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프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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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spberry
작품등록일 :
2016.04.25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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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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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03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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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전쟁

DUMMY

퍼져있는 다른 팀들의 위치는 알고 있었다. 사전에 서로의 위치를 외워놨으니까. 그리고 집합 장소 역시 사전에 미리 정해둔 덕분에, 그들은 방황하지 않았다.



도로스들은 빠르게 움직이며 다른 팀들을 도와주고 규합해서 집합 장소로 보냈다. 몇몇 팀은 도로스들의 도움에 간신히 살아났지만, 시간을 맞추지 못한 곳도 있었다. 그렇게 모든 팀이 있던 곳을 돌았다.



원래 형태를 알 수 없는 육편들과 낭자한 혈흔. 그리고 그 위를 돌연변이의 시체가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아직 시간이 남았음에도 벌써부터 썩은 내가 감돌았다. 분명 그 이전부터 산 채로 썩어가던 돌연변이의 것이리라.



마지막에 이르러선 살아남은 광신도와 돌연변이를 찾아 볼 수 없었다.



대부분의 전투가 끝이 나고 그들의 승리가 확실시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로스들의 얼굴은 전혀 밝지 않았다. 마냥 기뻐하기엔 희생된 사람들과 병력 손실이 너무나 컸던 까닭이다.



"...정말 이게 최선이었을까요..."



연합, 광신도, 돌연변이 할 것 없이 뒤섞인 시체들은 마치 녹슨 고철덩어리처럼 도시 곳곳에 방치되어 있었다. 그중엔 분명 민간인 역시 있을 것이다.



봉화처럼 군데군데 피어오른 불꽃은 건물을 집어삼키고 꺼질 줄을 몰랐다. 타들어가는 것들의 비명과 화연이 뒤섞인 매캐한 냄새. 피에 물든 공포는 거리마다 진하게 녹아있었다.



그 광경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회의감.



도로스는 이번 작전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연합은, 레온하르트는 분명 이번 작전과 계획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적의 피해를 극대화 할 수 있도록. 혹은 혹시모를 돌발상황과 변수를 생각하고 떠올리면서.



그러나 그 결과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혹시 좀 더 나은 수가 있지 않았을까. 정말 이게 최선인 걸까. 도로스는 고민했다.



"왜 그리 죽을상이야?"



카지트는 도로스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물었다. 그 역시 보이는 곳마다 즐비한 시체에 그리 편한 표정은 아니었다.



"음...이게 정말 최선이었는지...고민하고 있었어요. 혹시 좀 더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없었을까, 뭐 그런거요."



도로스의 대답에 잠시 얼빠진 얼굴로 멍하니 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카지트는, 이내 한숨과도 같은 실소를 픽 흘렸다.



"확실히 너도 바뀌긴 했구나. 그런 것도 생각 할 줄 알고."



도로스는 저를 놀리나 싶어 얼굴을 팍 찡그렸다. 물론 방독면에 가려 보이진 않았다.



"길잡이들은 말야,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면 다들 그런 고민을 하더라고. 이게 정말 최선의 길일까. 좀 더 나은 길은 없을까. 뭐 그런거. 그 전엔 그냥 무작정 제 감만 믿고 행동했었는데 말이지..."



그는 씁쓸한 얼굴로 위를 쳐다봤다. 혼란섞인 메아리치는 연기가 증기와 뒤섞여 인공조명을 탁하게 흐렸다.



"나도 큰 사고 한 번 치고 나니까 머리가 좀 굵어졌는지 그런 생각을 했었지."



카지트는 반쯤 흐려진 눈으로 먼 곳을 응시했다. 그 큰 사고가 의미하는 게 뭔지, 도로스는 알 것 같았다. 그러나 도로스는 언급을 피했다. 괜히 그의 아픈 곳을 찔러봤자 무슨 좋은 꼴을 보겠는가.



도로스는 잠자코 먼 상념에 빠진 카지트를 기다렸다. 그는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그 뭐냐. 난 말야,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정말 내가 그 때 내렸던 결정이 옳았을까? 뭔가 더 나은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씁쓸한 미소를 짓던 카지트는 고민하기 시작한 도로스의 등을 툭툭 두들겼다. 평소와 같은 힘이 담겨있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허약하고 우울한 느낌 역시 없었다.



"계속 생각하고 생각해서 답을 찾아봐. 남이 내린 결정이라도 결국 너한텐 도움이 될 걸."



카지트는 재빨리 마무리를 짓고 제멋대로 앞서 나갔다. 어쩐지 도로스에게 이렇게 설교하는 게 부끄럽다고 느꼈는지, 쫑긋 솟은 그의 두 귀가 바르작거렸다.



잠시 멍하니 그의 말을 곱씹던 도로스는 이미 저만치 가버린 카지트의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것 참, 알다가도 모를 성격이라니까. 그는 피식 웃고는 그의 뒤를 따라갔다.



사전에 모이기로 한 장소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집합 장소는 드넓은 공터 였는데, 근방에 굴러다니는 커다란 기계 조각과 톱니바퀴, 녹슨 철판등이 즐비했다. 또한 멀지 않은 곳에 주저앉은 다각열차들이 보이는 걸 보니, 다각열차를 타는 곳인 듯 했다. 물론 관리되지 않아 반쯤 녹슨 커다란 고철같은 그것들은 그리 쉽게 움직이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당장 도로스들의 관심은 그런 것 따위에 없었다.



천천히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는 그들의 얼굴은 잔뜩 굳어있었다. 대부분이 상처입은 패잔병같은 꼴을 하고 있었고, 그 수는 처음의 반을 조금 넘을 정도. 그리고 그 절반에 달하는 인원은 도로스들에게 낯이 익었다.



바로 조금 전에 그들이 구했던 사람들이었으니까.



"큰일이군."



끙끙대며 앓는 사람들을 보면서 프로바움은 잔뜩 심각한 표정으로 읊조렸다. 이전의 전쟁을 경험해보지 못했던 도로스와 닥터 윌슨을 제외한 나머지 역시 곤란한 표정으로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 어떻게 되려나. 큰일났네."



늑대는 턱 밑을 긁으며 중얼거렸다. 잔뜩 찌푸린 눈썹은 현재 상황이 그렇게 좋지 않다는 걸 말해줬다.



"이번엔 정말 죽겠군."



"두려운 거니?"



"흥, 설마. 다만 광신도 놈들을 전부 없앨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코뿔소와 하마는 태평한 얼굴로 대화를 주고 받았다. 그러나 표정은 편했을 지언정, 어조와 목소리에선 짙게 배어나는 긴장과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겁,니까?"



닥터 윌슨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프로바움에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단 말인가? 반을 겨우 넘긴 사람들. 그리고 혀를 차며 패배를 직감한 베테랑들. 영민한 그의 머리는 대략적인 추측을 내놨으나, 그다지 믿고 싶은 결과는 아니었다. 닥터 윌슨은 혹시나 하며 물었다.



"저 사람들을 보게. 대부분이 다친 이들이고 몸 성한 이들은 몇몇 되지 않는다네. 그리고 이 이상 사람들은 오지 않겠지."



"어째서요?"



대화에 끼어든 도로스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저들의 얼굴을 보았는가?"



"네. 대부분 저희가 구했던 사람들....아!"



프로바움의 말에 천천히 대답하던 도로스는, 이내 무언가를 눈치챘다는 듯 탄성을 질렀다.



"저 사람들 대부분은 저희가 구했던 사람들이에요. 그리고...우리가 다른 팀들이 있었던 곳을 전부 돌고 왔죠..."



도로스는 말을 흐렸다. 그들은 다른 팀들이 있었던 곳을 전부 살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구한 사람들을 집합 장소로 먼저 보냈었고. 그 말인 즉슨, 저들 이외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없다는 것이다.



"우리 연합의 사람들은 대부분 어중이 떠중이같은 돌연변이라면 혼자서 상대 할 수 있단다. 하지만 우리랑 싸웠던 놈들은 달랐어."



"완-전 미친놈들이었지. 상태도 좋아보이고, 아주 살이 뒤룩뒤룩 올랐더만? 그리고 쓸데없이 단단하고."



하마와 늑대가 덧붙였다. 전투에 잔뼈가 굵은 카지트들이 아닌 이상, 그런 수준의 돌연변이에게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머릿수에서도 밀렸으니 반이나 넘게 살아있다는 건 운이 좋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도로스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저 멀리서 레온하르트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돌연변이의 피로 목욕을 한 그에게선 흉흉한 기세가 풍겨났다.



"...그동안 수고 많았네."



사자의 치하에 레인저들은 목례로 답했다. 사자의 우묵한 눈은 어딘가 쓰라린 것처럼 아파보이기도 했고, 동시에 적에 대한 분노로 이글거리는 것같았다.



사자와 도로스들은 서로 마주 했으나, 입을 여는 이는 없었다. 사자는 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아픔과 증오스런 광신도들에 대한 분노를 곱씹었고, 도로스들은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해야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 곰곰히 이게 정말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고민하던 도로스는 대뜸 입을 열었다.



"정말 이런 식으로 싸워야 했나요? 오랫동안 생각해오셨다고 했잖아요."



말을 꺼낸 도로스는 잠시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잠깐 생각해보다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

었다. 머릿속에서 생각하던 말이 앞뒤 잘라먹고 무의식 중에 나와버렸다.



사자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도로스를 바라봤다. 방금전까지 넘실거리던 증오는 갑작스럽게 치고들어온 황당함에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야 인마."



카지트가 곁에서 팔꿈치로 도로스의 옆구리를 쿡쿡 쳤다. 다른 이들 역시, 무슨 생각이냐는 듯한 얼굴로 도로스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 어...저...그게.."



잔뜩 당황한 채 어버버 거리던 도로스는 카지트의 말을 떠올렸다. 이게 최선인지 아닌지 생각하고 생각해서 답을 찾아보라던 말. 카지트, 역시 전 잘 모르겠어요. 도로스는 속으로 카지트에게 사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작전이 정말 최선의 결과를 내는 작전이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도시를 수중에 넣었지만 수많은 인명피해가 있었고 도시에 숨어있던 모든 광신도를 잡는데 실패했다. 과연 이걸 성공이라고 봐도 될까?



반을 좀 넘게 남은 연합은 상처 투성이였다. 고작 도시에 잠복해 있던 광신도에게 이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 과연 광신도의 본거지가 되어버린 뉴 로마에선 도대체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을까? 그리고 오십이 조금 넘는 인원으로 숫자조차 불분명한, 그 수많은 광신도와 돌연변이들을 이길 수 있을까?



한참을 곰곰히 생각해봤지만 도저히 알 수 없는 대답에 잠시 생각을 접었다. 깊게 생각하는 건 아무래도 그완 잘 맞지 않기도 하고.



대신, 그는 에라 모르겠다, 사자에게 직접 물었다.



"오랫동안 생각해왔다고 했으니, 분명 더 좋은 선택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카지트들은 대체 무슨 생각이냐고 속으로 비명섞인 외침을 내지르며 도로스를 말리려 했지만, 사자는 손을 들어 그들을 멈췄다. 분노 할 거라 생각했던 레온하르트는 되려 씁쓸한 얼굴을 했다.



"그래...나 역시 길잡이로써 동감한다. 어쩌면 더욱 나은 선택지가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어째서..."



길잡이였구나, 놀라는 것도 잠시. 도로스는 반문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러나 사자가 그의 말을 끊었다.



"하지만!"



레온하르트는 도로스의 말을 끊었다. 그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도로스와 마주했다.



"하지만 그건 우리에게 최선의 선택지일지는 몰라도, 최고의 선택지는 되지 못한다. 우리에게 최고의 선택지란, 하루 빨리 그 빌어먹을 새끼들을 이 세상에서 한 줌도 남김없이 몰아내는 것이니까!"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른다고 해도요?"



"그래. 우리는 이미 각오했다. 저들은 그 개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잃었다."



사자는 남아있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점점 높아지는 언성에 하나 둘 씩 시선이 그들에게 향했다. 사자는 이번에 자신과 레인저들을 가리켰다.



"그리고 우린 그 빌어먹을 새끼들에게 남은 동료들을 전부 잃었지!"



사자는 송곳니를 드러낸채 포효했다. 도로스는 방독면을 끼고 있음에도 상처입은 짐승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누구 하나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다들 광신도에게 누군가를 잃었기에 목숨을 도외시하고 싸울 수 있는 거니까.



"그때부터 우린 살아도 산 게 아니야. 적어도 싸울 의지가 있다면 우린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싸우다가 죽을거다. 최대한 많은 광신도 놈들을 죽이고 놈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한참을 씩씩대던 그는 자신이 너무 흥분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모든 이의 시선이 그에게 쏠려있다는 것 또한. 숨죽인 정적 속엔 이글거리는 분노와 울분이 조용히 타올랐다.



레온하르트는 불붙은 사람들을 한 번 둘러보곤, 도로스들을 한 구석으로 데려갔다. 앞으로의 일을 전하기 위해서다.



사자는 대략적이나마 계획을 말해도 될지 고민했으나, 이내 도로스들이 외부인이란 사실에 눈을 감고 진중하게 입을 열었다. 그들은 이미 죽음을 각오했지만, 도로스들은 아니다.



그러니까 도로스들은 그들과 다르게 구태여 지는 싸움에 목숨까지 던질 필요는 없었다. 적어도 대략적인 계획을 알고 있다면 어느 타이밍에 발을 빼야하는지 알겠지. 사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필요한 일이었다. 너도 알다시피 그랜드 밀라노는 뉴 밀라노 아래에 있다. 광신도와 맞서기 위해선 어떤 식으로든 뉴 밀라노에 있는 그것들을 먼저 없애야 했지. 그래야만 그 비좁은 동굴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러니까 놈들과 치고받는 건 필수불가결이다."



"밤에 암살같은 건요?"



어린 길잡이의 의문에 노회한 사자는 코웃음을 쳤다.



"흥, 넌 내가 그런 것도 생각 안해본 줄 아나? 녀석들은 보통 밤에 돌연변이를 근처에 둔다. 오히려 암살하러 갔다가 살해당하지 않으면 운이 좋은 거겠지. 그리고 놈들은 뭐 하나 건덕지를 잡으면 밑도 끝도 없이 사람을 끌고 와서 파고든다. 게릴라같은 건 꿈도 꾸지마. 단번에 쳐야한다. 속전속결이 아니면 우린 무조건 져."



도로스가 입을 다물자, 카지트가 입을 열었다. 도로스가 지금까지의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면, 그는 앞으로의 일에 신경을 쏟고 있었다.



"어떻게 뉴 로마에 있는 광신도의 본거지를 칠 겁니까."



"지금은 이 꼴이지만, 뉴 밀라노는 한 때 뉴 로마 다음가는 도시였지."



사자는 얼굴을 한 차례 쓸어내리며 털에 말라붙은 핏덩어리들을 대강 떨쳐냈다. 그리곤 품 안에서 신주단지 모시듯 파이프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우린 다각열차를 쓸 거다."



"...다각열차를?"



"그래. 어지간한 돌연변이라면 다각열차가 그냥 밟고 지나갈 수 있을 거다. 물론 약간 개조를 할 필요가 있겠지만, 수 톤이나 나가는 쇳덩이를 이길 수 있는 건 거의 없겠지."



도시와 도시는 대형 파이프로 연결되어 있으니, 다각열차를 이용하면 빠르게 갈 수 있다!



생각치도 못했던 기발한 방법에 도로스들은 다들 머리에 한 대 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요새화 시키고 온갖 무장으로 전투화시킨 다각열차라면 적은 인원이라도 충분히 수많은 돌연변이를 상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단단한 쇳덩이는 아주 오래 버틸 것이다. 적어도 도로스들이 무한동력을 탈취 할 때까진.



"그리고 다각열차의 수도 우리 모두를 수용하고 남을 정도로 충분히 많다."



도로스들은 공터 너머에 몸을 눕힌 강철의 짐승을 바라봤다. 저 너머엔 다각열차 탑승장이 있을 터. 그의 말대로 수많은 다각열차가 잠들어 있을 것이다. 도로스는 레온하르트가 길잡이로써 아주 냉철하고 뛰어나단 것을 느꼈다.



그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이곳의 전투는 그 밑 그림을 위한 필요한 희생이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구나. 도로스는 처음 맞이하는 유형의 생각에 감탄을 느끼면서도 일말의 거부감을 느꼈다.



사자는 파이프를 깊숙히 빨아들이고, 위로 연기를 내뿜였다. 알싸한 담배연기는 전장의 그을음에 천천히 묻혀 사라졌다.



"놈들이 다른 지역의 파이프 곳곳을 끊어놨다고 했던가?"



도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다각열차를 못쓰게 할 속셈이었겠지. 돌아다니는 물자를 끊어놓을 겸, 그리고 늘어나는 돌연변이의 정보를 최대한 늦추고."



"아! 그,러고 보면 남부,에선 망가진 파이프,를 거의 못 본거 같습니,다."



닥터 윌슨의 감탄에 사자는 무감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무래도 여기가 놈들의 본거지인 만큼 굳이 망가뜨릴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했겠지. 덕분에 우린 이런 전략을 써먹을 수 있고."



클클, 사자는 낮게 웃었다. 그러나 죄책감과 자조마저 어린 웃음은 전혀 웃음처럼 들리지 않았다. 도로스는 문득 든 의문에 다시 질문했다.



"어째서 이런 방법을 쓰신 거죠? 다각열차를 노린 거라면 굳이 다각열차만 몰래 탈취했어도 되었을 텐데..."



사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했다면 본거지에 있는 그 새끼들이 눈치채고 뭔가 대비를 하겠지. 이 도시에 있는 광신도놈들이 보고를 올렸을 테니까. 하지만 우리는 맞서 싸웠고, 적어도 이 도시에 있는 새끼들을 도시 밖으로 몰아냈다. 놈들은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걸 몰라. 당연히 준비도 안됐을 거고."



그야말로 비장의 패다. 그렇게 말하는 사자의 눈엔 착잡함과 죄의식이 어려있었다. 이 비장의 수를 위해서 희생된 목숨은 그들과 같은 동료의 목숨이다. 도저히 값으로 매길 수 없다. 레온하르트는 한숨과도 같은 탄식을 흘렸다.



"다만 아쉬운 점은...충분히 위력적인 무기가 적다는 정도겠군."



"흠..."



프로바움은 눈을 감고 카이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그는 머릿속으로 한 장소의 위치를 떠올렸다. 공교롭게도 그 장소는 적당한 위치에 있었다.



"무기라면 방도가 있네."



단숨에 쏠리는 시선. 사자의 의아함과 도로스들의 설마하는 시선. 프로바움은 잠시 뜸을 들이며 그 시선을 즐겼다. 그리고 시선이 적당히 무르익어 짜증으로 바뀌기 바로 전,



"뉴 로마 외곽에 내 창고가 몇 군데 있거든."



그는 입을 열었다.



"아!"



프로바움의 창고와 그 안의 콜렉션에 대해 알고 있는 도로스들은 환한 얼굴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무슨 농담이냐는 듯 인상을 찌푸리던 사자 역시, 카지트의 물음에 반신반의하며 되물었다.



"그게 정말인가?"



"그렇다네. 정 의심간다면 가서 확인해보는게 어떻겠는가. 어차피 뉴 로마로 가야하는데 잠깐 들려보는 것도 괜찮겠지."



사자는 반쯤 의심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곳에서 할 수 있는만큼 무장을 하고

갈 거고, 혹시라도 그가 쟁여뒀던 무기 몇 정을 얻는다면 나쁘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다. 그의 말대로 뉴 로마에 진입하기 위해선 외곽부터 공략해야하니, 그의 창고가 있는 곳을 공략지점으로 잡으면 될 것이고.



물론 사자는 그 의심이 경악으로 바뀔 줄은 상상도 못했다.


작가의말

다들 좋은 추석 되세요.


지드님// 헤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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