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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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eraus
작품등록일 :
2016.09.18 22:39
최근연재일 :
2017.12.14 00:24
연재수 :
6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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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91
추천수 :
167
글자수 :
266,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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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5.16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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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7. 불편한 진실(1)

잘부탁드립니다.




DUMMY

* * *



끝없이 밀려들던 환자들의 발길이 점심때가 되어서야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제야 한숨을 돌릴 시간이 생긴 이덴은 점심으로 뭘 먹을지 고민하다가 문득 책상 한편에 놓아둔 입양신청서가 떠올랐다. 그리고 어제, 롬멜과의 통화내용도 생각났다.


「언제까지 마냥 피할 수만은 없는데···」


롬멜의 그저 만나보라는 말이 단순한 만남으로 끝나길 바란다는 뜻이 아니란 건 이덴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잘난 국회의원의 딸을 만난다고 해도 이덴이 할 말은 단 한가지였다. 그리고 그 역시 롬멜도 잘 알고 있을 터. 그런데도 굳이 애원하듯 만남을 종용하는 건 분명 무언가 다른 속셈이 있을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마르셀에게 툭 터놓고 얘기할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덴은 애꿏은 책상만 두들기며 상황을 풀어나갈 방법을 생각해봤지만, 딱히 뚜렷한 해결책은 보이질 않았다. 마르셀과 롬멜, 그리고 누군지 모르는 그녀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최선의 방책이.


「그런 방법이 없다면 가장 쓸데없는 고민을 털어버리는 게 우선이겠지.」


이덴은 수화기를 들고 익숙한 전화번호를 눌렀다. 몇번의 수신음이 들리고 롬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롬멜입니다.」

“접니다. 아버지가 말한 그 여자, 만나보도록 하죠.”

「정말이냐? 바로 그쪽에 연락해놓으마.」

“최대한 빨리요. 오늘이면 좋겠지만.”

「알았다. 기다려봐. 곧바로 연락해볼테니까.」

“그리고, 제가 그쪽에게 할말은 단 하나니까 아무런 기대도 마세요.”


이덴은 대답을 듣기도 전에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녀를 눈앞에서 보기 좋게 퇴짜놓으면, 어떤일들이 벌어질 지 순식간에 눈앞에 펼쳐졌지만, 어떤 불이익이 오더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롬멜의 코를 보기좋게 뭉개줄 수만 있다면. 롬멜에게서 다시 연락이 온건 불과 5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조금전의 그 당당했던 이덴의 기세는 보기 좋게 꺽여버리고 말았다. 그녀가 적절한 시각에 막 식사를 하러 자리를 비우려했던 것과 하필이면 식사를 하러 갈 곳이 마르셀의 레스토랑이었기 때문에. 지금이라면 어차피 마르셀은 주방에서 눈코뜰새 없이 바쁠테지만, 어쩐지 마르셀의 일터에서 그를 속이는 짓을 하는 건 영 내키지가 않았다. 더욱이 레스토랑의 직원 대부분과 아는 사이니, 자신이 왔다는 건 분명 마르셀의 귀에도 들어갈 게 뻔했다. 하나 방법이 없었다. 이미 롬멜이 약속을 잡아버렸고 어찌됐던 고민거리를 털어내는 편이 이덴 자신에게도 더 우선이었으니까. 일단은 그녀를 만난 다음에 장소를 옮기는 게 목표였다.


「마르셀··· 말하지 못해서 미안.」


미안한 마음을 속으로 삼키며, 이덴은 옷걸이에 걸려있는 코트를 손에 들고 진료실을 나섰다. 최대한 빨리 담판을 짓고 오면 그나마 마르셀에 대한 미안함이 조금은 덜 할거라는 생각에 걸음을 더 서둘렀다.


“어, 이덴 씨. 식사하러 오신 건가요?”


입구의 초인종소리에 고개를 돌린 지배인과 시선을 마주한 이덴은 애써 태연한 척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 막바지 점심시간이었지만 레스토랑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아, 예. 갑작스럽게 일때문에 약속이 잡혀서요.”

“이 시간에 뵙는 건 오랜만이네요. 일행분 성함이···?”

“로엔 헤이리입니다. 아마 도착한 지 얼마 안됐을거에요.”

“잠시만요.”


예약장부를 확인하던 지배인의 손가락이 종이의 끝자락 즈음에서 멈췄다.


“아, 도착하신지 얼마 안됐네요.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뒤를 따라 걷기 시작한 이덴은 곧 안내 받은 창가쪽 자리 앞에서 멈춰섰다. 턱을 괸 채, 창밖을 응시하던 로엔은 인기척을 느끼곤 긴 생머리를 쓸어넘기며 이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금방 오셨네요.”

“첨 뵙겠습니다. 이덴 헤르센 입니다.”

“로엔이에요. 우선 자리에 앉으시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요.”


멀뚱히 서있는 이덴의 모습이 보기 불편했는지 로엔은 애써 미소지으며 반대편 의자를 가리켰다. 이덴은 최대한 빨리 자리를 옮기고 싶었지만,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 할 것 같아 내키지 않는 표정을 애써 감추며 자리에 앉았다.


“솔직히 좀 놀랐네요. 먼저 연락을 주시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로엔의 입가에는 수줍은 미소가 맴돌았다.


“한번은 만나 뵙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혼자서 엿보는 걸로도 괜찮겠다 싶었거든요.”


이번에는 조금은 장난기어린 미소. 이덴은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제 손바닥으로도 가려질 만큼 작은 얼굴과 높이 솟은 콧대, 그리고 깊은 두 눈은 이목구비를 한층 입체적으로 만들었고 잿빛과 갈색이 섞인 머리카락은 그녀의 흰 얼굴을 더욱 빛나게 했다. 길에서 마주친다면 누구라도 돌아보게 만들만한 매력이 있었다.


“전부터 절 만나고 싶어 하셨다고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정도의 외모와 국회의원 딸이라는 사회적 지위를 가진 그녀라면 제 수준에 맞는 남자들에게 둘러쌓여 지내왔을게 뻔했다. 그런 그녀가 고작 의사라는 명함 빼면 볼 것도 없는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건 분명히 의심의 여지가 있었다.


“제가 돌려말하는 건 잘 못하는 성격이라 바로 말할게요. 이덴 씨에게 관심이 있어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덴 씨를 진지하게 알고 싶다고 할까요.”

“네···?”


어느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아무렇지 않게 말을 내뱉는 로엔의 표정에 이덴은 순간 할말을 잊었다.


「올 것이 왔군.」


이덴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자신의 기억에 그녀를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라도 마주쳤던 일은 없었다. 그녀의 이름조차 몰랐다. 그런 그녀가 다짜고짜 저돌적으로 대쉬를 해오는 건 어떤식으로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이덴 씨는 모르겠지만, 저 꽤 오래전부터 이덴 씨를 지켜보고 있었거든요.”

“오래전이라면···?”

“이덴 씨가 뮌헨대학병원으로 왔을때부터라고 해둘게요.”


로엔의 말대로라면 얼추 7년이라는 시간을 지켜봐왔을 터였다. 어쩐지 그말에 등줄기에서부터 소름이 끼쳐왔다.


“그런 표정은 하지 마세요. 그렇다고 해서 스토커는 아니니까요, 후훗.”


그녀의 말이 사실이던 아니던간에 더는 원치않는 관심을 거절해야 하는 건 이덴의 몫이고 역할이었다.


“초면에 이런 말씀 드리는 건 예의가 아니겠지만, 그쯤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쯤···이라뇨? 전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걸요.”


태연하게 이죽거리는 로엔의 모습에 이덴은 만만치않은 상대임을 직감했다.


“로엔 씨 같은 분이 저에게 관심을 가져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저보다는 지금 로엔 씨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더 당신과 어울릴거라고 생각합니다.”


로엔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마냥 태연해보이던 그녀의 얼굴에서 조금씩 불쾌감이 드리우고 있었다.


“그 오만방자하고 가식적인 사람들이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네요. 혹시 지금 이덴 씨의 곁에 있는 그 사람때문인가요?”

“당신···”


갑작스럽게 치고들어오는 로엔의 말 한마디에 이덴은 당황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에 말씀드렸죠. 저 꽤 오랜동안 이덴 씨를 지켜봐왔다고.”

“무슨말씀을 하시는 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렇다면 콕 찝어서 이름이라도 말씀드려야 하는 건가요? 마르셀 르쉐르라고.”

“!!!!”


당황은 어느새 불쾌함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누군가와 크게 친분관계를 맺지 않으려 노력했던 이덴이었기에 그녀의 정곡을 찌르는 한 단어는 이덴의 머릿속을 새하얗게 만들어버렸다.


“아마도 지금쯤 그 사람은 주방에서 열심히 요리를 만들고 있겠죠?”

“뒷조사라도 하셨습니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죠.”


이덴은 그녀가 왜 이제서야 자신을 드러내며 당황케 만드는 말들을 쏟아붙는지 저의를 알 수가 없었다.


“누군가 있다고 짐작은 했지만 설마 남자였을줄이야···”

“그래서, 약점을 잡고 협박이라도 하실 셈입니까?”

“협박이라니요, 섭섭하네요. 이덴 씨도 알고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전 아빠를 잘 만나서 부족할건 없어요. 단 하나만 빼고.”

“제게 원하시는게 뭡니까?”

“이덴 씨의 관심. 그거면 돼요.”


로엔은 노려보는 이덴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로운 얼굴로 이덴의 다음 반응을 상상이라도 하는 듯이 들떠보였다.


“이미 제 곁에 있는 사람이 남자라는 걸 안 순간부터 그런 바람은 포기해야 할걸 짐작하는 편이 맞는 것 아닙니까.”

“글쎄요. 이런 경우는 저도 처음이라 승부욕이 생겨서 말이죠.”

“사람 감정이 장난입니까? 이런 일로 시간낭비 하지 마시죠.”

“만약···”


로엔의 기다란 손가락이 물기가 맺힌 물잔의 주둥이를 어루만졌다. 여전히 당당한 표정으로.


“제가 여기서 컴플레인을 걸고 마르셀 씨를 여기로 불러냈을 때, 저와 함께 앉아서 점심을 하고 있는 이덴 씨를 본다면 그의 표정은 어떨까요?”

“신경도 쓰지 않을 겁니다. 상대가 여자니까요.”

“정말 그럴까요? 한번 해볼까요? 제 생각엔 입양을 준비하느라 신경쓸게 많은 그라면 지금 이 장면이 결코 편하진 않을 것 같은데.”

“당신!!!”


테이블을 거세게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선 이덴의 모습에 주변의 모든 시선이 쏠렸다. 불끈 거리는 이덴의 주먹은 쉬이 사그라들줄을 모른 채 테이블위에 얹혀있었고 이덴은 잠시 숨을 고른 채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있는 겁니까? 어떻게 당신이 입양에 대한 것까지 알고있는 거죠?”

“말씀드렸잖아요. 아빠를 잘 뒀다고. 합법적으로 알아낸 정보니까 너무 불쾌하게 생각하진 마세요. 처음부터 단칼에 저를 쳐내려고만 안했어도 이렇게까지는 안했을거에요.”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왜 저 여자에게서 이런 말들을 들어야 하는지 도통 납득이 되질 않았다. 그것도 처음 마주한 여자에게서.


“뭐,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도록 할게요. 이러려고 만나고 싶어했던 건 아니니까요.”

“다시 뵙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렇게는 안될거에요. 이제 시작인걸요.”


로엔은 분노를 삭이지 못한 이덴을 앞에 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 점심 생각이 별로 없어서 먼저 일어나도록 할게요. 허기가 진다면 마르셀씨 불러서 같이 식사하셔도 괜찮겠네요.”


로엔이 또각거리는 굽소리를 내며 이덴의 옆을 지나치다가 제자리에 멈춰섰다. 그리고는 이덴에게만 들릴정도의 목소리로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잘 둔건 저 뿐만은 아닐거에요.”


그녀의 구두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주변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이미 점심풍경으로 돌아와있었고 저마다 맛있는 음식을 입에 넣느라 바쁜 사람들틈에서 오로지 이덴만은 시선둘 곳을 잃어버린 채 멍하게 자리에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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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12. 몰려오는 거센 폭풍우. (3) 17.07.04 309 1 9쪽
56 #12. 몰려오는 거센 폭풍우. (2) 17.06.26 288 2 11쪽
55 #12. 몰려오는 거센 폭풍우. (1) 17.06.18 303 1 10쪽
54 #11. 잠시 소나기를 피하고 나면... (5) 17.06.16 295 1 11쪽
53 #11. 잠시 소나기를 피하고 나면... (4) 17.06.14 252 1 9쪽
52 #11. 잠시 소나기를 피하고 나면... (3) 17.06.12 254 1 11쪽
51 #11. 잠시 소나기를 피하고 나면... (2) 17.06.11 305 1 10쪽
50 #11. 잠시 소나기를 피하고 나면... (1) 17.06.09 284 1 10쪽
49 #10. 복수와 용서의 차이 (4) 17.06.08 302 1 11쪽
48 #10. 복수와 용서의 차이 (3) 17.06.07 281 1 10쪽
47 #10. 복수와 용서의 차이 (2) 17.06.06 285 1 12쪽
46 #10. 복수와 용서의 차이 17.06.05 322 1 9쪽
45 #9. 판도라의 상자(5) 17.06.04 354 2 10쪽
44 #9. 판도라의 상자(4) 17.06.03 363 1 9쪽
43 #9. 판도라의 상자(3) 17.06.02 296 1 9쪽
42 #9. 판도라의 상자(2) 17.06.01 352 1 10쪽
41 #9. 판도라의 상자(1) 17.05.31 363 1 10쪽
40 #8. 피하던, 혹은 부딪히던.(7) 17.05.30 259 2 9쪽
39 #8. 피하던, 혹은 부딪히던.(6) 17.05.29 264 2 9쪽
38 #8. 피하던, 혹은 부딪히던.(5) 17.05.28 239 1 9쪽
37 #8. 피하던, 혹은 부딪히던.(4) 17.05.27 265 1 10쪽
36 #8. 피하던, 혹은 부딪히던.(3) 17.05.26 259 1 10쪽
35 #8. 피하던, 혹은 부딪히던.(2) 17.05.25 287 1 11쪽
34 #8. 피하던, 혹은 부딪히던. 17.05.24 276 1 8쪽
33 #7-1. 7년 전 그날 (2) 17.05.23 265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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