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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리크리에이트(ReCreate)

만화/웹툰 > 나도만화가 > 판타지

레이시호
작품등록일 :
2016.04.02 10:05
최근연재일 :
2016.04.06 06:44
연재수 :
2 회
조회수 :
1,101
추천수 :
10
글자수 :
10,293

작성
16.04.02 10:14
조회
694
추천
5
글자
13쪽

진입

DUMMY

지옥, 꺼지지 않는 마계의 불길을 품은 땅.


검은 땅에 만발한 홍염의 꽃이 이글거리면, 초라한 생명의 심지는 허무하게 사그라든다. 그것은 내 기억에 선명하게 새겨진 지옥의 모습이었다.


아즈벨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숱한 보물과 마력을 쏟아부어 마계의 문을 열었다. 그것은 제국의 용사인 내가 한 달에 걸쳐 준비한 대업이었고, 그 대가는 고작 나 하나를 마계로 향하게 만드는 것에 성공했을 뿐이다.


그의 영혼을 구원해 축복하고 현세로 돌아온 날. 그 이후로 다시는 마계의 문이 열릴 이유가 없었으며, 열린 적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데······.



ㅡ어째서 지금 내 눈앞엔 지옥의 수라도가 보이는가?



[진심으로, 그대가 구할 수 있다고 믿었는가.]


집채만한 불덩어리가 하늘에서 떨어진다. 아니, 떨어진다는 말로는 그 수를 말하기 힘들다. 그것들은 온 하늘은 가득 채운 채 간신히 살아남은 푸른 새싹의 위로 내려앉는다.



[으아악ㅡ!!]



비명, 그리고 또다른 비명. 불덩어리와 함께 떨어지는 파공음의 사이로, 간간히 들려오는 것은 사그라드는 생명의 절규뿐이다.


멍하니 그들을 향해 시선을 둔 채, 열린 입을 닫힐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일어날 리 없는 일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그런 지옥도의 속에서, 홀로 선 마왕은 내게 시선을 던졌다.



[통탄스럽다, 가련하구나. 진심으로, 그대가 이들을 구원하리라 믿었단 말인가? 오오, 고작 인간에 불과한 그대가.]



흔들리는 정신에, 시야는 흐릿했다. 어렴풋이 보이는 것은 그저, 그 남자의 손에 들려진 파란 비단의······.



툭.


마왕의 손에서, 그녀의 머리가 떨어졌다.



[바로 그 표정이다. 짐에게 그대들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말이다.]



이곳에 서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내 곁에.


내 시선에 닿는 곳에.


내가 지켜온 미드그란델의 순백의 성지에.


땅을 딛고 선 자는, 오직 내 앞에 선 남자뿐이다.



내 상처를 보듬어주던 그녀는, 상냥한 손짓으로 상처를 감싸주던 그녀는. 언제나 나와 어깨를 같이하던 그는, 항상 밝은 미소로 우리를 환영하던 소년은.


이제, 없다.



[보거라. 그대도 짐을 기쁘게 만들 수 있지 않은가?]



푸욱ㅡ. 가슴뼈를 뚫고 시리듯 차가운 불길이 심장에 닿는다.


마검 크벨테론. 상처받은 소년의 영혼으로 벼려진 가련한 검이여. 부디 내게 마지막 관용을 베풀어 말해다오.



그 무엇이 이 세계를 겁화의 불길이 타오르는 지옥으로 만들었으며, 상처받은 이들에게 차가운 죽음을 내리고, 포근한 대지를 녹아내리는 용암의 바다로 만들었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했으며, 내가 하지 않아야 했던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빌어먹을 마검, 에스벨트의 형제여. 부디 내게 말해다오. 그 아이를 그토록 상처입힌 것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즐거운 유흥이었다. 그대에겐 관용을 베풀어 최후를 친견할 영광을 주도록 하지.]



그러나 내겐 보이지 않았다. 무너지는 성벽의 모습도, 용암에 녹아내리는 이들의 모습조차 나는 보이지 않았다. 바닥을 구르는 그녀의 눈동자에 시선을 향한 채, 나는 의지를 잃었다.


지킬 것을 잃은 전사에게 남겨지는 것. 그 대가는 내게 주어지기엔 너무나 과분한 것이었기에.



# # #



"······됐어, 이거다."



지난 6개월 동안 끈질기게 내 발목을 붙잡던 애인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그래, 정말로 그런 기분이었다.


수능이 끝나고, 남아도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심심풀이로 시작했던 소설이 반년 동안이나 나를 따라다닐 줄은 몰랐다. 시작을 했으면 완벽하게 끝맺고 싶었기에, 공책에 정리하기 시작한 설정과 이야기가 어느덧 얇은 공책 세 개를 가득 채웠다.


'저 열정으로 공부를 했으면 서울대를 갔겠어.'


예리한 지적에 정곡을 찔리는 것도 한두 번, 몇 번 저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수능이 끝나고 졸업을 할 때까지, 내 생활패턴은 한결같았다.


등교 후 공책에 정리. 귀가 후 소설 쓰기. 취침, 그리고 기상.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19년 동안 모르고 지내왔던 내 본질을 깨달았다. 나는 새드엔딩을 좋아하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그것도 설정덕후 기질을 가진.



Sad Ending. 이야기의 끝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 희망이라는 가면을 덮어쓴 망상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주인공에게 냉혹한 현실을 일러주는 것.



해피엔딩에 매달리는 사람들은 위안받고 싶다. 위로를 원한다. 그래서 그들은 현실의 벽을 넘어 이상향에 다가가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그에게서 위안받으며, 나 또한 그처럼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저 막연한 희망을 가질뿐이다.


그들에겐 소설 속 주인공처럼 행운이 따르지 않는다. 우연히 발견한 동굴 속에서 기연을 만나 힘을 얻게 되는 일도, 사실은 자신에게 위대한 핏줄이 흐르고 있었다는 출생의 비밀도, 여느 주인공처럼 눈이 돌아갈 만큼 빼어난 미모를 가지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주인공에 자신을 빗대어 기대하고, 자신 또한 그렇게 될 것이라며 기적을 바란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기대할 뿐인 희망이라는 이름의 망상. 그것은 내가 가장 혐오하는 것이요, 그렇기에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아니, 표현이 조금 틀렸나. 신이 존재하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내가 믿지 않는 건 종교라는 말이다. 그들이 나를 구원할 것이란 근거없는 기대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


잘못 선 보증, 연이어 망해버린 사업. 잇따라 초등학생이었던 여동생마저 큰병에 걸리자 집안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암울했다. 부모님이라는 이들은 용한 점집이며 무당을 찾아다니다, 생전 찾지 않았던 신에게서 기적을 바라기 시작했다. 들끓는 열에 신음하며 몸을 뒤틀던 여동생이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그들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하늘을 향해 부르짖고 있을 뿐이었다.


아, 이것은 미친 짓이로구나. 기적이라는 망상에 목매여 현실에서 도망치고, 언젠가는 내게도 희망이 찾아올 거라는 가당찮은 신념으로 닥쳐올 괴로움에 저항하는 것은, 그야말로 미친 짓이다. 그렇게 현실의 벽에 처음 마주선 것이 고작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의 이야기였다.


그 벽 앞에 서서 한없이 무기력한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희미한 희망에 기대는 것의 허무함을 깨달았을 때. 아마 그 때를 기점으로 내 안의 무언가가 변하기 시작했을 터다.


내가 좋아하는 건 단순한 새드엔딩이 아니다. 나 역시 책을 읽으며 대리만족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다만, 그 이후로 내가 몰입하게 되는 건 어리숙한 주인공이 아닌 '현실'이라는 이름의 차가운 남자였다. 대책도 없이 자신감만 넘쳐서, 자신의 위치를 모르고 송곳니를 보이는 하룻강아지에게 거대한 벽을 보여줄 때. 그 눈동자에 비치는 아득한 공포ㅡ. 나는 그 모습에 전율하고, 다시 한 번 차가운 현실의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기약없는 약속에 의지하는 것이 혐오스러워졌으며, 냉정한 현실의 권력은 위대했다. 처음부터 답은 정해져있지 않았는가, 나는 새드엔딩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 소년이었다. 명확하게 그 본질을 깨달은 것이, 난생 처음 직접 써낸 소설이라는 것을 통해서였다.


마지막 편을 업로드하고 2시간이 지난 저녁, 소설의 조회수를 확인하니 어느새 300명의 사람들이 글을 확인했다. 평소 3000명이 조금 넘는 조회수를 보였으니, 늦어도 이틀이면 조회수도 그만큼 올라가 있겠지. 게시글을 클릭해, 마우스를 아래로 굴렸다. 텅빈 댓글창과 평가란을 살펴보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100편이 넘는 회차 중에서도 처음의 10편을 제외하면 이례적인 경우다. 단 하나의 댓글도, 하나의 평가도 등록되지 않았다.


마우스를 움직여 이전화를 클릭한다. 다시 휠을 아래로 굴린다. 90명의 추천을 받은 베스트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와... 진짜 고생 많이 했다. 이제 꽁냥꽁냥하는 이야기만 기대하면 되는 거지? 다음화 기대할게요 작가님!!]


그렇게 기대하는 게 무리는 아닐테지.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평범한 용사의 성장소설이나 다를 바가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건 당신들이 너무 관대했던 거다. 소리없이 다가오는 현실의 족쇄에 말이다.


공책 3개를 가득 채운 내용엔 치밀하게 구성된 이야기와 배경이 정리되어있고, 소설의 사이엔 어두운 복선을 그리지 않은 곳이 없었다. 당신들은 너무 태만했던 거다. 눈앞에 보이는 승리와 기쁨, 이것이 영원할 것이라는 오만과 자만에 도취되어 아무것도 신경쓰이지 않았던 거겠지. 자신의 숨통을 조이는 절망의 밧줄조차도.


119화. 여기에서 엔딩을 본 300명의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자아, 어떻습니까? 환영해 마지 않던 행복의 뒤에 몸을 숨긴 절망의 비수가 심장을 파고드는 기분은. 그의 위엄에 넋을 놓은 여러분의 표정을 눈앞에서 보지 못하는 것을 진심으로 안타깝게 여깁니다.


딸깍. 마우스를 클릭해 창을 닫았다. 이렇게 끝낸 세계에 미련은 없다. 어리숙한 도전자에게 차디찬 잔혹함을 보여주고, 그 전사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오만의 대가를 감당하지 못했다.


내 일은 여기서 끝이다. 마왕이라는 이름을 빌린 현실의 차가운 칼날 아래, 그 세계는 자만의 대가를 받게 되겠지. 최종화를 바라보는 구경꾼들의 입장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절망을 맛본 그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이는 것처럼 생생하게 들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리가 없다. 이건 작가님이 쓰신 글이 아니다. 바로 전까지 그렇게 평화롭고 밝은 분위기였는데, 갑자기 이렇게 뒤집히는 전개는 올바르지 않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절대적인 힘 앞에서, 그들은 부정하는 것 이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인 듯, 조잡한 상식을 들먹이며 그 절대적인 힘을 부정하려한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다. 그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한다고 해서, 상자 안의 사과가 썩지 않는 것이 아니듯이. 그것은 그저 희망의 세계의 이면, 당신이 알지 못하는 또 하나의 진실일 뿐이니까.


"후우······."


수많은 생각을 정리해, 짧은 한숨에 담아 내뱉었다. 그대로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고 두근거리는 심장의 고동을 느꼈다. 그 남자의 힘에 전율한 심장은 아직까지도 내 피를 끓어오르게 만들고 있었다. 모두가 감히 마주치는 것조차 두려워 존재를 부정하고, 뒤돌아 도망치게 만드는 힘.


나는 그에게 몰입해 깊고 진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장장 6개월에 걸친 먹이사냥은, 마지막으로 깊게 내쉰 한숨과 함께 사라졌다. 이제 다시는 그 세계에 참견할 일이 없을 거다. 나는 온전히 그곳에서 손을 거뒀으니까.


새벽 2시. 어느새 책상에 앉은 것도 7시간이 지났다. 식사를 한 것도 꽤나 오래 전의 일이지만 식욕은 느껴지지 않았다. 흥분이 서서히 식어가는 몸은 그저 편안한 휴식을 원할 따름이다. 물론 이렇게 혹사시킨 몸은 충분히 쉬게 해 줄 의향이 있다. 그래, 솔직히 당장이라도 쓰러지고 싶다. 저 남자와 마주보는 순간엔 한없이 맑아지는 머리지만, 그를 겪고 나면 순식간에 피곤해지니까.


딱딱한 침대 위로 몸을 눕히고, 습관처럼 벽에 등을 기대고 몸을 웅크렸다. 작은 방에서 문을 바라보며 잠들 수 있는 최적의 자세를,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찾아낸 결과였다.


오늘은 많은 일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큰 일이 있었지. 이런 날에는 기꺼이 늦잠을 허락해도 좋을지도 모른다. 천천히 몸의 긴장을 풀고, 스르륵 다가오는 잠의 이불을 덮었다.


반쯤 잠긴 눈을 티켓으로, 잠의 숲에 살며시 발을 들이려는 그때. 무언가가 폭발하는 듯한 굉음과 함께 지면이 요동쳤다.


"무, 무슨 일이야?!"


갑자기 낯선 일이 닥치자 심장은 차가운 피를 뿜기 시작했다. 진득하게 달라붙은 잠을 단숨에 씻어낸 머리가 몸을 일으킬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드러난 내 방의 모습에, 머리가 한 순간 사고를 정지했다.


나무로 만들어진 투박한 가구와 군데군데 작은 틈이 갈라진 나무벽. 바닥조차 깔지 않아 흙이 그대로 드러난 땅에선 기분나쁜 냄새가 났다. 나무벽의 틈 사이로는 붉은 빛이 일렁거렸고, 책상 위의 컴퓨터, 문 옆에 놓인 옷장도 사라져 있었다. 뒤늦게 회전하기 시작한 머리는, 어렴풋이 들려오는 비명소리와 함께 결론을 내렸다.


이곳은 내 방이 아니었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처음뵙겠습니다. 레이시호라고합니다! 앞으로 이모저모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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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작 +1 16.04.06 407 5 10쪽
» 진입 16.04.02 695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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