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144)
***
박혁로와 모용이슬은 더욱 깊숙이 안으로 들아가고 있었다.
가슴이 답답하기만 했다.
누구보다 가슴이 답답한 사람은 바로 박혁로였다.
괜히 더 깊숙이 들어가자고 주장한 것이 후회되었다.
자칫 실수라도 해서 목숨이라도 잃는다면 그야말로 인생
종치는 것이었다.
박혁로가 걱정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모용이슬이었다.
‘나 때문에... 허나 반드시 후배는, 살린다!’
모용이슬이 두렵지 않도록 그는 더욱 당당하게 동굴
깊숙이 앞장서서 여전히 지체 없이 걸어 들어갔다.
온 몸은 떨림과 전율이 복합되어 묘한 울림이 있었으나
태연하게 행동했다.
그런데 문득 든 생각을 모용이슬에게 물었다.
“후배, 이거 완성된 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지?”
모용이슬이 주변을 면밀히 살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아요. 아직도 파낸 화강암 돌가루는
여기저기서 조금씩 가루가 되어 흩어지고 있어요.
냄새고 가시지 않았고요.”
‘됐군.‘
음성에서 두려움이나 그 밖의 복잡한 심경은 느껴지지
않아서 천만 다행이었다.
“근데 선배?”
“응, 왜 그래?”
“도대체 이 안에 뭐가 있을까요?”
“몰라. 한데 바람이 매우 미약하게 느껴지는 것이 관통한
곳이란 것은 틀림없어.”
“근데 선배?”
“아, 왜?”
“긴장되지 않아요?”
그 순간 입을 다물었다.
모용이슬은 자신의 불안한 심경을 감쪽같이 속이고
있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살짝 신경질적으로 대답한 것이 몹시
미안했다.
“후배, 잘 들어? 여기서 긴장하면 안 돼. 그렇게 되면
모르는 곳이라서 더욱 긴장 돼.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고
비워.”
박혁로는 성큼 걸어서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조도와 명도가 적당히 융합되어 움직이는 데에는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다.
박혁로가 사실 이렇게 자신 있게 믿음이 가는 그 이유가
바로 이 조명이었다.
사람이 다니게 적당하게 조절된 곳에는 반드시 사람이
숨어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 겪어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이곳이 귀신이나 무슨 괴물이 도사리고 있는 곳은 아니란
의미였다.
“분명히 이 악당들이 숨어 있을 것이야!”
박혁로의 자신감에 찬 결정에 모용이슬도 힘이 솟구치는지
바싹 다가왔다.
갑자기 여인의 향이 느껴지자 코가 간지러웠다.
그런데 냄새는 참으로 좋았다.
그 순간 박혁로가 손을 들었다.
“잠깐.”
소리를 죽여서 경고했다.
모용이슬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입구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어.”
모용이슬이 쳐다보자 그녀의 몸에서 피어나는 향기
때문이라고 말하려다가 다르게 바꾸었다.
“직감이야, 직감.”
후배의 몸에서 나는 향기가 내 코를 간지럽혔어, 이랬다가
또 무슨 말을 들을지 몰랏 적당히 둘러댄 것이었다..
도리어 그 말이 더욱 먹혀 들어갔다.
사실 관통하지 못한 동굴이라면 그녀의 은은한 향수
냄새가 이토록 강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통로는 멀리 있으면서도 구멍이 작을 것이다.
그래서 앞장 서 가는 그의 콧속을 자극하고 있는 것인데
그 구멍에서 바람을 빨아들이는 역할을 하고 있기에
그녀의 냄새가 강렬해진 것이었다.
“서둘러요!”
박혁로도 걸음이 바빠졌다.
***
여인향은 폭발이 일어난 그 시점에서 저 멀리 살펴보았다.
이미 해왕루도 조사했고, 이번에는 국수와 만두
가게에서도 살펴보고 있었다.
모식(模式, 패턴)이 그야말로 정확하게 일치했다.
같은 자들의 폭약에서 시작된 폭발사건이 틀림없었다.
문제는 이 폭약을 제조한 자가 너무나 무섭다는 것이었다.
명나라는 물론이고 그 전에도 이후 백 년 이상에도 이런
폭약을 제조할 자가 과연 나타나겠는가 하는 것이
의문이었다.
똑 같은 모식의 폭발 현장, 이게 더욱 가슴 떨리게
만들었다.
폭발 범위도 거의 비슷했지만 똑 같은 모식의 폭발 현장은
여인향으로 하여금 살 떨리l게 만들고 있었다.
하나 곧 흥분을 가라앉혔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런데 대체 누가 이런 폭약을 제조할
수가 있지?그리고 이들이 이런 폭발을 유발시키는 진정한
의도는 뭐지?’
수많은 집단 중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은 바로 이 세계에서
전설로 불리는 벽력세가(霹靂世家)로 불리는 혁련세가(赫連世家)
였다.
혁련가의 폭약 제조는 수백 년 이상 대대로 전수되어 내려온
것으로서 그 어느 누구도 흉내조차 내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 혁련세가의 폭약제조 법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버금가는 폭약을 제조했다.
의도적 폭발의 연유는 아직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체 누가 만들었지?’
건드릴 수 없는 증거 현장이기에 답답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건드릴 수도 없었다.
그건 바로 사일록의 진심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비록 행동이 나빴던 버릇이 없었던 못됐던 수많은
부모와 아이들까지 폭발로 인하여 희생당했다.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죽어나간 어린 영혼들이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일록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잠시 동안 만두와 국수 가게에서 머물다가 해왕루 쪽으로
옮겼다.
어느 순간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왜 아직 그 뚱보 주인을 소환하지 않는 것이지?’
사일록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그녀도 어느 정도 이 세계에서 잔뼈가 굵은
수사관으로서 짐작은 가는 바가 있었다.
적어도 실종되거나 매매된 아이들이 수백에 달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자신이 잘못알고 있을 수도 있었고, 너무 지나친 생각을
할 수도 있었다.
‘차주님을 보면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고 들어. 어쩌면...
수천의... 아아, 모르겠어!’
북경과 나아가 하북성 전체에서 실종된 아이와 인신매매로
팔려나간 아이들이 정말 엄청난 수자로 불어난다면 이건 바로
총체적 난국이 되는 것이었다.
모르긴 하지만 저 한 구석 길모퉁이 같은 곳에서 모닥불이
피고 있고 그것이 서서히 타오르면서 더욱 커지고 있을 수도
있었다.
‘농민 폭동이 그냥... 일어났나?’
그 부모, 친지들이 그대로 묻어 두겠는가 하는 불길한 징후도
느끼고 있었다.
이 사건이 엄청난 파급을 몰고 올 수도 있었다.
그 이유로서 가장 기초적인 단계가 바로 해왕루 폭발
사건이었다.
거기에 각 관부에서 최고의 인재들로 구성된 범죄 집단
잠입 단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그렇다면 최고 상부에서도 이 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밖에 볼 수가 없었다.
정보가 가장 빠른 관부 집단 내부의 정보 소식통들이 가만히
앉아서 놀고먹기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무언가 알아냈기에 그런 집단을 만들었을 테고 어쩌면
비밀리에 그들은 소집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신들의 손에서 이 일을 마무리 짓고 싶어 하는 것이 관부
요인들의 희망사항이었다.
‘찍히면, 끝장이니까!’
구전으로 실종 사건이나 인신매매 건이 세상으로 퍼져나간다면
그 결과는 매우 끔찍할 것이다.
삼대구족을 멸할 정도의 엄청난 피바람이 불수도 있었다.
백성들이 이 나라를 의심하고 부정한다면 이 나라는 지탱하지
못할 것이다.
황제 이하 대신들조차도 그런 건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을
것이다.
‘혹시? 에이, 아닐 것이야.’
그녀를 고개를 흔들며 어느 덧 해왕루에 도착했다.
먼저 눈에 뜨인 어느 한 흔적을 보았다.
나뭇조각들이 소복하게 쌓여 있는 곳으로서 멍하니 보고
있다가 불쑥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아, 그 주부... 의식을 되찾았나?’
살아있는 것이 그야말로 천우신조, 아니 기적이었다.
그 사람이 어서 깨어나야 무언가 실마리 하나라도 잡을 텐데
아직도 의식불명이라고 들었다.
한 번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해왕루의 폭발 사건 현장을
다시 살피면서 주변을 돌았다.
멀쩡한 주방 세계를 보면서 픽 하고 웃음까지 나왔다.
‘엄청 튼튼한 무쇠로 만들었나?’
자신이 왜 그렇게 웃었나 하고 생각해 보았지만 그냥 실없는
웃음이라고 여겼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냥 터져 나온 것인데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모조리 무너져 내린 장소에서 우뚝 서 있는 주방이 이상하게
이물질처럼 느껴졌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능글맞은 그 뚱보 주인도 떠올랐다.
‘닮았네.‘
그러다가 불쑥 떠오른 침입자 같은 생각 하나가 있었다.
‘이 폭발... 정말 알고 있었던 거 아닌가?’
사일록은 소통을 소환하고서 기다리고 있었다.
심문실이 아닌 집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간 동안에도 마음이 허전했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슨 이유인지는 그조차도 아직 알지 못했고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계속적으로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고 점점 키워지고
있는 것 같았다.
‘무엇이지? 이 폭발사건에 숨어 있는 그 무언가 때문인가?
의도?’
잠시 동안 모호하게 어딘가를 보며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차주님, 소대인 납시었습니다.”
손을 내리고 자세를 바로 잡았다.
“모셔라.“
문이 열리고 소통이 안으로 불쑥 들어섰다.
어두운 안색을 지니고서 정면으로 사일록과 눈이 마주쳤다.
몇 달 만에 처음 보는 사이이었기에 서먹서먹한 것도 있었지만
사건으로 인하여 서먹한 기분은 더더욱 감출 수가 없었다.
소통은 걸어서 다가와 항상 책상 앞에 마련되어 있는 두 개의
자리 중 우측에 자리를 잡았다.
사일록이 예의를 갖추지 않아도 그다지 반감은 없었다.
“왜 불려 온지는 알고 있죠, 소대인?”
소통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다면 거기에 대한 해명이든 변명이든 하길 바라오.”
사일록의 어조에는 높낮이가 없었다.
그걸 느낀 소통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다른 이유는 없었소. 그들 팔 인의 결사대원들이 해산물
요리를 좋아해서 그리로 장소를 잡은 것뿐이오. 그건 북경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지 않소?”
“단지 그 이유뿐이오?”
사일록은 여전히 처음 그대로 음정과 품위를 유지하며 물었다.
그럴수록 소통은 더욱 움츠려드는 것을 느꼈으나 반발심으로
가슴을 폈다.
“아, 알았소! 누군가가 추천을 해 주었소이다.”
“누구요?”
“하북성의 안대인이시오.”
“안대인이시라면... 민정(民政)을 담당하고 있는 승선시정사사
(承宣市政使司, 종2품)... 안송(安宋) 말이오?”
“그렇소.”
“그럼 안대인도 이번 팔 인의 결사대 모집에 관련되어 있다는
말이로군요.”
“그렇소이다.”
“그러니까 소대인은 그저 ‘심부름꾼’에 불과하다 이
말씀이오?”
고의적으로 심부름꾼이란 말에 힘주어 강조했다.
갑자기 소통의 눈썹이 꿈틀거렸으나 더 이상 발작하지 못했다.
듣기에는 아주 기분 나쁘겠지만 실상 그건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우회해서 물었을 테지만 사일록은 노골적으로
대놓고 물은 것이었다.
그것이 이 사람의 성격이란 것을 이미 체험했다.
“뭐 어쨌든 이번에 팔 인의 시신과 관련 있는 사람들은
모조리 소환 통보할 것이오. 아니 어쩌면 이미... 했는지도
모르겠소.”
소통의 안색이 시커멓게 변했다.
“그들 중에 반드시 이 폭발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보오. 소대인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걸 왜 나에게 묻소?”
“혹시라도 들은 게 있을까 해서 말이오. 그런데... 어닌 것
같소.”
당신은 그런 축에도 끼지 못하니 참으로 난감하다는 이미도
담겨 있었다.
“치중 대인에 까지 오르신 분이.......”
붉으락푸르락 하는 소통의 얼굴에도 신경조차 쓰지 않고 계속
질문을 해나갔다.
“심가란 주인장을 알고 있소?”
“잘은 모르오. 두어 번 거기에 간 적이 있소이다.”
화를 삭이느라고 음성에 잔뜩 힘이 들어갔으나 사일록은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계속 물고 늘어졌다.
“혜택을 준 것이오?”
“그건, 아니오! 거긴 비밀을 보장할 수 있는 곳이었기에.......”
사일록이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 아차 하면서 입을 다문
것이다.
비밀이 보장되었다면 그들 팔 인의 목숨도 보장되었어야
했다.
그렇다면 비밀이 뚫렸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정말 주관적이오?”
소통이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사일록이 피식 웃었다.
“당신이 해왕루에 예약을 직접, 명령한 사람이냐고 묻는
것이오.”
다른 누군가가 그곳에 예약을 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느냐 하는
사일록의 질문을 그제야 알아들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소통이 침울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사실 해산물에 대해서 전문가적인 지식이 없으면 누구라도
문외한이외다. 그런데 우연히 해왕루에 들려서 그 주인의
언변에 신뢰가 생겼고, 그때쯤 우리 북경부의 해산물 반찬에
대해서 논의 중이었는데 때마침 잘됐다고 생각해서 그자에게
부탁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었소. 가격도 훨씬 쌌지만
신선하기도 했고 무엇 하나 나무랄 데가 없었소. 그래서.......”
“그래서 그곳에 예약했다.”
“그렇소.”
이것으로는 더 이상의 진전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일록은 소통을 보내고 나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그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섰다.
- 작가의말
한 해 잘 버내시고 다음 해(닭띠 해)에는 이루려고 하는 바를 모두 이루시길~
복 많이 받으십시오~(한 편 더 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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