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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만은
작품등록일 :
2016.10.03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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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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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10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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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네오 메트로

DUMMY

"저기, 그만 일어났으면 좋겠는데."

사방으로 목소리가 울렸다.

한서준은 눈을 떴고 머리를 부여잡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 하얀색 제복을 입은 소녀, 권지아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냐?"

"진짜? 글쎄."

권지아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당신 정신 속이니까. 굳이 따지자면 당신이 만든 환상 아닐까? ···뭐, 거짓말이지만···. 아무튼···, 나도 같이 빨려들어온 것 같아. 내 본체는 당신처럼 기절한 상태고."

권지아는 터벅터벅 걸어와 한서준의 옆에 앉았다. 권지아는 무릎을 모으고 턱을 괴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걸으니까 기분이 새롭네. ···비록 당신 정신 속이지만."

"내 정신 속이라···."

한서준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오직 하얗기만 한 공간을 하나뿐인 눈에 담아 내던 한서준이 긴 숨을 내뱉었다.

"황량하군."

"그렇다기 보다는 아무것도 없잖아. ···뭔가 채워지지 않았다는 거 아닐까?"

권지아가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한서준이 대답했다.

"···그래서, 바깥은 어떻게 됐지?"

"나도 몰라. 당신하고 같이 아파하다가··· 정신을 차리니 여기였으니까. 그보다··· 뭐 좀 만들어 봐. 당신 정신 세계니까, 결국 당신이 주인이잖아."

권지아가 한서준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지금은 당신이 신이라구, 한서준 씨."

"···미안하지만, 난 방법을 모른다."

한서준이 고개를 저었다.

"좀 강하게 생각을 해 봐. ···안 돼?"

"됐으면 진작에 소파가 생겼겠지."

"아··· 그래? ···TV하고?"

권지아가 물었다.

"그래. TV하고."

"그럼··· 콘솔 게임기도 있어야지."

권지아가 말했다.

"심심하지 않게. 여기서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잖아."

"게임은 컴퓨터로밖에 안 해봤는데."

"그런 건 패드만 익숙해지면 크게 상관없는 문제야. ···아무튼, 안 되는 이야기는 이제 그만두고···. 그보다 어때?"

권지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서준의 앞에 섰다. 하얀색 제복의 치맛단과 감은빛의 생머리가 부드럽게 흔들리다 멈춰섰다.

"정확히 5년만···."

"···그만 해라."

한서준은 고개를 흔들었다. 권지아의 나른한 얼굴에 자그마한 미소가 맺혔다.

"정말··· 신사적이라니까."

권지아는 다시 한서준의 옆에 앉아 그의 팔에 머리를 기댔다.

"나도 그 아이처럼··· 기왕 이렇게 된 거 당신한테 응석이나 부리고 싶은데. 허락해 줄래?"

"···너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데."

"그야··· 난 당신하고 그 아이처럼 간단하게 얽힌 관계가 아니니까. ···아무튼, 어떻게 할래? 귀여운 소녀의 응석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구."

"···됐다."

한서준은 고개를 저었다. 권지아는 눈을 감고 머리를 끄덕였다. 권지아가 미소를 지었다.

"벌써 그렇게 거리를 두면··· 5년 후에 약점이 많아질 텐데. 괜찮은 거야?"

"···그런 말은 질리지도 않나?"

"설마··· 내가 아무한테나 이러는 줄 아는 거야? 이미 당신만 마음을 먹으면 말없이 넘어갈 정도로 충분한 호감도가 쌓였단 말이야. ···아, 그래도 날 침대에 넘어뜨리는 건 아직 내 나이가 충분하지 않으니까··· 그건 조심해."

"···이건 게임이 아니다. 그리고··· 함부로 그런 소리는 하지 마라."

"뭐 어때. 5년만 지나면 다 합법인데."

권지아가 문득 한서준을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근데, 몸은 괜찮아? 아프지 않고? ···고통이 고통이다 보니··· 당신 정신이 이렇게 멀쩡할 리가 없을 텐데."

연신 목을 꺾고 어깨를 매만지던 한서준이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온몸이 쑤시고 있다. 못 버틸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 점점 심해지고 있군."

"그렇지? ···솔직히 그 고통은··· 장난이 아니니까. 고통이 일부만 느껴지는 나도 엄청 힘든데··· 당신은 뭐, 말할 것도 없겠지."

권지아는 자리를 털고 일어 백색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자그마한 균열이 생겨남과 동시에 하늘이 여러가지 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벌써 시간이 다 됐네. 아무래도··· 당신 몸이 슬슬 깨어나려는 것 같아."

"···그래. 느껴진다."

한서준이 말했다. 그는 반복적으로 점멸하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다 권지아를 보았다. 권지아의 몸도 고장난 전등처럼 깜빡거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뭔가··· 얼굴을 봐서 반가웠어. 언제 다시 이렇게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뭐, 정신은 통하니까. 딱히 상관은 없겠지."

권지아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서준은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백 개의 균열 너머로 빛이 새어 들었다. 한서준도 가루로 변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 * *


한서준은 눈을 뜨고 머리를 움직였다. 먼지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가라앉았지만 그는 눈을 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은 적막했다. 어둠에 둘러싸여 빛이 없었다.

"···있나?"

한서준이 문득 입을 열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머리에 손을 올린 뒤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는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두 개의 책상과 의자, 부서진 선반, 뭔가가 가득찬 책장과 버려진 권총의 모습이 그의 눈을 자극했다.

눈을 한 번 감았다 뜬 한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멈칫하며 주저앉았다. 그는 오른쪽 다리를 내려다보았고 손을 뻗어 오른쪽 다리를 매만졌다. 미간을 찌푸리며 오른쪽 다리의 발가락을 하나하나 만져보던 그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책상 아래의 빈 공간에 부서진 의족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한 그는 다시 하반신을 내려다보았다.

왼쪽 다리와 차이를 찾을 수 없는 오른쪽 다리가 꿈틀대며 움직였다.

한서준은 한숨을 쉬고 일어섰다. 몸이 오른쪽으로 기울었지만 그는 몸을 똑바로 세우고 다리를 움직였다. 주변을 몇 번이나 빙글빙글 돌던 한서준이 문쪽으로 걸어갔다.

손잡이를 잡으려던 그가 멈칫하고 뒤로 물러섰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돌조각을 하나 주워들었다. 하얀빛이 뿜어져 나오며 조각은 자그마한 손거울로 변했고 즉각 사용자의 얼굴을 비추었다.

한서준은 오른쪽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수천 개의 균열이 새겨진 붉은빛 눈이 거울 속에서 빛을 발했다. 눈 표면 사이사이의 균열에는 깨진 거울처럼 수천 개의 눈이 한서준을 응시하고 있었고 안구의 끝 테두리에선 지속적인 핏빛의 강이 번져 어그러진 동공 속으로 스며들었다.

한서준은 눈을 감고 붉은빛의 눈만 뜬 채 주변을 쓸어보았다. 그는 물건을 하나하나 만져보며 방을 돌았고 책장에 놓인 대검과 수류탄을 챙긴 뒤 눈을 감았다. 그는 숨을 고르고 몸을 돌려 문고리를 잡았고 문을 열었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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