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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리크리에이트(ReCreate)

만화/웹툰 > 나도만화가 > 판타지

레이시호
작품등록일 :
2016.04.02 10:05
최근연재일 :
2016.04.06 06:44
연재수 :
2 회
조회수 :
1,104
추천수 :
10
글자수 :
10,293

작성
16.04.06 06:44
조회
407
추천
5
글자
10쪽

시작

DUMMY

나무로 만들어진 투박한 가구와 군데군데 작은 틈이 갈라진 나무벽. 바닥조차 깔지 않아 흙이 그대로 드러난 땅에선 기분 나쁜 냄새가 났다. 나무벽의 틈 사이로는 붉은 빛이 일렁거렸고, 책상 위의 컴퓨터, 문 옆에 놓인 옷장도 사라져 있었다. 뒤늦게 회전하기 시작한 머리는, 어렴풋이 들려오는 비명소리와 함께 결론을 내렸다.


이곳은 내 방이 아니었다.


" 으아악ㅡ!! "


귀를 찢어버릴 듯한 비명소리는 나로 하여금 서둘러 바깥을 살펴보게 만들었다. 붉은 빛이 일렁이는 나무의 구멍에 눈을 대고 바깥을 살피는 순간, 나는 불길에 삼켜지는 마을을 본다.


넘실대는 붉은 기운에 시선이 혹한 것도 잠시, 나는 타오르는 집들의 상태가 조금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현대 과학의 힘을 빌리지 않은, 순수한 자연의 것으로만 만들어진 집이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중세풍의 마을이었다.


나는 어째서 이곳에 있는가?


이곳은 나의 집이 아니었고, 나의 마을이 아니었다. 과거로 돌아간 것만 같은 주변의 모습에 자연스레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그 의문에 빠져들기도 전, 코끝을 찌르는 매캐한 연기가 내게는 좀더 급박한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단순히 화재가 일어났을 뿐인가? 그렇다면 저 비명의 원인은 무엇인가? 당장 이곳을 벗어나야 하는가, 혹은 머물면서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가?


나는 나를 구원할 희망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 길을 만드는 열쇠를 찾을 뿐이다. 이 집의 바깥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더라도, 불의 마수가 다가오는 이곳에 오래 머무를 수는 없다. 선택지는 하나다.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신중한 결단엔 신속한 행동이 따라야만 한다. 재빨리 방을 뒤져 챙길만한 물건들을 찾았다. 침대맡에 떨어진 겉옷, 그 아래 떨어진 나무 지팡이, 나무 상자에 든 자잘한 몇 개의 잡동사니들. 그것들을 모조리 주머니에 욱여넣은 후에, 나는 바깥의 기척을 살피고 집의 문을 열었다.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문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예상하지 못한 문제다.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손발이 붕뜨려고 하지만, 그런 긴장에 몸을 빼앗기면 후회할 일들만 남는다. 차갑게, 신중하게, 냉정하게 생각하자.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시금 신중히 집 안을 살핀다. 더러운 흙바닥, 특이한 기법으로 만들어진 나무의 집. 내가 있던 본래의 방과 같은 건 침대와 방의 크기 뿐, 그 안을 이루고 있는 물건들이며 방의 재질은 모조리 낯선 것들이었다. 나와 맞닿아 있었던 옷과 침대. 그것들과 함께 다른 세계로 떨어져버린 것만 같았다.


[ 키레렉! ]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귓가에 젖어들었다. 나도 모르게 터져나오려는 비명을 억누르며 뒤를 돌았을 때, 집 밖의 벽에 어린아이만한 덩치의 무언가가 붙어있다는 걸 그림자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이 목소리를 낸 것이 저 존재란 말인가? 난생 처음 들어보는 괴기스러운 목소리다. 그 안에 녹아있는 혐오와 두려움이, 당장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내 결심에 한층 힘을 실었다.


파직, 파지직. 무언가가 나무의 벽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도망칠 길은 보이지 않는다. 저것이 들어오길 기다렸다가 싸워야 할까, 어떻게든 녀석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할까. 침대를 움직여 벽을 막아보는 건 어떨까 생각하며 시선을 옮기는 순간, 그때까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작은 특이점를 발견했다.


침대 아래에 인위적으로 길게 이어진 작은 틈······ 급히 다가가 틈새를 살펴보니, 딱 손가락 두 개가 들어갈 만큼의 구멍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달그락, 달그락. 힘을 주니 반응하는 것이, 어떻게든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이것이 당장 내 위험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발견이긴 한 걸까? 그때, 무언가가 내 생각의 발목을 잡았다.


문이 없는 집, 바닥에 있는 작은 틈, 무언가의 습격과 함께 일어난 화재ㅡ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머리를 뒤흔들었다. 설마, 설마 지금 이건?


빠지지직!!


집의 판자가 뜯어지는 소리에, 나는 재빨리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한쪽으로 힘을 주었다. 끼이익, 침대 아래로 작은 틈이 열렸다. 서둘러 그 안으로 몸을 굴려넣고 뚜껑을 닫는다.


······작은 공간에 들어왔음에도 자유로운 몸,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기이한 감각이 내 몸을 휘감았다. 나무 지팡이를 든 손으로 어둠을 더듬는다. ······딸깍, 틈에 이어진 고리에 지팡이를 끼우자 내가 들어온 문이 잠겼다. 그와 동시에, 텅 빈 공간에 약한 광원이 나타났다.


아아. 그제서야 나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가. 그 물음의 답을 깨달은 것이다.


나는 소환된 거다. 시공을 넘나들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다 미쳐버린, 비운의 천재 연금술사의 손에서.


그 주인은 이미 죽어버렸지만. 그가 남긴 차원의 연금진은 활동을 멈추지 않고 계속 가동되고 있었다. 그 천재는 감히 마나의 흐름과 시간이라는 관계 속에서 반영구적으로 유지되는 마법의 비밀을 발견한 자였으니까.


'어떻게' 내가 이곳에 있는가. 그 궁금증은 해결되었다. 하지만, 하지만 '어째서'. 나는 지금 이 세계에 있는가?


바로 내가 창조한, 나의 소설 속 세계에.



# # #



크실 리멜로, 비운의 천재 연금술사.


어린 나이에 천재적인 재능을 인정받아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인격이 다듬어지지 않은 그의 오만함은 그에게 수많은 적을 남겼다. 어린 나이에 인정받았으나 그만큼 젊은 나이에 시기와 모함으로 얼룩져 떨어져버린 천재는, 외딴 시골에 틀어박혀 그의 유일한 관심사였던 연금술에 매진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신들만이 가능하다던 이계와의 접점을 만들어내는 것에 성공한다.


그의 발명은 위대한 것이었으며, 마법과 연금계를 한층 진보시킬 수 있는 거대한 도약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영혼을 쏟아부은 결실의 완성과 함께, 그는 스스로를 돌보지 않은 대가를 받았다ㅡ 이것이, 내 소설에서 다뤄진 그의 이야기다.


기이한 역삼각형을 중심에 두고 그려진 기하학적인 보라색 도형, 그것을 이용해 만들어진 복잡한 마법진들······ 그 옆의 바닥에 누워있는 앙상한 백색의 유골. 상상에서만 볼 수 있었던 천재의 흔적이,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 이게······ 무슨 일이야, 대체. "


믿기지 않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이곳은 내가 살던 곳이 아닌, 내 공상 속 상상의 세계였다. 갑작스레 다가온 낯선 현실에 머리가 어지럽다. 눈앞에 닥쳐온 현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저, 아주 잠깐. 이 사실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뿐이야. 잠깐이면 된다. 정말 잠깐이면.


침착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머리와는 달리, 몸은 이미 현실에 적응한 듯 했다. 걸음을 옮겨 크실 리멜로의 유골 옆으로 다가가, 그의 옆에 떨어진 모노클(단안경)을 주웠다.


이계에서 나타난 낯선 물건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 그의 지식을 쏟아부어 만들어낸 통찰의 눈이다. 체인의 끝을 귀걸이처럼 달면, 첨단 연금술의 집약체인 단안경은 주인의 의지를 읽어 스스로 허공에 떠올라 초첨을 맞춘다.


애석하지만, 크실의 연구실에서 건질 수 있는 물건은 이것이 전부다. 밥조차 제때 챙겨먹지 않았던 사람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었다면 그에게 좀더 풍족한 삶을 주었을 텐데. 통찰의 눈이라······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창조하고 기억하는 내게는, 사실 그다지 필요한 물건은 아니다.


······아, 그렇다면 저 지팡이가 창조의 손인가. 갑자기 일어난 격변에 머리가 아직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걸 이제야 떠올리다니, 확실히 둔해지긴 한 모양이군.



[ 로베스크릴 191년. 여덟 번째 달의 첫 번째 눈 - 천재 연금술사, 크실 리멜로가 최후를 맞은 마을이 데블민을 노린 몬스터들의 침략으로 폐허가 되다. 이틀 후, 미델베그의 라이온이 출병해 마물을 쫒아내다. 허나 마물들의 손길이 닿은 로에넬에 찾아오는 자 없어 잊혀진 마을이 되다. 여섯 번의 달이 지나, 소년이 나타나다. ]



지금 마을을 약탈하고 있는 건 홉고블린과 퍼브울프들. 가진 것은 지식뿐인 내가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어차피 녀석들의 목표는 데블민, 약탈이 끝나면 그들은 다른 목표를 찾아 떠나겠지. 이곳에서 숨을 죽이고 있다가 때를 봐서 길을 떠나면 될 것이다.


차근차근 생각들을 정리한다. 당장 해야할 일, 앞으로의 계획. 소설에서 만들어둔 배경, 이후 내가 겪게 될 일들······ 어떻게 해야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기억을 더듬고 미래를 생각하던 도중, 뇌리에 불현듯 스치는 것이 있었다. 이 세계의 엔딩은, 마왕의 손에 의해 파멸의 불구덩이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 로베스크릴 193년. 없는 달의 첫 번째 눈 - 미드그란델, 크벨테론의 주인에게 함락되다. 영웅이라 불린 이들, 그리고 용사. 모두 그의 손에 죽음을 맞다. 로베스크릴에 마계의 문이 열리다. ]



······대략 2년 정도의 시간인가. 어떻게든 그 안에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록 이 세계를 창조한 나라고 할 지라도 비참한 최후를 피해갈 수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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