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166)
은퇴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나 끝까지 버티고
있다고 다른 사람들이 말해주었다.
딸린 식구가 워낙 많아서 그 사람이 그만두면
당장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떨어지고 급기야 살
곳도 쫓겨날 판국이라 말해 주었다.
아무래도 가족들이 관련 된 일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 사람 더 있었다.
‘처음에는 나보다 상관인 줄 알았어!’
너무 점잖았고, 예의 발랐으며 듬직했다.
나이는 서른 초반 정도 되어보였지만 직위는 추관
이상, 통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실은 그녀가 몇몇이라고 했지만 가장 의심되는
사람이 이들 두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들을 공개적으로 부르면 아무래도
그들에게 불이익이 갈 수도 있을 상황이 발생할지도
몰라 조용히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 다음은 그냥 그녀가 건성건성 묻고 그냥 넘어
갔다.
‘이 모용이슬, 작수의 이름을 걸고, 그들 두 사람...
분명히 무언가 알고 있거나 감추고 있어! 근데...
섭후배는 잘 되어가고 있나?’
학연을 찾으려고 하니 이 천 명에 달하는 인원을
조사해야 했다.
게다가 겹쳐지는 이름도 상당수 있어서 찾아낸다는
것이 사막에서 바늘 찾기였다.
무엇보다 모든 사람들이 얽혀 있어서 쉽게 가려낼
수가 없었다.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이 남경부란 곳이 정말
신비하고도 비밀스러운 관부였다.
원나라 시절부터 얽혀 있었다.
그 당시부터 관료생활을 해온 사람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어서 자자손손 남경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관료도 있었다.
고조부까지도 올라갈 수도 있었다.
‘아니 고고조부까지도 가능했어.’
그토록 오랜 학연, 지연, 가장 중요한 혈연까지
얽혀 있었다.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나서는 암담했다.
수천 명을 조사해야 하는데 지금 상황으로서는
그걸 다 조사하려면 여섯 달 이상은 족히 걸릴 것이고,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이번에 다시 무언가 아주 큰 일이 터질 것 같은
예감을 지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 시가 급해!’
하나 이곳은 정말 놀라운 곳이었다.
북경부와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남경부란 곳의 역사에 비유한다면 북경부는 그야말로
조족지혈이었다.
아니 비교조차 불가능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단서는 진정 티끌 같은 것이었다.
티끌이라고 판단을 내린 것은 이곳에서 문서를
조사하고 난 후 즉시 생각난 것이었다.
‘달랑... 이름 두 개.’
이만과 이협. 이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어디가
고향이며 학연, 혈연 등 그 무엇도 아는 것이
없었다.
다만 관료란 것은 분명했다.
한데 그들 뒤에는 언제나 ‘반역과 물락‘이란 단어가
어김없이 뒤따랐다.
반역자라면 어딘가에 단 한 줄의 기록이라도 남아
있어야 하는데 그것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들의 출생지조차 모르고... 어어?!’
출생지.
이건 아주 기본적으로 작성하는 이력이었다.
천하의 그 어느 누구라도 출생지는 반드시 기록하게
되어 있었다.
천하 없는 중죄인이라고 해도 판관은 항상 ‘이 놈
남경 출신의 이만! 네 놈의 죄를 알렸다!’ 이렇게
서두를 꺼내면서 재판이 시작 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고향이란 건 바로 그 사람의
인생과도 같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섭문은 즉시 일어나서 문서 보관소에서 출생지에
대한 기록을 찾기 시작했다.
약 일 각 가량 허비하고 난 후 찾았다.
절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문서를 쭉 훑어나가는데
그만 입이 따악 벌어졌다.
한자 두께의 문서가 무려 오십 권에 가까웠던
것이다.
‘아니 달랑 고향 이름과 출생자 이름 하나
대는데... 이게 무슨 태산이야?’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도 그는 처음부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획 수 하나부터 시작하는 개념도 없을
것이고(지금처럼 ㄱ, 혹은 가로 시작하는 개념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출생 연월일시간 순서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저 한숨만 푹푹 내쉬면서 파묻혀 갔다.
모용이슬은 직접 움직이려다가 잠시 멈추고서
누굴 시킬까도 생각했다.
잠시 생각 도중에 은밀하게 추몽향을 불렀다.
추몽향은 자다가 일어나서 부스스한 채로 오더니
예를 올렸다.
“부르셨습니까, 나리?”
“자는데 깨운 거지?”
“나리께서는 주무시지도 않고 있는데...
괜찮습니다.”
“이해해 주니 고맙군.”
추몽향이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서 올려서 단정하게
붙이며 고정시키더니 물었다.
“뭔가 찾아내신 것이 있습니까?”
“내 직감이고, 작수로서 틀림없어. 하지만... 기대하지는
않아.”
“그럼 티끌만한 단서라도 찾으신 거 아닙니까?”
추몽향이 약간 흥분했다.
모용이슬이 싱긋 웃었다.
“아, 죄, 죄송... 티끌.......”
“아냐. 사실이니까.”
모용이슬이 추몽향더러 가까이 와서 앉으라고
하고서 속삭이기 시작했다.
“까다로울 거야. 약 서른 살 가량의 순검인데...
뭔지 모르게 이 사람에게 냄새가 나. 그게 무엇인지는
사실 아무 것도 몰라. 하지만 우리가 알고자 하는
즉, 단서에 가까운 무언가를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져.”
“그럼 모셔와야죠!”
“전종학(田鍾學)이란 순검이야.”
“그럼 소신하고 같은 서열입니까?”
“그렇지, 순검과 살수국의 포교는 대등하지.”
“알겠습니다!”
“알지?”
추몽향이 시익 웃으며 방을 나섰다.
모용이슬은 잠시 동안 추몽향이 나간 곳을
지켜보다가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이제는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 벌써 해시 중엽(오후 10시)이다.
이미 잠들어 있어야 하겠지만 모용이슬은, 전종학은
그러지 못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무언가 분명히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참담했다.
‘일찍 자야 피부도 좋아지고 미인이 된다고
하던데... 물 건너 갔네.’
***
“대연회를 유월 십 오 일에 한다고?”
“예, 차주 대인.”
포교 한 명이 정중하게 아뢰며 옆으로 시립했다.
“연기는 못한다고 하더냐?”
“그런 건 아직.......”
“알았다.”
사일록은 책상에서 급히 한 장의 서찰을 작성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봉투에 넣어서 봉한 후 그 포교에게 건넸다.
“이걸 정대인에게 전하거라.”
“알겠습니다, 차주 대인!”
더욱 공손하게 인사를 한 후 그 포교가 나가고 나자
갑자기 허탈해졌다.
벌써 석 달로 접어들고 있는데 진전은 하나도 없었다.
물론 사건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하여 수사관들이
동분서주하고 있으나 확신을 가질만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남경부로 파견한 수사관에 대해서는
회의감마저 들고 있었다.
‘심성보와 다섯 명의 주방장들... 그들이 말한
강소와 절강성의 출신이라고 해서... 남경부로?
왜? 무엇 때문에?’
예감이라고 말한다면 모두가 비웃을 것이다.
아니 어차피 비웃음을 당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허탈했다.
한데. 왜 갑자기 남경부가 생각난 것인지 그건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귀신에라도 홀린 듯이 남경부가 불현듯 떠오른
것이었다.
강소와 절강성 출신들이라서 그런 것인가?
그들이 근무하고 있는 해왕루가 표적이 되어서
그런 것인가?
아니다. 그건 절대 아니다.
그들이 모조리 살해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각각의 고향이 모두 달랐는데 왜 남경부라고
생각한 것인가?
남경부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고, 획 수
하나 들먹이지 않았다.
그런데 왜 남경부로 가라고 그들을 보낸 것인가?
지금 생각하면 너무 후회되고 그들 모두에게
올라오라고 호통이라도 치고 싶었다.
‘그래... 아무런 성과도 없이 올라올 게 뻔한데
그때 가서 나 혼자서 모조리 욕먹으면 돼! 오래
살겠네.’
수하들에게 잘못을 나누어 가질 수는 없었다.
책임을 지려면 자신이 모조리 책임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자신이 왜 남경부로 가라고 한 것인지, 그렇게
말하게 된 시발점이 무엇인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남경부에 대해서 짚어보면 간단했다.
“원나라의 수도이고... 가만? 원나라... 아,
섭수사관이 쫓기듯 가면서.......”
그제야 뚜렷하게 생각이 났다.
사실 섭문이 이야기할 때는 무시했는데 진실이 담긴
본능은 그걸 외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왜 그렇게 무모하게 남경부로
수사관들을 보냈는지 그것도 이해가 되었다.
신뢰하는 수하인 섭문이 그렇게 운을 뗐기
때문이었다.
‘흠... 내가 은근히 많이도 기대고 있군.’
***
박혁로가 다시 섬뜩한 말을 했다.
“아니 왜... 죽음의 냄새가 나는 것이오? 나만 맡은
것이오?”
송원상점 앞마당에서 여전히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들을 돌아보고 있는데 박혁로가
진실을 뱉었다.
사실 조석무와 여인향도 그런 냄새를 맡았기에 함부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건 아주 묘한 냄새였다.
뭐라고 딱 꼬집어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평범한
냄새가 아니었다.
“저 안에는 뭐가 있겠소?”
문을 들어서고 한참동안 마당에서 서성거리며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세 명의 수사관은
다시 박혁로의 진실성 발언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제야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알았다.
마치 수십 개의 문이 한없이 이어져 있을 것 같고
그 끝에 지옥의 문이 그들을 반기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들어가야 하지 않소, 선배들? 아직도
망설여지오? 뭐 그럼... 내가 앞장서겠소.”
불빛 하나 없는 송원상점은 주인이라고 불린 그
사람이 죽은 이후 아예 문을 닫은 상태였다.
문을 닫지 않아도 폐가 상태였는데 문을 닫은
상태에서는 그냥 폐가였다.
그런데 사일록은 왜 이곳으로 그들을 보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 폭약 같은 주머니를 생각하면 박혁로는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
사실 그것 때문에 사일록이 그들을 이곳으로
보냈다는 것을 여기에 있는 사람들 모두는 잘
알고 있었다.
끼이익.
여인향과 조석무는 끔찍하게 듣기 싫은 소리를
듣고서도 어느새 그 문 앞에 당도해 있었다.
문은 아주 천천히 열렸는데 소름 돋는 추임새는
끝없이 이어졌다.
끽. 끼이이.......
완전히 열렸다가 다시 닫히는 시늉만 하는 데에도
소름 돋았다.
박혁로는 그 문을 거칠게 밀고 벌써 안으로 들어섰다.
그저 평범한 집 같았다.
작은 마당이 있고, 돌다리가 쭉 늘어선 곳에 아담한
거실이 보였다.
붉은 구슬 차양막이 미풍에도 찰랑거리고 있었다.
박혁로는 이런 상황을 이해할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상점이라고 하지 않았소? 한데 이게...
상점이오?”
여인향과 조석무는 서로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여
박혁로의 말에 동조하면서도 거실로 향하고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고서 흠칫 놀랐다.
“어머, 이게 뭐지?”
“마치 우릴,,, 유인하는 듯한.......”
여인향에 이어서 조석무는 말을 채 잇지도 못했다.
그때 그들을 밀치고 박혁로가 먼저 안으로 들어선
것이다.
두 사람을 서로를 보면서 피식 웃더니 안으로
들어섰다.
향을 피웠는지 무슨 향수인지 모를 기묘한 향내가
후각을 자극했고, 무언가 다른 향초도 피웠는지
괴이한 향기들이 뒤섞여서 아주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무슨 냄새요?”
박혁로는 연신 코를 킁킁거리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거실은 가로로 긴 사각형 형태였다.
그리고 좌측 구석진 곳에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다.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창문 하나, 들어오는 문 입구
좌우에 창문 하나씩 하여 모두 네 개의 뚫린 곳이
있었다.
세 사람 중 누구나 먼저랄 것도 없이 좌측 구석진
입구로 시선이 갔다.
박혁로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본래 이런 유형의 거실에는 바로 보이는 중앙에
입구가 있어야 하는데... 이상하군.”
“이상하긴 하네.”
조석무도 동의했고, 여인향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녀의 예리한 코가 연신 작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손을 들어서 모두를 자제시켰다.
“잠시! 잠시만... 동작을 부드럽게 그리고 여유롭게!”
그녀는 부드럽게 말했지만 두 사람은 냉랭하게
들었다.
돌연 긴장감이 온 몸을 축축하게 적시며 잔뜩 절어
놓았다.
무언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이 시선이 여인향에게로 갔다.
그녀가 좌측 구석진 곳에 있는 후문으로 향하자
그리로 절로 따라 갔다.
사실 박혁로는 말리려고 했으나 조석무도 뭔가
심상치 않은 냄새를 맡은 것 같아서 자제했다.
검지로 입술에 대고서 조용히 따라와라 라고
명령했다.
여인향에 이어서 조석무까지 그러자 박혁로는 간담이
서늘했다.
이들 두 사람은 특유의 재능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각자가 가진 재능에 대한 부산물로서
무언가 냄새를 맡았다는 의미가 되었다.
그 냄새가 그 냄새가 아니기를 기원하면서 따라붙어
여인향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여선배, 기분 나쁜 냄새를 맡은 것이오?”
“아이, 간지러워.”
조석무가 어느새 다가와 박혁로의 뒷덜미를 잡고서
당겼다.
“엉, 후배! 좀 떨어져서 말하게.”
“아아, 알았소. 자기 것도 아니면서.......”
“뭐? 뭐라고 그랬지?”
“아, 아니오! 근데 여선배, 정말 그런 것이오?”
그녀가 생긋 웃으며 눈웃음까지 치자 조석무가
움찔했다.
‘휴우... 이 여인 이거 정말.......’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타고난 저 천성을 언제까지 참고 있으려나 싶고
자신은 언제까지 견딜지 의문이었다.
“있어... 아주 기분 더러운 냄새. 한데 조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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