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프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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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spberry
작품등록일 :
2016.04.25 18:51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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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1.01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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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전쟁

DUMMY

온갖 오염되고 타락한 것들의 온상 속에서 홀로 빛나는 성스러운 그것.



도로스들은 그것이 바로 무한동력임을 알 수 있었다! 은은하게 빛나는 고귀한 광채는 빨려들것처럼 영롱하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바로 그것을 잡으러 올라갈 수는 없었다.



"어엇!"



도로스는 소리를 죽이는 것조차 까먹고 기함하며 펄쩍 뛰었다. 피와 고기로 쌓인 거대한 제단, 그 기저면엔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재빨리 입을 막았다. 다행이 제단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터라 들리지 않은 듯 했다.



"저건...설마, 광신도놈들인가?"



"젠장, 그런 거 같은데?"



쯧, 카지트와 프로바움은 혀를 차며 인상을 찌푸렸다.



커다란 3층 건물만한 제단을 이룬 재료때문에 바닥에 널부러져있는 것들 역시 시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제단에서 뻗어나와 바닥을 장식하고 있는 그것들은 광신도 였다. 무릎을 꿇고 앉아 절을 하는 광신도들.



인공조명이 환하게 비추고 있을 게 분명한데도, 도로스들은 어쩐지 어두컴컴하고 서늘한 한기를 느꼈다. 고리처럼 제단을 둥그렇게 겹겹이 감싸고 있는 광신도들. 그 수는 한 눈에 봐도 수 백을 가뿐히 넘는다. 천, 혹은 그 이상 되지 않을까.



그 정도의 인원이 단 한마디도 하지않고 고요하게 절을 하고 있었다. 도로스들은 적당한 건물에 몸을 숨긴채 그들을 관찰했다. 마음같아선 지금 바로 달려가 저 높은 제단 위에 있는 무한동력을 훔치고 싶었지만, 네 자릿수나 되는 사람들을 뚫을 자신이 없었다.



겹겹이 둘러싼 사람의 고리는 그 무엇보다도 견고해 보였다. 아마 달려나갔다간 가장 바깥쪽 고리를 뚫지도 못하고 사로 잡히겠지. 시간이 없지만, 지금은 적어도 잠깐이라도 놈들을 관찰해서 약점이나 패턴 따위를 찾아내야 한다.



도로스는 초조한 눈길로 광신도들을 훑었다. 그의 감은 별다른 위험이 없다는 듯 조용했다. 그러나 지금 주위에 위험이 될 만한 게 없다는 건지, 아니면 광신도들이 꽉꽉 들어찬 저곳에 뛰어들었을 때 위험이 없다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워낙 제멋대로인 감이니.



3분, 5분이 흘렀다.



그러나 광신도들의 자세엔 변화가 없었다. 그러고보면 도착하기 전부터 저러고 있었으니,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절하고 있는 걸까. 저런 자세론 오래있을 수 없을텐데. 도로스는 조금씩 증기를 뿜어내기 시작한 마음을 달래며 다른 생각으로 눈을 돌렸다.



맹신을 넘어 광신에 가까운 기행에선 혐오스러운 소름과 함께 정체모를 끔찍함을 느꼈다.



도로스는 고개를 휘저어 잡생각을 떨쳐내고, 어떻게 무한동력을 탈취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광신의 제단은 3층 건물 정도의 높이였지만 아래로 갈수록 늘어난 살점과 뼈들의 동산이 완만한 경사를 그렸다. 별다른 방해만 없다면 그냥 걸어서 올라갈 수 있으리라. 그러나 저 광신도들이 문제였다.



"젠장, 저 빌어먹을 새끼들, 꿈쩍도 하지 않네. 시간이 없는데..."



카지트는 머리를 북북 긁으며 애꿏은 땅을 걷어찼다. 지금은 어떻게든 레온하르트들이 입구를 막고 있다고는 하나,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입구가 뚫리면 그 끔찍한 것들이 이곳까지 거침없이 몰려들겠지. 그렇다면 남은 건 몰살 뿐이다.



"...죽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들 숨은 쉬고 있,습니다. 가끔씩 흔들,리는 자세를 보면 정신,을 잃고 있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저격총의 스코프로 놈들을 살피던 닥터 윌슨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대체 저게 뭐하는 짓인진 모르겠지만, 저것들이 저곳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들은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수 십명이라면 화력적 우위로 어떻게 해볼만 하건만, 저 물량은 무리다.



다들 별다른 방법을 찾고 있지 못하며 슬슬 올라오는 짜증을 참고 있을 때, 촐싹거리던 평소의 모습과 달리 조용히 날카로운 눈으로 광신도들을 살피던 늑대는 무언가를 발겼다.



"저기! 저 위에 누군가 있어!"



도로스들의 시선이 쭉 뻔은 그의 검지를 따라갔다.



제단의 꼭대기. 무한동력이 있는 그곳에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커다란 체구를 덥고 있는 새하얀 백색의 법의. 툭 튀어나온 머리와 손은 빛바랜 핑크색이었다. 거리가 멀어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저런 특징을 가지고 있는 자는 그들이 아는한 단 한 명 뿐이었으니까!



"저, 씹어죽일 돼지새끼!"



그르렁 거리는 낮은 목울림과 함께 늑대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이를 갈듯 말했다. 잔뜩 부풀어오르고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근육은, 언제라도 금방 튀어나갈 것처럼 긴장감이 넘쳤다. 하마와 코뿔소 역시 냉정한 살인기계의 모습 위에 차가운 분노를 더했다.



제단 위에 모습을 드러낸 자. 그 자는 카지트에게 낯설지 않은 인물이다. 남부의 내전을 종식시키고, 카지트와 레인저들을 찢어놓은 장본인! 아쉬드!



전에 카지트에게서 이야기의 맥락을 들었기에, 저 자의 정체를 대강이나마 파악한 도로스들은 반사적으로 카지트를 바라봤다. 뒤에서 그를 조종했던 아쉬드는 카지트에게 있어서 아마 불구대천의 원수일 것이다.



그러나 카지트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전투에 들어갔을 때의 그처럼 냉막하고 날카운 얼굴을 지었을 뿐. 다만 사실 카지트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화가 나 있었다.



분노가 한계를 넘으면 오히려 머리가 차가워진다고 하던가? 지금 그의 상황이 딱 그짝이다. 저 빌어먹을 상판을 보자, 카지트는 머릿속에서 무언가 뚝 하고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정신은 한층 차분하게 가라앉고 명료해졌다.



카지트는 스코프를 뺏다시피 가져와 돼지에게 초점을 맞췄다. 제단 위에서 광신도들을 굽어보며 뭐라뭐라 연설하고 있는 그의 입술이 보였다. 한쪽 눈을 감고 스코프에 눈을 댄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러분. 위대한 지도자이자 참된 영도자, 오즈를 내려보내주신 우리의 영광되고 거룩하신 그분, 데우스 엑스 마키나께 제물을 바칩시다."



도로스와 닥터 윌슨은 갑자기 헛소리를 지껄이는 그를 깜짝 놀란 눈초리로 쳐다봤다.



"왜 그리 놀라? 독순술이야."



카지트는 흥, 코웃음을 치고 다시 눈을 스코프에 가져다 대었다. 닥터 윌슨 역시 품 안에서 보조 스코프를 꺼내 초점을 제단 위로 맞췄다.



돼지의 목소리와 함께, 그동안 조용히 무릎을 꿇고 절을 하고 있던 광신도들이 하나 둘씩 일어섰다.



"오..."



"오오.."



"오오오!!"



어디선가부터 시작된 짧은 외침이 열병처럼 퍼졌다. 광신도들은 증기로 변하기 직전의 물처럼 들끓으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돼지는 열광적인 성원과 함성을 보내는 신자들을 만족스러운 눈으로 내려다본 후, 제단의 뒤편에 외쳤다.



"제물을 가져와라!"



고깔처럼 생각 새하얀 두건과 한 점 더러움도 없는 백색의 로브. 그것을 걸친 두 사람이 누군가를 끌고 제단 위로 올라섰다. 멀리서봐도 잔뜩 겁에 질린 듯, 끌려오는 자는 제단 위로 올라가지 않기위해 버텼지만, 두 광신도에 의해 맥없이 끌려왔다.



"사람...사람입,니다!"



스코프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닥터 윌슨이 발작적으로 외쳤다.



"뭐라고?! 그게 진짠가?! 잠깐 이리 줘보게."



프로바움은 닥터 윌슨에게서 반쯤 뺏다시피 하며 스코프에 눈을 가져다대었다.



"...정말이군. 사람이야. 다만 손과 발이 동물 계통 수인의 것이군."



그는 혀를 찼다. 다른 이들 역시 표정을 굳혔다. 피와 살점으로 쌓여진 제단. 제물이 가리키는 것은 명백했다. 그리고 저 사람이 어떻게 될지 역시.



놈들은 제물을 제단 위에 눕혔다. 자신의 운명을 눈치챈 그는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발광했으나, 두 로브 중 한 놈이 두꺼운 주먹으로 배를 후려치자 억, 소리를 내며 정신을 잃었다. 늘어진 팔다리는 시체처럼 뻣뻣했다. 혀를 빼물고 옆으로 뉘인 입가에선 피섞인 게거품이 묻어나왔다.



돼지는 구불구불 물결치는 단검을 높이 쳐들었다. 광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그에 호응했다. 그리고 그 함성이 갑자기 뚝 끊길 때, 그의 칼날이 희생양의 가슴에 틀어박혔다. 마치 그간 몇 번이나 겪어온 것처럼 함성이 일시에 끊겼다. 기괴한 침묵이 도래했다.



아쉬드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한 눈으로 가슴 정중앙에 박힌 칼을 내리 그었다. 그기긱, 갈라지는 가슴 사이로 새빨간 선혈이 비산했다.



그는 빈 손을 갈라진 가슴 속으로 쑤셔넣었다. 그걸 바라보는 광신도의 눈엔 혐오와 적의가 아닌, 짙은 선망과 기이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내 다시 밖으로 나온 그의 손엔 심장이 들려있었다. 그는 그것을 모두가 볼 수 있게 들어올렸다. 심장에 고여있던 피가 줄줄 새며 그의 새하얀 법의를 더럽혔다. 그럼에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자아, 그분의 곁으로 갑시다."



아쉬드는 고귀한 광채를 풍기는 무한동력의 위에서, 손에 쥔 심장을 짜부라뜨렸다.



심장 가장 깊은 곳에 고여있던 핏물이 무한동력을 타고 흘렀다.



핏방울이 무한동력의 매끄러운 표면에 닿자, 번쩍이는 광채가 일었다!



그러나 몇초간 유지된 빛은 잠시 후 사그라들며, 기계음 섞인 여성의 목소리가 한 때 광장이었던 곳에 울려퍼졌다.



[사용자 확인중. 유전자 일치율 - 87.3%. 활성화 불가. 게스트 어카운트로 전환됩니다.]



집중되는 시선. 광신도들은 마치 감미로운 여신의 목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몽롱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도로스들은 볼 수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처럼 찌푸려지는 돼지의 얼굴을!



그들은 무한동력에서 들려온 목소리의 뜻을 곰곰히 생각했다. 유전자, 라는 게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87.3%라는 수치와 활성화가 불가능 하다는 말로 볼 때, 제단 위에서 살해당한 인간은 그들이 찾는 이가 아닌 것 같았다.



게스트 어카운트라는 소리는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완전한 능력을 발휘 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천천히 일행의 시선이 도로스에게 향했다. 완전한 인간. 게름하르트와 오스카는 분명 도로스가 무한동력의 열쇠라고 그랬지. 그때까지 긴가민가 하던 레인저들 역시 열기 띈 눈으로 도로스를 응시했다. 이 싸움의 끝을 낼 수 있는 열쇠는 바로 그에게 있었다!



"아쉽군요. 아직 죄많은 저희들은 그분의 곁으로 갈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돼지의 말에 그들은 다시 제단 위로 시선을 집중했다. 변한 것은 없었다. 무한동력은 여전히 은은한 빛을 발하며 떠 있었다.



그러나 난관에 봉착해 무겁고 무력감에 젖은 분위기는 어디론가 날아간 듯 사라져 있었다. 도로스가 무한동력을 발동시킨 열쇠라는 걸 확인하고, 그들은 희망을 품었다.



어떻게든 저기에 닿기만 하면, 확실하게 광신도들을 끝장낼 수 있었으니까!


작가의말

베데스다님// 아쉽게도 도련님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ㅎㅎ

지드님// 가고 싶어도 개떼같이 모인 사람들 때문에 ㅠ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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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Personacon 지드
    작성일
    17.11.01 13:53
    No. 1

    꼭 심장을 바쳐야 할 것 같진 않군요. 살짝 들어가서 도로스 피를 똑 떨어트리면 소유할 수 있을까요? 무한동력이란 것의 정체가 갈수록 궁금하네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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