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rior 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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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개
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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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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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25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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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10. 운칠기삼(運七技三) (9)

DUMMY

“그래.... 볼썽사납게 되었구나. 이 불충을 어이할꼬.....”


씁쓸하게 중얼거리던 이선엽에게서 울컥하고 이선엽에게서 거대한 기운이 터져 나왔다. 감정의 격동에 의한 내공의 격발. 무심코 검을 들어 막아내려던 탓에 수세에 몰렸다.


“어서 내 목을 쳐내거라 어린 아해야. 더는 불충을 저지르고 싶지 않구나.”


“그, 그럼 주먹질 그만하고 목이라도 쭉 빼고 계시지요?”


연이은 파상공세를 간신히 견디는 게 고작이다. 적수공권으로 버티는 매 일격이 무겁기 그지없다. 이것이 검문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백윤까지 쓰러트린 자의 여력이라고? 대체 얼마나 강대한 내공을 손에 넣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입만 살았구나. 동평에서 보여주던 기개는 어디로 갔느냐?“


이선엽이 재차 발을 구르자 한순간에 거리가 좁혀들었다. 신묘하면서도 위력적인 보법이다. 다급히 다시 거리를 벌려보지만, 보법의 경지가 격을 달리했다. 거리를 넓히기는커녕 좁혀지고 말았다. 눈앞에 있는 푸른 요대는 요사스럽게 날뛰며 퇴로를 봉쇄하고 있었다.


”크헉!“


눈 깜짝할 새 다섯 줄기의 강기가 이선엽의 손가락 끝을 타고 파고들었다. 할 수 있는 게 없다. 무작정 호신강기로 버텨보았다. 그러나 틀렸다. 속이 진탕된 것이 느껴진다. 이 무공, 보통 절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넋 놓고 있을 시간은 없다. 위기를 기회 삼아 이선엽의 팔 쪽 소매를 움켜쥐었다. 속이 곤죽이 되었을 자가 오히려 반격을 가하니 이선엽이 흠칫 놀라 눈을 치켜떴다. 이제는 오히려 이선엽이 움직임을 빼앗긴 상황. 무방비한 이선엽의 정면에 정직하지만 위력적인 정권을 휘둘렀다.


쿠웅!


굉음이 일었다. 이선엽의 소매가 북 뜯겨나가며 죽 밀려난다. 통했나? 아니다. 쾌강의 묘리를 담아 휘갈긴 일격은 시커먼 강기에 여지없이 가로막히고 말았다.

허탈함이 몰려온다. 주고받기는커녕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한 공방전이다. 결국 저 신공을 깨지 못하는 이상 무슨 짓을 해도 중과부적이었다.


”고작 검 한 자루 없다고 이리 지지부진한 것이더냐?“


이선엽의 싸늘하게 조롱하며 채찍을 휘둘렀다. 지겨우리만치 내공을 퍼부어 채찍을 쳐내고 또 쳐냈다. 그러나 문득, 두 팔이 무겁고 둔하게 변했음을 자각했다. 꽤 낯선 느낌. 고작 하루만에 먼 거리를 왕복하고 전력투구한 여파가 어느새 온몸을 뒤덮어가고 있었다.


”됐다. 그만두어라.“


이선엽에게서 느껴지던 묵직한 투기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온몸을 옭아맨 사슬이 풀려버린 듯 순간 아찔해지며 몸이 앞으로 기운다. 그러나 세찬 물줄기처럼 솟아오른 내공 덕에 가까스로 앞으로 고꾸라지는 추태는 면할 수 있었다.

이선엽이 그 작태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혀를 찼다.


”안타까운 노릇이구나. 그래도 중원에서 그만한 자가 없다 여겼거늘 역시 한낱 무부에 지나지 않았던 모양이구나.“


이선엽이 몸을 돌려 스스럼없이 이곳을 떠나려 한다. 그 뒷모습에서 헤아릴 수 없는 불길함이 느껴진다. 무언가 있다. 이대로 두었다간 당치도 않은 일이 터질 것만 같았다.


”어딜 가는 겁니까!“


버럭 호통을 지르며 이선엽에게로 달려간다. 승부를 반신반의하던 마음을 하늘이 알아주기라도 한 것일까? 달려나가는 방향에 부러진 검이 보였다. 백윤이 쓰던 청강장검이다. 눈앞이 환해지며 날렵하게 몸을 틀어 백윤의 검을 쥐어 들었다.


카앙!


검을 쥔 것만으로 사기백배해서 달려들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마음만 앞섰던 것일까? 결국 또 새까만 강기에 가로막힌 검이 아예 휘어버린다. 아차 싶었지만 놀랍게도 이선엽은 점점 빨라지는 걸음을 멈추고 내게 흥미를 보였다.


”확실히 다르구나. 과연 검객이란 족속이란 게지.“


”물었을 테요! 어딜 가는 겁니까?“


”쓸모없는 물음을 다 하는구나. 황상이 계시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몸. 이만 이 땅을 떠나려던 참이다.“


이 땅을 떠난다는 말. 그 한마디의 의미를 깨달은 나는 대경식색해서 소리를 질렀다.


”미친, 서역으로 가겠다는 소립니까?“


소름이 쫙 돋았다. 이선엽이 서역에 간다? 조용히 서역에서 생을 마감하리라는 상상은 들지도 않았다. 낭중지추라는 말이 괜히 있던가? 이선엽 정도의 무위를 가진 자라면 어떻게든 평지풍파에 엮이는 법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서역에서 이선엽의 흔적은 없었다. 적으로도, 아군으로도 만난 적 없었다. 즉, 이건 내가 소천검이라는 무명을 새로이 얻은 것처럼 아예 존재하지 않던 일이었다.


”무얼 그리 놀라느냐? 서역에서라면 이 질긴 목숨도 끝낼 수 있기에 가는 것뿐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니 더는 상관치 마라.“


윙윙대는 머릿속에서 아찔한 두통이 밀려온다. 동시에 스쳐가듯 지나가는 풍경들. 떠올림과 동시에 허물어지는 그것들을 온전히 입에 담을 순 없었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했다. 이선엽이 서역에 당도하는 순간 빙룡 못지않은 평지풍파가 밀려오리라는 것.


”절대.....“


아마 착각일 것이다. 뇌리에 파고든 풍경은 그렇게 믿어야만 할만큼 잔혹한 것들 뿐이었다. 이선엽의 일수에 목이 떨어지는 이들. 그 안에는 토리나 볼마르그와 소렌 폰테일의 모습이 있었다.


”못 간다!“


결국 모든 건 그때의 연장과도 같았다. 내가 눈앞의 괴물을 처지하지 못하면 내가 아끼고 사랑하던 것들이 스러진다는 단순명료한 사실. 두 번이나 되살며 깨달은, 단순하고도 잔혹한 사실에 대항하려면 무얼 해야 할까? 그것 역시 간단하기 그지없다. 검을 휘두르면 그만이었다.


눈앞이 환해졌다가 다시 제 색을 되찾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무언가 저질러버렸다. 부러지고 휘어버린 검에 묻어나온 선명한 혈향은 분명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것이었다.


”크헉.....“


털썩 무릎을 꿇는 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보니 이선엽의 검은 호신강기가 사정없이 난자되어 있었다. 손이 떨린다. 몸이 떨려온다. 진천이다. 억지로 끌어올린 것이 아닌, 그저 순전한 마음에서 비롯된 오의(奧義). 놀라움에 압도되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리숙하기 짝이 없는 주제에....... 제법이구나.“


검은 강기가 안개처럼 사라지고, 이선엽의 온몸이 붉게 물들어간다. 첫 접전에서는 그리 쉽게 현무포를 베어내던 내가 어찌서 지금은 이리 곤욕을 치렀는가? 해답은 하나다. 오히려 강해진 탓에 절실함이 부족했었다. 말하자면 자만하고 있던 탓이 오히려 검기가 무뎌졌다고 할 수 있다.


”어렵구나.....“


한껏 강해진 줄 알았건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얼마나 약하고 강한 자를 상대하든 심신을 검 한 자루에 온전히 담는 것. 그것이 천의로 향하는 바른 길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도리어 강해졌기에 더 실천하고 체득하기 어려운 이치다. 기가 막히는군. 역시 검이란 천하제일의 둔재에게 너무 과중한 것임은 분명했다.


”하나 대답해 주십시오. 왜 서역으로 가면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까?“


그저 호기심이었다. 과연 서역에 누가 있어서 이선엽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을까? 소렌이라면 능히 해낼 것이겠지만 아직은 소렌이 성취를 볼 때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있을까? 나중에 기회가 닿는다면 그자와 비무라도 치러보고 싶다. 그런 의미로 던진 쓸모없는 물음이었을 터다.

이선엽이 힘없이 피를 토해내며 한 자 한 자 천천히 내뱉었다.


”.......백가 성의 역도가 살아있다는 것을 아느냐? 그자가 내게 힘을 돌려주며 말하였다. 서역으로 온다면 한 많은 삶을 끝내주겠노라고.“


가슴 속의 박동이 커진다. 이선엽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한 지 믿을 수 없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왜 안심하고 있었던 거냐! 한없이 불안하게 흩어지던 이선엽의 기파는 어느새 강렬하게 탈바꿈하고 있었다.


”대신, 그 전에 해 주어야 할 일이 있다고 했다. 중원 무림을 누비며 역도를 참하고 오는 것.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기에 받아들이고 힘을 되찾았다. 아니.......“


시간을 거꾸로 감은 것처럼 이선엽의 상처가 아물어가고 흥건하게 바닥을 적신 피가 다시 빨려들어간다. 나는 이 광경을 잘 안다. 너무나도 잘 안다. 토리나를 처참하게 해친 그 오크놈들. 그놈들의 특징이기에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윽고, 온전한 모습을 되찾은 이선엽이 권태롭기 그지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말했다.


”더 강해졌다고 해야겠지.“


그야말로 악몽 같은 순간이다. 지쳐버린 몸에서는 아직도 형형한 내공이 샘솟고 있었지만, 내공을 뒷받침하는 육신은 그와 대조적으로 이리저리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런 상태로 과연 이겨낼 수 있을까? 싸울 수는 있을까? 모르겠다. 당장이라도 검을 팽개치고 나 몰라라 버려두고 싶다. 이선엽은 서역으로 돌아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서역의 인연들? 그들이 아무리 중하다 한들 지금을 살아가는 내게 중요한 건 중원 무림이다. 그들을 구하는 건 그 이후가 되겠지.


”아직도 막아설 참이냐?“


그런 중구난방의 변명 속에서도 내 몸은 어느새 이선엽을 가로막은 채였다. 애써 겁쟁이인 체 해봤지만 역시 안 된다. 나는 천의검문의 일원. 후퇴와 실패는 있을지언정 외면과 포기란 없다. 그 하나만은 내가 처음부터 품고 있던 유일한 기치. 그렇기에 나는 둔재임에도 끊임없이 검을 추구해올 수 있었다.


”그런 것 같군요.“


잔뜩 휘어버린 검은 버린다. 지금부터는 악착같이 물고 늘어질 때. 적수공권에 삐걱댐이 한창인 몸을 질질 끌고 육합권의 기수식을 취한다. 고작 육합권이라니. 그런 짓을 저지르고 나니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잘 됐다. 이참에 방금 깨달은 것을 조금이라도 실천해 보자.


”서역까지 갈 것도 없지.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꺾어 보이겠소!“


”그렇게 된다면 역도의 손을 빌릴 것도 없겠지. 그 기개를 높이 사, 내 두 손의 병기를 봉하고 싸움에 임하겠다.“


이선엽이 다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제야 이선엽이 파천마제와의 연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음이 느껴진다. 하기야 파천마제는 가장 먼저 황실에 반기를 든 역도일 테니. 가능하다면 백윤처럼 때려눕히고 싶은 게 본래 심정일 것이다.


”오너라.“


이선엽이 요대를 집어넣고 차분히 손짓한다. 요행히 골치아픈 신병이기는 봉할 수 있었지만, 진짜 문제는 이선엽의 새로운 힘. 마나 드레인과 그에서 비롯된 엄청난 회복력이다.

막상 대치하고 있으니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지금까지 나는 압도적인 힘으로 저 힘을 분쇄해왔다. 달리 말하자면 그 외엔 다른 방법 따윈 모른다는 의미다. 마법의 극의를 본 제임스라면 무언가 다른 방법을 알았으려나? 어떻게든 닦달해서 그 요령을 좀 배워둘 것을 그랬다.


”받아보시오. 육합의 이치는 결코 허술하지 않을 테니!“


결국, 내가 택한 것이라곤 치열한 육박전 뿐이었다. 치고, 차고, 빗겨내고. 셀 수 없는 난전 속에서 끝을 알 수 없을 것만 같던 체력이 바닥을 보였다. 몸은 이미 만신창이로, 내공이 끊어지면 줄 끊어진 인형처럼 주저앉을 것이 분명했다.


”슬슬 내공의 수급이 더디구나. 더 용을 써봐야 무엇이 달라지겠느냐?“


이선엽은 쓴소리를 내뱉으면서도 아직 입가에서 미소를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싸운 정도 정이라면 아마 엄청나게 쌓였을 테지. 이런 실없는 생각이 들 정도니 이제 정말로 한계인 듯 했다.


”쿨럭, 사지가.... 온전하고 입도 나불댈 수 있으니 충분히 가능하오.“


이젠 못 막는다. 그 사실은 실로 명확했다. 너무 명확해서 아둔하기 그지없는 나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끝내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막지 못한다면 그저 한없이 싸워보기라도 하고 싶었다.


퍽.


나름 힘차게 내리친 좌수가 힘없이 턱 막혔다. 지친 이에게도 이선엽은 가차 없었다. 서슴없이 요혈을 후려치고 냅다 저만치로 집어 던졌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엉망이 된 전각에 팽개쳐진 순간 눈앞이 노래지며 아주 잠시 정신을 잃었다.


”끄어어억.........“


퍼뜩 정신을 차리자 격통이 밀려왔다. 입술을 타고 핏물이 침과 뒤섞여 끈적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얼마 만에 이렇게 처참하게 당해보는지 모르겠다. 이런 느낌이 반갑다는 건 아마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깨달음을 얻어 진일보하여 답보상태에 있던 차에, 이선엽과의 격전은 이미 내게 큰 선물을 주지 않았던가?


”벌써 끝났느냐?“


”아직!“


이번엔 어깨가 박살 난 모양이다. 부러진 어깨 즈음의 혈을 짚어 아픔을 숨기고 내공의 힘을빌어 억지로 몸을 일으키고 또 달려들었다.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조금이라도 타격을 주었던 때와는 달리 이제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게 고작이었다.


”커헉!“


정신을 놓아버리는 빈도가 늘어간다. 폭포수 같던 내공의 흐름은 이제 개울물처럼 볼품없어졌다. 그래도 움직였다. 싸웠다. 견뎠다. 육신은 걸레짝이 다 되었지만 아직 죽을 때는 아니다. 그렇기에 서슴없이 혹시 모를 깨달음의 단초에 갈증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가 바뀌고, 마침내 나는 쓰러졌다.


”하아아.......“


이선엽이 긴 한숨을 내뱉었다. 무한한 체력을 가진 그녀도 어지간히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이선엽이 축 늘어진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나는 움직이려 했으나 이젠 무리다. 그저 할 수 있는 거라곤, 깨달음을 얻지 못한 아쉬움을 감추기 위해 바보처럼 웃는 것 뿐이었다.


”도씨 문중은 예전부터 그랬었지. 네 할애비도 어지간했지만. 네녀석도 가관이로구나.“


이선엽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갑자기 터져나온 이야기에 나는 지친 것도 잊고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 보였다. 부들부들 떨리는 턱을 달싹여 간신히 메마른 목소리를 내어 보았다.


”조부님을...... 아십니까?“


”이제 와서 친분이라도 쌓을 셈이더냐? 모른다 할 수는 없겠지. 아무튼 도씨들의 지독함에는 이제 질렸다. 그만 끝내도록 하마.“


이선엽이 휙 돌아섰다. 끝났다. 모든 게 끝났다. 이렇게 허무할 수가. 결국 이대로 이선엽을 보낼 수밖에 없나? 아니다. 생각해라. 방법은 있다. 최선이 없다면 차선이라도 존재할 것이다. 그런 믿음으로 필사적으로 이를 악물던 나는 빛살처럼 스치고 지나간 한마디를 힘껏 입밖으로 내뱉었다.


”파천마제가 아닙니다!!“


이선엽의 걸음이 멈추었다. 이선엽이 서서히 되돌아온다. 그에 발맞추어 나는 거듭해서 소리를 흘려보냈다.


”파천마제는............ 당신을 죽이지 않을 겁니다.“


”물론 서역에도 그만한 실력자가 또 있을 순 있겠지. 하지만 일개 오랑캐 중에 그만한 기개를 가진 자가 또 있을 것 같지는 않구나.“


”그저............. 이용할 뿐입니다. 그는...... 본디 그런 잡니다.“


이선엽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내 말에서 무엇을 느꼈던 것일까? 이선엽이 천천히 허리를 굽혀 내 멱살을 쥐고 끌어 올렸다. 온몸이 버석거리는 아픔에 몸서리치는 가운데, 이선엽이 묘한 시선으로 나를 응시했다.


”확신에 차 있구나. 네 연배에 파천의 마제를 직접 마주했을 리는 없을 터. 참으로 기이하구나. 허나 그 말이 옳다. 그자는 사특한 자다. 그리고 악랄한 역도이기도 하지.“


이선엽이 의문을 품은 것으로 좋다. 내 역할이 여기까지라면 조금이라도 이선엽에게 무언가를 전해주고 싶다. 바싹 말라버린 입술을 달싹여 재차 머릿속에 떠도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 힘. 그 힘의 정체는........“


그 순간, 어마어마한 깨달음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파천마제가 어떻게 혼돈의 힘을 손에 넣었는지 떠올렸다. 마나 드레인을 바탕으로 혼돈의 사도가 갖는 모든 것을 강탈해갔다. 그렇다면 혹시 이선엽에게 이 힘을 준 것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놓아라.“


이선엽에게 무언가 한마디를 던지려는 그때, 차가운 한마디와 함께 이선엽과 내 사이에 날카로운 검기가 파고들었다. 예리하면서도 부드러운 검력이 나와 이선엽을 갈라놓고 이어 축 늘어진 내 몸을 잡아당겼다.


”또 다른 방해꾼인가?“


이선엽이 코웃음치며 적의를 내보였다. 물씬한 투기에도 아랑것하지 않고 나를 받아낸 듬작한 두 팔은, 어느새 이선엽 앞에 무덤덤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스윽.


소름끼치는 마찰음과 더불어 이선엽을 위협했던 검이 부드럽게 엉망이 된 돌바닥 깊숙이 꽂혔다. 이어서 능숙하게 검을 지면에 꽂아넣은 거인(巨人)이 절도있는 포권지례를 취한다.


”천의검문의 문주, 도 모가 감히 옛 천조의 사방수호대장군께 감히 무례를 범하겠소.“


”개소리 집어치워라. 그래서 하고싶은 말이 무어냐?“


이선엽이 전에 없던 적의를 드러내며 으르렁댄다. 허탈감이 느껴진다. 나를 대할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 한마디로 경계하고 있다는 의미다.


”하고 싶은 말이라면 하나 뿐이겠지.“


아버지. 정천검이 다시 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이선엽에게 다가가며 역시 전례없는 노기를 드러내며 외쳤다.


”감히 본문을 우롱한 죄를 묻겠다!“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호랑이 담배물던 시절의 설정이 드문드문 나와서 뭔 소린가 싶은 분이 많을 것 같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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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10. 운칠기삼(運七技三) (1) +6 17.01.15 743 10 17쪽
213 9. 넘고 넘어서, 돌고 돌아서 (5) +3 16.12.18 871 14 20쪽
212 9. 넘고 넘어서, 돌고 돌아서 (4) +6 16.12.03 682 13 25쪽
211 9. 넘고 넘어서, 돌고 돌아서 (3) +5 16.11.02 1,007 10 25쪽
210 9. 넘고 넘어서, 돌고 돌아서 (2) +7 16.09.12 831 11 36쪽
209 9. 넘고 넘어서, 돌고 돌아서 (1) +5 16.06.13 923 10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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