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아리에서는 내기 게임을 잘 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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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노미카
작품등록일 :
2016.10.17 22:58
최근연재일 :
2019.03.21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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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8.03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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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쪽

15화. (3)

DUMMY

※ 이 작품은 픽션입니다. 작중 내에서 표기된 인물, 지명, 단체 등은 모두 허구적 요소입니다.










15화. 그 시절 처럼, 그녀와 함께 (3)





“우와... 오늘 진짜 날씨 덥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뜨거운 태양빛과 습한 바람이 피부를 따갑게 스친다.


“지금이 제일 더울 때기도 하니까.”


뒤따라 내린 수진이도 그렇게 말하면서 아까 쇼핑몰에서 산 모자를 꾹 눌러쓴다. 나한테도 뜨거운데 얘는 오죽할까.


한여름의 늦은 오후 시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일 년 중 가장 더운 시간이다. 그냥 덥기만 하면 모를까 숨쉬기조차 버거울 정도로 날씨도 습하다. 이런 날씨에 무턱대고 땡볕 아래에 서있다가는 머리부터 발 끝가지 땀범벅이가 되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이다.


“저기 좀 앉아있자.”


때 마침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들 눈앞에 비친 등나무 그늘과 벤치. 수진이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기에, 우리는 두 말 없이 그 벤치 있는 데에 자리를 잡았다.


“얼음물 좀 마셔.”


수진이가 여기 오기 전에 아까 편의점에서 새로 산 얼음물을 가방에서 꺼내 건네주었다. 나는 얼음물을 받자마자 기다릴 것 없이 입 안에 물을 한입 머금는다. 시린 감촉을 손으로 느끼면서 차가운 물로 목을 축이니 그나마 좀 숨통이 트이기는 하였지만, 밀려오는 후회감은 어쩔 수 없다.


“어휴... 그냥 시원하게 카페에 있을 걸 그랬다.”


“뭐야, 아까는 자기가 먼저 여기 오자고 얘기해놓고서...”


굳이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는 시원한 카페를 놔두고 여기까지 오자고 고집을 피우다니, 아까는 무슨 생각으로 배짱 좋게 그런 말을 한 것일까.


“그래도 모처럼 여기 오니까 어렸을 때 생각도 나고 좋지 않아? 너도 그 생각 나가지고 여기 오자고 한 거면서.”


수진이가 그렇게 말하면서 오른쪽을 돌아다보았다. 비록 언제부터인가 잔뜩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내느라 바로 대답은 하지 못 했지만,


“뭐, 그렇지.”


나는 뒤늦게나마 대답을 하며 그녀가 보고 있는 그 곳을 함께 바라본다. 솔직히 더운 날씨에 온 것 자체만을 생각하면 후회가 되긴 하지만 오랜만에 얘와 함께 여기 와서 그 날을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는 걸 생각하면 또 생각은 달라진다.


목현초등학교.


나와 수진이가 다녔던 초등학교. 내가 수진이를 처음 만나고, 오랫동안 그녀와 함께 했던 추억이 묻혀있는 곳이다.


이렇게 모교를 눈앞에서 제대로 보는 건 이 학교 졸업하고 난 이래 처음이다. 물론 방학을 앞두었던 며칠 전에도 사라진 수진이를 찾으러 비 오는 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여기까지 왔던 적은 있었지만, 그 날은 비가 잔뜩 온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학교를 빠지고 사라졌던 수진이를 찾아 헤매던 급박한 상황이었는지라 제대로 학교를 구경할 겨를이 없었다.


“좀 변하긴 했는데 그래도 거의 그대로네.”


비가 오던 그 날도 잠깐 보긴 했지만, 초등학교 시절에는 없었던 별관 건물 하나가 지어진 것만 빼면 보이는 우리 학교의 풍경은 그 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와 함께 이 자리에 서 있으니, 감회는 남달랐다.


“졸업한건 3년 좀 넘었지만... 여기서 너랑 같이 마지막으로 지냈던 건 5년 정도 됐나.”


그녀와 마지막으로 함께한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 허물없이 사이좋게 지냈었던 그녀와 헤어지게 되었던 것은...


“별로 그 때 일은 생각하고 싶진 않는데...”


나나 수진이에게나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5년 전의 ‘그 날’의 일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 시절의 즐거웠던 추억만 평생 안고 가고 싶은 게 속마음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사람이라는 건 자기보호본능에 충실하기에, 아프고 쓰라렸던 기억은 절대로 잊지 못하는 존재이다.


“그땐 왜 그랬던 건지...”


설령 그녀와 화해를 했다고 해도 말이다.


“응?”


“아, 아니야 아무것도...!”


잠시 딴 생각을 하는 사이에 무심코 속마음이 튀어나왔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는, 뒷수습을 하기 위해 태연한 척 물 한 모금을 마시며 능청을 떨었다.


“역시 민준이도 궁금한 거구나.”


하지만, 뒤늦게 생각을 숨기기에는 내 목소리가 그렇게 작지 않았고,


“뭐가?”


“내가 왜 너한테 갑자기 그렇게 서운하게 굴었는지.”


“족집게네.”


그걸 눈치 못 챌 만큼 수진이는 둔하지 않았다.


“그 때는 왜 그랬던 거야? 내가 그 때 너한테 무슨 잘못 같은 거라도 했었어?”


하지만, 덕분에 나는 군말 없이 솔직하게 그 날의 일에 대해 물어볼 수 있었다. 물론 저번에 산에서 내려오면서도 수진이랑 그 때의 일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긴 했었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은 물어보지 않았었다.


항상 사이좋게 지내던 우리 사이는 어느 날부터 틀어졌고, 나중에는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때의 아픈 기억은 지워지지 않은 채 고등학교 때도 이어졌고, 또 수많은 일들이 벌어졌었다. 하지만 거대한 파문에는 그걸 일으킨 조그마한 물방울이 있는 법. 분명 우리 사이에 있었던 수많은 일들 오해와 갈등의 시간 속에는, 분명히 그것을 처음으로 일으켰던 출발점이 있을 것이다.


어느 날부터 수진이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변했고, 이를 계기로 나중에 그녀와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 거기까지는 나도 확실히 알고 있다. 다만 무슨 이유 때문에 그녀가 갑자기 나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되었는지가 궁금했다. 그저 자기 변심이었던 것일까, 누군가 그녀에게 나에 대한 근거 없는 험담이라도 한 건가, 그것도 아니면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나 행동을 했던 것뿐일까.


어찌됐건 한마디로 내가 알고 싶은 건, 누가 이 일의 발단이었는지를 알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내 잘못이라면, 이 자리를 빌어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 이유가 없는 건 아니지... 나도 나름 이런저런 사정이 있었으니까.”


“사정?”


그 점에 대해서는 어렵지 않게 납득할 수 있었다. 분명 아무 이유도 없이 수진이가 갑자기 변심했을 리는 없을 테니까. 다만 그 때 그렇게까지 특별한 일이 있었다고는...


어...?


그러고 보니, 나랑 싸우고 난지 얼마 안 있어서 수진이가... 혹시, 그것 때문에?


“아... 알겠다. 너 그때 나랑 못 만나고 얼마 안 지나서 전학 간 것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그것 때문에 일부러 나랑 멀리하려고 - ”


“아니, 그건 아니야.”


확신을 가지고 내가 내뱉은 대답에 고개를 저으며 일침을 놓는 수진이.


“그 얘기 하려는 거지? 내가 전학 가는 것 때문에 괜히 친하게 지내면 서운해 질까봐 미리 너랑 정 떼려고 일부러 그런 거라고. 아니야. 그건 전혀 상관없는 얘기야. 나도 우리 집이 이사 간다는 얘기는 너랑 싸웠던 그 다음날 부모님한테 들었어.”


그러고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학교를 향해 시선을 돌리는 그녀.


“그리고 한번 생각을 해봐. 그 시절 내가 너랑 그렇게 친하게 지낸 거... 너도 잘 알고 있잖아. 그런데 그것 때문에 갑자기 내가 널 피해 다니고, 멀리하려고 했다고?”


다소 서운함이 담긴 말투로 그렇게 말하는 수진이.


“아, 아니야! 그렇다고 생각해서 물어본 건 아니야! 그냥 나도 갑자기 떠올라가지고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거니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방금 했던 말에 대해서는 궁색하게 해명한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맨날 나랑 그렇게 사이좋게 지내던 수진이가 그런 ‘외적인 일’ 때문에 멀리한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 게다가 요즘은 인터넷이나 전화로 원하면 언제든지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또 시간만 되면 버스나 기차를 타고 가서 만나면 될 일이다. 수진이가 그런 것도 모르는 애도 아니고, 겨우 못 만날 걸 걱정해서 일부러 멀리했다고? 말이 안 된다. 심지어 만에 하나 그런 이유로 못 만나게 되었다고 하면, 그녀가 굳이 고등학교 들어와서 지금까지 나를 모른 척 하고 지낼 이유가 있었을까. 분명 수진이라면, 당장이라도 나랑 만나서 이야기를 했을 테지, 이렇게 같은 동아리에 있으면서까지 숨겨왔을 리는 없다.


수진이는 항상 마음속으로 날 신경 써오고 있었다.


“말 끊어서 미안. 뭔지 말 해봐.”


나는 조용히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바로 답을 꺼낼 줄 알았던 그녀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수진아?”


“그... 민준아.”


여전히 학교를 바라본 채 생각에 잠겨있던 수진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미안하지만... 그 이유를 네 앞에서 직접 말하기가 좀 그래가지고.” ... 무슨 영문에서인지 수진이는 대답하는 걸 피했다. 방금 전에는 금방이라도 말해 줄 것 같이 그러더니 갑자기 말을 안 하는 건 무슨 의미일까.


“아, 혹시 비밀스러운 얘기라서? 괜찮아. 내가 설마 그런 것도 하나 못 지켜주겠냐.”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렇게 귀띔을 해주었다. 어차피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을 딴 사람에게 말할 이유도 없다. 그렇기에 나는 수진이가 숨기는 거 없이 ‘솔직하게’ 얘기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니 그런 이유가 아니고... ‘너한테’ 직접 말하기는 좀 그런 이유라 가지고.”


여전히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안 하는 그녀.


“뭘 그렇게까지 말 못할 게 있어? 괜찮다니까.”


“하아...”


급기야 내가 한 번 더 묻자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내쉰다.


“수진아?”


“... 아니, 역시... 그.”


고개를 숙인 채로 뭐라고 말은 하고 있는 그녀. 확실히 망설인다는 것만을 보면, 분명 그녀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있는 듯 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말은 꺼내지 못하고 우물쭈물 거리고 있다. 진짜로 얘가 말한 대로 말 못할 사정인가. 비밀까지 지켜주겠다고 약속 했는데도 못 말할 사정이면 도대체 무슨 사정이라는 거야. 그런 생각을 하니 왠지 더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말하기 힘들다면 나도 더 이상 강요는 할 수 없다. 고개도 못 들고 계속 저러고 있는데, 괜히 미련 가지고 자꾸 물어보다간 분위기만 이상해질 것 같다.


“수진아, 정 말하...”


...?


정 말하기 싫으면 안 말해도 상관없다고 말하려고 하던 그 순간, 나는 살짝 고개를 들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나한테서 시선을 피한 채 그저 운동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그녀.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지긋이 뜬 눈. 그리고 한껏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 처음에는 더워서 그런 것인가 생각 했지만, 이내 나는 그녀가 더워서 얼굴이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더워서 그런 것이라면, 굳이 내 시선까지 피하거나 할 이유는 없었을 테니까.


그녀는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 하고 있는 것이었다.


...


그녀가 내 앞에서도 말할 수 없는 비밀.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운 감정.


그리고 사건의 발단이 되었던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알겠다. 이제야 답을 알 것 같다.


답은 마치 선명한 퍼즐조각처럼, 내 머릿속에서 차곡차곡 붙어갔다.


그녀가 나를 보는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던 바로 그 초등학교 5학년 시절. 남자애들은 아직도 한창 어린애들처럼 굴 무렵, 여자애들은 어른이 되어가는 계단을 한걸음씩 밟아간다. 지금 이 순간 아마도 그녀가 느끼고 있는 감정. 아마도 ‘그 때’ 처음으로 느끼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 오묘한 감정.




그녀는 그 때 나를 처음으로 남자로 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매일같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웃으며 떠들고 지낸 소꿉친구 정민준이 아닌, 자신이 알지 못했던 ‘이성(異性)’으로써의 존재인 정민준을 마주했을 그녀. 당연하게도 그것은 수진이만 느꼈을 감정이다. 그저 철없는 수많은 남자애들 중 한명이었고, 그렇기에 그 때도 수진이를 이성이 아닌 그저 함께 놀기 위한 친구로 생각했던 그 시절의 나로써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 그러니까, 그게...”


“됐어.”


나는 아직도 고민하고 있는 수진이에게 조용히 말했다. 다 알고 있으니, 억지로 말하도록 강요할 필요는 없는 것이니까.


답은 생각보다 간단한 데에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만약 수진이와 이렇게 같이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면, 왜 그 시절 수진이가 나에게 변심했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었을까? 어쩌면 아까 내가 잘못 생각했던 ‘수진이가 전학 가기 전에 나와 정을 떼려고 그런 거겠지’ 하는 생각을 곧이곧대로 옳다고 믿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굳이 부담되면 말 안 해도 돼. 네가 싫다는 걸 억지로 붙잡으면서까지 내가 궁금해 하지는 않으니까.”


말을 삼키며 부끄러워한 채 딴 곳을 바라보는 표정만큼이나 더 확실한 답은 없었다. 직접 자기 입으로 답을 말해주지 않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과연 이 세상에 지금 우리 같은 상황을 마주했을 때 ‘언제부턴가 네가 남자로 보이기 시작해서’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일단 나부터가 얘의 입장이 된다고 하더라도 아마 얘와 똑같은 말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아... 미안해.”


내 생각을 알 리 없는 수진이는 조심스레 머리를 넘기며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다. 미안해 할 건 애초부터 없는 건데.


“아무튼 ‘그것’ 때문에 그렇게 민감하게 굴었다는 거라는 거지?”


무엇보다 그 시절 느꼈을 수진이의 심정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으니까. 비록 지금은 이성에게 남다른 감정을 가진다는 게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을 테지만 (그저 터놓고 말하기 부끄러운 것일 뿐이지), 막상 처음 그걸 겪었던 그 시절에는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얼마나 혼란해 했으면 4년 가까이 친하게 지냈던 친구에게까지도 그렇게 말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러고는 고등학교 와서는 나와 예전처럼 다시 사이좋게 지내려고 무척이나 노력을 했었다. 정말이지 얘는 그때나 지금이나 나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을 한 걸까.


“수진아?”


“어어?”


여전히 상기된 얼굴로 멍하니 학교를 쳐다보고 있던 그녀를 다시 한 번 부르자, 흠칫 놀라며 이쪽을 쳐다본다.


“괜찮아?”


“아, 응. 괜찮아.”


“뭘 그런데 멍하니 있고 그래?”


“아, 미안. 나도 여기 있으니까 좀 더워서...”


수진이는 그렇게 말하며 얼음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손수건을 꺼내 조용히 땀을 닦는다.


“날도 더운데 이제 슬슬 갈까?”


“아니야. 조금만 더 있다 가자. 그래도 모처럼 오랜만에 학교에 왔는데 바로 가긴 아깝잖아...”


고개를 저으며 다시 시선을 학교로 향하는 수진이. 나는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5년이라는 사이에 우리가 다니던 학교는 별로 안 변했는데, 우리는 이렇게 변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은 쓸쓸하다. 비록 그 날 화해를 하고 서로를 다 이해했다고 했지만, 우리 사이는 여전히 예전처럼 매끄럽지는 않다. 마치 붙일 수 없는 같은 극의 두 자석처럼 우리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적막감.


물론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느끼는 감정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걸 알고 있는데... 쓸쓸한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방학인데도 애들 꽤 많네.”


나는 잠시 든 잡생각을 떨치기 위해 시선을 다시 학교로 둔다. 분명 초등학교도 지금쯤이면 방학을 했을 텐데 생각보다 많은 목현초 ‘후배’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루며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다. 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애들 모습을 보니, 귀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순진했던 저 때가 생각나 부럽기도 했다.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동아리 활동을 많이 하니까.”


동아리 활동인가... 나한테만 해도 방학이라는 건 일차적으로는 ‘마음껏 노는 시간’으로 생각하기 마련인데, 요즘 애들은 여러모로 참 부지런하다.


그에 비해 우리는 그 시절 ‘노는 데’ 엄청 부지런했었지. 놀이방에서 책을 읽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이런저런 즉흥게임을 하던지, 교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숨바꼭질을 하던지, 운동장 모래 위에 그림을 그린다던지, 비가 그치고 난 날 야외 테라스에 붙어있는 달팽이를 잡으러 돌아다닌다던지...


“우리 살짝 들어가서 안에 구경이나 하고 올까?”


... 마치 이런 내 생각을 들었다는 듯이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낸 수진이.


뜬금없는 그녀의 제안에 귀가 번쩍하고 뜨였다.


“응? 어떻게 구경을 해? 들어가면 안 되잖아?”


“뭐 어때? 우리도 목현초 졸업생인데 무슨 문제 있어? 게다가 운 좋으면 아는 선생님 만날 수도 있을 걸?”


“그, 그런가...?”


수진이에 말을 들어보니 조금은 솔깃해지긴 한다. 하긴 학부모들도 오는데 우리 정도야 살짝 구경하는 정도면 상관없나? 게다가 우린 이 학교 졸업생이니까. 진짜 수진이가 말한 대로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도 만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어떡할 거야?”


그나저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제촉을 하는 수진이.


“야, 진짜 그렇다고? 진짜로 들어가도 된다고?”


뭔가 자꾸 물어보는 게 조금은 이상해 가지고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물어보았는데...


“후후훗...”


... 갑자기 나를 빤히 보고 웃는 수진이. 허탈하다.


“아, 속았잖아.”


“후훗, 하여간 민준이는 진짜 잘 속는다니까. 당연히 그냥 해본 말이지. 아무 얘기도 없이 어떻게 들어가?”


방금 전까지 얼굴을 붉히면서 멍하니 있던 주제에 또 언제 그런 ‘그럴듯한 속임수’를 떠올려가지고... 괜히 학교에서 있었던 추억들 생각하는 와중에 뜬금없이 구경하자는 얘기를 해가지고, 그야말로 눈 뜬 채로 당했다.


“정 가고 싶으면 동창회 할 때 모여가지고 만나서 하면 되는 거지, 아니면 그 시절 선생님한테 직접 전화해가지고 따로 허락 받을 수도 있는 거고.”


“그러게... 왜 난 그걸 생각을 못 했지.”


나는 보기 좋게 속아 넘어간 스스로를 한참을 자책하며 머리도 식힐 겸 얼음물 한 잔을 마셨다.


“그러고 보니까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물을 마시던 와중에, 뜬금없이 들어온 수진이의 질문.


“뭔데?”


“민준이 너 여기 다녔을 때 몇 학년 몇 반이었는지 다 기억 나?”


몇 학년 몇 반이었는지 기억 나냐고? 그야 당연히...


“나? 어...”


...?


생각이 안 난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때 나는 몇 학년 몇 반이었나. 중학교 때는 몇 반이었는지 확실히 기억나는데.


“아니... 생각이 안 나네.”


“뭐야, 설마 벌써 까먹은 거야?”


솔직하게 말 했더니 갑자기 나를 한심하다는 듯 빤히 바라보고 있다.


“야, 까먹을 수도 있지... 원래 초등학교 시절 몇 반이었는지 모른다는데?”


“그건 나중에 한 10년, 20년 지난 사람들 얘기고... 우리는 해봐야 겨우 중학교 이제 졸업하고 고등학교 1학년인데, 만으로 따지면 4년도 안 됐는데.”


4년도 안 됐다... 하긴, 몇 십 년이라는 시간에 비하면 아직은 너무 빠른 시간인가. 말을 곱씹어보니, 궁색한 변명거리다.


“그러는 넌, 다 기억해?”


하지만 괜한 자존심 때문에 나는 수진이에게 곧장 반박하며 물어본다.


“당연하지. 6학년 때는 여기 안다녔으니까 빼고... 5학년 때 3반, 4학년 때 1반, 3학년 때도 1반, 2학년 때 4반, 그리고 1학년 때 3반.”


그러자, 무슨 기억력 테스트라도 하듯이 초등학교 시절 자기가 있었던 곳을 줄줄이 꿰는 수진이.


“너, 그건 어떻게 다 기억하고 있는 거야?”


“글쎄...? 그런데 민준이 넌 정말로 기억 안 나는 거야?”


묘한 웃음을 지으며 ‘굳이’ 되묻는 수진이.


“아, 왜 웃어? 너 설마 나 모른다고 무시하는 거야?”


“딱히 무시하는 건 아닌데요? 말 그대로 ‘기억 안 나냐’ 하고 물은 건데요?”


말만 그렇지 딱 봐도 ‘요’짜 붙여가며 일부러 티내며 말하는 투가 백 퍼센트 무시하는 태도로밖에 안 보인다. 때 아닌 수진이의 도발에 제대로 당한 나는 긁혀버린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다시 한 번 안간힘을 다해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안 그래도 더운 날씨에 답은 안 나오고 머리만 지끈거린다.


“아, 몰라. 난 그런 쓸데없는 건 기억 안 해. 그게 뭐 중요하다고.”


결국 대답 대신 퉁명스러운 말투로 대충 얼버무렸다. 어차피 생각도 안 나는 거 계속 고민해봐야 얘 앞에서 바보 인증만 더 확실히 하는 것일 뿐이니까.


“난 다 알고 있는데, 후훗... 가르쳐 줄까, 말까...”


그런 나를 보며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또 살살 긁기 시작하는 그녀.


“됐거든요. 그렇게까지 알고 싶진 않거든?”


자꾸 애랑 얘기를 하면 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나는 아예 얼음물을 입에 문 채 운동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정말로 내가 너무 빨리 잊어버린 건가. 수진이는 저렇게 잘 기억하고 있는데 다른 애들도 다 그러려나. 정말 수진이가 말한 대로 이 나이에 벌써 초등학교 시절 몇 학년인지를 잊어버리는 건 이상한 건가.


“너, 그 때 나 만나러 왔을 때 어떻게 왔는지만 기억하면 바로 생각 날 걸?”


나를 따라 운동장을 보면서 슬그머니 힌트를 던져주는 수진이.


그것은 마치 굳게 닫힌 내 머릿속을 열기 위해 숨겨두었던 열쇠 같았다.


억지로 떠올릴 수도, 안 떠올릴 수도 없는 게 기억이니까.


“아... 나 3학년 때는 기억난다. 그래 3반이었다. 내가 너희 교실이랑 한 칸 띄어서 있었잖아.”


기억난다.


수진이를 만나러 가기 위해 그녀의 교실로 갔었던 그 시절 내 모습. 비록 하루하루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기억하지는 못 하지만, 그녀의 교실까지 가면서 수 없이 눈에 밟혔던 그 풍경만큼은 지금도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그래! 그럼 4학년 때도 기억나겠네?”


“4학년 때? 아, 잠깐만. 생각이 날 것 같은데.”


마치 지금 이 순간도 그녀의 교실을 찾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다.


“복도 지나가지고 건너편에 있었잖아.”


“복도 건너서... 아, 맞다! 그 때는 5반이었지.”


그리고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가슴이 조금은 들뜨기 시작했다.


그 시절, 나는 얘를 만나러 가는 시간만큼 그렇게 즐거운 기억이 아닐 수 없었다.


3학년 때는 3반, 4학년 때는 5반, 5학년 때는 6반, 그리고 2학년 때는 2반. 그 모든 정답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기억하고 있었다. 암호와 같았던 그 기억들은 사라지지 않은 채, 다만 내 머릿속 깊은 어딘가에 고스란히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오늘 마치 추억이 얽힌 타임캡슐을 꺼내든 것처럼 나는 설레는 기분을 느꼈다. 아니... 사실은 어떤 의미에서 이 기억 자체가 진짜 타임캡슐일지도 모르지만.


“아... 1학년 때는 진짜 모르겠네. 3반인가... 4반이었나.”


“글쎄... 내가 도움을 주고 싶어도 그 때는 나도 너를 모르고 있었으니까 나도 모르겠네.”


그리고, 그 신기한 ‘마법’은 수진이와 함께했던 시간의 끝에서 딱 멎었다.


“와, 그래도 신기하다. 내가 너희 반 갔을 때 어떻게 갔는지 떠올리니까 몇 반이었는지 다 기억이 나네.”


“그래, 다 알고 있으면서... 그러니까 내가 아까 뭐라고 했어. 난 너 무시한 적 없다니까? 바로 기억이 안 나는 것뿐이지 말 해주니까 그래도 다 기억해 내잖아?”


“그, 그런가.”


자부심 한가득한 기분으로 당당히 가슴을 펴고 말하는 수진이. 음... 솔직히 거짓말은 좀 섞은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까 ‘요’짜 붙여가면서 일부러 말한 투랑, 은근히 계속해서 떠 보이는 말투는. 확실히 무시하는 말투였는데. 에이, 뭐 어때. 그래도 덕분에 그 시절을 생각하면서 잊을 뻔한 기억을 되새길 수 있었으니, 그 정도라면 모른 척 봐주는 것도 예의지.


“그건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넌 초등학교 시절 나랑 같은 반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네?”


생각해보니 나랑 수진이는 2학년 때부터 5학년까지 항상 그렇게 어울리면서 친하게 지냈었는데 정작 한 번도 같은 반이었던 적이 없었다.


“그래? 어, 생각해보니까 정말 그러네?”


내가 몇 반인지를 구슬같이 꿰고 있던 수진이도 정작 그것까지는 생각을 안 한 듯 고개를 갸웃한다.


“전혀 생각을 안 했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내가 너희 반 찾아간 기억밖에 없더라고. 아니면 네가 우리 반에 오거나.”


같은 반이었으면 쉬는 시간 그냥 편하게 서로의 자리에 가서 얘기를 나눴으면 될 일인데, 우리들은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우리 사이에 한 번도 같은 반이 없었다니... 후훗.”


학교 위로 펼친 하늘을 바라보며 웃는 짓는 수진이.


“뭐가 웃겨?”


“아니, 신기해가지고. 넌 안 그래?”


“뭐가?”


“왜, 보통 초등학교 때는 같은 반 애들이랑 많이 어울리곤 하잖아. 지금도 그렇지만 다른 반 교실은 그렇게 자주 왔다갔다 거리기는 좀 그렇잖아.”


그렇지, 다른 반 교실은 웬만하면 별로 자주 들락날락 거리기는 좀 꺼리니까.


“우리는 다른 애들도 신경 전혀 안 쓰고 돌아다녔던 것 같은데. 도대체 우린 무슨 생각을 했기에 그렇게 아무 거리낌 없이 그랬던 걸까?”


“글쎄, 음...?”


난데없이 고민의 시간을 갖게 된 나와 그녀.


나는 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사실 정말 생각이 안 나서 대답을 안 하는 건 아니었다. 이미 머릿속에 담아 둔 대답은 있었으니까. 다만 혹시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는 대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수진이 네가 철없어서.”


“그건 민준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 혹시나 하며 던졌던 나의 질문은 가볍게 무시당했다.


나는 다시 잠시 생각에 잠기려고 하던 참 살짝 수진이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어딘가 깊게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수진이라면, 내가 말하는 답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주지 않을까. 그래도 4년 동안 어린 시절을 바로 눈앞에 보이는 이 모교에서 함께 지냈었으니까.


그래, 내가 지금 하고자 하는 대답은, 어디까지나 ‘소꿉친구’로써, 함께 놀면서 즐거워하던 그 친구로써의 의미를 담아서 하는 대답이다. 얘도 사적인 감정을 담아서 말하는 건 분명 아닐 테니까, 내 말을 이해해줄 것이다. 어쩌면 ‘애들 같은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하며 잔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곱씹은 끝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도 우리가 사이가 좋았...” “우리가 서로 그렇게 친했었...”




... 수진이가 입을 열었다. 하마터면 이 타이밍에.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말 못할 부끄러움과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아, 아니야! 난 그냥 해본 말이야!”


나는 그렇게 말 하고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피했다.


“나, 나도 그냥 해본 말...”


아까까지 당당하던 목소리는 어디 가고, 수진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한다. 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돌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그녀는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 괜한 소리를 했다. 괜히 쓸데없는 질문을 꺼내다가 본전도 못 건졌다... 도대체 난 무슨 생각을 하고 당당하게 얘 앞에서 이런 질문을 한 거지.


“미안, 이 얘긴 그만두자.”


나는 여전히 그녀에게서 시선을 피한 채 뒷수습을 하기 위해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래... 학교 구경이나 하면 될 걸 괜히 쓸데없는 얘기 했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물을 한 모금 마시는 수진이. 물을 마시기 위해 그녀가 잠깐 고개를 든 순간, 나는 아까보다 더 빨갛게 달아오른 상기된 얼굴을 두 눈으로 보았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안 그래도 들뜬 기분이 더 끌어 올랐고, 나는 더 견디지 못하고 물을 집어 들었다. 여전히 목이 시릴 정도로 무척이나 차가운 얼음물. 하지만 이 얼음장 같은 물도 불덩이같이 달아오른 기분까지 식혀주지는 못 했다.


결국 우리는 그렇게 남은 시간동안 서로의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 채, 묘한 분위기 속에서 가끔씩 그 시절 이야기만 하면서 남은 시간을 보냈다.





수진이 얘도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두 귀로 똑똑히 들은 순간, 왠지 기뻤다.








- (4)편에서 계속.


작가의말

이번 주에 이런저런 사정이 생겨가지고 연재가 무척이나 늦어졌습니다!
기다려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 전해드립니다!
앞으로도 우내게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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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19화. (2) +1 18.01.17 101 2 26쪽
64 19화. (1) 18.01.09 155 1 29쪽
63 18화. (5) 17.12.31 183 0 20쪽
62 18화. (4) 17.12.21 181 0 28쪽
61 18화. (3) 17.12.10 140 1 30쪽
60 18화. (2) 17.12.04 190 1 28쪽
59 18화. (1) 17.11.17 222 1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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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17화. (4) 17.10.18 173 1 29쪽
55 17화. (3) 17.10.03 185 1 22쪽
54 17화. (2) 17.09.22 204 1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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