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방 싸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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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교s
작품등록일 :
2016.02.23 15:53
최근연재일 :
2018.02.07 18:41
연재수 :
8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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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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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8
글자수 :
28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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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16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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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설레인 그놈

DUMMY

자신의 품 안에 라영이 웅크린 잠자고 있었다.

에어컨 바람이 차가워서 잠결에 따뜻한 품으로 파고든 모양이었다.


명백한 계약 위반이었다.

방 바닥에 금까지 그어가며 다짐 받았는데.

광수가 조용히 그녀를 불렀다.


“이봐! 소라영. 소라영!”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른 다더니 그녀는 깨어나긴커녕 품속으로 더 깊이 파고 들었다.


“우웅~”


코끝으로 정체모를 향기가 밀려들어왔다.

기분이 야릇하면서 아찔했다.

처음 맡아보는 어린 여자의 향기.

오묘하면서도 달콤하다.

왠지 계속 맡고 있다간 중독 될 것 같은 향기였다.

그녀가 몸을 뒤척이더니 고개를 세웠다.

보드라운 눈꺼풀 사이을 덮은 속눈썹이 풍성했다.


광수가 눈을 깜빡였다.


‘껌딱지 입술이 이렇게 생겼었나?’


지난번 백화점에서 황 대표에게 그녀를 된장녀로 변신시켰다고 버럭했었다.

한층 성숙해지고 매력적으로 변한 라영의 모습에 설레임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적절하게 해줄말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에 그저 당황했었다.

평생 여자는 돈만 왕창 퍼먹는 비효율적인 생명체라는 신념을 가지고 살아왔었다.

자신의 심리적 거리를 무너트린데에 대한 본능적인 반사 작용이었다.


일부러 더 까칠하게 굴어도 봤지만 이제 갓 소녀티를 벗어난 천진난만한 그녀는 속도 모르고 바락바락 달려들었다.

그저 불쌍하고 어리다고만 생각한 그녀가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한번 설레인 가슴은 이젠 버릇처럼 그녀를 볼때마다 심장을 콕콕 찌르는 듯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녀 입술에서 달고 따스한 숨결이 흘러 나왔다.

광수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그녀가 간지러운지 인상을 썼다.

눈 감은 채 양미간을 찡그리고 인상 쓰는 모습이 무척이나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가슴이 설렜다.


그녀는 부드러우면서 따뜻했다.

광수는 슬그머니 팔로 그녀를 감쌌다.

바닥에 그녀 귀에서 벗겨진 이어폰이 보였다.


‘이 아이는 과연 무슨 노래를 들으면서 잠이 들까?’

문득 궁금해졌다.

광수는 그녀가 깰까 조심조심 이어폰을 귀에 꽂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사랑한다 말하고 날 받아줄 때엔

더 이상 나는 바랄게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해놓고

자라나는 욕심에 무안해지지만

또 하루 종일 그대의 생각에

난 맘 졸여요


샘이 많아서

겁이 많아서

이렇게 나의 곁에서 웃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서

너무 좋아서 너무 벅차서

눈을 뜨면 다 사라질까봐

잠 못 들어요


주고 싶은데

받고 싶은데

남들처럼 할 수 있는 건

다 함께 나누고 싶은데

맘이 급해서 속이 좁아서

괜시리 모두 망치게 될까봐

불안해하죠


믿게 해줘서 힘이 돼줘서

눈을 뜨면 처음으로 하는 말

참 고마워요


내게 와줘서

꿈꾸게 해줘서

'우리'라는 선물을 준 그대

나 사랑해요


은은한 선율에 따라 광수의 심장이 요동쳤다.



잠에서 깬 라영은 기분 좋은 기지개를 켰다.


“아응! 잘잤다. 이런 띠바!!”


시계를 확인한 그녀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이싱 하기로 한 날이다.

튜닝을 위해 맡겨 둔 차를 찾아서 약속장소까지 가려면 후딱 준비해야 했다.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늦잠이라니!

아침부터 마스터 꼬장에 시달릴 걸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라영이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광수는 태연한 얼굴로 평상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웬일로 십팔층 계단을 내려가 직접 신문을 가져와서 읽고 있는 인간을 보니 더 불안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마스터 잘 잤어요?”


“잘 못 잤어.


“······.왜요?”


“왜긴 왜야? 너 때문이지 무슨 여자가 왜 그렇게 잠버릇이 고약해?”


혹시나 해서 부드럽게 아침인사 건네봤는데 역시나 오늘 하루도 부드럽게 지나기는 그른 모양이다.

라영이 목소리를 높였다.


“헐? 이젠 하다하다 잠버릇까지 시비에요? 그럴 거면 오늘부터 제방 출입 금지에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너란 아이 아무래도 위험해.”


아침부터 시비 모드로 나오길래 엄포 한번 놓아 본 건데 확 물러나니까 되려 뻘쭘했다.

전기료야 그렇다 쳐도 방 값으로 받기로 한 이만 원 현찰이 아쉬웠다.

눈치를 살피며 표정을 바꿨다.


“에이~ 남자가 삐치긴! 내가 잠꼬대를 심하게 했나 보네요. 평소엔 안 그러는데 피곤했나?”


“피곤하면 아무 남자에게나 막 안겨?”


“네? 제가 뭘 어쨌다구요?”


“일 없어. 나가야 하니까 아침 밥이나 차려.”


광수가 심드렁하게 내뱉고는 신문을 덮었다.

뭔가 심통이 나기는 했는데 이유를 모르겠다. 성질이 드러워도 단순한 인간이어서 파악하기는 쉬웠는데 오늘은 왠지 복잡했다.

이럴 땐 일단 저 자세로 나가는 것이 상책이었다.


“차 찾으러 가려면 서둘러야죠? 먼저 일어났으면 좀 깨우지 그랬어요? 괜히 사람 미안해 지잖아요.”


“깨웠어. 진짜 업어가도 모를 만큼 잘 자더군. 무슨 여자가 남자랑 한방에 자면서 그렇게 태평하게 잘 자?”


“마스터는 남자가 아니니까요.”


라영이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광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아주 훌륭한 태도야. 앞으로도 쭉 그런 태도를 유지해.”


광수가 신문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사람이든 차든 돈을 처바르면 레벨이 달라지는 건 마찬가지다.

겉은 영락없는 똥차인데 달리기 시작하자 차에 대해 문외한인 그녀에게도 힘이 넘치는 게 느껴졌다.


시험 주행용 트랙에서 성능 테스트를 마친 광수 역시 만족한 기색이 역력했다.

공장을 나와 그 녀석과 만나기로 한 고속도로 휴게소애 진입했다.


저녁 무렵 고속도로는 한산했고 차량도 드물었다.

반짝반짝 광택이 빛나는 람보르기니 보닛에 거만하게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기다리고 있던 녀석이 썩소를 지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꼴에 자존심은 살아있네? 겁나서 꽁무니 뺄 줄 알았는데.”


광수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당연히 이기는 게임에 왜 꽁무니를 빼?”


“근거 없는 자신감은 여전하네. 똥차가 내 차를 상대 할 수 있을까? 승부를 내는 건 고사하고 레이싱이 끝나기도 전에 퍼져 버릴 걸?”


“남의 차 걱정은 관두고 네 차에게 작별 인사나 해. 레이싱 끝나면 다신 못 볼 테니까.”


서로의 승리를 자신하며 시합 전 벌이는 입배틀이 사못 뜨거웠다.

라영이 슬그머니 광수의 옷깃을 잡아 끌며 속삭였다.


“마스터·········정말 이 레이싱 하실 거에요?”


“무슨 소리야? 차에 처박은 돈이 얼만 데 안 해? 당연히 해야지.”


“그게······..김 회장님이 하신 말도 있고······..이제라도 다시 생각하는 게 어때요?”


공장에서 나오기 전 성능 테스트 하느라 전용 트랙을 돌던 광수를 지켜보며 김 회장과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우아! 정말 잘 달리네요? 저 차가 저렇게 빨리 달릴 수 있다니 정말 회사 기술력이 대단해요!”


라영의 탄성을 질렀다.

김 회장은 자부심 가득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혼신의 힘을 기울였습니다. 이 정도면 아벤타토르랑 붙어도 해 볼만 할 겁니다. 하지만······.”


“하지만 뭐죠?”


“아무래도 경차를 가지고 최신 스포츠카 성능을 내다 보니 안전에 관해선 등한시 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차량 부속품을 최대한 줄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달리는 데는 문제 없지만 만약 사고라도 난다면·········”


“많이 위험한가요?”


“시속 삼백 킬로로 움직이는 깡통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마스터께서 하도 고집을 부리셔서 개조는 했지만 레이싱만큼은 정말 말리고 싶네요.”


-끼기긱!


그 순간 트랙을 달리던 차가 중심을 잃고 굉음을 내며 미끄러 졌다. 광폭 타이어가 차체를 잡아주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펜스에 그대로 처박힐 뻔했다.


김 회장이 조마조마한 눈으로 지켜봤다.





라영이 심히 걱정되는 표정으로 말렸다.


“마스터. 잘못해서 사고라도 나면 그 길로 요단강 건너는 거라구요.”


“그래서?”


“그래서라뇨? 이제라도 그냥 포기하는 게 좋지 않아요?”


“싫어. 죽으면 죽었지 포기 하지 않아.”


“잘 생각해 봐요? 자존심이 목숨보다 중요해요? 고집 부리다가 혼자 외롭게 하늘나라로 이민 가는 수도 있어요.”


“왜 외롭게 혼자야? 너는 뭐 하고?”


“헐~ 지금 나보고 저 흉기나 마찬가지인 자살캡슐에 같이 타라는 거에요?”


그녀가 기겁을 하건 말건 광수는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당연한 걸 뭘 물어? 넌 내 비서잖아? 마스터 가는데 비서 따라가는 건 당연한 거야.”


차라리 동반 자살 하자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

아무리 빚 때문에 절대 복종을 약속한 몸이라고 해도 할 짓이 있고 안 할 짓이 있다.


죽어도 못 탄다고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드는데 건너편에서 응원 나온 친구들이랑 신나게 떠들던 양아치 녀석이 다가왔다.


“생각해 보니까 말이야. 이긴 사람이 상대방의 차를 가지기로 한 거 너무 불공평한 게임이라고 생각 안해?”


“분명 그렇게 계약 했잖아?”


“그렇긴 했지만 불공평 하지. 내 차 바퀴 하나 값도 안 되는 똥차 따위 얻겠다고 레이싱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안나.”


“기분이 안 나는건 네 사정이고. 지금이라도 기권할 생각이면 받아주지.”


두 남자의 대화를 엿듣던 라영은 이때다 싶었다.

싫다고 떼써도 이 사악한 인간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살 캡슐인 똥차에 자신을 동승 시키려고 할 것이다.

비서를 가장한 노예 살이도 억울한데 어린 나이에 죽다니 더 억울했다.

이 상황에서 목숨을 보전 하려면 게임 자체를 아예 무산 시키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었다.


라영이 녀석에게 다가갔다.


작가의말

라영: 혹시 모르니까 사망 보험 들어 두시는 것이.........

광수: 보험 수혜자를 누구로 할까?

라영: 우리 결혼해요. 사랑해요. 아저씨!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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