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하고 싶은 이야기 (1)
85화. 하고 싶은 이야기 (1)
지수의 엄마가 먼 곳으로 떠난 이후,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다.
멜로디의 성공 이후, 지수는 세 편의 드라마를 집필했다. 세 작품 모두 한 명의 보조 작가와 함께 일했지만 멜로디 때처럼 공동 집필은 아니었다.
다행히, 세 편의 드라마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작품성은 아쉽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녀의 자신의 슬럼프를 완전히 이겨냈다. 이제 그 누구도 그녀가 갖고 있는 스타 작가라는 타이틀을 건드리지 않았다.
현재 그녀의 나이 서른둘이었다. 그녀의 나이를 감안하면 현재 129인 그녀의 레벨은 매우 높았다.
한편, 3년이라는 시간 동안 태성은 두 편의 드라마를 집필했다. 다행히 그의 드라마들은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제 태성은 모두가 인정해주는 명실상부 스타작가였다.
이제 그의 나이는 서른아홉 살이었다. 그리고 현재 그의 레벨은 무려 180이었다. 만렙이라 알려진 200에 매우 가까워진 그였다.
태성은 자신의 레벨증을 볼 때마다 냉동인간이었던 자신을 깨워준 안 박사가 떠올랐다. 그 당시, 안 박사의 레벨은 185였다. 레벨 1이었던 태성의 눈에는 185라는 안 박사의 레벨은 매우 높아 보였다.
시간이 지나, 어느새 태성의 레벨은 그 당시 안 박사의 레벨과 매우 비슷해졌다. 이렇게 자신의 레벨을 볼 때마다 태성은 안 박사가 떠올랐다. 그동안 안 박사에게서 한 통의 연락도 오지 않았다.
도대체 안 박사는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태성은 그를 찾고 싶었지만 자신이 먼저 연락할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그의 말 때문에 참고 있었다.
한편, 태성이 이토록 짧은 시간에 레벨이 높아진 이유는 그의 첫 번째 패시브 스킬인 독서왕의 도움도 있었지만 레벨 100에 열린 그의 두 번째 패시브 스킬의 힘이 매우 컸다.
[직업 패시브 스킬]
[1. 독서왕 – 책의 글자를 100개 읽을 때마다 경험치 10 획득.]
[2. 작가왕 – 글자를 10개 쓸 때마다 경험치 10획득.]
[3. 독자의 미소 (Lv 3.) - 자신의 글을 읽은 독자들이 행복해짐]
작가왕. 태성의 두 번째 직업 패시브 스킬이었다. 직업이 작가인 사람에게 레벨업을 위해서 이보다 더 좋은 스킬은 없었다.
“형. 어젯밤에 갑자기 든 생각인데. 이러다가 형 만렙 찍는 거 아니에요?”
아침으로 토스트를 먹던 혁준이 맞은편에 앉은 태성에게 물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자신의 옆에 앉은 유리가 아침을 잘 먹고 있는지 확인하며 태성이 답했다.
“아빠. 아빠 레벨 엄청 높지? 그치?”
딸기잼이 발린 식빵을 먹던 유리가 태성에게 물었다. 이제 유리의 나이도 여덟 살 이었다. 현재 그녀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유리야. 학교에 가서 아빠 레벨 얘기하면 안 돼. 알겠지?”
“왜? 친구들 전부 자기 아빠 레벨 높다고 자랑한단 말이야.”
“그래도 안 돼. 알겠지?”
현재 태성이 레벨이 높은 이유는 그의 패시브 스킬 덕분이었다. 괜히 자신의 스킬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피곤할 거라 생각한 태성이었다.
“히잉.. 나도 아빠 레벨 친구들한테 자랑하고 싶은데.”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말이 있다. 레벨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높은 레벨이 대접을 받는 것처럼 학교도 그러했다. 본인이나 혹은 부모의 레벨이 높으면 그 학생은 학교에서 대접을 받았다.
“유리야. 레벨은 결코 중요한 게 아니란다. 진짜 중요한 건 너란 사람이야. 알겠지?”
“아닌데... 선생님이 분명 레벨은 중요하다고 그랬는데...”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는데?”
“요즘 세상은 레벨이 낮으면 남들 발밑에서 사는 그저 그런 인생이 된다고 하셨어. 그저 그런 인생을 살고 싶지 않으면 열심히 레벨업 하라고. 아빠는 레벨이 높은 사람이니 발밑에 사람이 많겠다.”
맙소사. 여덟 살 꼬마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태성은 유리의 선생님의 교육이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세상이 그렇다고 해도 학교에서만큼은 서로 배려하고 도우며 살라고 가르쳐야 하는 거 아닌가?
“유리야.”
태성은 차분히 딸을 불렀다.
“왜?”
“앞으로 네가 누구를 상대할 때 그 사람의 레벨은 신경 쓰지 말렴. 아무리 레벨이 낮아도. 혹은 아무리 레벨이 높아도 다 같은 사람이야. 알겠니?”
낮은 목소리로 진지하게 말하는 아빠의 말에 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겠어.”
“그래. 우리 이제 서두를까? 이러다 학교 지각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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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레벨 시스템이 도입된지 올해로 50년째였다.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레벨 시스템을 채택한 나라였다. 지금은 전 세계의 모든 나라가 레벨 시스템이라는 새로운 체제로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나라들은 자신들보다 먼저 레벨 시스템을 채택한 미국과 한국을 본보기로 삼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 가운데, 한국 정부는 앞서가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세상에 보여줌으로써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싶었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 정부는 레벨 시스템 도입 50주년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아직 어떠한 형식으로 행사를 진행할지 정해지지는 않았다. 현재까지 행사와 관련해서 정해진 건 기간뿐이었다. 행사는 50년 전 레벨 시스템이 도입되었던 날과 같은 날이 9월 25일에 시작하여 일주일 동안 진행될 예정이었다.
태성은 올해 한국에 있을 레벨 시스템 50주년 행사가 반갑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현재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레벨 시스템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다. 냉동인간에서 깨어난 후, 그가 경험한 세상은 결코 살기 좋은 곳이 아니었다.
“도대체 이런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을 애초에 누가 시작한 겁니까?”
태성은 자신의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는 은우에게 말했다.
“제가 알기로는 미국에서 먼저 시작한 걸로 알고 있어요.”
은우의 답을 들어보니 애초에 그녀는 누가 레벨 시스템을 만들었는지 관심이 없는 듯했다.
“세상이 이렇게 흘러가다가는 먼 미래는 분명 지옥과도 같을 겁니다. 은우 씨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까? 레벨 시스템은 새로운 신분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이건 역사를 역행하는 일입니다!”
태성은 열변을 토했다. 그가 이토록 진지하게 얘기하자 은우도 레벨 시스템에 대해 잠시 깊게 생각했다.
“하긴. 특정한 레벨이 되어야 들어갈 수 있는 장소와 살 수 있는 물건이 정해져 있다는 건 과거의 신분 사회와 비슷하네요. 그래도 과거와 다른 게 있다면 누구든지 노력을 하면 레벨이 높아져 신분이 높아지잖아요. 그런 점에서 전 레벨 시스템이 공평한 거 같아요”
“공평해 보이는 건 눈속임입니다.”
태성은 누구에게나 공평해 보이는 레벨 시스템이 눈속임인 이유를 설명했다. 그의 설명은 아래와 같았다.
레벨 시스템은 모두가 노력만 하면 높은 레벨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하지만 실제로 높은 레벨까지 올라간 사람은 많지 않았다. 레벨 180이 넘는 사람들은 대부분 돈이 많거나 권력을 가진 자들이었다. 즉, 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힘을 높은 레벨로 정당화시켰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가 이러한 힘을 가진 이유는 레벨이 높아서다. 레벨이 낮은 너희들도 우리처럼 노력해서 레벨이 높아지면 이렇게 살 수 있다. 그러니 노력해라.
그래서 사람들은 노력하며 살아간다. 언젠가는 자신들도 상류층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며. 그들은 오늘 하루도 경험치를 얻겠다며 아등바등 살아간다. 하지만 레벨이라는 게 오르면 오를수록 다음 레벨업을 위해 더 많은 경험치를 요구한다.
레벨 시스템 속에서 3살에서 8살의 어린아이들은 부모의 돈으로 경험치를 얻을 수가 있다. 현실적으로 이 시기에 많은 레벨을 부모에게 선물 받지 못한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 높은 레벨을 찍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다른 말로 말해, 레벨 시스템은 힘 있는 자들이 자신들의 힘을 유지하기에 아주 간단한 방법이었다.
태성의 주장을 가만히 듣던 은우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작가님 말을 들으니 맞는 얘기 같네요. 근데 왜 전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요?”
“아마 교육 때문이겠죠.”
교육의 사전적 의미는 지식이나 기술을 가르침으로서 개인이 성장할 수 있게 지도하는 일이다. 결국, 과거의 교육은 어떠한 사람이 현재 가지고 있는 생각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다른 말로 말해, 교육은 가르침이라는 탈을 쓰고 사람들을 세뇌시킬 수가 있다.
“그러니깐 작가님 말은 정부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온전히 레벨 시스템을 따르게 하기 위해 교육이라는 가면으로 세뇌시켰다는 거네요?”
“맞습니다.”
태성의 말을 듣는 순간 은우는 온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아직, 태성의 의견에 동의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태성의 말대로 돌아가는 세상을 상상해보니 끔찍했다. 소수를 위한 세상. 소수가 만들어 놓은 룰과 정의로 돌아가는 세상. 그리고 그러한 세상 속에서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은 채 당연하다는 듯이 살아가는 사람들. 은우는 결코 그러한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작가님. 이 얘기는 그만해요. 저 좀 무서워 지려고 하네요.”
“은우 씨. 전 이러한 세상을 바꾸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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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교육원이었다. 이곳은 돈이 있다고 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현직 작가들이 진행하는 서류 심사와 면접을 통과한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는 총 5개의 단계가 존재했다. 각 단계는 6개월 동안 수업이 진행되었고 다음 단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성적이 좋아야 했다.
그곳에서 혁준은 4단계까지 수료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공모전을 준비하는 마지막 5단계의 수업만을 남겨둔 상황이었다. 현재 그의 레벨은 61이었다. 3년 동안 미친 듯이 노력하여 이룬 결과였다..
드라마 공모전에 지원할 수 있는 레벨은 60 이상이었다. 즉, 혁준은 이제 공모전에 도전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했다. 거기에 교육원의 마지막 단계인 5단계에서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공모전을 준비하게 된다. 혁준은 멀기만 했던 자신의 꿈에 가까워진 거 같아 매우 뿌듯했다. 올해 그의 목표는 공모전 입상이었다.
지금 그는 강의실에 앉아 선생님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의실 안은 혁준을 포함하여 총 6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마지막 단계이니 수강생이 1단계에 비해 매우 적어졌다.
- 그나저나 이번에 우리 선생님 누군지 아시는 분 있어요?
- 전 모릅니다.
- 저도 몰라요. 들은 게 없어서.
- 궁금하네요. 과연 어떤 분이 저희 선생님일지.
다들, 자신들의 선생님이 누가 될지 추측하며 기대했다. 혁준 역시 자신의 선생님이 누가 될지 궁금했다.
잠시 후, 강의실의 문이 열렸다. 강의실 안으로 들어온 선생님을 보며 실망한 사람도 있었고 매우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강의실 안으로 들어온 선생님은 단발머리를 하고 있는 지수였다.
그녀의 등장에 혁준은 놀란 듯 눈이 두 배로 커졌다. 3년 전 지수와 카페에서 작별 인사를 한 후 한 번도 그녀를 본 적이 없었다.
한편, 혁준을 발견한 지수는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그녀는 이 반에 혁준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지수는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하고 곧바로 수업을 진행했다. 오늘은 첫날이었으니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덕분에 수업은 일찍 끝났다.
모두가 강의실을 떠나고, 혁준과 지수만 강의실에 남아있었다.
“혁준 씨 오랜만이네요.”
“그러게요. 작가님.”
혁준은 자기 앞에 지수가 다시 나타난 게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우리 하반기에 있는 공모전 열심히 준비해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봐요.”
그렇게 지수는 짧게 대화를 하고 강의실을 나가려고 했다. 그 순간, 혁준은 허무했다. 이렇게 그녀와의 대화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
“저기요. 작가님.”
“네?”
강의실의 문을 열려던 그녀의 손이 멈추었다. 그녀를 보며 혁준은 말을 이어갔다.
“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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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은우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태성의 말에 의아한 듯 물었다.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싶으신데요?”
“전 레벨 시스템 때문에 생긴 새로운 신분사회와 그로 인한 문제점을 알리고 싶습니다. 또한, 사람의 가치를 단순히 레벨로 평가하는 이들에게는 사람은 결코 단순한 숫자로 평가될 수 없다고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걸 어떻게 하시게요?”
그녀의 질문에 태성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가장 작가다운 방법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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