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프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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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spberry
작품등록일 :
2016.04.25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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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24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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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종결

DUMMY

"누나! 이것 좀 봐! 엄청 큰 놈이지?"



도로스는 제 몸보다도 큰 돌연변이를 질질 끌어며 낄낄거렸다. 개의 몸체에 게의 다리를 가진 돌연변이. 불그스름한 갑각과 짧은 갈색 단모가 어지럽게 얽혀있는 피부는 다른 돌연변이들과 다르게 녹아내리거나 진물이 흐르는 곳 없이 깨끗했다.



이 정도라면 대충 삶아도 꽤나 괜찮은 맛이 나지 않을까?



"어디 다친 곳은 없니?"



"없어. 나도 어엿한 사냥꾼인데 설마 이런 녀석한테 당하겠어?"



한참을 도로스의 이곳저곳을 살펴보던 도로시는 정말로 아무런 상처가 없다는 걸 확인한 후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을 밖으로 사냥을 나갔다 올 때마다 하는 연례행사나 다름없지만, 도로스는 누이의 걱정이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한테 상처를 입히려면 중형 돌연변이 정도는 되야...으악!!"



딱, 소리와 함께 도로스는 자랑하듯 말하다 머리를 붙잡고 주저앉았다. 도로시는 단단한 도로스의 머리 때문에 아픈 손목을 빙글빙글 돌리며 잔소리를 퍼부었다.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릴 하니? 나가서 사냥하는 것도 조마조마해 죽겠는데, 뭐? 중형 돌연변이? 너 그러다가 언젠가 크게 한 번 다친다?"



양 허리에 손을 얹고 크게 소리치는 누이의 모습에 도로스는 찔끔하며 고개를 숙였다. 제 아무리 괜찮은 사냥꾼인 그라도 단 하나 뿐인 누이에겐 이길 수 없는 모양이다.



그래도 자신을 걱정해주는 누이의 목소리에 도로스는 입꼬리가 흐물흐물 풀리는 것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아..."



허망한 실망감이 입새로 새어나왔다.



도로스는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봤다. 타닥타닥 불씨를 튀기며 타들어가는 모닥불과 그 주위에 둘러앉아 각기 잠을 청하는 이들. 하나 둘 세 명. 놋쇠같은 황동빛의 자동인형, 묘하게 바퀴벌레를 닮은 것같은 귀뚜라미 계통의 수인, 그리고 고양이인지 살쾡이인지 헷갈리는 수인 하나. 모두 낯이 익은 모습이다.



잠시 멍한 정신으로 제 옆을 손으로 더듬더듬 짚어보던 그는, 제가 찾는 이는 이제 세상에 없다는 걸 깨닫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도로스는 조용히 숨죽인 채 흐느끼며 울었다.



누이를 잃은지 어느새 벌써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가슴에 구멍이 뚤린 것 같은 상실감은 도저히 쉽게 메꿔지지 않았다. 한참을 소리죽여 울고 난 후에야 도로스는 복잡한 눈빛으로 한켠에 둥둥 떠 있는 무한동력을 바라보았다.



일주일 전 그날, 그의 누이가 고통 속에서 죽어가던 그 날.



무한동력은 결국 도로시를 구하지 못했다. 계속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며 빛을 내뿜던 그것은 이름 그 이름처럼 무한동력이 아니었다.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다면 도로시를 손쉽게 고쳐줄 수 있었겠지. 하지만 결국 그녀는 죽었다.



도로스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무릎을 모아 세우고 거기에 얼굴을 박았다.



"도로스...네가 하고 싶은 걸 해...행복하렴."



누이가 남긴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말이 그의 속에서 빙빙 맴돌았다. 안타까운 듯한, 단념한 듯한, 아쉬운 듯한, 처연한 미소. 그것은 마치 화인처럼 그의 가슴 한 켠에 남아있었다.



도로스는 고개를 들고 무한동력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마치 주인을 따르는 애완동물처럼 그것은 도로스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도로스는 일정거리에 선 그것에게 말을 걸었다.



"넌 뭐야?"



대답은 지체없이 돌아왔다.



[초소형 블랙홀 발전기입니다.]



"...그게 대체 뭐야?"



[인위적으로 일으킨 극소 블랙홀을 안정화 시킨 후, 그것에서 에너지를 얻는 발전기 입니다.]



대체 몇 번 째나 반복하는 건지 모를 문답. 여전히 알아들어 먹을 수 없는 소리 뿐이다. 심지어 그 닥터 윌슨이나 프로바움 마저 포기했으니 말 다했지. 초소형 블랙홀 발전기라는 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몇 번을 물어봐도 대답은 항상 똑같았다. 도로스는 하아, 한숨을 내쉬었다.



누이가 죽은 후, 무한동력은 그를 주인으로 인식했다. 닥터 윌슨은 무한동력이 주인을 바꿀지 질문을 날렸을 때, 누이가 도로스의 이름을 언급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누이가 남긴 유품? 비슷한 것인 동시에 누이를 죽게만든 원흉? 비슷한 것이었다. 모든 것은 시작은 이 빌어먹을 무한동력으로부터 시작되었으니까. 그게 무시무시한 힘을 품고 있건 어쩌건 그다지 상관없는 일이었다.



도로스는 갑자기 몰려오는 짜증에 무한동력을 탁, 내리쳤다.



그러나 무한동력은 흔들림 하나 없었다. 도로스는 손에서 몰려오는 아릿한 고통에 손을 부여잡고 끙끙댔다. 무한한 에너지를 전부 껍데기에 쑤셔박았는지 튼튼하기 그지 없었다.



"으으음? 도로스, 뭐하냐?"



옆에서 자꾸 부스럭대는 덕분에 잠에서 깬 카지트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앉았다.



"음, 조금 잠이 안와서요."



"그런가..."



대충 머리를 긁적거리며 쩌억 하품을 한 카지트는 조금 곤란한 얼굴로 타닥거리며 타오르는 모닥불을 응시했다.



"그, 뭐냐, 미안하다. 내가 그 새끼한테 전화만 안했어도..."



갑작스럽게 입을 연 카지트. 도로스는 처음에 그가 무슨 소릴 하는지 몰랐으나, 잠시 생각한 후에야 알아들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건 저도 필요했다고 생각하니까요. 저쪽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볼 필요도 있었으니..."



어딘가 불편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무래도 카지트는 도로시가 죽은 게 자신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쩐지 우울한 침묵의 잔재에 도로스는 넌덜머리 난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더 이상 축쳐진 분위기는 싫었다.



아마 도로시가 이 모습을 봤다면 남정네 둘이서 칙칙하게 있는다고 뭐라고 했겠지. 도로스는 일부로 밝은 척하며 카지트에게 물었다.



"카지트. 카지트는 오스카를 박살내면 뭐 할거에요? 뭐 생각해둔 건 있어요?"



카지트는 한쪽 눈썹을 삐뚜름하게 올렸다가, 이내 픽 하고 바람빠진 웃음을 지었다.



"글쎄? 뭐, 나야 용병질이나 계속하지 않을까? 일단 집 좀 청소하고 싶은데. 밖으로 돌아다닌지도 꽤 되서 말야."



도로스는 잔뜩 각잡힌 그의 집안을 떠올렸다. 게으르고 대충대충 할 것 같은 이미지완 다르게 집안은 깔끔하고 오밀조밀하게 잘 꾸며져 있었더랬지. 딱딱 각잡힌 이불같은 건 정말 의외였다. 카지트는 스스로도 그 차이를 알고 있는지, 큼큼 헛기침하며 주의를 돌렸다.



"그럼 도로스 넌? 뭐 생각해둔 거라도 있냐?"



도로스는 카지트의 질문에 곰곰히 생각했다. 애초에 그의 목표는 누이를 구하는 것이었다. 무한동력의 탈취나 오스카의 저지같은 건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것이었을 뿐. 그러나 이젠 그의 목표는 사라졌다.



오로지 남은 거라면 모든 사건과 누이를 죽인 원흉, 오스카를 죽이는 것. 오로지 그 굳건한 결의가 도로스의 가슴에 한처럼 맺혀있었다. 누나, 누나가 말했던 행복은 일단 오스카를 없애야 올 것 같아. 그는 차분하게 뇌까렸다.



도로스는 알고 있다. 지금은 이렇게 풀죽은 채 앉아있어도, 오스카를 마주한다면 분명 그는 화가 날 것이다. 화가 나서 도저히 주체를 못할 것이다. 흔한 말로 꼭지가 돌아버리겠지. 도로스는 속으로 조용히 칼을 갈았다.



이윽고 시간이 흘러 프로바움과 닥터 윌슨 역시 깨어났다.



무한동력의 좋은 점이라면 누구도 불침번을 설 필요없다는 것일까. 무한동력에서 나오는 주파수? 전자파? 라는 것이 돌연변이들을 쫓아준 덕분이다. 그 덕택에 깊게 푹 잠을 잔 닥터 윌슨과 프로바움은 쌩쌩해 보였다.



도로스는 한 손에 턱을 괸 채 그 둘을 힐끗 보고선 툭 내뱉듯 말했다.



"글쎄...잘 모르겠어요. 음...여행이나 다닐까봐요."



"그러냐..."



어차피 돌아갈 곳은 없어졌으니까. 도로스는 말을 삼켰다. 그러나 카지트는 숨겨진 뒷 말을 알아채곤 귀 밑을 벅벅 긁었다.



"무슨 이야길 그리 재미나게 하는가?"



프로바움은 일어나자마자 품 속에 고이 모셔뒀던 파이프 담배를 꺼내며 물었다. 금속피부 덕에 어지간한 불엔 내성인지라, 그는 모닥불 속으로 손을 쑥 쑤셔넣고 뒤적거리다가 불씨를 하나 꺼냈다. 곧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파이프 담배에선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냥 모든 게 끝나면 뭘 할 지 이야기하고 있었어.영감은 끝나면 뭐 할거야? 이번엔 북부로 돌아가나?"



북부 이야기가 나오자 프로바움은 쿨럭거리며 잔기침을 했다. 제아무리 마음에 응어진 것을 풀었다고해도, 수 십년동안 기피하던 것이니 반사적으로 기침이 나왔다.



"큼큼, 글쎄다. 아마 그러겠지. 그래도 그리 오래있진 못할 것 같네. 그냥 그...안부나 여쭙고 와야지."



프로바움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말했다.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엔 어쨰 평소같은 패기가 없었다. 카지트는 히죽거리며 웃었지만 더는 도발하지 않았다. 그랬다간 분명 또 등짝이나 어디를 쳐맞겠지.



"그럼 닥터는?"



이번엔 화살이 귀뚜라미에게 향했다. 귀뚜라미는 머릴 긁적였다.



"전, 다시 의료,계통으로 돌아가 활동할,까 합니다. 이번 여행으,로 제 실력이 아직 부족하,단 걸 절실히 느꼈으,니, 좀 더 갈고닦,자고 생각합니,다."



"음...그런가. 어째 좀 아쉽네. 맘 같아선 같이 활동하고 싶은데. 뭐 어쩔 수 없지."



카지트는 어깨를 으쓱했다.



프로바움은 천천히 카지트 쪽으로 다가와 모르는 척 그를 쿡쿡 찌르며 속삭였다.



"도로스와 무슨 이야기를 했나? 별로 표정이 좋아보이진 않는데."



"아니, 그냥...좀 기분이 그렇더라고. 나 때문에 저 녀석 누나가 그렇게 된 것 같아서."



프로바움은 천천히 폐부 깊숙한 곳까지 침투하는 담배 연기를 즐기며 도로스 쪽을 힐끗거렸다. 조용히 타오르는 모닥불에 주홍빛으로 물든 도로스의 모습은 한층 성숙해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공허한 느낌 마저 들었다.



분명 엊그제까지 그래도 꼬맹이 티는 못 벗었던 것 같았는데.



자동인형은 탁한 숨결을 허공에 내뿜었다. 누나의 죽음이 소년을 어른으로 만들었는가. 방독면을 잃어버린 탓에 맨 얼굴엔 표정이 다 드러나보였다. 나름 숨긴다고 숨긴 것 같지만, 프로바움과 카지트 앞에선 안숨긴 것만도 못하다.



처음 하루는 정말 많이도 울었다. 둘째, 혹은 셋째날까지도. 그들은 울다가 지쳐 쓰러진 도로스를 들쳐메고 동부를 향해 움직였다. 그나마 나흘 째부터 조금은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도로스 덕에 그리 힘들진 않았지만, 처음 삼일은 정말 힘들었다.



그와중에 레온하르트까지 다시 원래 있던 곳을 돌아갔으니. 마음같아선 떠나는 사자를 붙잡고 싶었지만, 한 팔과 동료들을 잃고 혼자 살아남은 그는 너무나 초췌하고 피곤했다. 모두를 이끄는 리더의 패기는 팀원이 살아있어야 존재하는 법이다.



무엇보다 그에겐 동료들의 죽음과 더 이상 광신도들을 두려워 할 필요없다는 사실을 전해야하는 중요한 임무가 있었다. 남부를 재건하기 위해 해야 할 일 또한 산더미처럼 쌓여있기도 하고.



"그 영감도 같이 왔으면 했는데..."



카지트는 대충 금속 쪼가리로 보이는 막대를 집어 모닥불을 쑤셨다. 천천히 타오르는 고형연료와 쌓아놓은 쓰레기가 몸을 뒤틀며 불씨를 날렸다.



"레온하르트씨,도 잔당 소탕이나 남부,의 부흥 같은 막중한 책임,이 있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귀뚜라미는 어느새 따뜻하게 데운 수통을 홀짝이며 입을 열었다.



모닥불에 둘러앉은 네 명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때론 가장 힘겨웠을 때의 추억이었으며, 때로는 즐거웠던 기억도 있었다. 뉴 로마에서부터 강행군을 해왔기에 이미 남부와 동부의 경계면에 가까워진 상황. 더 이상 돌연변이를 두려워 할 필요는 없으니, 하루 정도 휴식을 취하며 재정비의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라.



그러나 그런 것보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도로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음을 알았기에.


작가의말

드디어 마지막 챕터입니다 헤헤 

요즘 연재가 느려져서 죄송합니다 ㅠㅠ 이번주 주말에 이사를 할 예정인지라 이사 준비중입니다 ㅠㅠ


지드님// 결국 누나는 갔습니다 ㅠㅠ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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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12. 종결 +1 18.04.04 241 11 17쪽
163 12. 종결 +1 18.03.21 264 12 20쪽
162 12. 종결 +1 18.03.04 259 12 14쪽
161 12. 종결 +3 18.02.25 282 12 12쪽
160 12. 종결 +3 18.02.10 280 10 12쪽
159 12. 종결 +2 18.02.04 331 12 10쪽
» 12. 종결 +2 18.01.24 295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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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11. 전쟁 +1 17.12.17 315 12 10쪽
153 11. 전쟁 +1 17.12.09 316 11 16쪽
152 11. 전쟁 +2 17.12.01 324 12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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