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드라마 전쟁 (1)
67화. 드라마 전쟁 (1)
방송국에서는 내무 문제로 멜로디의 편성을 원래대로 바꿔야 할 거 같다며 드림 픽처스에 통보했다. 방송국에서 그렇게 나오자 제작사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지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 지수와 드림픽처스는 방송국에서 진짜 편성을 바꾼 이유를 몰랐다. 방송국은 공짜로 생긴 10억이라는 투자금을 굳이 드림 픽처스와 나누고 싶지는 않았다.
어쨌든, 멜로디는 원래의 편성으로 방송되기로 했다. 이렇게 되자 지수도 단념하고 정면 대결을 준비하자 말했다. 그렇게 드라마 멜로디의 제작이 시작되었다. 작가인 태성과 지수는 더욱 대본 집필에 열중했다. 지금 상황으로서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거뿐 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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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본 진짜 재밌다. 이게 정말 네가 쓴 거라고?”
지수의 엄마는 벽에 기대 병원 침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멜로디의 1화 대본이 들려있었다.
“그치? 지금까지 내가 쓴 대본 중에 가장 재밌는 거 같아.”
“역시, 글이라는 건 쓰면 쓸수록 느나 봐.”
“아무래도 그렇겠지.”
“근데 이 대본을 보니깐 사과나무 대본이 떠오른다. 두 대본이 어딘가 모르게 많이 닮은 거 같아.”
엄마의 말에 지수는 깜짝 놀란 눈치였다.
“어머. 엄마도 그렇게 느껴? 사실 은하 언니도 그렇게 말했거든.”
“그래? 네가 그동안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많이 연구해서 그런가 보다. 언제는 할아버지의 노트가 더 필요하다고 하더니. 이제 보니깐 엄살이었네. 이렇게 잘하면서.”
“그런 거 아니야. 엄마도 알잖아. 이번 대본은 소설을 원작으로 원작인 소설의 작가님이랑 함께 작업하는 거. 그분의 소설이 할아버지의 이야기와 많이 닮아있어.”
“오. 그래? 근데 혹시 그 소설 작가님 이름이 한태성 작가님이야?”
지수의 엄마는 대본의 표지에 적힌 이름을 가리켰다. 서지수의 이름 옆으로 한태성이란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응. 맞아.”
“신기하다.”
“뭐가 신기하다는 거야?”
“이 작가님이랑 할아버지랑 이름이 똑같잖아.”
“뭐!?”
그 순간, 지수는 자신이 한태성 작가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왜 그 이름이 익숙했는지 깨달았다. 할아버지의 이름과 같아서였다. 한편, 지수의 엄마는 대본에 적힌 이름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신기하다. 이름도 같고. 작가라는 직업도 같고. 거기에 이야기도 비슷하다고 하니. 이런 걸 보고 평행이론이라고 하는 거 맞지?”
“아마.. 그럴걸?”
자신의 할아버지와 자신과 함께 공동으로 집필하는 작가님의 이름이 같다는 걸 깨달은 순간 지수는 싸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 갑자기 든 생각인데. 설마... 할아버지 살아계신 거 아닐까?”
“에이. 말도 안 돼. 살아계신다면 엄마를 찾아왔겠지.”
“엄마를 찾지 못할 사정이 있었던 거지. 예를 들어 기억상실증 같은 거. 그래서 자신이 보육원에 맡긴 딸이 있었다는 걸 잊으신 거지. 그리고 지금 나랑 함께 작업하고 있는 한태성 작가님은 할아버지인 한태성 작가님의 제자인 거고. 혹시 알아. 나랑 작업하고 있는 작가님이 자신의 스승을 너무 존경한 나머지 스승님의 이름을 따서 자신의 필명으로 지은 건지.”
딸의 말에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네가 작가가 맞긴 맞나 보다. 바로 드라마 한 편이 나오네. 그게 말이 되니.”
“아니야. 아주 말이 안 되는 일도 아니라고. 엄마도 알잖아. 현실이 더 드라마 같은 거.”
“딸. 이제 그만해. 엄마도 아버지가 어딘가 살아 계시다면 좋겠어. 하지만 그랬다면 엄마를 찾아왔겠지. 너한테는 할아버지지만 엄마한테는 아버지야. 엄마 말 무슨 말인지 알지?”
“응. 알겠어.”
지수의 엄마는 손에 들고 있는 대본을 들어 허공에 흔들었다. 소파에 앉아 있는 지수에게 가져가라는 뜻이었다. 그러자 지수는 소파에서 일어나 엄마가 건네는 자신의 대본을 받았다. 그리고 아무 말없이 엄마를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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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팅 때문에 배우와 미팅을 하다니. 이제 정말 드라마 작가가 된 기분입니다.”
태성의 말에 지수가 웃었다.
“저도 처음에 그랬어요. 내 대본을 연기해 줄 배우를 만난다는 게 짜릿하면서도 신기하더라고요.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쓴 이야기가 처음으로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이니깐요.”
드림 픽처스의 회의실 안이었다. 넓은 회의실에는 여러 개의 긴 책상들이 붙어 있었다. 약 서른 명의 사람들이 들어와 회의에 참여할 수 있는 규모였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가운데쯤에 붙어 앉아 있었다.
“박정호라는 배우는 어떤 배우입니까?”
연예계에 관심이 없던 태성은 박정호가 어떤 배우이며 연예계에서 그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전혀 몰랐다.
“완전 톱스타시죠. 연기도 잘하시고 얼굴도 엄청 잘생기셨어요. 약간, 성형을 하신 게 티가 나지만요. 거기에 키도 크시고 몸도 엄청 좋으세요. 한 마디로 비주얼과 비율이 엄청나다는 거죠.”
지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부분의 설명이 외모에 관한 이야기였다.
“박정호라는 배우는 외모로 유명해진 배우인가 봅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처음 데뷔할 때부터 잘 생긴 외모로 관심을 받으셨으니.”
“그렇다면 박정호라는 배우가 권민우라는 역할에 잘 어울릴지 걱정입니다.”
권민우라는 인물은 천재 지휘자로서 음악을 사용하여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며 그들을 위로하는 역할이었다. 즉, 깊은 내면 연기가 필요했다. 그런 역할에 잘생김으로 유명해진 배우라니. 태성은 너무나도 걱정되었다.
“걱정이라뇨. 박정호와 같은 톱스타가 주인공을 맡아주면 드라마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데요.”
[똑똑.]
그 순간, 누군가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 왔나 보네요. 작가님. 배우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는 기싸움에서 절대 밀리면 안 돼요. 알겠죠? 어떻게 대할지 모르겠으면 그냥 저만 믿으세요.”
지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문틈 사이로 조각상처럼 생긴 남자와 그의 뒤에 서있는 덩치 큰 뚱뚱한 남자가 보였다. 두 사람은 앉아 있는 태성과 지수를 보며 인사했다.
“넌 이제 가봐.”
“네.”
정호의 말에 그의 뒤에 있던 크고 뚱뚱한 남자는 태성과 지수에게 잘 부탁한다며 인사를 하고 갔다. 그렇게 회의실 안에는 태성과 지수 그리고 정호만 남았다.
“언제 한번 서지수 작가님이랑 작업하고 싶었는데 드디어 해보네요.”
“그래요? 저도 정호 씨와 함께 작업하고 싶었는데. 영광이네요. 제가 지금까지 봐왔던 배우들 중에서 가장 잘 생기신 거 같아요.”
“하하. 감사합니다. 서지수 작가님이야말로 제가 지금까지 작업했던 작가님들 중에서 가장 미인이십니다.”
“정호 씨에게 그 소리를 들으니 좋네요.”
두 사람의 대화에 태성은 헛기침을 했다. 이제 그만 외모 칭찬을 하라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이쪽 분이 그 신인 작가인가 보죠?”
정호의 질문에 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이쪽이...”
지수가 태성을 소개하려는 순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전 한태성 작가라고 합니다.”
젠틀하면서도 카리스마 있는 말투였다. 순간, 정호는 태성이 풍기는 분위기에 압도됨을 느꼈다.
“안녕하세요. 한태성 작가... 님.”
자기도 모르게 ‘작가’라는 단어 뒤에 ‘님’을 붙인 정호였다. 드라마 작가에서는 아직 신인이었지만 작가로서 그는 알 수 없는 위엄이 있었다.
“그럼 이제 대본 이야기 좀 해볼까요?”
태성의 말에 회의실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세 사람은 진지하게 대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호는 제법 드라마와 자신이 맡게 될 역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정호 씨와 직접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외모가 다가 아닌 배우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정호 씨가 만들어갈 권민우라는 캐릭터가 매우 기대됩니다.”
어느새, 정호는 태성이라는 작가에게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의 칭찬에 정호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다.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기대됩니다. 제가 최근에 본 대본 중에서 가장 훌륭했거든요.”
“근데 정호 씨 나이가 올해 스물아홉이시죠?”
지수의 질문에 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서지수 작가님과 동갑이죠.”
“그래요? 그래도 우리 작가와 배우라는 선은 지킵시다.”
“일할 때는 그러죠.”
“일이 아닌 사적인 자리에서는 선을 넘으시겠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왜요? 그러면 안 되나요?”
정호의 눈썹이 씰룩 거리더니 이내 흑심 가득한 눈으로 지수를 쳐다봤다. 그러자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던 태성이 입을 열었다.
“정호 씨는 틈이 생기면 안 될 배우인가 봅니다. 멜로디의 작가로서 부탁드리죠. 멜로디의 남자 주인공을 맡으셨으니 멜로디가 끝나기 전까지 긴장 유지해주시기 바랍니다. 즉, 지금부터 긴장하라는 말입니다. 제 말 이해하셨죠?”
“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죠. 저희는 할 얘기가 남았으니 먼저 가시죠. 매니저가 밖에서 기다리시는 거 같네요.”
그래도 자신이 톱스타인데 자존심이 상한 정호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태성이라는 작가 앞에서 계속 작아졌다.
“근데.. 두 분은 무슨 사이시죠?”
정호의 질문에 태성이 딱 잘라 대답했다.
“보시다시피 공동 집필하는 사이입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죠.”
“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정호는 밖으로 나갔다. 태성에게 진 기분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편, 그가 밖으로 나가자 태성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배우로서는 믿음이 가지만 사람으로서는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꼭 저 배우와 함께 해야겠습니까?”
태성의 질문에 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님. 잊으셨어요? 상대 드라마는 무려 200억 짜리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저희 드라마로 와준 톱스타인데 감사한 마음으로 함께 해야죠. 정호 씨 정도면 언론 플레이에서도 밀리지 않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서지수 작가님의 뜻이 그렇다면 더 이상 토 달지 않겠습니다.”
“네. 감사해요. 그나저나 저 뭐 하나 여쭤 봐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여쭤보시죠.”
“혹시 글을 어디서 배우셨어요?”
“독학했습니다.”
“아... 독학이요?”
“네. 그렇습니다. 그건 왜 물으시는 거죠?”
“제가 존경하는 작가님이 계신데 혹시 한태성 작가님이 그분의 제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무래도 제 생각이 틀렸나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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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에서 누구를 캐스팅했다고?”
“박정호입니다.”
박정호라는 이름에 여 대표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새끼는 결국 우리 드라마를 깐 모양이군. 멍청한 새끼. 자신에게 굴러 들어온 복이 뭔지도 모르는 새끼구먼.”
“그런가 봅니다.”
사실, 박정호는 여 대표가 준비하고 있는 첩보 액션 드라마인 아레스의 캐스팅 제의도 받았었다. 여 대표는 그가 당연 아레스에 참여할 거라 생각했다. 표정이 어두워진 여 대표를 보며 오 피디가 말을 이어갔다. 그는 영화사 파티오 소속의 제작 피디였다.
“아무래도 멜로디의 대본이 소문대로 훌륭한 모양입니다.”
“훌륭해 봤자 아레스에 비하면 초라할 뿐이야.”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요? 아무래도 남자 주인공을 새로 뽑아야겠죠?”
“당연하지. 기왕 이렇게 된 거 더 비싼 배우를 캐스팅해야겠어.”
분명 박정호는 ‘두 드라마의 캐스팅을 동시에 받았지만 멜로디의 대본이 더 재밌어서 200억짜리 아레스를 버렸다’라는 인터뷰를 할 거라 생각한 여 대표였다.
“그리고.. 박정호를 처리해야 하는데...”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으십니까?”
오 피디의 질문에 여 대표는 씩 미소를 지었다.
“그 새끼 아직 군대 안 갔다 왔지?”
“아마 그럴 겁니다.”
“역시. 군대를 안 갔다 와서 세상을 볼 줄 모르는 거였어. 이래서 남자들은 군대를 갔다 와야 한다니깐.”
“설마...?”
“그래. 이참에 건방진 놈 인생 공부나 시켜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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