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탄생

웹소설 > 작가연재 > 로맨스, BL

kimeraus
작품등록일 :
2016.09.18 22:39
최근연재일 :
2017.12.14 00:24
연재수 :
61 회
조회수 :
30,092
추천수 :
167
글자수 :
266,015

작성
16.09.29 11:40
조회
384
추천
4
글자
8쪽

#5. 23세의 마르셀, 그리고 23세의 이덴. (4)

잘부탁드립니다.




DUMMY

* * *


“담배 태우나···?”


밖으로 나오자마자 처음으로 꺼낸 카를로의 한마디는 그가 마르셀에게 건넨 담배와 같이 씁쓸한 느낌이었다.


“네. 피웁니다.”


담배를 입에 문 마르셀은 카를로가 불을 켠 라이터에 담배 끝을 갖다 대었다. 치익거리며 담배가 타들어 갔고 하얀 연기는 파란 하늘의 구름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곧 카를로 역시 불이 붙은 담배를 빨아들이며 허공을 응시했다.


“20년을 주방에서 살았어.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다른 일을 찾아보려 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더군.”


고개를 들어 텅 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카를로의 눈동자는 구름을 따라 흘렀다.


“바꿔 말하자면, 이 자리에 오기까지 20년이 걸렸다는 거야.”

“그렇군요···”


마르셀의 입에서 담배 연기가 안개처럼 흘러나왔다.


“넌 요리를 시작한 지 몇 년이나 됐지?”

“정식으로 주방일을 시작한 건 이제 5년 정도 됐습니다.”

“한참 배워야 할 게 많을 때지. 여기서는 3년 정도 됐나···?”

“네, 아마도 그쯤.”


카를로는 길게 담배를 빨아들였다. 어느새 담배는 반밖에 남지 않았다.


“오늘에서야 확실하게 깨달았어. 내가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

“예···?”


마르셀은 순간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카를로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곧 카를로도 마르셀을 바라보았고 큭- 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고백이라도 할 줄 알았나?”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질투야. 그리고 나보다 더 잘났음에 대한 열등감.”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동안은 애써 무시해왔는지 모르겠다. 홀에 나가기 전, 네가 만든 요리들을 맛봤을 때의 그 처참한 기분들을.”


마르셀은 카를로의 말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는 이 레스토랑의 수석 요리사이고 그 말인즉슨, 최소한 이 공간 안에서는 요리 솜씨가 제일 뛰어난 사람일 터. 아무리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다고는 해도 그가 그 자리에 있는 까닭은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재주를 지녔기 때문이 아닌가.


“내가 정말 공들이고 신경을 써야 나올까 말까 한 그 맛이, 그저 네가 실수로 만들어버린 요리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인정하기 힘들었던 거겠지.”


카를로에게서 더는 신경질적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허탈감이 그를 꽉 채우고 있는 듯했다.


“그건 그저 우연히···”

“아니, 그건 네 본연의 실력이겠지. 사장의 말대로 이제야 알겠어. 타고난 재능은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가 없다는 걸. 어쩌면 알고 있었는지도 몰라. 그저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모르는 척 하고 있었을 지도.”

“셰프님···”

“아까 일,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으마. 넌 조금 부드러워져야 할 필요가 있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곧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꺾어져 버릴 거야.”

“네, 명심할게요. 그리고 저도 드릴 말씀이 있어요.”

“해봐.”


카를로가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는 이상, 마르셀 역시 담아두었던 말을 풀어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만 앞으로 같이 일을 하면서 불편함이 없을 테니까.


“사실, 셰프님을 의심했었어요.”

“뭐라고···?”

“분명, 홀에 나가는 모든 요리는 마지막으로 셰프님 손을 한번 거치는 이유도 있었고 잠시 제가 자리를 비우기도 했었으니까요.”

“내가 그런 짓이나 할 놈으로 보였나 보군.”


어이가 없는지, 카를로는 진지하게 말하는 마르셀을 보며 슬쩍 웃어넘길 수밖에 없었다.


“꼭 그렇다기보다는, 셰프님의 속내를 모르니까요.”

“그런데 왜 결국에는 아니라고 생각했지?”

“맞을지 아닐지 확신은 못 했어요, 그 아줌마가 수세미를 언급하기 전까지는. 셰프님도 아시다시피 우리 주방 사람들은 수세미라는 단어 자체를 잊고 살았잖아요, 여기서.”

“그렇지. 나도 그게 뭔지 짐작도 못했으니까.”

“그래서 한번 도박을 해봤죠, 아줌마를 떠보기로. 만약 정말로 우리 주방에서 나온 거라면 진중하게 사과하면 되는 거고, 그게 아니면 본인이 창피해서 도망갈 테니까요.”

“그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었을 텐데?”

“그러니까 도박이죠. 다행히 배팅은 성공했잖아요.”

“하하, 이런 녀석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어. 3년간 곁에 두고서도 말이야.”


둘의 손에 들려있던 담배는 끝자락까지 다 타버려 꽁초가 되었다. 카를로는 밑으로 내던진 꽁초를 발로 비벼 끄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르셀의 눈동자가 그를 좇았다.


“아직은 경험이 많은 내가, 미숙한 너보다는 더 낫겠지. 하지만 네가 경험이 쌓이고 그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된다면, 난 미련 없이 이곳을 떠날 거다. 내가 있어야 할 또 다른 곳을 찾아서.”


기지개를 켜며 말하는 카를로의 목소리는 한층 편해져 있었다. 마치 모든 고민을 털어버린 듯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그때까지 잘 버텨. 나도 더는 너를 적대시하지 않을 테니까.”

“셰프님···”

“먼저 들어갈 테니까 늦지 않게 들어와. 뒷정리는 다른 직원들한테 시켜놓을 테니까.”


혼자 남겨진 마르셀은 카를로의 말대로 조금만 더 있다가 들어가기로 했다. 육중하게 온몸을 눌러오던 긴장이 풀어진 탓이었다. 가만히 앉아 주위를 둘러보던 마르셀의 눈에 이덴의 모습이 들어온 건 그때였다.


「뭐지, 저 사람은 또 왜 여기 있는 거야?」


싫다기보다는 의아했다. 그러나 곧 담배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더는 가시방석에 앉아있을 자신이 없던 이덴이 양해를 구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선 것도 담배가 생각나서였다. 이덴은 천천히 마르셀 쪽으로 걸어왔다.


“담배가 또 생각날 것 같아서요.”


이덴은 마르셀에게 담배를 건넸고 마르셀은 자연스럽게 그 담배를 받아 입에 물었다.


“아까도 그렇고 타이밍은 참 기가 막히게 잘 잡으시네요.”

“그런가요?”


마르셀의 옆에 같이 쪼그려 앉은 이덴은 먼저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마르셀에게 라이터를 전달했다. 곧 사이좋게 두 줄기의 담배 연기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까는 재밌었어요. 그런 구경을 하게 될 줄이야···”

“난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다고요.”

“보기와는 성격이 많이 다른가 보네요.”

“뭐가 어떻게 다른데요?”

“글쎄요. 겉보기에는 뭔가 내성적이고 되게 무를 것 같은 느낌인데, 아까는 한 마리의 싸움닭 같더군요.”

“하아, 싸움닭이라니.”


모르는 사람에게 졸지에 싸움닭 같다는 소리를 들으니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냥 그러려니 했을 뿐.


“이렇게 담배 피우는 것도 인연인데 저녁에 시간 돼요?”

“글쎄요, 마감하는 것 봐서요. 왜요?”

“술이 마시고 싶은데 친구가 없네요.”

“왕따에요?”

“뭐,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군요.”


이덴에게 친구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왠지 마르셀 역시 술이 마시고 싶었다. 별로 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같이 마실 사람이 없었기에 마시지 못하고 있었다는 편이 맞았다.


“까짓거 오늘 밤 달려보죠, 한번. 스트레스나 풀게.”

“그럼 레스토랑 끝날 때 즈음 올게요. 진탕 마시고 같이 풀죠, 스트레스.”


마르셀은 처음 본 사이인데도 그렇게 태연히 말을 걸고 술 약속까지 따내는 이덴이 신기했다.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체격이 커서 약간 부담이 됐을 뿐. 그의 말대로 진탕 취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래저래 피곤한 하루였으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가족의 탄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1 #14. 이해해야만 하는 것. (1) +1 17.12.14 529 0 10쪽
60 #13. 이해할 수 없는 것. (2) 17.12.12 262 0 11쪽
59 #13. 이해할 수 없는 것. (1) 17.08.18 294 1 9쪽
58 #12. 몰려오는 거센 폭풍우. (4) 17.08.17 277 0 10쪽
57 #12. 몰려오는 거센 폭풍우. (3) 17.07.04 309 1 9쪽
56 #12. 몰려오는 거센 폭풍우. (2) 17.06.26 288 2 11쪽
55 #12. 몰려오는 거센 폭풍우. (1) 17.06.18 303 1 10쪽
54 #11. 잠시 소나기를 피하고 나면... (5) 17.06.16 295 1 11쪽
53 #11. 잠시 소나기를 피하고 나면... (4) 17.06.14 252 1 9쪽
52 #11. 잠시 소나기를 피하고 나면... (3) 17.06.12 254 1 11쪽
51 #11. 잠시 소나기를 피하고 나면... (2) 17.06.11 305 1 10쪽
50 #11. 잠시 소나기를 피하고 나면... (1) 17.06.09 284 1 10쪽
49 #10. 복수와 용서의 차이 (4) 17.06.08 302 1 11쪽
48 #10. 복수와 용서의 차이 (3) 17.06.07 281 1 10쪽
47 #10. 복수와 용서의 차이 (2) 17.06.06 285 1 12쪽
46 #10. 복수와 용서의 차이 17.06.05 322 1 9쪽
45 #9. 판도라의 상자(5) 17.06.04 354 2 10쪽
44 #9. 판도라의 상자(4) 17.06.03 363 1 9쪽
43 #9. 판도라의 상자(3) 17.06.02 296 1 9쪽
42 #9. 판도라의 상자(2) 17.06.01 352 1 10쪽
41 #9. 판도라의 상자(1) 17.05.31 363 1 10쪽
40 #8. 피하던, 혹은 부딪히던.(7) 17.05.30 259 2 9쪽
39 #8. 피하던, 혹은 부딪히던.(6) 17.05.29 264 2 9쪽
38 #8. 피하던, 혹은 부딪히던.(5) 17.05.28 239 1 9쪽
37 #8. 피하던, 혹은 부딪히던.(4) 17.05.27 265 1 10쪽
36 #8. 피하던, 혹은 부딪히던.(3) 17.05.26 259 1 10쪽
35 #8. 피하던, 혹은 부딪히던.(2) 17.05.25 287 1 11쪽
34 #8. 피하던, 혹은 부딪히던. 17.05.24 276 1 8쪽
33 #7-1. 7년 전 그날 (2) 17.05.23 265 1 7쪽
32 #7-1. 7년 전 그날 (1) 17.05.22 280 1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