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프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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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spberry
작품등록일 :
2016.04.25 18:51
최근연재일 :
2020.12.2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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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0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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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11. 전쟁

DUMMY

"일제 사ㅡ격!!"



콰과과쾅!



"우리가 왔다!"



레온하르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로스와 카지트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비록 수가 여섯 밖에 되지 않고 몸 성한 이들이 없었지만, 저들은 분명 그들이 아는 레온하르트들이 맞았다.



"어떻게 저 사람들이 여기 있는거죠?"



도로스는 도저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카지트와 마주 보았다. 그러나 카지트 역시 알 길이 없었다.



"나도 몰라. 뭐지? 설마 그 많은 돌연변이들을 다 죽였다고?"



"그건 말도 안돼요! 그 수가 어디 오십명 정도로 상대 할 만한 수에요?"



"그렇지? 그럼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파악이 되지 않았지만, 일단 둘은 기뻐하기로 했다. 여섯 밖에 안되는 숫자이긴 했으나 어쨌든 그들은 살아남았고, 화력으로 몸을 칭칭 감은 그 파워 덕분에 변변한 무기 조차 없는 광신도들은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기동성따윈 화력과 엿바꿔먹은 중기관총같은 화약식 무기 앞에서, 광신도들은 말 그대로 갈려나갔다. 철창을 둘러쌓던 녀석들과 제단 위에서 프로바움, 닥터 윌슨과 혈투를 벌이던 놈들은 압도적인 폭력에 이를 드러내며 그쪽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과 다름없다.



타다당! 투다다다!



손 쉴틈없이 쏴제끼는 그들의 얼굴에선 한줄기 여유마저 보였다. 당연한 일이다. 적어도 광신도 놈들은 돌연변이처럼 빠르고 치명적이지 않으니까. 거기에 무기조차 없으니 맨몸으로 달려오다가 픽픽 쓰러지는게 다였으니.



물론 고작 여섯 명의 화력으로 네자릿수에 가까운 놈들을 일거에 소탕하는 건 불가능했다. 제아무리 총이 강력하다고는 해도 장전 시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탄약의 수량 역시 한계가 있기도 하고.



어마어마하게 밀려드는 놈들의 숫자에 천천히 뒤로 물러나며 장전과 사격을 반복하던 이들은, 총알을 전부 소진했는지 이내 제각기 근거리 무기를 뽑아들고 달려들었다.



도로스와 카지트는 광신도들이 레온하르트들에게 몰린 사이에 닥터 윌슨과 프로바움에게 향했다.



"닥터! 프로바움! 둘 다 괜찮아요?"



둘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둘 다 어디 하나 성한 곳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몰골이었다. 프로바움의 황동빛 피부는 자갈을 깔아놓은 흙바닥에서 뒹구른 것처럼 움푹 파여있었고, 맵시있게 걸쳤던 셔츠는 이미 형체를 잃고 갈가리 찢어진지 오래다. 셔츠라기보단 넝마쪼가리라고 부르는 편이 나으리라.



"예에, 괜찮,은 것 같습니,다."



닥터 윌슨은 고기와 뼈로 쌓아올린 경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역시 입고 있던 셔츠는 어디갔는지 갈색빛 도는 매끈한 키탄질 외골격을 자랑하고 있었다. 군데군데 새겨진 수많은 상흔들. 다행히 곤충 계통 수인의 단단한 외골격을 뚫지는 못한 것 같으나, 치명상이 될 뻔한 상처들도 적잖히 보였다. 아마 조금 더 깊게 들어갔다면 갑옷과도 같은 외골격이 뚫렸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위 아래로 난 두 쌍의 팔 중 각각 한 팔씩 반대로 꺾여있었다. 그리고 반이 싹둑 잘려나간 왼쪽 더듬이와 난자되여 형태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등껍질엔 치열한 발악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도로스와 카지트는 숙연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닥터...그 팔은..."



"아, 괜찮습,니다. 반대,로 꺾였을 뿐입,니다. 다시 꺾어,서 제 위치로 돌,려놓으면 됩니다. 물,론 조금 아프겠지,만."



그는 평소 버릇대로 머리를 긁적이기 위해 팔을 들었으나 곧 밀려오는 고통에 약하게 신음하며 다시 팔을 내렸다.



"부탁, 드립니다."



닥터 윌슨은 꺾인 두 팔을 내밀었다. 카지트는 정말로 하는 거냐는 듯 그의 얼굴과 팔을 번갈아 보았으나, 닥터 윌슨의 의지는 굳건했다. 살쾡이는 한숨을 푸욱 내쉬곤 그의 두 팔을 잡았다.



"좀 아플거야."



"각오,한 바 입, 으으윽!!!"



"음. 좀 많이 아픈 것 같네."



귀뚜라미가 말하는 도중에 팔을 원위치로 꺾자, 뚜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관절이 비틀렸다. 정상적인 위치로 돌아간 팔. 그러나 닥터는 눈물나는 고통에 눈가를 적시며 더듬이를 바들바들 떨었다.



"으, 죽겠구만. 젠장, 이런 전쟁은 십 년 전에나 겪어봤었는데...생각해보면 그때도 남부였군 그래. 하여간 남부놈들은 다들 왜 이렇게 정신나간 건지 원."



프로바움은 닥터 윌슨의 곁에 털썩 주저앉았지만, 바닥을 짚은 손과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기분나쁜 물컹함에 인상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그보다, 저 치들은 어떻게 여기 있는건가? 성문을 지키러 간 줄 알았는데."



"저,도 궁금합니,다."



둘 다 피곤한 안색이었으나 질문의 대답을 듣고 싶어하는 듯 눈만은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카지트는 아쉬드나 무한동력에 대해서 왜 묻지 않는지 물어보려다가, 그가 지금 뭘 가지고 있는지 깨닫곤 쓴웃음을 지었다.



그의 옆에 둥둥 떠다니는 무한동력을 본다면 아쉬드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 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나도 몰라. 우리도 반쯤 자포자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났더라고. 하여간 저 영감도 항상 타이밍 하난 기가 막히단 말이야."



카지트는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문득, 그들은 도로스가 말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몰리는 시선. 그러나 도로스는 그것조차 눈치채지 못하는 듯 했다.



시선이 철창에 못박혀있는 그는, 몸은 여기 있으나 마음은 이미 저곳에 가있는 듯 했다. 그리도 누나를 만나고 싶었구나. 카지트는 용케 도로스가 누나를 인질로 잡고 협박하던 아쉬드의 말에 따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긴, 애초에 자신은 상관없으니 한 방 먹여주라던 누나의 말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끙끙대는 도로스의 모습에 참다못한 프로바움은 한 마디 던졌다.



"그렇게 도박장 앞의 카지트같은 표정 짓지 말고, 어여 가보게나."



"영감, 뭐라고? 내가 저런 이상한 얼굴을 할 리가 없잖아?"



"헛소리는 잘도 하는군. 예전부터 도박장 앞을 지나갈 때마다 저런 얼굴이었잖나. 어떻게든 들어가고 싶어서 안절부절하는 얼굴. 자넨 나한테 고마워 해야해. 내가 그때마다 말리지 않았으면, 용병은 무슨, 지금쯤 사채업자나 치안대에 쫓겨다니고 있을 게 뻔하지."



카지트는 툴툴거리며 뭐라 말하는 듯 했으나 너무 작아서 아무도 듣지 못했다. 도로스는 주저주저하며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봤으나,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닥터 윌슨의 모습에 도로스는 반색하며 아래로 달려내려갔다.



"그럼, 먼저 가볼게요!"



다급해보이기까지 한 뒷모습에 셋은 쓴웃음을 흘렸다.



"역시 젊어서 그런가, 기운 하난 넘쳐보이는구만."



어구구, 프로바움은 삐걱거리는 손목을 돌리며 되뇌었다. 약간의 여유가 보이는 까닭은 불가능할거라 여겼던, 가장 어려운 고비를 넘긴 덕분일까. 닥터 윌슨은 주머니에 넣어둔 비상용 붕대로 간이 슬링을 만들어 꺾였던 팔에 꼈다. 아직 아픔이 채 가시지 않은 듯 눈물이 그렁그렁했으나, 말하는덴 별 지장이 없었다.



"저,분들을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글쎄, 지금 만신창이인 몸으로 도움은 커녕 짐이나 되지 않을까 모르겠군."



"음..."



프로바움은 성한 구석이 없는 팔을 들어보였다. 수많은 자상과 울룩불룩한 팔. 닥터 윌슨은 낮은 침음성을 흘리면서 동의했다. 레온하르트들은 수적열세에도 불구하고 얼핏봐도 압도하다 싶을 정도로 몰아치고 있었다. 그게 광신도에 대한 증오와 적의에서 비롯된 건지, 아니면 그동안 겪어왔던 울분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모른다.



다만 눈이 돌아간 채 광신도를 썰어대는 모습으로 보아, 끼어들었다간 오히려 욕이나 들을 것 같았다. 그리고 여섯 명이서 수많은 광신도를 압도하고 있으니 그대로 두어도 저들끼리 알아서 잘 할 것 같았다.



잠깐의 달콤한 휴식을 취한 그들은 도로스를 따라 천천히 제단의 아래로 내려왔다.



"자네 동료들은...안됐구만."



주위를 둘러보던 프로바움은 코뿔소와 하마가 있던 곳을 응시했다. 목숨을 걸고 응전하던 둘. 그들이 있었던 곳엔 시체들이 작은 동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삐죽 튀어나온 코뿔소의 워해머는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젠장...멍청한 놈들..."



카지트는 인상을 쓰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버티겠다며 남을 때부터 예상은 했으니 그리 큰 충격은 없었다. 그러나 아예 없을 수는 없었다. 카지트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 광신도의 시체를 치우기 시작했다.



프로바움과 닥터 윌슨마저 합세하자, 그들은 금방 아래에 묻혀 있던 하마와 코뿔소의 시체를 발견 할 수 있었다. 온갖 할퀴고 물어뜯은 상처로 범벅이 된 그들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듯, 목이 부러진 광신도들을 하나 씩 움켜쥐고 있었다.



카지트는 그 처참한 모습에 울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수통을 꺼내 그들의 머리 위에 천천히 부었다.



"술이 아니라 미안하다."



둘은 나중에 레온하르트에게 맡길 것이다. 정말 아쉽게도 카지트들에겐 장례를 치뤄중 충분한 시간이 없으니. 카지트는 한 손으로 눈가를 덮었다.



철창 가까이 다가간 그들은 철창을 붙잡고 죽어있는 늑대의 모습에 고개를 숙이고 잠시 묵념했다. 목을 문 광신도를 매단 채 철창 앞에 무릎 꿇은 그는, 정말로 기어코 여기까지 왔던 것이다. 카지트는 조금 남아있던 물마저 그에게 쏟아부었다.



"누나!"



철창 안에서 외치는 도로스의 목소리. 카지트는 애써 기운차린 척하며 철창 안으로 들어갔다. 눈 앞에서 일어난 잔혹한 현장에 잔뜩 겁에 질리거나 정신을 놓아버린 사람들. 그들은 옹기종기 입구와 가장 먼 구석에 모여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광신도들이 전부 레온하르트 쪽에 몰렸음에도 불구하고 나가지 않는 걸 보면 단단히 겁에 질린 듯 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도로스와 그의 누이가 있었다.



칙칙하고 어두운 배경과 정 반대인 밝고 아름답게 빛나는 금발. 도로스처럼 체모가 머리와 눈썹에만 몰려있고 나머진 새하얗고 창백한 피부로 덮여있었다. 푸르게 빛나는 눈동자는 마치 사파이어를 박아놓은 것만 같다.



도로스와는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생김새. 카지트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외형이다. 그러나 창백한 피부와 헬쑥한 얼굴, 뼈 위에 가죽만 붙여놓은 것처럼 빼빼마른 손발은 그녀의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는 걸 한눈에 보여줬다.



"도로스! 이런 위험한 곳에 오면 어쩌니! 그러다가 다치면 어쩌려고.!"



"하지만, 누나가 잡혀갔다니까..."



"내가 잡혀갔다고 막무가내로 따라오면 어떡하니? 그러다가 너도 위험해지면 어쩌려고."


도로스는 막무가내로 따라온 게 아니라 제대로 계획을 세우고 왔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곧 그만두었다. 지금까지 겪었던 일을 말한다면 분명 등짝 한 두대로는 끝나지 않을테니까.



대신 도로스는 말을 돌렸다. 막연한 약간의 희망을 품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어?"



"...모두 돌아가셨단다."



도로스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광신도들의 성정으로 보건대 살아있을 확률이 그리 높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다들 죽었을 줄이야. 그러나 우울함도 잠시,



"읍, 콜록콜록!"



기침을 토해내는 누이의 모습에 도로스는 안절부절 못했다.



"누나, 괜찮아? 어쩌지?"



"응...난 괜찮아. 그냥 단순한 기침이니까 소란 좀 피우지마."



도로시는 기침하느라 입을 가렸던 손을 슬며시 등 뒤로 감췄다. 손바닥에 묻은 피를 숨기기 위해서.



도로스는 한참 호들갑을 떨다가 이내 일행 중에 의사가 있다는 걸 뒤늦게 눈치채곤 닥터 윌슨을 불렀다.



"닥터! 와서 누나 좀 봐주세요!"



"도로스, 나는 괜찮아."



"아냐. 이렇게 아파보이는데 무슨. 우리 일행중에 좋은 의사선생님이 계시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누나."



카지트들은 닥터 윌슨을 필두로 둘 근처로 다가갔다. 피골이 상접한데다가 병색이 완연한 얼굴. 거뭇거뭇한 자국을 남기고 안으로 쑥 들어간 눈두덩이나 잔뜩 마르고 갈라진 입술은 한 눈에 봐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각종 의료도구가 든 가방은 진작에 광신도들한테 뺏긴지 오래인지라 복잡한 진찰은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는 문진부터 시작해서 성심성의껏 도로시의 상태를 진찰했다.



그러나 누이의 상태를 보면 볼수록 닥터 윌슨의 눈빛이 깊어졌다.



도로시는 닥터 윌슨과 눈을 마주쳤다. 제발 말하지말아 달라는 간절한 부탁. 닥터 윌슨은 환자의 간곡한 부탁을 외면할 수 없었다.



"생각,보다 상태가..."



"어이! 다들 살아있냐!"



때마침 레온하르트의 목소리가 닥터 윌슨의 말을 잘랐다. 도로스들은 어느새 철창 가까이 다가온 그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살아있어요? 그리고 팔은 또 왜그래요?"



무슨 말부터 건네야 할 지 말을 고르던 카지트는 대뜸 그런 말을 던졌다. 괜히 어색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보다 평소처럼 대하는 게 편안했다.



눈 빼고는 전부 새빨간 사자는 남은 한손으로 갈기를 훑었다. 후두둑 떨어지는 마른 핏조각들. 히죽 웃는 입가에 누런 송곳니가 인공조명의 탁한 빛을 받아 흐리게 빛났다.



그러나 카지트의 시선은 그의 한 쪽 팔에 고정되어있었다. 근육이 울룩불룩 솟아있는 건장한 팔이 있어야 할 곳은, 지금은 텅 빈 채 매캐한 화연에 감싸있었다. 대충 옷을 뜯어 감싼 어깨부분은 자신의 피인지 돌연변이의 피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시뻘겋게 색칠되어 있었다.



카지트는 애써 울 듯 말 듯 일그러지는 얼굴을 피기 위해 노력하며 시선을 레온하르트 너머로 두었다.



그 많은 광신도들을 죄다 쳐죽였는지 서 있는 놈들이 전무했다. 그리고 남은 건 여섯 명의 용사들. 레온하르트를 따라 나섰던 이들 중 살아남은 이들은 고작 다섯. 그 몸상태 역시 사자 못지 않았다. 손가락이 없는 자, 팔이 없는 자 부터 눈 한쪽과 귀 한쪽을 잃어버린 자까지.



용케 살아있다싶을 정도였다.



카지트는 전 동료들이 말했던 '죽을 자리'를 떠올렸다. 다들 이곳에서 뼈를 묻기로 했고, 정말 그리 되었다. 마음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은 말로 하기엔 너무나 복잡했다.



사자는 일그러질락 말락하는 카지트의 표정을 애써 무시하며 태연하게 말을 건넸다.



"뭐 대뜸 보자마자 하는 소리가 그러냐? 거 참, 너무하네. 팔이라면 배고프다는 놈이 있어서 던져줬다. 하나만 주면 서운할까봐 칼침도 한 방 놔줬지. 아주 좋아죽더라."



사자는 되도않는 농담을 하며 낄낄거렸다.



"거 참 수고 많았소. 그보다 궁금한게 있소만."



프로바움의 말에 레온하르트는 뭔지 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그 정신나간 숫자를 상대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궁금하오? 생각보다 간단했소. 성문을 무너뜨렸지. 댁이 건네줬던 폭탄들이 아니었으면 엄두도 못냈을 거요."



사자는 입으로 콰앙 소리를 내며 주먹을 펼쳤다. 일견 유쾌해보이기까지하는 행동. 도로스들은 생각치도 못했던 방법에 입을 떡 벌렸다.



"처음엔 성문을 지킬 생각을 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굳이 지킬 필요는 없단 말이지. 결국 놈들이 못들어오게 하면 되는 거잖소? 그래서 그냥 부숴버렸다오. 뭐, 그래도 진작에 들어와있던 놈들이랑 한바탕 했는데, 어쩌다 보니 살아남았지. 팔 하나로 목숨을 구했으면 뭐, 싸게 먹힌 편 아닌가."



사자는 클클 낮게 웃더니,



"그래서 살아남은 녀석들 추스려서 부랴부랴왔더니 이런 꼴이더군."



처참한 주위를 둘러봤다.



"...그 녀석들은?"



사자의 말에 카지트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역시...그런가."



그는 한쪽 눈을 찌푸리며 거칠게 머리를 긁었다. 갈기에서 부스스 떨어지는 마른 피가 마치 눈물처럼 떨어졌다. 사자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결국 레인저라곤 나랑 너 밖에 안남았나."



씁쓰레한 웃음이 찰나지간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사자는 곧바로 표정을 바로하고 카지트 곁에 둥둥 떠있는 기이한 구체를 바라봤다. 저것이 무한동력. 빌어먹을 광신도와 돌연변이의 합작이라는 끔찍한 짓거릴 가능하게 한 유물.



사람을 홀리는 것같은 은은하고 기이한 광채에 사자는 짜증스레 고개를 돌렸다. 저게 카지트들에게 있단 소리는 그 돼지새끼는 죽었다는 이야기겠지. 광신도들에게 한방 먹이고 신나게 썰어댔으니 기분은 좋았으나, 고작 저딴 걸 위해서 이런 짓거릴 벌였다니, 죽은 동료들에겐 면목이 없었다.



빌어먹게 죽지도 못해선. 죽고자 했더니 끝끝내 살아남았다. 이래선 다른 동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혼자 살아남은 것 같지 않은가. 복잡한 상념을 숨기며 그는 도로시에게 시선을 돌렸다.



"신기하게 생긴 아가씨군. 그리고 그 옆의 청년은...그 방독면인가? 자네들이 '인간'? 확실히 생긴게 신기하구만."



그들의 반응은 담백하기 짝이없었다. 옛날 이야기 속에서나 등장하던 희귀한 생물인 인간을 보고도 '신기하게 생겼군.'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라니. 정말로 광신도를 쳐죽이는 것 외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하긴 무한동력을 보고도 욕심은 커녕 껄끄러워 하는 게 다였으니.



"이제 어떻게 할 건가? 우린 당분간 여기 남아있을 거라네. 남아서 죽은 녀석들 장례를 치뤄주고, 저 치들도 어떻게든 돌려보내야지."



사자는 철창 안의 사람들을 가리켰다. 온 몸을 피로 물들인 레온하르트 때문일까, 하나같이 잔뜩 겁먹은 사람들은 철창이 열렸음에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흰...다시 동부로 갈 겁니다. 가서, 빌어먹을 새끼와 담판을 지어야죠."



으드득 이를 카지트의 모습에 사자는 피식 웃었다.


작가의말

베데스다님// 드디어 구했습니다ㅎㅎ 

지드님// 빠른 사망이죠 ㅎ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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