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과 먼지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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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커피
작품등록일 :
2016.09.24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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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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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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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2-88. 바르무톤 아가씨(3)

DUMMY

기세 좋게 말한 것과 별개로 가는 길은 꽤나 괴로웠다, 낮부터 바쁘게 돌아다녔는데, 저녁에도 움직이니 말 그대로 죽을 지경이었다.

허나, 누굴 탓하겠는가? 자신이 가겠다고 한 것인데.


‘왜 하필 아버지는 오늘 연회를 벌이셔서.......’


뭐,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작년 이만 때부터 지금까지 바르무톤 가문은 말 그대로 고난은 연속이었다.


은화장군이 죽었다는 소문이 퍼지며, 녹색 땅에서 들어오던 노예는 씨가 말라버렸고, 은화장군의 뒤를 이은 시리온에게는 말로 다 표현 못 할 괄시와 착취를 당했다.


‘참 즐거웠지.’


오랜 세월 쌓아 올린 지방 귀족의 힘은 그 젊은 대귀족의 장난질 몇 번으로 그 권위가 바닥까지 떨어졌다.


그렇게 간신히 버티던 와중 드디어 다시 숨통이 트였는데, 어찌 연회를 안 가질 수 있을까?


노예무역 거래권을 따내 큰 이익을 얻었고, 군용 물자 주문도 대거 들어오며, 가뭄의 단비처럼 기울어가던 가세는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연회를 열어야겠지.


심지어 아버지는 은화장군이 부활했다는 소문을 듣곤 더욱 기뻐하며 외쳤다.


‘이제 됐다! 이제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온 거야. 그분이라면 우리가 당했던 억울한 일을 이해해주고 거기에 걸맞은 보상을 해줄 거야! 됐어, 됐다고!’


당시 일리시아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 아버지의 판단력에 다소 문제가 생긴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도대체 보상이라니. 무슨 보상 말인가? 아니, 그전에 비너스의 축복을 받아 살아났다는 게 가당키나 한 생각인지 의문이 들었다.


신이 그를 살려줬다니..... 뭐, 한편으로 사실인가 싶기도 했다. 그렇지 않고선 어찌 그런 뻔뻔한 소릴 지껄이겠는가?


어쨌건 현재 은화장군의 소문은 크고 작게 공화국에 퍼져 수많은 이야기를 낳고 있었다. 페로스가 사기꾼이라거나, 공화국을 황금기로 이끌 진정한 영웅이라던가. 뭐, 그런 거. 자신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지만.


그때, 섹스투스가 일리시아에게 말을 걸어 공상에서 꺼내주었다.


“아가씨. 이제부터 상류층 거주지입니다. 언덕길인데 괜찮으실지? 허락해 주신다면 제가 아버님 댁으로 가. 가마를 빌려 오겠습니다. 그건 아무도 수군거리지 않을 겁니다.”


상황을 이해한 진실 된 배려. 일리시아는 고마움에 미소가 절로 피어났지만, 고개를 저었다.


“아뇨... 괜찮아요. 전 정말 괜찮아요. 마음만 받을게요. 진심으로요.”


섹스투스는 그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진심으로 자신을 위하기에 그런 것인데, 참으로 고마웠다. 최대한 정식 경호원으로 두고 싶을 만큼 말이다.


“이제 올라가죠. 참 올라가기 전에.....”


일리시아는 그렇게 말꼬리를 흐리며 주머니에서 은화를 하나씩 꺼내 상류층 거주지 입구 경비를 서던 용병들에게 건네주었다. 그들은 임산부의 갑작스런 친절에 어리둥절하였다.


“이 늦은 시간까지 고생해주셔서 고맙다는 제 작은 인사에요. 이곳에 제 가족들도 살 거든요. 부디 힘드시더라도 잘 부탁드려요.”


무뚝뚝한 용병들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예상치 못한 친절에 기쁘면서도 당황한 거였다. 하긴, 이곳 주민들에게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을 테니, 당황스러울 만도 했다.


일리시아는 그들에게 미소로 화답하곤 다시 움직였다. 일리시아가 섹스투스에게 말했다.


“이상한가요?”


“아가씨 일에 왈가왈부할 생각 없습니다. 전 경호원일 뿐이니까요.”


“어머, 제가 혹시 뭐 섭섭하게 했나요?”


“아, 아뇨... 그저.”


“농담이에요, 하지만 여러분 덕분에 제가 늘 안심하고 당당한 거니까.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허락만 해준다면 정말 고용하고 싶은 심정이니까요.”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아가씨.”


“진심인데요? 원한다면 집도 마련해서 가족분들도 데려와도 돼요. 정말로.”


일리시아의 후한 칭찬에 경호원들은 뭐라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걸지도. 이들은 엄연히 군인. 이런 종류의 대화를 해본 적이 없을 터였다.


“뭐,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고. 제가 용병분들께 친절을 베푼 건 별거 아니에요. 저도 저렇게 허드렛일을 해봤기에 살짝 친절을 베푼 것뿐이에요.”


섹스투스를 비롯한 경호원들의 눈에는 희미하게 연민의 빛이 빛났다. 솔직히 동정받는 게 좋은 기분은 아니었으나, 이번에는 그냥 두었다. 때때로 동정받는 아가씨는 좋은 방패막이가 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저들은 따로 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더욱이 용병은 반은 도적이나 다름없습니다. 딱히, 친절을 베푼들 뭐가 돌아올지 알 수 없습니다.”


“뭐, 그렇죠. 그래서 저도 아깝지만 않을 정도로만 친절을 베푼 거예요. 그보다 시끄럽네요. 낮에 말했던 것처럼 밤새도록 공사를 할 모양인가 보네요.”


일리시아가 횃불을 중간중간 걸어놓고 일을 하는 공사 잡부들을 보며 말했다. 그들은 희미한 빛에 의지한 채 자제를 옮기고, 망치질, 톱질 등을 하였다.


적잖은 수가 아니었다. 하긴 열 채도 넘는 집을 공사하려면 당연하겠지. 이 정도 기세라면 요구했던 기간 내 공사를 끝마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만 된다면 제때 집을 내놔 원래 주인에게 비싸게 되팔 수 있으리라.


은화장군 사후, 경기가 어려워지고, 흉흉한 소문이 나돌자 약한 심장을 가진 부자들은 재산을 서둘러 처분하고 이 붉은 방패를 떠났다.


대부분 저택과 같이 큰 재산을 총독관에 매물을 올린 채 떠났는데, 일리시아는 총독 서기관 포투카의 도움을 받아 이를 싸게 구매할 수 있었다,


일리시아는 저택을 사들이자마자 재건축을 하였다. 언젠가 원래 주인들이 돌아올 경우, 최대한 비싼 값에 되팔 생각으로 말이다.


실제로 이미 몇몇 이들이 돌아오는 중이었다. 은화 장군이 다시 부활했고, 경기가 살아나고 있으니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


그들 대부분 사회적 위신을 생각해 자신이 살던 원래 저택을 다시 살 터였다. 얼마간의 손해를 보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일리시아는 또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일리시아는 그것을 기반 삼아 허름한 하류층 주택을 대거 구매해 그곳을 허물고 인술라를 다시 한번 세워볼까 하였다.


‘회수 기간도 빠르고, 수요도 늘 있으니...’


그때, 어둠 속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그는 앞으로 굽은 흉악한 나이프를 슬며시 보이며, 일리시아에게 장난스럽게 손 인사를 했다. 그의 뒤로는 노가다꾼으로 위장한 여러주먹들이 보였다.


일리시아는 그들을 애써 모른 척하며 앞으로 갔다. 아무렇지 않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왜냐면 자신은 저들과 관계가 없으니까 말이다.


‘공식적으론.’



아버지의 저택에 도착했을 때 연회는 한창 진행 중이었다. 떠들썩한 분위기와 집 앞에의 여러 가마가 그 증거. 척 봐도 상당한 손님이 온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탓일까? 아버지의 집이 어째 더 풍족해진 것 같았다. 못 보던 노예도 늘었다. 허나, 착각이길 빌었다. 자신에게 배당되는 배당금을 고려한다면 결코 이럴 수가 없을 테니 말이다.


‘이제 와서 상관없나?’


깔끔한 튜닉을 입은 노예가 서둘러 나와 일리시아를 안내했다. 저택 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라, 마늘 냄새가 풍기는 검투사가 일리시아의 경호원들을 제지했다.


“죄송합니다만. 주인님께서 손님들 외에 노예나 경호원은 밖에 대기시켜놓으라 했습니다. 번잡하다고.”


덩치가 산만 한 검투사가 딱딱하게 말했다. 아버지의 경호를 서던 이들로, 현재는 저택 경비를 서고 있었다.


‘괜찮으려나.... 하긴, 내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지.’


경호원들이 일리시아를 봤다. 일리시아의 명을 기다린 것이다.


“.... 딸은 아버지의 말에 따라야죠. 죄송한데 밖에서 좀 기다려주세요.”


“저희는 걱정 마십시오. 부디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섹스투스를 비롯한 경호원 모두가 일제히 자세를 취했다. 참으로 고마웠다.


일리시아는 그렇게 경호원들과 떨어져 아버지의 저택 안으로 들어왔다. 예상대로 연회는 한창 진행 중이었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사티로스와 님프로 변장한 악사들이었다. 그들은 화려한 분장을 한 채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다음은 재주넘기와 춤을 선보이는 무용수로 그들은 인체의 극한에 다다른 움직임으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다.


마지막으로는 나체의 여성들. 그녀들은 신들의 얼굴을 본뜬 가면을 쓴 채 동상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과거 소박했던 붉은 방패의 연회와 사뭇 달랐다.


‘모두 그분의 흔적이군. 거기다 바투도 한 몫 했고.....’


들어서자마자 가식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일리시아의 어머니였다. 아..... 정정 아버지 그리니스의 아내 빌리아였다.


‘결코, 내 어머니가 아니지.’


빌리아는 꽤나 비싸 보이는 진주목걸이를 한 채 자신을 안았다. 몸에서 풍기는 술 냄새를 보아 적잖게 취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랑하는 우리 딸.”


그녀가 자신을 안은 채 그리 말했다. 순간 등골을 타고 소름이 돋았다. 사랑하는 딸이라니.... 과거, 심부름 하나 잘못 했다고 촛대로 자신을 후려친 여자가 말이다.


뒤이어 일리시아의 배다른 언니들이 와 자신의 어머니를 챙겼다.


“엄마. 정말.... 좀 적당히 마시라니까.”


그녀들은 마치 문둥병 환자에게서 어머니를 떼듯 서둘러 땠다. 아마, 보는 눈만 없었으면 돌도 던졌을지 몰랐을 터였다.


어머니를 떼어내던 중 일리시아는 장녀인 미안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는 최대한 혐오를 줄이려 하였으나, 어쩔 수 없이 눈 사이가 구겨졌다.


“죄송하지만, 제가 먼저 끌어안은 게 아니에요.”


“누가 뭐래?”


차녀 막밀라와 삼녀 메리아와는 대화조차 성립되지 않았다. 그래도 가족들이 다 정이 없는 건 아닌지, 장남 그리오스가 와 일리시아를 반겨주었다.


그는 많은 손님을 상대하느라 지쳐 보였지만, 동시에도 즐거워 보이기도 했다. 근래 아버지를 도와 큰 거래를 연달아 성공시키고 있으니,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미안. 근래 좋은 일이 많아서 어머니가 좀 주체를 못 하셔.


“그거 다행이네요.”


일리시아가 짤막이 대답했다. 덕분에 공기는 순식간에 어색해졌다.


“요즘 어려운 건 없니?”


“전혀요. 배가 점점 불러지는 것 정도?”


“아... 그렇지. 여자는 힘들겠다. 많이 힘들었으면 좀 쉬었어도 됐을 텐데. 아버지가 이해해 줬을 거야.”


일리시아는 웃고 싶었다. 저번 연회 때 자기 자릴 뺏은 것으로도 모자랐단 말인가? 도둑질해놓고 어찌 저리 뻔뻔한 건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약간, 미안한 척하면 자기 죄를 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거, 참 오만하군.’


일리시아가 점점 부담스러운 건지 그리오스가 서둘러 가족들을 소개해 주러 갔다.


장녀 미안나의 남편 안피어는 포도주 조합 간부들과 대화 중이었는데, 앞으로 찾아올 호경기에 매우 흥분한 상태였다.


“소문을 믿으세요, 그분이 비너스의 축복을 받아 되살아 난 게 확실합니다. 그게 아니고선 어찌 죽은 자가 되살아나겠습니까?”


“맞소. 내 소식통에 의하면 비너스 여신께서 그분의 입술과 이마에 입맞춤을 해줬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그분은 자비롭고 공정하신 분이니까요, 그러니 필히 시리온... 경과 맺은 그 계약 조건을 좀 완화해 주실 겁니다.”


“그렇소! 그렇소! 맞고말고.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의견을 피력해야 하오!”


“아쉬울 따름입니다. 렘두스 총독께서 왔으면 직접 들을 수 있었을 텐데. 근래, 몸이 안 좋아 외부와 접촉하길 꺼리시니.....”


뭔가 아주 죽이 맞아 보였다. 일리시아는 순수하게 궁금했다. 은화장군이 왜 시리온보다 자신들의 편을 들어줄 거라 생각하는지 말이다.


어쩌면 은화장군이란 분이 아주 좋은 분일지도. 어쨌건 저들은 그를 직접 만나봤지만, 자신은 아니었으니. 과연 어떤 남자일지 궁금해졌다.


“형님. 사랑하는 여동생이 왔습니다.”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라 안피어를 비롯한 포도주 조합 간부들까지 모두 일리시아를 봤다.


당혹, 업신, 경멸, 욕정 등등 수많은 눈빛이 보였다. 아무리 때를 빼고 광을 냈어도 사생아는 사생아라는 것일까? 폐쇄적인 지방이라 그런지 그런 차별이 더 만연한 거 같았다.


‘내가 다른 도시를 가 봤어야지.’


어쨌건 안피어와 그 대화 상대들은 겉으로나마 예의를 차려 일리시아에게 인사를 하였다. 허나, 마음 속 깊이 있는 검은 감정은 차마 숨길 수가 없었다. 어째 임신을 하니 감이 더 예민해진 것 같았기도 했다.


피곤하고 상투적인 대화 끝에 안피어는 다시 포도주 조합과의 대화로 돌아갔다. 일리시아로서도 다행이었다.


이후로, 그리오스는 무역상들과 창고업자들과 사업 이야기를 주고받는 하르게우스에게 안내해 줬다. 그들은 노예무역으로 한몫 잡은 무리였는데, 다음번 거래로 또 한 차례의 수확을 기대하는 거 같았다.


그들과의 인사마저 끝나자 그리오스와 일리시아는 단둘이 어색하게 서 있었다. 과거에는 신경도 안 쓰다가 왜 이러는지.


일리시아는 이제부터 피곤하다는 핑계로 떨어지려고 했는데, 때마침 구원자가 등장했다. 바로, 미들리우스 가문의 로모스였다.


현재 병으로 앓아누운 아버지와 전쟁터에서 죽은 형을 대신에 미들리우스 가문을 이끄는 젊은 수장 말이다.


로모스는 그리오스와 비슷한 나잇대로, 정중하고도, 수줍게 인사하였다. 허나 촌스러워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선량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반갑습니다. 그리오스 경.”


“저 역시. 로모스 경.”


“아버지가 못 온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형님의 죽음 이후로 계속해서 몸이 안 좋아지더니, 근래에는 외출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됐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아, 때마침 잘 됐군요. 제 여동생..... 일리시아 입니다.”


로모스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 속내를 알 수는 없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느낄 수 없었다.


“이리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아가씨.”


정중한 인사. 일리시아도 반갑게 인사했다.


“저 역시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미들리우스 경. 가문의 명성은 자자히 들었습니다.”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미들리우스 가문은 아버지와 다르게 꽤나 명망이 높았다. 선량하고, 명예로운.... 요즘 같은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가문이었다.


그리오스는 이때다 싶어 일리시아를 떨쳐버리려 했다.


“음... 잠시 저쪽에 인사드릴 사람이 있는데, 두 사람이 이야기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잠시면 됩니다.”


로모스는 기꺼이 그리 하겠다 했고, 일리시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리오스가 떠난 후. 일리시아 일단 상투적인 인사로 대화의 물꼬를 틔웠다.


“아버님께서 병이 나셨다는 소문 들었습니다. 진심으로 유감입니다.”


“고맙습니다. 작년부터 고난의 연속이었죠. 형님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쇠약해지시고.... 그래서 기대하지도 않던 가문의 수장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역시 제자리가 아닌지 영 쉽지가 않더군요.”


일리시아는 당황스러웠다. 강한 척하는 남자들만 봐서 이런 솔직한 태도는 오히려 신선하기까지 했다.


그는 겸허하다 할 정도로, 자신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그렇다고 비굴해 보이진 않았는데, 오히려 알 수 없는 호감과 믿음이 생길 지경이었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겠지요.”


“아, 그럼 다행이죠. 그보다 정말 이리 만나서 영광입니다. 아가씨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늘 만나고 싶었는데, 이제야 보게 되는군요.”


일리시아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자신의 명성이라... 총독의 애인, 뒷골목의 후원자, 고리대금업자, 투기꾼 뭐하나 좋은 게 없었다. 허나, 젊은 가주의 입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 나왔다.


“저보다도 어린 나이임에도 여러 사업에서 성공하시고, 돈을 빌려줘 어려운 시민을 돕는 분이라고요? 더욱이 오갈 곳 없는 고아들에게 일자리도 알선해 주신다니... 제가 다 창피해질 지경입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일부로 노린 아부일까? 그렇다면 제대로 먹힌 것이리라. 의도 여부와 별개로 일리시아는 그 아부과 꽤 마음에 들었다.


“꽤 고마운 말씀이네요.”


“진심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쩔 수 없이 제가 가문을 맡고 있지만, 점점 가세가 기울고 있네요. 제대로 된 거래도 못 따고요.”


일리시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버지의 말대로라면 노예무역권을 나눴을 텐데 말이다. 거기에 관해 묻자 미들리우스의 젊은 가주는 지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아마 제가 모자란 것이겠죠.”


자세히 물어보니 미들리우스 가문은 노예무역권의 한 조각은커녕 부스러기만을 먹고 있다 하였다.


당연히 수익은 줄어들 테고, 그 외에 마땅한 사업이 없는 터라, 현재 계속 적자를 보고 있는 상태라 하였다.


“저희 가문은 아가씨 가문과 다르게 녹색 땅의 무역에만 종사해온 터라, 좀 어렵습니다.... 오늘 처음 보는 아가씨께 이런 이야길 하다니 좀 창피하군요.”


일리시아가 뭔가 말하려던 찰나, 누군가 자신을 불렀다. 오라버니인 그리오스였다. 그는 아버지가 자길 찾는다며 서둘러 따라오라 하였다.


“지금요?”


“그래, 지금. 어서. 아버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또 무슨 일일까? 절로 불안해졌다.


“전 신경 쓰지 마십시오. 어서 가보세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저야말로 반가웠어요. 미들리우스 경. 다음에 또 뵙고 싶네요.”


“저도 그렇습니다. 아가씨. 다음번에 만난다면 그냥 로모스라고 불러 주십시오.”


그렇게 일리시아는 미들리우스의 젊은 가주와 헤어졌다. 머릿속에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졌다.


작가의말

‘바르무톤 아가씨’ 편은 여기까지 입니다. 


이야기 진행이 느린 것이 죄송해 한 편 더 올렸습니다. 이걸로 충분치는 않지만 좋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주말 잘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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