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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nifle
작품등록일 :
2016.03.19 09:17
최근연재일 :
2019.04.04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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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19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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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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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22화-기사(Knights)(1)

DUMMY

64. 기사(Knights)


그것은 굳건한, 서늘하고 강건한 은빛의 몸체였다.

그녀가 태어나 받은 이름과 함께한 스스로의 증거품이기도 한 한자루의 검이었다.


‘너는 나와, 내 가족을 지켜다오.’


“하.”


그 말에 뭐라고 답했었더라? 아마도 잘난듯이 그러겠노라 답했었던 것 같았다.

내 모든 것을 바쳐 그 명을 수행하겠노라고. 반드시 지켜 보이는 수호검좌가 되겠노라고 답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그의 딸을 지키지 못해 벌레처럼 기어 간신히 도달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그때 분명하게 다짐했었다. 노력했었다. 다시는 누구도 잃지 않겠다고. 내 자신이 산산히 부서져 내리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절대.

하지만 결국 또 이 꼴이다.

수호는커녕 압도적인 격차 앞에 움츠려 들어 무력하게 납치를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다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없었다.

자신의 딸을 되찾아 오겠노라고 떠나는 그의 등을 마냥 바라보며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검을 쥐고서 그저 자리를 지키는 것 외에는 할 수 없었다.

또다시 그렇게. 무력하게.

떠나는 그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일말의 기대감조차 가지고서.

뿌드득.


“......”


분했다. 아무것도 못하는 자신의 무력함이 분했고, 그의 뒷모습에 당연히 모든 일이 해결될 것이라 기대하던 자신이 분했다.

그 어디에도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인지, 지킬 수 있는, 자신의 직분과 이름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인지 궁리하지 않는 자신의 태만이 분했다.

그리고 그 분함을 이제 와서야 느끼게 된 자신이 경멸스러웠다.

호문클루스라는 태생이 주는 강함에 취해서, 그가 선물해 준 강대한 도구에 취해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던 자신의 과거가 경멸스러웠다.

그의 딸을 지키지 못하고, 끝내는 그를 잃고야 만 자신이 경멸스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한걸음 앞에 닫혀 있는 문을 노려보며 루나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준비는?’


충분하다.


‘계획은?’


완성했다.


‘각오는?’


......


‘각오는?’


그런 것, 이미 몇번이고 했다. 질릴만큼. 다만 지금 필요한 것은 그저 이 문을 열 수 있는 용기 뿐이다.


“후우......”


숨을 내쉬다가 문득, 문의 금속 장식에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로 묶은 은색 머리칼과 푸른 눈동자. 자신의 이름을 결정한 얼굴이 잔뜩 굳어 있는 것이 보였다.

우스웠다.

여태 내려진 명령을 채 하나도 수행하지 못한 기사에게 잃을 것이 무에 더 있을 거라고 이렇게 굳어 있는 것인지 한바탕 조롱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애초에 뻔뻔하게 주제넘는 청을 하러 왔던 길에 뭐가 더 대수일 거라고.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손이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문 안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흠칫 몸이 긴장했다.

목소리에 담긴 감정은 아무런 방향성도 가지지 않고, 외부를 향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목소리를 듣는 이를 위협하고, 경고했다.


과연 이 목소리의 주인이 정말 그 자애로웠던 여인이 맞는 것일까 싶을 정도로 흉흉한 기세를 품고 있는 목소리에 이를 악물고 문을 열었다.

양쪽 벽을 차지하고 있는 서가와 제법 많은 사람이 앉을 수 있을 소파와 수두룩한 쿠션. 벽난로와 흔들의자 하나와 벽의 절반을 차지하는 창문을 등지고 있는 책상과 의자 하나.

그가 사라지기 전과 하나도 바뀐 것이 없는 방의 풍경 안에서 유일하게 달라진 방의 주인을 향해 루나가 목례를 취했다.


“......”


“......”


그리고 이어진 잠깐의 침묵.

툭, 하며 스피카의 손에 들려있던 책이 다른 책의 위로 올라가고 안경 너머의 은녹색 눈동자의 시선이 루나를 향했다.

그녀의 시선에 잠시 흔들리더니 이내 굳건하게 자리를 찾는 그녀의 눈빛에 스피카가 입을 열었다.


“떠나려는 거구나.”


“......예.”


“그래......잘 다녀오도록 해.”


별일 아니라는 듯 다시 시선을 내려 책을 고르는 모습에 어째서인지 루나는 비식,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간신히 억눌렀다.

비록 그는 사라졌지만, 언제 돌아올 지도 모르지만, 뜻밖에도 그의 빈자리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자신의 앞에 있는 저 여인의 존재 때문이리라 생각하며 루나는 조금, 억지웃음을 그려 보였다.


“너무, 무리하지는 마십시오. 마담.”


분명 그의 빈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믿음직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만큼 힘든 일이기도 할 터이다.


“아가씨들도, 저희도. 마스터의 빈자리가 채워지는 것을 기꺼워하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담께서 힘겨워 하시는 것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그 말에 다시금 책으로 가져가던 스피카의 손이 우뚝 멈춰섰다.

고개를 돌려 다시금 루나를 바라보던 스피카는 피식, 웃고 말았다.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어딘가의 누구와 무척이나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래, 알았어.”


속에 도사리고 있던 감정들이 말끔하게 사라진 답에 루나가 환하게 미소를 그리며 문을 나섰다.

아마도 스피카가 저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에르 가에는 아무런 위협도 없을 테니까.

자신은 그저 최선을 다해 노력해 최고의 성과만을 이룩하면 그것으로 족할 테니까.

허리에 패용한 검의 손잡이를 힘주어 잡으면서 그녀의 걸음이 저택의 밖을 향했다.

그녀 스스로가 설계하고 결정한 수련을 저 문을 나섬과 함께 시작할 것이다. 원래는 곧장 시작하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시작은 조금 미뤄야 할 것 같았다.


“가는 거냐?”


음울하고 묵직한 목소리가 그녀에게 닿았다. 온통 검은 옷으로 몸을 감싸고 있는 남자. 루이드를 보며 루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녀의 답에 루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처음이다.”


“다들 행동이 느리네.”


“그저 네가 가장 큰 책임을 통감했을 뿐이다.”


“......그런가.”


그 말에 루나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감돌았다. 자신이 수호검의 자리를 맡기는 했지만 그도, 자신도 결국은 같은 기사.

결국, 모두가 같은 책임을 통감하고 있을 터였다. 다만 자신은 가장 첫번의 행동이었을 뿐이고.


“살아서 돌아와라.”


루이드의 말에 루나가 그의 얼굴을 마주 바라봤다. 드물게도 그의 얼굴에 ‘걱정’이라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어디 외진 데 가서 혼자 죽어 나자빠지지 말고 살아서 돌아와라. 네가 죽으면 너의 직분을 대신 수행해 줄 이는 아무도 없으니까.”


그 말에 루나가 피식 웃었다.


“별로 죽고싶은 생각은 없어. 오히려......”


‘내가 죽인다면 모를까.’


검을 쥔 손에 한층 힘이 들어갔다. 아마도 이번 여행에서 자신은 크게 바뀌게 될 터였다.

수호검이라는 허울 좋은 자기 명분을 잠시 내려놓고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 이를 위해 위협을 배제하는 법을 익히게 될 테니까.

서늘하게 가라앉는 그녀의 눈을 보며 루이드가 품에서 패 하나를 꺼내 던졌다.


“......이건?”


“밤까마귀의 증표다. 너같이 어수룩한 녀석은 돈이라도 많아야 굶지 않고 다닐 테니 주는 거니까 돌아와서 반납해.”


빛나기는 커녕 그저 칙칙한 쇳덩어리였지만 그 안에 내재된 마력의 흐릅에 루나는 패를 품에 집어 넣었다.

아마도 그가 이끄는 조직의 간부 증패 정도 될 터이다. 길을 나서는 동료들에게 모두 하나씩 들려줄 요량이겠지, 생각하며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꼭 반납하지.”


“비싼 거니까 꼭 반납해라.”


“그래.”


후드를 푹 눌러 쓰고 문을 나서는 루나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루이드는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즈음 입을 열었다.


“너도 나와.”


그의 말에 뒤편 나무가 일렁이더니 은빛 머리칼이 툭 하고 튀어나왔다.


“에, 들켰나.”


장난스럽게 헤실거리는 표정을 한 니난이 어께를 으쓱였다.


“둔해빠진 루나라면 모를까 애초에 난 은신쪽이 전공이라는 걸 잊었나? 하기야, 적의가 없으니 그랬던 거일 테지만.”


“으엑, 그걸 다 봐놓고도 그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이 철면피!”


“말해두겠지만 철면피는 그런 뜻이 아니다. 그리고 네가 열살배기 어린애마냥 헛짓을 하는 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 않나?”


“......매정한 녀석같으니라고.”


투덜거리면서 털썩 주저앉아 육포를 꺼내 씹는 것을 보며 루이드가 물었다.


“넌 언제 갈 거지?”


“글쎄에, 지금 바로 가도 상관은 없기는 한데 뭐랄까, 내키지가 않는다고 할까.”


“음?”


의아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니난이 팔을 내저으며 마력을 일으켰다. 검고 어둡지만 그 안에 빛을 품고 있는 마력.

아인즈의 그것과 꼭 닮은 마력이 그녀의 손짓을 따라 이런저런 모습을 보였다.


“애초에 내가 받은 직분도, 재능도 마스터를 완전히 계승하는 쪽이라서.”


비록 아인즈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지만 분명 그 길은 완전히 같은 마력이었고, 마법의 원리였다.


“음, 뭐 성별을 똑같이 계승해 나가는 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생각하는 방식까지 계승해 버릴 줄은 몰라서.”


그녀의 시선이 저택을 가득 담았다.


“어떻게 된 게 떠나려니까 영 찜찜한 거 있지? 나도 강해지고 싶고, 나를 돌아본다거나 하는 시간이 필요한 건 마찬가진데 머리가 안 따라주는 상황이랄까.”


“그래서, 안 갈 건가?”


루이드의 물음에 니난이 씨익, 악동같은 미소를 그렸다.


“아니, 천만에.”


손에 남은 육포 부스러기를 털어내며 니난이 상쾌하게 웃었다.


“난 에스콰이어이기도 하지만 악동이기도 하거든! 원래 꼬마들은 머리 따로 몸 따로 노는 거 아니겠어?”


“아, 그래.”


“그러니까 나가야지! 다들 나가는데 나 혼자만 가만히 있으라니! 그건 너무 이상하잖아?”


뻔뻔한 소리를 뻔뻔하게 내뱉고 있는 니난을 보면서 루이드는 결국 웃고 말았다.

분명 그의, 아인즈의 능력과 생각하는 방향을 계승하고는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계승일 뿐.

아마도 천년이 지나고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나도 저 제멋대로인 동료는 바뀌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품에서 패를 꺼내 던졌다.

루나에게 건넸던 것과 동일한 물건이 인간이상의 월등한 완력에 힘입어 멀리 날아가는 것을 보며 니난이 비명을 질렀다.


“으엑?!”


얼마나 높이 던졌는지 계속해서 위로 상승하기만 하는 패를 바라보던 니난이 빽 소리를 질렀다.


“야!”


“어서 가서 주워서 가버려.”


“야! 왜 난 좋게 안 던져 주는 건데!”


그 말에 루이드가 삐뚜름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냥. 재수가 없어서.”


“?!”


“꼬맹이마냥 굴 거면 그냥 가고, 괜히 어울리지도 않게 마스터처럼 이것저것 재지 말고 가. 그게 너 다운 거 아닌가? 니난 지아르.”


그 말에 입술을 비죽이 내밀고 있던 니난이 다리를 휘둘러 루이드의 다리를 걷어찼다.


“돌아와서 두고 봐!”


주먹을 휙휙 휘두르면서 꺼지듯 사라진 그녀가 있던 자리를 잠시 바라보던 루이드가 벽에 등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다음은 언제 오려나.”


작가의말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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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 259화-결전(決戰) 19.04.04 192 3 13쪽
260 258화-재림(Parusia)(4) 19.04.04 193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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