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의 사기꾼 14화
<※본 글은 소설이며 단체명이나 이름 등은 사실이 아닙니다. 작가의 상상에 의한 순수 창작물입니다.>
필드의 사기꾼 14화
“잘 가, 민선아.”
“다음에 또 보자.”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하는 아이들을 보며 민선 역시 힘차게 손을 흔든다. 차에 타기 직전까지 뒤를 힐끔거리는 민선을 보며 안영우가 묻는다.
“아쉬워?”
민선이 고개를 흔든다.
“에이, 아닌 것 같은데?”
“그냥…… 친구니까요.”
안영우가 이해가 된다는 듯 웃는다. 축구를 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돈이 많든 적든, 덩치가 크든 작든, 잘생기든 못생기든……. 공이라는 하나의 공통된 주제를 두고 금방 친해진다.
고작 삼 일을 본 아이들을 친구라고 생각을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함께 게임을 즐기며 몇 살의 나이 터울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고 결국 모두가 친구가 되었다.
“언제고 다시 보게 되는 날이 오겠지.”
안영우가 차를 출발 시키며 중얼거린다.
“인연이 있다면…….”
“인연이요?”
“그래, 너와 저 아이들이 열심히 축구를 해 국가 대표가 된다면 그라운드에서 함께 호흡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군요.”
안영우가 민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늘 잘했다.”
“헤헤.”
마지막 날인 오늘 민선은 후반전뿐이기는 하지만 오른발의 봉인을 풀었다. 그 결과 10분 만에 두 골을 넣고 어시스트를 하나 기록했다.
최영필이 또다시 놀란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많은 골을 넣고 남들이 감탄을 할 정도의 플레이를 했지만 너무 자만을 해서는 안 돼.”
“네, 선생님.”
“네 친구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슛돌이 유소년 클럽의 수준은 그리 높지 않아. 수원 지역에서는 제법 실력이 좋다고 알려져 있지만 앞으로 네가 상대를 해야 할 아이들과 비교를 한다면…… 아직 형편없는 수준이지. 그리고 내일부터 오른발은 다시 봉인한다. 봉인을 푸는 날은…… 말을 하지 않아도 알고 있겠지?”
“이탈리아에 가게 되는 날이겠죠.”
***
마사지 배드에 누운 민선이 나른하다는 듯 눈을 감고 있다. 안영우가 그런 민선의 허벅지에 오일을 바르고 마사지를 해주고 있다.
“특별히 뭉친 곳은 없네.”
오랜 세월 프로 선수로 생활을 했기에 웬만한 마사지사 보다 솜씨가 좋다.
안영우는 나이답지 않게 단단한 민선의 허벅지를 마사지 하며 감탄을 한다. 근육이 마치 초원을 내달리는 네 발 육식 동물의 그것과 같다.
민선의 엄청난 주력과 강력한 슈팅이 바로 이 근육 때문에 가능한 것이리라. 피지컬 부분은 여러 가지 훈련으로 상승시킬 수가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재능뿐만이 아니라 피지컬적인 부분도 타고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똑같은 양의 운동을 해도 이러한 근육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민선은 축구에 대한 감각과 재능뿐만 아니라 피지컬적인 측면도 사기 캐릭터였다.
그저 대단하다는 말밖에는 표현할 말이 없었다.
안영우는 이런 민선을 가르치게 된 것이 자신에게 큰 행운이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그저 김기성에게 빚을 갚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안영우가 더욱 적극적이 되어버렸다. 민선이라면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분명히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발롱도르.’
안영우가 가슴속으로 중얼거린다.
축구 선수에게 있어 가장 영광스러운 상이 바로 발롱도르다. 당연히 안영우 역시 그 발롱도르를 수상하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굉장한 재능으로도 수상을 하지 못했다. 30인 후보까지는 들어 보았으나 최후의 3인 후보에는 들어 본 적이 없다.
대한민국 언론에서는 안영우야말로 최초의 동양인 발롱도르 수상자가 될 것이라고 설레발을 쳤지만 안영우는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진정한 최고 선수들에게는 부족한 점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민선이라면 다를 것이다. 이것은 예측이 아니라 확신이다. 민선에게 아버지인 윤석과 같은 불행한 사고만 벌어지지 않는다면 정말로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될 거다. 내가 그렇게 만들어주마.’
안영우의 손이 민선의 종아리로 옮겨 간다.
“민선이는 그냥 선생님만 믿고 따라오면 된다.”
뜬금없는 말에 민선이 살며시 눈을 뜬다. 그리고는 웃으며 대답을 한다.
“네, 선생님.”
***
인천 국제공항.
“아들.”
“응.”
“아빠 없다고 울고 그러면 안 돼.”
“벌써 일 년 동안 아빠하고 같이 안 살았는데?”
윤석이 민선의 코를 잡아 살짝 비튼다.
“치사한 녀석. 그냥 아빠가 보고 싶어서 울 것 같다고 말을 하면 안 되냐?”
“그러길 바라?”
민선이 뚱한 표정으로 말을 하자 윤석이 피식 웃는다.
“그럴 리가 있나. 이렇게 쿨한 게 우리 아들 매력이지. 가서 잘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응, 그럴게. 아빠도 술 많이 마시지 말고 밥도 잘 먹고 그래야 해.”
“이 녀석이.”
윤석이 딱밤을 주려 하자 민선이 한걸음 뒤로 물러선다.
“민선이 잘 부탁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선배.”
“그래, 네가 같이 가니 내 마음이 편하네. 내가 항상 고마워하고 있는 것 알지?”
“알고 있습니다.”
안영우가 사내다운 웃음을 짓는다. 김기성이 다가와 말을 한다.
“우리 직원이 먼저 가 있어. 공항에 마중 나올 거야.”
“그래요? 제 친구가 마중을 나오기로 했는데요. 미리 말씀을 해주시죠.”
“아, 그래? 그러면 우리 직원은 나중에 따로 찾아가 보라고 하면 되지, 뭐. 주소 전에 알려 준 거기 맞지?”
“네.”
“우리 민선이 잘 부탁한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있냐? 우리 유성 코퍼레이션의 기둥이 될 스타인데. 민선이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넌 나한테 죽을 줄 알아.”
안영우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윤석아, 우리 이제 그만 가자. 우리 때문에 체크인도 못 하잖아.”
“그래야죠. 아들, 아빠가 항상 응원하고 있는 것 알지? 아들 1호 팬은 아빠야.”
“히히, 알았어. 나중에 내가 아빠 사인 꼭 해줄게.”
윤석과 김기성이 몸을 돌린다. 윤석은 걸음을 옮기면서도 계속 고개를 돌려 민선을 바라본다. 민선은 그런 윤석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 까지 손을 흔들어준다.
윤석이 사라지자 민선이 입술을 꽉 깨문다. 눈 주변이 붉게 변한다. 안영우가 민선의 머리에 손을 얹고는 자세를 낮추고는 속삭인다.
“울어도 돼. 넌 아직 그래도 될 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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