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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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향
작품등록일 :
2016.10.04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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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4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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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변수 (3)

DUMMY

이 무렵 임시정부는 내우외환에 처해있었다.


1920년대부터 임정 내에서 불거진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대립으로 인해서 독립운동에 차질을 빚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1939년 여름에 거국적인 원탁회의를 열어서 조선민족혁명당, 조선민족해방동맹, 조선 혁명자연맹, 조선 청년 전위동맹 등의 좌파 독립운동 단체와 임시정부 내의 한국국민당,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을 아우르는 좌우 연립 정부 설립을 모색하였지만, 결국 수긍하지 못한 일부 좌파 단체가 이탈하면서 합작 역시 결렬되었다.


이 일은 1938년 5월쯤에 김구와 현익철, 유동열, 지청천 등은 중국 후난성 장사에 위치한 남목청에서 민족주의 3당인 한국국민당,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의 합당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일본 경찰에 매수된 조선혁명당 당원의 저격으로 김구가 치명상을 당하고 현익철이 사망하는 일로 약해져 있던 민족주의 계파에 더 치명적인 피해가 아닐 수 없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1937년 7월 베이징 근처에서 야간 훈련 중이던 일본군 중대에서 난 총소리와 이후 행방불명된 일본 병사(실제로는 20분 뒤 귀대)를 이유로 일본은 중국군 주둔지역 수색을 요청하였고 중국이 이를 거절하자, 다음날 새벽 일본군이 중국군을 공격하여 루거우차오를 점령하는 루거우차오 사건이 일어났다.


다음 날 바로 정전협정을 체결하였지만, 이 사건을 빌미로 일본군은 화북지역에 병력을 증강했고, 그달 말에 화북에 대한 전면적인 침공을 개시하면서 중국은 전화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 일은 국민당에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던 중국 공산당에게 제2차 국공합작이라는 살길을 마련해주었고, 반대로 거의 공산당을 몰아내 가던 국민당에는 이후 천추의 한을 남기게 되는 일이 되었다.


물론 국민당의 지원으로 독립운동을 하던 임시정부로서도 불행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중일전쟁의 발발 이후 일본군에서 밀린 중국 국민당의 이동에 따라서 임시정부도 상하이(1919-1932)를 떠나서 항저우(1932-1935), 자싱(1935), 난징(1935-1937), 창사(1937-1938), 광저우(1936-1939), 치장(1939-1940)을 거쳐서 결국 1940년에는 일본에 밀려서 충칭으로 수도를 옮겨야 했던 중국 국민당 정부를 따라서 충칭(1940)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리고 충칭에 자리를 잡은 임시정부는 임시헌법을 개정하여 주석제를 도입하고 초대 주석에 김구를 옹립하면서 임시정부 충칭 시대를 열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남목청 사건으로 미루어졌던 민족주의 계열의 한국국민당,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이 합당하여 새로이 한국독립당을 창당하면서 임시정부 내의 분열을 일차적으로 일단락 지었다는 점이었다.


더불어 김구는 중국 국민당의 지원을 얻어내어 지청천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한국광복군을 조직하면서 그동안 좌우 분열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임시정부의 존재감을 조금씩 드러내면서 본격적인 임시정부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잠시 시간을 과거로 돌려서, 이승만이 보낸 편지를 김구가 받은 것은 바로 임시정부가 치장에서 충칭으로의 이주를 결정할 무렵이었다.


이조차도 김구한테 직접 보낸 편지가 아니라 경성의 윤치호를 통해서 받은 편지였다. 애초에 자신에게 보냈다는 편지는 받지 못했던 것이었다.


“휴우~~~ 골치가 아프군.”


편지를 다 읽은 김구는 미간을 주무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좌우 합작 무산의 여파에 중일전쟁으로 임시정부의 잦은 이주가 이루어지면서 이미 임시정부는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실 3.1 만세운동으로 세운 임시정부를, 독립운동의 중심이자 상징을 지켜야 한다는 의지가 없었다면 아마도 아직까지 존재하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그동안의 상처가 컸다.


실제로 이 시기 임시정부에 남았던 민족주의 계열의 인사들이 진정 임시정부를 지켜려던 인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새로운 망명정부의 등장이라.... 엎친 데 덮친 격이로군.”


김구의 한숨이 깊어졌다.


이 시기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임시정부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자금난이었다.


그동안 임시정부를 지탱할 수 있었던 자금원은 모두 다섯 군데라 볼 수 있었다.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과 식민지 한인들의 모금, 그리고 만주 이주 한인들의 모금과 연해주 한인들의 모금, 그리고 해외동포(대부분이 미주 한인)들의 모금이었다.


이 중에 가장 큰 것은 아무래도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이었다.


윤봉길 의사와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좋게 본 장제스의 배려로 시작된 한인독립운동가에 대한 지원은 그대로 임시정부로 이어져 중국 정부는 지속적으로 임시정부를 지원하고 있었다.

상황에 따라 변덕스러움을 보이고 협조하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의 차이가 큰 등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임시정부의 설립과 존속에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었다.


임시정부 초기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아무래도 만주로 이주한 한인들의 모금과 더불어 식민지 내 한인들의 모금 및 지원이었다.

사실상 초기 독립운동을 지원한 자금은 모두 이곳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었다.


문제는 만주사변 이후 만주국이 세워지면서 일본의 간섭이 커짐에 따라 만주 한인들의 이동과 모금이 자유롭지 않게 되었고, 동시에 식민지 내 일본의 문화지배 및 방첩 활동이 강화되면서 지금에 와서는 그 지원 규모가 크게 약해진 상태였다.


상황은 연해주의 한인도 비슷했다. 스탈린의 정책에 따라 연해주에 살던 한인들의 대부분이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주당하면서 모금할 한인 자체가 사라진 연해주로부터의 모금은 사실상 거의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미주 한인으로 대표되는 해외동포의 지원의 경우는 상황이 나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박용만 사건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박용만의 위상을, 그에 대한 미주한인들의 애정을 간과한 것이 실수했다. 실제로 임시정부에서는 대수롭지 않다고 여겼던 이 문제가 불거진 이후 미주 한인들에 대한 임시정부의 반감은 커져갔다.


문제는 이 반감이 실제적인 피해로 나타났다는 점이었다. 바로 미주 한인들의 모금 동력의 저하를 불러오면서 전체적으로 모금액의 저하를 가져왔고, 이는 궁극적으로 임시정부에 지원되는 금액의 축소를 불러왔다.


사실상 중국 국민당 정부와 함께 가장 안정적이었다고 볼 수 있던 미주 한인들 지원금의 축소는 임시정부로서도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당장 그동안 유지하던 각종 사업에 축소가 불가피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챈 임시정부가 화해의 손짓을 내밀었지만, 대다수의 임시정부 관련 인사들이 박용만 사건에 대해 미주한인들과 근본적인 인식 차이를 보이는 데다가, 그동안 중국 독립운동가들의 가지고 있던 자금모금책 정도로 폄하하는 미주한인들에 대한 시선은 실질적으로 이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임시정부의 입장 상 조치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런 이유로 임시정부의 대응책은 미주 한인들의 마음을 풀지 못했고, 이후 이렇게 틀어진 관계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계속되는 지원금 감소로 말이다.


김구가 굳이 임시정부를 설득해서 그동안 분란의 대상이었던 이승만이 요구한 구미위원회를 다시 수락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솔직히 김구로서는 안창호나 이상설이 상대로서 더 나았지만, 박용만이라는 근본문제에 관한 인식에는 오히려 이승만과는 이야기가 통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김구는 어느 정도 선을 유지하면서 이승만을 통해서 활로를 모색하고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어렵게 받은 그의 편지는 김구의 골치를 아프게 할 뿐이었다. 더구나 이승만의 편지에 더해진 윤치호의 편지는 김구의 머리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편지를 통해 드러난 윤치호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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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8

  • 작성자
    Lv.92 심검
    작성일
    19.01.10 23:11
    No. 1

    잘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2 종이향
    작성일
    19.01.14 17:18
    No. 2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5 마의묵시록
    작성일
    19.01.11 00:20
    No. 3

    어떤 메세지 일지...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2 종이향
    작성일
    19.01.14 17:19
    No. 4

    어떤 메시지일까요? 관심 가지고 지켜봐 주세요.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6 민사소송장
    작성일
    19.01.11 02:47
    No. 5

    81% 지원금으로 감소로 말이다.
    지원금으로를 고쳐야 될 것 같습니다.
    항상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2 종이향
    작성일
    19.01.14 17:19
    No. 6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정하였습니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겨울벚꽃
    작성일
    19.01.15 02:17
    No. 7

    박용만사건불화설명은 끝도없이 나오네요
    이글의독자가500편이넘게 보면서 이걸다시 설명들어야한다는게웃기네요
    왜 알고있는 내용을 다시 들먹이는거죠?

    찬성: 0 | 반대: 2

  • 답글
    작성자
    Lv.42 종이향
    작성일
    19.01.21 17:19
    No. 8

    웃기셨다니.... 일단 죄송하다는 말을 드려야겠네요.

    저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지만, 일단 제 문제이니 그 부분을 무조건 이해해 달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다 제 글 솜씨가 부족한 탓이겠죠. 좀 더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네요.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감정을 내지르는 듯한 말이나 말투는 삼가 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비판이나 지적을 받는 입장이라도 기분이 좋을 수가 없네요.
    존중해주는 마음을 가져주셨으면 싶습니다.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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