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 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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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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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6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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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투수 4인방 3

DUMMY

K1과 론의 육중한 패스트볼에 풀이 죽은 레드삭스 타선이 세 번째 투수를 맞이하자 꽉 막혔던 숨통이 그나마 트였다. 티모시는 100마일을 오르내리는 파이어볼러가 아니었고 그의 손에서 벗어나 천천히 들어오는 공은 눈에 충분히 보였다. 구속의 단점을 파고들라는 코치의 사인이 나온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느린 공이 쉽다는 오판은 곧 접어야 했다.


“아, 저런! 매직볼러가 파이어볼러보다 상대하기 쉬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군요. 구 위원, 어떻게 보십니까?”

“전광석화처럼 불을 뿜으며 들어오는 포심 패스트볼은 곰처럼 우직하고 정직해서 코스가 정해져 있죠. 그에 비하면.......”


깊이 구부린 상태에서 360도 회전이 가능한 그의 고무 막대 손목과 긴 손가락 조합이 만들어낸 갖가지 변화구가 자신의 무릎 바로 앞에서 여태껏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휘어 들어오자 타자들은 차라리 앞선 두 투수의 포심이 더 상대하기 편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불과 이틀 전, 다 이겨가다가 역전을 당했던 3차전 8회에 올라 변화구의 모든 구종을 꺼내 들어 안타 하나 없이 깔끔히 마무리한 그의 구위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구 위원, 티모시는 수백 명의 빅리그 투수 중에 속구가 없는 유일한 선수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누가 뭐래도 가장 파워 있는 구질은 패스트볼이죠. 실투했을 때 안타를 허용할 가능성이 가장 적은 것 또한 패스트볼입니다. 빠른 만큼 타자들은 보고 판단하여 결정할 시간을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구속이 낮은 변화구는 판단할 여유가 있는데 티모시의 공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느려도 예리한 각도를 지닌 변화구는 속구와는 전혀 다른 위협이 됩니다. 빤히 보이며 정해진 궤적으로 들어오는 평범한 변화구를 치지 못하는 타자는 없어요. 하지만 방망이가 돌기 직전 변화를 보인다면 100마일로 들어오는 정직한 속구보다 훨씬 까다롭죠. 더구나 연체동물처럼 제멋대로 움직이는 손목에서 나오는 그의 공은.......”


주로 주자를 내보낸 7회나 8회의 위기 상황에 올라 베이스를 깔끔하게 청소하고 대니에게 새 판을 깔아주는 티모시의 ERA 0.75 일등공신으로 구정한은 슬로 커브–종 슬라이더–체인지업 배합에다 낙차에 포커스를 둔 커브와 횡 슬라이더 그리고 일반 슬라이더와 반대 방향으로 휘는 스크루볼을 적절히 섞은 다양한 조합을 꼽았다.


“속구를 던질 때와 동일한 동작에서 나오는 체인지업이 티모시에게는 장점이 되지 않습니다. 속구 차제가 없으니 타자들이 속을 리가 없죠. 하지만 위력이 남다릅니다. 그의 체인지업 그립을 자세히 보면 공을 손바닥 안으로 아주 깊게 잡아요. 이러면 제구는 어렵지만 일단 익숙해지면 훨씬 위력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체인지업을 만들 수 있죠. 팜볼과 같은 개념의 체인지업으로 볼 수 있어요.”

“커브는 어떻습니까? “

“키가 작은 티모시에게 낙차 큰 커브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팔을 머리 위로 뻗어 가장 높은 릴리즈 포인트에서 공을 던져도 신체적 결함을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죠. 게다가 커브는 원래 가장 구속이 낮은 구종이고 12-6으로 떨어지는 커브는 너클볼 속도와 별 차이가 없어요. 하지만.......”


체인지업은 누구나 배워도 커브의 각도는 타고나야 한다. 수직 무브먼트에 치중하는 크리켓 볼러답게 티모시의 슬로 커브가 보이는 종적 변화는 2미터가 넘는 장신의 투수가 머리 위 가장 높은 지점에서 던지는 커브와 비교해도 낙차의 폭에 큰 차이가 없었다. 주심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던 공이 홈플레이트 바로 앞에서 땅에 바운드되는 귀신이 통곡할 낙차를 보여 겁에 질린 일부 주심에게 미운털이 박힐 정도였다.


“그러니까 횡으로 휘는 슬라이더는 방망이와의 접촉 부분이 선으로 형성될 수 있지만 종으로 떨어지면 정확한 한 점을 찾아야 하므로 타자로서는 상대하기 매우 어려운 구질입니다. 폭포수 커브로 명성을 날리는 애덤 웨인라이트의 커브보다 낫다는 평을 받는 이유죠. 백도어, 프론트도어 할 것 없이 자유자재로 던지는 슬라이더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고요. 너클볼을 제외하면 못 던지는 브레이킹볼이 없고 그 하나하나가 절정의 구위를 보인다는 말은 과장된 표현이 아닙니다.”

“그럼, 말이 나온 김에 질문 한가지 하겠습니다. 젊은 투수가 변화구를 던지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은 이유가 뭡니까?”


구정한은 평소에 갖고 있던 변화구에 대한 견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대부분 투수는 변화구를 던질 때 기술에 대한 이해보다는 몸을 억지로 비틀거나 손목 스내핑에 치중합니다. 구종에 따라 공을 쥐는 그립만 달리하면 되는데 팔의 움직임까지 억지로 변형을 주다 보니 이런 잘못된 투구 방법이 전체적인 투구 밸런스에 나쁜 영향을 주어 크고 작은 부상을 부르게 되죠. 티모시는 이런 원리를 제대로 이해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공을 던지든 폼과 모션이 거의 같으니까요. 게다가 유연한 손목 또한 큰 장점으로 작용합니다. 저런 변화구 투수는 앞으로도 찾아보기 힘들 겁니다.”


타자에게 지옥과도 같은 시간이 흐르고 8회가 찾아왔다. 2사에 티모시가 큰 박수를 받으며 내려가고 모두의 예상대로 대륙의 붉은 별 대니가 올라왔다. 이렇게 뒷마당 하우스 투수 4인방이 처음으로 모두 올랐다. 우애 좋게 데뷔 순서대로 말이다.


아직 안타를 만들어 내지 못한 레드삭스 타자들의 핏발선 눈과 경직된 표정에서 떠올리기조차 싫은 ‘퍼펙트 패’에 대한 공포가 배어 나온 반면 대니의 얼굴에는 환하고 넉넉한 미소가 피었다. 편한 마음으로 방망이를 휘두른 컵스의 타선이 만든 석 점 리드 때문이 아니었다. 보기 드물게 블론 세이브를 저지른 상황에서도 펼쳐 보이는 대니만의 여유였다. 지겹도록 시련을 겪은 자만이 지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여유라고나 할까. 그야말로 신이 내린 강심장 클로저라고 할 수 있었다.


“결국은 43세이브로 양대 리그 끝판을 평정한 대니까지 올라왔군요. 비싼 입장료 때문인지 평소보다 적지만 그가 등판하자 오성기를 날리는 중국 팬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야구가 가장 쉬웠다는 그의 스토리가 퍼지면서 요즘 중국에서도 야구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하더군요.”

“저도 들었습니다. 불과 2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대도시 중심으로 리틀야구단 500개가 생겼다니 과연 중국입니다. 이들 중 강원리그 멤버도 많고요.”

“그런데 레드삭스 타선에 대니는 생소한 투수 아닙니까?”

“맞습니다. 리그가 달라 받아볼 기회가 거의 없었던 데다 1, 2차전은 K1과 론이 완봉으로 이겼고 3차전은 티모시가 끝내는 바람에 대니는 이번 월드시리즈 첫 등판입니다. 개인적으로 조금 억울할 수도 있겠어요.”


한편, 죤은 이번에도 타임을 건 감독을 뒤따랐고 전신을 움직이며 마운드에 들어서는, 전혀 억울한 표정이 없는 대니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번엔 이구아나 큰 거로 열 마리 잡아준답디다. “

“그래? 참으로 기대되는군. 이것저것 먹어봐도 그놈만 한 맛이 없더라고.”

“커터 가르쳐 주면 더 잡아줄지도 몰라요.”

“그까짓 커터가 뭐 대단하다고. 얼마든지 가르쳐 주지.”

“배도 고픈데 질질 끌지 말고 빨리 끝냅시다.”

“그럼, 체인지업 줄이고 커터를 늘여.”


더 이상 막힐 기가 없어 캄캄한 하늘을 쳐다보던 감독이 이날 마운드에서 들은 마지막 대화였다.


두둑한 배짱으로 던지는 포심 패스트볼과 체인지업 배합만으로도 넉넉히 세이브를 챙긴 대니를 양대 리그 최정상 마무리로 만든 구종은 누구나 인정하듯 가운데 중지로 밀어 던지는, 전성기 시절의 리베라를 떠올리게 하는 커터였다.


“데뷔 첫해 44세이브를 올리며 내셔널리그 신인상과 트레버 호프먼 상을 받고 올해도 변함없는 활약을 펼치고 있는 대니는 패스트볼-체인지업-커터를 섞은 전형적인 쓰리 피치 클로저입니다. 물론 속구와 똑같은 폼과 궤적을 갖는 72마일 체인지업을 유인구로 써서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기술도 대단합니다. 조금 전 9회 첫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것도 구속과 무브먼트의 차이에 둔 체인지업이었고요. 하지만 포심 구속과 수직 무브먼트에 떨어지는 각도까지 동일하되 우타자의 바깥쪽으로 거의 수평으로 휘는 커터야말로 현역 빅리거 중에 오로지 대니만이 구사할 수 있는 독문 구종이자 그의 성명 절기죠.”


분명히 포심으로 던진 공이 홈플레이트에 늦게 들어와 방망이가 먼저 나간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조심한 타자들은 한 번 더 쉽게 속으며 죄 없는 배트를 땅에 내리쳤다. 우직하고 빠르게 일직선으로 들어오던 공이 예상과 반대 방향으로 꺾이면 공에 접촉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다.


은퇴 직전 벌떡 일어나 ‘죽기 전에 리베라의 커터를 볼 줄이야’라며 탄성을 지른 다저스의 스컬리 옹이 바로 그 커터를 통통한 이구아나 몇 마리와 바꿔 먹으려는 대니의 생각을 읽는다면 얼마나 황당해할까. 9회 말 세 번째 타석에 들어선 9번 타자가 이를 악물고 방망이를 허공 사이에 휘저으면서 2017 월드시리즈는 싱겁게 막을 내렸다.


<컵스, 월드시리즈 3연속 우승 달성>

<레드삭스, 치욕의 퍼펙트 패>

<컵스 하우스 투수 4인방, 무안타 퍼펙트로 5차전 승리하며 우승 견인>

<’밤비노’에서 풀린 레드삭스, ‘4인방’ 저주에 매이다>


언론은 요란스럽게 방정을 떨었지만 화려한 색색의 낙엽이 수북이 쌓인 뒷마당은 차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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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 태평양을 건너며 10 +5 17.09.04 2,467 55 10쪽
228 태평양을 건너며 9 +5 17.09.02 2,776 52 10쪽
227 태평양을 건너며 8 +9 17.08.31 2,519 5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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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태평양을 건너며 5 +16 17.08.24 2,741 70 10쪽
223 태평양을 건너며 4 +11 17.08.22 2,907 60 10쪽
222 태평양을 건너며 3 +6 17.08.20 2,994 62 11쪽
221 태평양을 건너며 2 +12 17.08.18 3,078 70 9쪽
220 태평양을 건너며 1 +12 17.08.16 3,149 70 11쪽
219 낙엽이 수북이 쌓일 무렵 +10 17.08.11 3,276 67 10쪽
218 던져 봐 +6 17.08.07 3,150 57 11쪽
217 세탁소집 큰아들 +8 17.08.04 3,182 5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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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K1 이벤트 4 +6 17.07.29 2,954 69 9쪽
213 K1 이벤트 3 +6 17.07.26 3,058 71 9쪽
212 K1 이벤트 2 +8 17.07.23 3,308 73 11쪽
211 K1 이벤트 1 +7 17.07.11 3,650 72 11쪽
210 일본에서 5 +8 17.06.27 3,591 7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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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구단주 그리고 그룹 회장 +3 17.03.04 4,599 77 14쪽
184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5 17.03.02 4,491 8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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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구단의 사활이 걸린 문제 +4 17.02.17 4,893 86 10쪽
178 강원 야구전문대학교 +3 17.02.13 4,767 95 12쪽
177 강원도 해프닝 +5 17.02.10 5,638 96 11쪽
176 약점은 투수진이군요 +3 17.02.08 4,888 92 10쪽
175 하나의 구단은 문화적 유산 +7 17.02.05 5,199 84 12쪽
174 한국프로야구에서 뛰어볼 생각은 없나? +7 17.02.03 5,629 93 10쪽
173 5인의 클리닉 3 +6 17.01.30 5,115 112 10쪽
172 5인의 클리닉 2 +4 17.01.26 5,284 8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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