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프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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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spberry
작품등록일 :
2016.04.25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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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17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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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혼란

DUMMY

도로스와 닥터 윌슨은 무기를 꽉 움켜쥔 채로 쓰레기 더미에 몸을 파묻었다. 그들보다 머리 한 두개는 더 높이 쌓인 폐기물들은 좋은 방어벽이 되어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수없이 날아오는 총탄과 쓰레기들의 세례에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들과 대치하고 있는 플라잉 몽키즈들이 쏘아내거나 던진 무언가와 부딪힐 때마다 와장창, 요란한 소음을 내며 작은 동산을 만들고 있던 폐기물들이 떨어져내렸다.



"도로스, 뭔가 작,전이 있습니,까?"



"음..그게.."



말을 꺼내려던 도로스는 굉음을 내며 천천히 붕괴해가는 그들의 방어벽에 목을 움츠렸다. 귀뚜라미는 그 커다란 눈을 부담스럽게 빛내며 도로스의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정말 아쉽게도, 도로스에겐 그의 기대를 충족시켜 줄 만한 계획따윈 전무했다.



"사실 저도 닥터한테 물어보려고 했는데요."



"예? 무엇,을 말입니,까?"



닥터 윌슨은 설마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뭔가 그..타개? 타계? 타계책? 그런게 있는지요."



"..타계책이 아니,라 타개책입니,다."



닥터 윌슨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우린 쓸모가 없습니,다. 쓰레기라,도 던집시,다. 도로스."



도로스도 덩달아 우울해졌다.



마음같아선 총이라도 빵빵 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저쪽의 수가 너무 많았다. 총이고 뭐고 고개를 내민 순간 공격당할 확률이 더 높았다.



그나마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들이 많아서 그렇지, 만일 아무것도 없는 뻥뚫린 공간이었다면 진작에 다섯 명의 집중포화에 끝장났으리라.



도로스는 새삼 수의 폭력의 무서움을 깨달았다. 그전까진 프로바움의 무시무시한 화력과 카지트의 전략으로 어떻게든 극복해왔지만 그 둘이 없는 지금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숫자도 화력도 저쪽이 위니까.



닥터 윌슨이 네 손을 이용해 연신 쓰레기를 주워서 방어벽 위로 던질 때, 도로스는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내기 위해 곰곰히 생각했다.



생각하자, 생각. 생각.



주위를 훑던 도로스의 눈길이 이내 바닥에 널린 쓰레기들에 닿았다. 부서진 톱니바퀴. 무언가의 파츠. 녹이 슨 금속 조각. 굳어버린 진흙같은 무언가. 더 이상 쓰임을 알 수 없는 것들이 방대하게 널려있었다.



도로스는 그것들 중 하나를 집어올렸다.



검은색 가죽 장갑 위로 까슬까슬한 녹슨 금속의 촉감이 느껴졌다. 반으로 부러진 톱니바퀴. 부러진 단면은 화살촉처럼 날카로웠다. 도로스는 궁리했다. 뭔가 이걸로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는 마을에서 가르침받던 때를 떠올리려고 애썼다.



닥터 윌슨은 사색에 잠긴 도로스의 모습에 마구잡이로 쓰레기를 던지는데 한층 더 애를 썼다. 전투에 관해서라면 도로스 쪽이 그보다 훨씬 더 잘 알테니, 지금 당장 그가 할 수 있는 건 도로스가 돌파구를 발견할 때까지 그를 지키는 것 뿐이다.



"이런.."



닥터 윌슨은 더듬이를 움찔했다.



천천히 붕괴가 진행되어가고 있는 그들의 쓰레기 더미 너머로, 플라잉 몽키즈가 총을 쏘며 천천히 접근해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 서로 대치만하고 있는 이 상황에 질려버린 것같다. 흉폭하고 접근전을 선호하는 녀석들의 특성상 근접전으로 끌고가고 싶은 거겠지.



닥터 윌슨은 혀를 차곤 네 손에 든 폐기물들을 버렸다. 전투의 스페셜리스트들인 플라잉 몽키즈를 상대하는데엔 쓰레기를 투척하는 것보다 총을 쏘는게 효과적일 것이다.



기압식 피스톨 두 정을 각각 한 손에 꼬나쥐고, 귀뚜라미는 적의 습격에 대비했다. 나머지 비어있는 두 손으로 장전해가며 쏜다면, 연사력은 화약식의 그것에 비견될만 하다. 적어도 함부로 접근하진 못하겠지.



그러나 천만다행히도 적들이 습격해오는 것보다 도로스가 해결책을 생각해낸 것이 빨랐다.



"어떻게 상대해야 할 지 대략 알 것 같아요! 적어도 적을 전부 끝장내는덴 무리더라도, 프로바움이나 카지트가 올 때까지 끌고 다닐 수는 있을 거에요."



귀뚜라미는 반색하며 물었다. 그 어떤 방법이라도 근접전에서 플라잉 몽키즈와 맞서 싸우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대,체 무슨 방법입니,까?"



"사냥꾼의 방식이죠."



도로스는 씨익 웃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방독면에 가로막혀 그 웃음은 닥터 윌슨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시간만 된다면 이것저것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플라잉 몽키즈가 한 걸음 디딜 때마다 와그작, 소리를 내며 폐기물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도로스 또한 녀석들이 그들에게 접근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설명하는 대신, 도로스는 끝이 화살촉처럼 날카롭게 쪼개진 금속 쪼가리들을 보여주며, 그것들을 최대한 많이 끌어모아 달라고 부탁했다. 귀뚜라미는 영문을 몰랐지만, 순순히 도로스의 말대로 날카로운 금속 쪼가리들을 모았다. 저렇게 자신만만한 태도로 나온 것을 보아, 필시 무언가 쓸만한 계책이 있는 듯 했기 때문이다.



닥터 윌슨의 네 손이 거들자 한 무더기의 날카롭고 뾰족한 금속 무더기가 모이는 건 금방이었다.



"도로스, 이걸로 대체 무엇,을 할 셈입니,까?"



닥터 윌슨은 불안한 듯 그들과 플라잉 몽키즈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폐기물의 벽을 힐끔거렸다. 들리는 발소리로 보아 녀석들은 거의 지척까지 다다른 듯 했다. 나름 경계를 하고 있는지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게 언제까지고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도로스 또한 시간이 촉박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불안한 얼굴의 닥터 윌슨을 재촉해 구멍을 팠다. 오랜 세월 동안 쌓이고 쌓인 쓰레기들은 하나의 두꺼운 토층을 형성하고 있었기에, 파도파도 쓰레기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깊게 팔 필요는 없다.



얇고 넓게. 도로스의 지시에 따라 구멍을 파면서도 귀뚜라미는 도저히 그의 생각을 알 수 없었다.



어릴적부터 광산에서 뛰놀던 도로스의 실력과 구멍을 파는데에 있어 최적의 조건을 가진 귀뚜라미덕분에, 고작 수 분만에 도로스는 목표치를 달성 할 수 있었다. 그는 뾰족한 금속쪼가리들을 대충 구멍에 뿌린 후, 그 위를 얇은 쓰레기들로 티가 나지않게 덮었다.



그제서야 닥터 윌슨은 도로스가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눈치챘다.



"함정..!"



그는 소리죽인 채 감탄했다.



부스럭, 하고 누군가 그들이 방어벽 대용으로 삼은 폐기물을 건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들이다! 도로스와 닥터 윌슨은 시선을 주고 받았다. 어느새 플라잉 몽키즈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도로스는 소리없이 손가락으로 어디로 몸을 숨길지 가리켰다. 그리고는 벽을 미는 듯한 동작을 했다. 총명한 닥터 윌슨은 그게 무슨 뜻인지 단박에 알아채곤, 고개를 끄덕였다.



쓰레기의 벽을 에워싼 기척.



도로스는 손가락 세 개를 폈다.



셋. 둘. 하나.



신호에 맞춰 둘은 그들과 플라잉 몽키즈 사이를 막고 있는 폐기물의 벽을 밀었다. 원래라면 꿈쩍도 하지 않았어야 할 그것은, 플라잉 몽키즈의 열렬한 공격에 깎이고 깎인 상태였다. 덕분에 도로스와 닥터 윌슨의 힘으로도 수월하게 밀어버릴 수 있었다.



기우뚱 하던 벽은 이내 근처에 서 있던 다섯 명의 플라잉 몽키즈를 향해 쓰러지기 시작했다. 어어, 하며 그들의 머리 위로 드리워지던 그림자를 바라보던 이들은,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곳곳에서 욕설과 함께 격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이런 썅! 이게 뭐야!"



"으아아, 저 미친 놈들!"



어떻게든 피해보기 위해 발버둥쳤으나, 작은 동산이 그들을 덮치는 게 먼저였다.



도로스와 닥터 윌슨은 그 즐거운 광경을 외면하고 목표로 했던 다른 폐기물을 향해 냅다 뛰었다. 그들의 목표는 적들을 처지하는 게 아니라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것. 요리조리 도망만 잘 치면 된다.



무너진 폐기물의 벽을 헤쳐나온 이들은 곳곳이 성치 않았다. 무겁게 그들을 짓누르던 질량과 거기에 섞인 각종 쓰레기들이 그들의 몸을 떄린 탓이다. 그러나 도로스들에겐 아쉽게도 부상자는 있을지언정 사망자는 없었다.



제일 부상이 심한 이조차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고 있는 이였다.



그들은 완전히 격분해서 날뛰었다. 손쉬운 사냥감이라고 생각했던 녀석들에게 한 방 크게 먹었으니 그 분함은 도저히 말로 표현 할 수 없으리라. 한 동안 온 몸으로 분노를 표출하던 이들은 도로스들이 숨어있는 곳으로 뛰었다.



그러나 곧 그들은 다시 비명을 질렀다.



"끄아악!!"



"이 개자식들!!"



도로스와 닥터 윌슨이 판 함정에 빠진 것이다. 운 좋은 이들은 신고있는 신발 덕분에 그리 큰 피해는 없었지만, 운이 나쁜 둘은 유독 기다란 금속 조각을 밟고 발을 부여잡았다. 신발 밑창을 뚫고 나온 그것에 찔린 것이다.



운좋은 셋은 불행한 둘을 비웃고 달려나갔다. 저렇게 다친 발로는 제대로 따라올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남겨진 둘은 짜증을 내며 화풀이 삼아 쓰레기들을 사방으로 주워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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