한동안 조석무는 멍하니 서서 넋을 놓고 있었다.
도대체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자존심도 상했지만 그 무엇보다 놀란 것은 바로 사일록이란
사람에 대한 정체성이었다.
‘도대체 어떤 분이셨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만 잊고. 이제 괜찮나?‘
“예? 아... 예, 괜찮습니다.”
흠칫 놀란 조석무는 정신을 차리려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럼 이야기 해봐.”
“예, 그 자는 장가구에서 숨어 지내는... 금혼령(金魂令)
서문도(西門導)라고 자입니다.”
“서문도라고... 확실한가?”
“예, 확신합니다. 작년 초 봄, 그러니까 약 일 년 전에 그와
헤어질 무렵에는 분명히 장가구에 숨어 지내고 있었습니다.
만약이라도 그자가 저에 대해서 정보를 공유했다면...
모르겠습니다. 사실 아주 사악한 자라 무림과 관부에 죄를
지어서 숨어서 지냈는데... 거기에 계속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하나 실력 하나만은 최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일록이 조석무를 흘끔 보다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자넨 어떤가?”
“예?”
“만약 서문도란 그 작자가 자네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제야 말의 뜻을 알고서 조석무는 생각했다.
이윽고 생각을 정리한 듯 그는 자신감에 찬 얼굴로 사일록을
쳐다보았다.
“본래 천재나 괴팍한 성격의 인물들은 움직이기 몹시
싫어합니다. 그 놈 역시 움직이기 싫어하는 놈입니다. 더욱이
그곳에 정착한 지 겨우 일 년 하고도 서너 달 밖에 되지
않았으니.......”
“됐어. 육포교와 추포교, 그리고 몇 명의 포교들을 데리고
즉시 그리로 가! 반드시 잡아와야 해, 알았지?”
조석무는 이 사안은 매우 중요하여 사일록이 직접 가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그는 가지 않고자 한다는 것을 눈치 차렸다.
그가 잠시 망설이자 사일록이 일러주었다.
“폭발 사건 현장의 그 결사대 죽음에 대하여 거물들을
소환하기로 했다.”
“아... 알겠습니다!“
“서둘러.”
조석무는 바람처럼 휑하니 사라졌다.
그가 조석무의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문득 중얼거렸다.
“이들이 연락이 없네.”
벌써 보고서가 당도해야 하든지 아니면 직접 나타나서 그
떠버리가 보고를 해야 하는데 아직도 종무소식이었다.
박혁로와 모용이슬의 행로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빤히 알고서도 그들 둘을 보낸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늦도록 연락을 없을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잠시 동안 걱정에 휩싸여 있다가 걸음을 옮겼다.
‘제발... 무언가라도 찾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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