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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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
작품등록일 :
2016.01.05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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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3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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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13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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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뿐인 길(6)

거짓말이야. 아닐 수도 있고.




DUMMY

그날 밤 메칼로 일행은 백여 명의 기병과 함께 아우렐로 가문의 저택에 묵었다.

츈 지앵은 정중한 대우를 받았지만 메칼로 일행과의 접촉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격리되었다. 기병대를 이끌고 있는 콧수염의 남자는 메칼로 일행과, 특히 다피나에게 매우 친절한 태도를 보였으나 츈 지앵에 관해서만은 결코 타협을 해주지 않았다.

츈 지앵뿐 아니라 다피나에 대해서도 보호자로서 엄격한 모습을 보여, 메칼로 일행 중 산디아만 그녀와 가까이 있을 수 있었다.

물론 늦은 밤에 메칼로가 다피나의 방으로 숨어드는 것은 막지 못했다.

다피나 역시 잠들지 않은 채 그를 기다리고 있다가 메칼로가 오자마자 “왜 이렇게 늦었느냐”고 타박을 했다.

“캄캄한 방에서 아무 것도 못하고 기다리느라 지루했느니라.”

“도대체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지?”

메칼로는 그녀의 투정을 무시하고 대뜸 물었다. 다피나가 짐짓 토라진 체 했다.

“나를 만나면 반가워할 줄 알았거늘.”

“토비아스에게 네가 아르반에서 보낸 사람들을 만날 때까지 안전한 곳에 있을 거라고 들었다.”

“은장 기병대가 지키고 있으니 안전하지 않으냐. 아르반의 기사단도 훌륭하나 플라비우 가문의 기병대는 실로 놀라우니라. 엘킨 경도 보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필경 여러 가지를 훔쳐 배웠을 터인데 아깝도다.”

“다피나.”

메칼로는 골치 아프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네가 여기에 있어서 일이 어떻게 꼬였는지 알······.”

“나를 만나서 싫은 것이냐?”

메칼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피나가 물었다. 말이 잘린 메칼로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금방이라도 대답할 것처럼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어버렸다.

“흐응?”

다피나가 웃음을 참는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네 표정을 보니 진심을 숨길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찾아내지 못해 곤란한 게로구나. 그러나 나는 관대하니 다시 묻지 않겠노라.”

메칼로는 짧은 한숨을 쉬었다.

“토비아스에게 또 무슨 이상한 소리를 들은 거야? 너한테 그런 식으로 거짓말 할 생각은 없어. 그저, 한 마디로 말하기에 좀 복잡한 기분이었던 것뿐이다.”

“무엇이······?”

다피나가 눈을 깜박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복, 잡, 하다고 했잖아. 내 기분을 캐묻는 것 말고 다른 일도 있을 텐데? 이를 테면 토비아스 자식이 나한테 전하라고 한 말이라든가. 이럴 줄 알았습니다 같은 말은 빼고.”

메칼로의 대꾸에 다피나는 콧잔등을 찡그리며 메칼로를 쏘아보았다.

“말 돌리지 말거라. 뭐가 복잡한지 제대로 이야기해 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안 알려줄 테다.”

“그으래?”

다피나의 당돌한 말에 메칼로가 성큼 그녀에게 다가갔다. 다피나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마음을 읽으려고? 가까이 오면 소리칠 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피나의 몸은 메칼로에게 안겨 휩쓸리듯 쓰러졌다.

“사람들이 달려와서 이런 모습이 발견되어도 나는 상관없다만.”

그녀를 짓누른 채로 목덜미를 더듬으며 메칼로가 놀리듯 말했다.

“어차피 테리아 인들이 약탈하기 좋아하는 해적의 후예라는 건 유명해서 클레타 인들도 별로 놀라진 않을 걸.”

“야만인 같으니라고. 숙녀의 명예도 보호할 줄 모르느냐? 너는 책을 좀 읽어서 기사도를 배워야 하느니라.”

“네가 좋아하는 책 속의 기사는 이 세상에 없어. 그런 걸 기다리다간 탑 위에서 할머니 공주가 되어버릴 거다.”

메칼로의 말에 다피나가 울상을 지었다.

“너는 해달라는 말은 안 해주면서 쓸데없는 진실만 마구 말하는 게냐. 못되었도다. 그 잘 하는 애매한 말버릇으로 마음에 없는 소리라도 해주면 안 되느냐?”

“누구더러 하는 소리야? 마음에 있는 말을 담아두지도 못하고 아무 생각 없이 내던지는 주제에.”

메칼로는 말하고 나서 픽 웃었다.

“뭐, 그래서 네가 좋은 거지만.”

그가 다피나를 안은 채 옆으로 굴렀다. 두 사람의 위치는 반전되어서 이제 다피나가 메칼로의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다, 단순해서 좋다니 놀리는 게냐?”

화가 난 것처럼 묻는 다피나의 얼굴이 어둠속에서 발갛게 상기되었다. 메칼로가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말 그대로 좋다는 거다. 마음 속 생각과 말이 서로 다르면 마치 불협화음처럼, 귀에 거슬리는 소리로 들리거든. 두 말을 함께 들으며 따로 이해해야 하니 귀찮기도 하고. 그런데 네 말은 사용하는 단어나 순서만 조금 다를 뿐 마음 속 말과 의미가 같아서 두 말이 서로 화음을 이루지. 네 목소리가 내게 얼마나 아름답게 들리는지 너는 절대로 모를 거다.”

“그, 그, 그런 말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태연하게 하지 말거라!”

목덜미까지 붉어진 다피나가 자그맣게 외쳤다.

“거참 이랬다 저랬다 하는 공주님이네. 말해달라고 해서 하고 있잖아.”

메칼로가 투덜거렸다.

“마, 말만 하지 말고······그, 그래. 오랜만에 만났는데 하나도 낭만적이지가 않도다. 좀 더······그······그······.”

“그?”

“그······아니, 잠깐, 방금 생각한 것은 아니다. 그것 말고!”

“네가 소리를 잘 참을 수만 있다면 나는 그게 더 좋은데.”

“메칼로! 압······!”

다피나가 자기도 모르게 큰소리를 냈다가 얼른 제 입을 막았다.

그녀의 방 밖에서는 테리아에서처럼 산디아가 경호를 하고 있지만, 옆방이나 복도며 가까운 곳 어디나 플라비우 가문의 사람들이 우글거렸다. 지금도 귀를 기울이면, 불침번 서는 병사들이 돌아다니는 소리라든가 화톳불 타는 소리 따위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러니 반대의 경우도 성립될 것이다.

“정말 못되었도다.”

다피나가 제법 야무진 주먹으로 메칼로의 가슴을 내리쳤다. 그러나 메칼로가 아픈 표정을 짓자 금세 후회해서 안절부절못했다.

“내가 잘못 때렸느냐? 급소였느냐? 혹시 다쳤느냐?”

“때려서 분이 풀렸으면 이제 슬슬 이야기 해줘, 다피나.”

메칼로가 웃으며 말했다.

“토비아스가 귀찮을 만큼 복잡한 이야기를 해줬을 것 같은데. 그래도 모두 기억하고 있겠지? 아르반의 공주님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었던 너라면.”

“흥. 당연하지 않으냐.”

다피나가 뻐기는 듯한 태도로 몸을 똑바로 세웠다. 바닥에 드러누운 메칼로에게 말 타듯 걸터앉은 모습이라 우아한 자세는 아니었지만 꼿꼿이 편 허리에서부터 상체만을 보고 있으면 손색없는 공주님이었다.

“개선로에서 너를 만나지 않으면 굳이 이야기할 필요 없겠지만 만일 만나게 되면 가장 먼저 알려주라고 한 말이 있노라.”

말을 시작한 것과 함께 다피나의 어리광피우는 듯한 표정도 사라졌다.

“토비아스가 말하기를, 쟌홍 가문과 별개로 플라비우 가문과 밀약을 맺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에게 츈 지앵을 건네주면 플라비우 가문이 ‘그 물건’을 션에서 가져오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했다는구나.”

“여기까지 온 이상 그 정도는 이미 알아. 이유도 설명했겠지?”

메칼로의 대꾸에 다피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션의 왕실에 클레타의 가문 중 하나가 이미 개입하고 있는 증거를 찾았다고 들었느니라. 그렇다면 그들도 츈 지앵을 확보하려고 할 테고 우리와 마주치게 될 가능성이 높은데, 그 때에 클레타에서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는 가문은 플라비우 뿐이라 하였느니라.”

“그 가문이 어디인데?”

“라우렌시우.”

다피나가 대답했다.

플라비우 가문과 대적할 만한 곳. 다피나가 그렇게 말했을 때 어느 정도 짐작했을 테고 생각을 읽는 능력으로 이미 알았다지만, 그런 메칼로도 막상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름을 귀로 듣자 표정이 굳었다.

“클레타의 왕실이라고······.”

플라비우 가문에서 더 이상 왕위를 계승할 남자가 태어나지 않아 왕가가 라우렌시우로 바뀐 것은 이미 80여 년 전의 일이다. 그때까지 가장 강력한 가문이었던 플라비우를 상대로 몇 번이나 혼란과 위험을 겪으며, 라우렌시우는 결국 클레타의 왕실로 뿌리내렸다.

현재의 국왕이 왕좌에 오른 후로, 예전의 반목은 물론 사소한 싸움도 거의 없었다. 클레타의 내부는 실로 오랜만에 평화로웠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십여 년 전에 션과 클레타가 종전하며 평화의 서약을 대신하여 서로의 왕족을 혼약시킨 적이 있지 않았더냐. 그때 션의 공주 중 하나가 클레타 국왕의 막내아들과 성혼하였고, 클레타에서는 국왕의 여동생인 비토리아 공주가 션 왕의 일곱 번째 비가 되었느니라. 라우렌시우 가문이 션의 내정을 염탐할 수 있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으리라.”

“그 반대도 가능했을 텐데?”

“션의 공주였던 지금의 미하엘로 공작부인에 대해서는 나도 별로 아는 바가 없노라. 토비아스도 따로 이야기해주지 않았고······. 아무튼 라우렌시우 가문은 션의 국왕이 병환중인 것과 후계자 문제가 복잡한 것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느니. 츈 지앵의 실각 후에 아들인 밍 야즈가 클레타의 수도로 피할 수 있었던 것도 비토리아 공주 덕분이라고 들었느니라.”

“아아, 클레타가 밍 야즈를 각별히 보호한 것도 애초부터 속셈이 있었다는 말이네.”

메칼로의 대꾸에 다피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릴 때부터 클레타에서 자라고, 그곳의 문물을 경험하고, 익숙해지고, 많은 사람들과 친분을 쌓고······. 아무리 함께 온 사람들이 션의 왕자로서 교육을 시켜도 그 환경을 무시할 수는 없느니라. 그렇게 자라난 밍 야즈가 션의 국왕이 된다면 두 나라의 관계도 지금까지와는 달라지리라.”

“그런데도 굳이 츈 지앵을 손에 넣으려는 이유가 뭐지? 클레타에 호의적인 밍 야즈가 왕이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비토리아 공주가······?”

다피나에게 다시 묻던 메칼로가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녀의 마음을 읽고 중얼거렸다. 중간 과정을 건너뛰어 버리는 메칼로의 대화법에도 다피나는 태연히 대답했다.

“토비아스는 그리 생각하고 있느니라. 나 또한 그의 생각과 같노라. 아직 션으로부터 소식이 전해지지 않아 정확한 성별은 알 수 없으나, 비토리아 공주는 회임을 하였다. 즉, 차례는 꽤 멀겠으나 클레타 공주의 아이가 션의 왕위계승권자가 된다.”

“과연. 그래서 츈 지앵이 션에 남아있으면 안 된다는 거로군.”

“츈 지앵이 션에 남아있게 되면, 그리하여 결국 밍 야즈가 왕위에 오를 때까지 살아있게 되면, 션의 국왕은 밍 야즈로되 션을 다스리는 자는 츈 지앵이 되느니라. 그가 밍 야즈를 보호하면 라우렌시우 가문도 더는 션에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으리라.”

다피나의 말을 들으며 메칼로가 어이없다는 듯이 혀를 찼다.

“션의 국왕에게는 아들이 많아. 그 사람들을 다 죽이고 제 자식을 왕위에 올릴 정도가 되려면 왕실은 피바다가 될 거다. 비토리아 공주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진과 같은 외국에서 혼자 그런 일을 성공시킬 수 있을 거라고?”

“밍 야즈를 도피시킨 것으로 비토리아 공주는 이미 그의 은인이니라. 거기에 츈 지앵이 없으면 션의 국정에 어두운 밍 야즈에게 의논상대가 되어줄 사람은 비토리아 공주뿐이 아니겠느냐. 아기일 때부터 클레타에서 살아왔고 라우렌시우 가문에게 은혜를 입어온 밍 야즈이니라.”

다피나의 목소리는 나지막이 울렸으나 조약돌처럼 단단했다. 메칼로는 새삼스럽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만일 비토리아와 같은 상황이라면 너 역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걸까?”

다피나가 멈칫, 그를 내려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쓴웃음과 같은 것이 얼핏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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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Personacon Rainin
    작성일
    19.03.13 08:21
    No. 1

    건전한 대화가 오가는 장면이 참 아름답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연두초록
    작성일
    19.03.13 08:22
    No. 2

    마음속말과 입밖으로 나온 말이 서로 다르면
    불협화음처럼 거슬리게 되는거군요.
    메칼로는 그 상태로 쭈욱 살았을텐데 얼마나 시끄럽고 불쾌하고 그랬을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지드
    작성일
    19.03.13 08:23
    No. 3

    메칼로 다피나가 기껏 참고 말하고 있는데 그런 질문이나 하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0 곰곰01
    작성일
    19.05.09 21:46
    No. 4

    마니님은 마니 바쁘신가요. 어디서 무얼 하시나요. 독자가 마니 기다리는데.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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