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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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eraus
작품등록일 :
2016.09.18 22:39
최근연재일 :
2017.12.14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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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9.27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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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5. 23세의 마르셀, 그리고 23세의 이덴. (2)

잘부탁드립니다.




DUMMY

* * *


복도를 걷는 이덴이 사람들을 스쳐 지나갈 때 마다 어쩐지 그들은 저마다 이덴의 뒤에서 뭔가를 수군거렸다. 가령,


“저 사람이야? 쳇, 운도 좋구먼.”

“그러게. 제길 누구는 몇 년을 이 생활해도 수술방 구경조차 못 하고 있는데.”


라던가, 혹은


“저 사람이 외과 과장 아들이라며?”

“그게 진짜였어? 와, 이제 병원에서까지 낙하산이야? 괜히 사고 치는 거 아니야?”


라는 그들이 관심을 두는 가십들에 대해서.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 병원으로 끌고 온 건 분명 이덴의 아버지, 롬멜이었다.


「한동안은 계속되겠지.」


비록 타의에 의한 낙하산이었지만 눈치가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복도를 걷던 이덴의 앞에 외과 안내판이 보였고 그 끝에 제 1 진료실의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진료실 쪽으로 다가서자 접수대 앞에 앉아있던 간호사가 이덴을 반겼다.


“과장님, 안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감사합니다.”


진료실의 문을 가볍게 두드린 이덴은 들어오라는 목소리에 미닫이문을 열고 진료실 안으로 들어섰다. 책상 앞에 앉아 진료 기록을 들여다보고 있던 롬멜은 이덴을 보고서는 서류를 덮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적응은 잘 되고 있나?”


손가락으로 소파를 가리키며 이덴쪽으로 다가온 롬멜은 그저 멀뚱히 서 있는 이덴이 영 언짢았는지 여전히 손가락으로 소파를 가리켰다.


“앉으라니까? 차라도 줘?“

“아뇨. 아버지 덕에 여때 까지 자리에서 차만 마시다 왔는걸요.”

“녀석도 원. 앉아 봐. 할 얘기가 있으니까.”


이덴은 최대한 빨리 여기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롬멜이 순순히 보내줄 생각은 없는 것 같아 내키지 않았어도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잘 대해 주던?”

“어떨지는 아버지께서 더 잘 아시잖아요.”

“별 신경 쓰지 마. 그 인간들 부러워서 그러는 거니까.”


무책임한 롬멜의 발언에 어이가 없던 이덴은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실 필요까지는 없으셨잖아요. 그냥 다른 병원에서 일해도 상관없는데···”

“사내가 이렇게 물러터져서야. 이 병원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는 있느냐? 이건 너에게도 기회야. 네 인생이 걸린 중요한 문제라고.”

“그렇지만···”

“네 자리를 만드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자꾸 그런 말만 할 게냐?”


더 대꾸해봐야 계속 저런 말들만 늘어놓을 거란 생각에 이덴은 입을 다물었다.


“조금 있다가 점심 약속 있으니까 대충 정리하고 여기로 와. 중요한 분들이니까 늦지 말고.”


롬멜은 레스토랑 이름이 적힌 작은 명함 하나를 건넸다.


“별로 점심 생각 없는데요.”

“이덴!”


롬멜의 목소리가 커졌다. 저 목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갈까 걱정이 된 건 이덴쪽이었다. 자꾸 이렇게 아버지란 존재와 같이 있는 모습을 병원의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싫었던 까닭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판이었는데, 이렇게 공공연히 원내에서 만나는 건 또 다른 가십들을 만들어낼 테니까.


“예, 예. 가겠습니다. 그렇게 원하신다면요.”

“와서 허튼소리 말고 대충 분위기만 잘 맞춰줘, 얼굴도장 찍는 셈 치고. 가서 준비해.”


이덴의 머릿속에는 괜히 왔다는 후회들이 가득했다. 차라리 계속 피해 다녔다면 아버지가 제풀에 지쳐 포기했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닥친 상황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이제부터라도 무슨 핑계를 만들어내서라도 피해 다니리라 결심하며 방을 나서는 이덴이었다. 자신의 진료실에 도착한 이덴은 몇 번 입지 않아 여전히 각이 잡혀있는 흰 의사 가운을 옷걸이에 걸어두고서 몇몇 서류들을 가방에 챙겼다. 인사발령이 난 지 얼마 되지 않는 터라 인수·인계받아야 할 내용도 많았고 눈치만 보느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낼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 상황이 맘에 들지 않았다.


「의사로서 실격이야, 아버지는···」


이덴은 롬멜에게 건네받았던 명함을 집어 들었다.


「Garten Eden, 유치하군.」


기분이 좋지 않으니, 잘못도 없는 레스토랑의 이름마저 맘에 들지 않았다. 생각 같아서는 그 중요한 분들이 모인 자리에서 아버지를 망신주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자신에게 타격이 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이덴은 허튼 소리하지 말라는 부탁만은 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점심 시각까지는 여유가 있었지만, 괜스레 병원 안의 퀴퀴하고 암울한 분위기가 싫어져 서둘러 병원을 빠져나온 이덴의 두 눈에 구름 한 점 없이 청아하고 맑은 하늘이 들어왔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극과 극의 풍경이었다.


「차라리 비나 오지···」


투덜거리며 명함을 살펴보기 시작한 이덴은, 레스토랑이 병원에서 별로 멀지 않은 거리에 있음에, 그냥 걸어서 가기로 했다. 잠깐의 산책으로 기분 전환이나 할 요령이었다. 기다란 두 다리는 목적지를 향하면서도 또 정처 없이 거리를 걸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어느새 이덴의 앞에 얕은 경사의 언덕길이 보였고 그 초입에 명함에서 봤던 레스토랑의 간판이 보였다.


「하아, 들어가기 싫다. 들어가기 싫다.」


속으로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되뇌던 이덴은, 경사 길을 따라 언덕길의 뒤편에서부터 걸어오기 시작했다. 반 정도 걸어 내려오자 한창 준비 중인지, 레스토랑의 뒤편에 난 반쯤 열린 철문 틈으로 연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고 그 틈 사이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끔 보였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아 난간에 기대어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이덴의 눈에 철문 옆에 쪼그려 앉아 있는 한 사내가 보였다. 겉보기에는 자신과 비슷한 또래이거나 조금 더 어려 보이는 듯했는데, 왜인지 라이터 부싯돌만 만지작거리는 모습이었다.


“담배 없어요?”


별다른 목적은 없었다. 그저 그가 담배를 피우고 싶겠거니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휴식 시간을 방해받았다는 느낌이었던 건지 이덴을 잔뜩 경계하고 있었다. 다만 그 커다란 눈망울 속에 흔들리고 있는 갈색 눈동자는 오직 이덴이 건넨 담배에 고정되어 있었다.


“쳇.”


잠깐 고민하는가 싶더니, 사내는 낚아채듯 담배를 받아들고서는 그렇게 조물딱거리던 라이터로 순식간에 불을 붙이고는 맛깔나게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담배가 없던 거 맞네.」


별로 담배를 피울 생각이 없던 이덴이었지만, 곧 자신도 그의 옆에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누구세요?”


여전히 쪼그려 앉은 채 담배 연기를 뿜어 대던 사내는 고개를 치켜들며 이덴에게 물었다.


「남자치고는 얼굴선이 곱군. 독일인 같지는 않은데···」


이덴의 키가 상당히 큰 편이라 그렇게 앉아서 계속 쳐다보기에는 고개가 아플 만했는데도 남자는 대답을 기다리는 건지 여전히 담배를 물고 고개를 치켜든 채였다.


“여기 손님인데요.”

“앗뜨뜨···!”


불똥이 튄 건지 갑자기 호들갑스럽게 손을 털며 벌떡 일어선 사내의 키는 이덴의 코언저리 정도였다.


“괜찮아요?”

“뭐, 보시는 대로.”


얼굴과는 달리 조금 투박해 보이는 사내의 왼손이, 오른쪽 손등을 어루만졌고 그 사이로 붉게 부어올라 있는 흉터 자국이 보였다.


“이런,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이덴은 들고 있던 가방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곧 조그만 파우치가 모습을 드러냈고 이덴은 파우치 속에서 연고와 소독약, 그리고 작은 밴드 하나를 꺼냈다.


“헤에···? 그런 것도 들고 다녀요?”


덩치 큰 이덴이 가방에서 휴대용 상비약을 꺼내는 모습이 재밌었는지, 사내는 웃음을 감추지 않으며 이덴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일종의 사소한 직업병이라고나 할까요.”

“푸흐흐흣, 간호사예요?”

“손.”


이덴이 손을 내밀며 말하자 사내는 반사적으로 다친 손등을 이덴쪽으로 내밀었다. 흉터가 생긴 부위에 소독약이 닿자 꽤 따가운 듯, 조금 전까지 피식대며 웃어대던 사내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이덴은 그런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위에 연고를 덧바른 뒤, 떨어지지 않도록 손등에 붙인 밴드를 양손으로 꼭 눌러주었다.


“저기, 치료해 주는 건 고마운데요. 이제 손은 그만 좀 놓아주시죠?”


이덴은 불편해하는 사내의 표정과 마주 잡은 두 손을 번갈아 보다가 재빨리 손을 놓았다.


“아, 죄송해요. 이것도 직업병이라서.”

“여자들한테 쓰면 딱 좋아할 만한 작업 멘트네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닐지도.”


이덴은 방금 전에까지 사내의 손등을 잡아주었던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다가, 문득 사내의 가슴 춤에 달린 명찰로 시선을 옮겼다.


「마르셀 르쉐르. 프랑스 쪽인가···」


겉으로 보기에는 꽤 부드러운 이미지였기에, 이덴은 아마도 프랑스 쪽이 맞을 거로 생각했다.


“여하튼 담배 고마워요. 덕분에 한숨 돌렸네요. 전 바빠서 들어가 봐야 하니까 마저 피고 가세요.”


마르셀은 돌아선 채로 손을 흔들며 철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가 머물다 간 자리에는 담배 냄새와 희마하게 풍기는 쟈스민 샴푸 향기가 머물러 있었다. 이제 텅 비어버린 작은 공터에서 이덴은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좋든 싫든 불편한 식사자리에 참석해야만 될 시각이었다. 그렇지만 아까보다는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그건 아마도 분명, 산책을 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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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12. 몰려오는 거센 폭풍우. (4) 17.08.17 277 0 10쪽
57 #12. 몰려오는 거센 폭풍우. (3) 17.07.04 309 1 9쪽
56 #12. 몰려오는 거센 폭풍우. (2) 17.06.26 288 2 11쪽
55 #12. 몰려오는 거센 폭풍우. (1) 17.06.18 303 1 10쪽
54 #11. 잠시 소나기를 피하고 나면... (5) 17.06.16 295 1 11쪽
53 #11. 잠시 소나기를 피하고 나면... (4) 17.06.14 252 1 9쪽
52 #11. 잠시 소나기를 피하고 나면... (3) 17.06.12 255 1 11쪽
51 #11. 잠시 소나기를 피하고 나면... (2) 17.06.11 305 1 10쪽
50 #11. 잠시 소나기를 피하고 나면... (1) 17.06.09 284 1 10쪽
49 #10. 복수와 용서의 차이 (4) 17.06.08 302 1 11쪽
48 #10. 복수와 용서의 차이 (3) 17.06.07 281 1 10쪽
47 #10. 복수와 용서의 차이 (2) 17.06.06 285 1 12쪽
46 #10. 복수와 용서의 차이 17.06.05 322 1 9쪽
45 #9. 판도라의 상자(5) 17.06.04 354 2 10쪽
44 #9. 판도라의 상자(4) 17.06.03 363 1 9쪽
43 #9. 판도라의 상자(3) 17.06.02 296 1 9쪽
42 #9. 판도라의 상자(2) 17.06.01 352 1 10쪽
41 #9. 판도라의 상자(1) 17.05.31 363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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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8. 피하던, 혹은 부딪히던.(6) 17.05.29 264 2 9쪽
38 #8. 피하던, 혹은 부딪히던.(5) 17.05.28 239 1 9쪽
37 #8. 피하던, 혹은 부딪히던.(4) 17.05.27 265 1 10쪽
36 #8. 피하던, 혹은 부딪히던.(3) 17.05.26 259 1 10쪽
35 #8. 피하던, 혹은 부딪히던.(2) 17.05.25 287 1 11쪽
34 #8. 피하던, 혹은 부딪히던. 17.05.24 276 1 8쪽
33 #7-1. 7년 전 그날 (2) 17.05.23 265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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