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아리에서는 내기 게임을 잘 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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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노미카
작품등록일 :
2016.10.17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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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1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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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02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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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3)

DUMMY

※ 이 작품은 픽션입니다. 작중 내에서 표기된 인물, 지명, 단체 등은 모두 허구적 요소입니다.






19화. 묵혀 둔 천냥빛을 갚는 방법 (3)





“어휴... 허리야.”


거실에 놓인 찬장 속까지 다 닦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허리를 펼 수 있었다. 뒷골이 빠지는 것 같다는 말은 딱 이럴 때 쓰라고 만든 말 같다. 잠시도 허리 필 새 없는 고된 손 걸레질 작업에 이런 일을 잡은 적이 거의 없는 내 몸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될 지경이었다. 덥기는 또 얼마나 더운지 이마는 벌써 땀투성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좋다며 했는데, 직접 경험해보니 이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런 일을 한 달 동안 해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앞이 까마득하다.


- 노예 계약.


순간 내 귀를 의심하게 만든 나영이의 한마디.


- 아. 이렇게 말 하면 너무 어감이 나쁜가. 그럼 뭐라고 말하지.


자기가 말해놓고는 마치 큰 실수를 저지른 ‘척’ 태연한 말투로 말을 바꾸는 그녀. 그렇게 딴 말로 말한다고 뭐가 의미가 바뀌나.


- 아 몰라. 아무튼 요점만 말하면 한 달 동안 내가 부탁하는 일 곧이곧대로 들어주면 땡.


...그게 노예 계약이 아니면 뭐야.


- 아, 물론 개학하고 나면 수업 시간만큼은 면제해 줄게. 어차피 그렇게 자주 부탁할 것도 아니긴 하지만.


마치 엄청나게 선심 쓰는 것 같이 말하는 나영이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어떻게 따질 수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단은 묵묵히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부탁을 받아 하는 첫 일이 지금 하는 아영이네 집 대청소다. 원래 아영이랑 같이 할 생각이었으나 감기 때문에 누워있으니 어쩔 수 없이 나를 시킨 것이라고 한다.


“오오... 꽤 깨끗하게 닦았는데? 으흠.”


대걸레를 들고 있는 나영이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한다. 그래도 양심은 있어가지고 내가 한참 가구랑 전자제품들을 닦는 사이 집안 바닥 구석구석을 닦고 있었다.


“어휴, 집이 커가지고 다 닦느라 시간 엄청 걸렸다. 이제 거실 다 했으니까 다 됐-”


“창고 안에는 닦았어?”


...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손이 향한 곳은... 바로 옆에 있는 창고. 그녀가 연 창고 안을 봐보니, 얼핏 봐도 잡동사니들만 가득한 ‘묵혀놓은 창고’같이 보였다.


“뭐야, 거기도 해야 해?”


“당연한 거 아니야? 창고는 사람 쓰는데 아니야?”


“그거야 아는데 창고는 솔직히 안 닦아도 되지 않아? 먼지만 쓸면 되지.”


무슨 보물창고라면 모를까. 굳이 이런 창고까지 걸레질을 다 해야 하나.


“그래서 안 닦겠다는 거야? 아까는 뭐든 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나?”


그러자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나를 노려보는 그녀. 아영이 여동생이라 기대를 해봤건만 오히려 언니보다 더 하다.


“아 알았어. 할께!”


안 그래도 더운 날씨에 잔소리를 더 듣긴 싫었던 나는 결국 군말 없이 걸레를 다시 집어 들었다.





“어휴...”


악몽 같았던 아영이네 집 1층 걸레질이 드디어 끝났다. 아까 거실 청소를 마쳤을 때만 해도 그럭저럭 할 만 한 기분이었는데, 마지막 창고 청소가 복병이었다. 여러 가지 집기들을 빼고 넣고 선반을 닦는 과정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나는 땀범벅이가 된 채 체면 불고하고 아영이네 거실 소파에 주저앉았다.


“언니 감기 때문에 오늘 쉬어야하니까 2층 청소는 안 할게. 수고했어.”


어느새 옆에 다가온 나영이가 무언가를 건네준다. 얼음이 담긴 콜라였다.


“어, 고마워.”


분명 딴 소리를 했다가는 바로 걷어치울게 뻔했기 때문에 나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곧장 컵을 받아들었다. 바로 입으로 가져가 마시니, 톡 쏘는 탄산의 자극과 함께 달달한 콜라의 향이 입안으로 퍼지면서 청소하느라 몸속의 묵은 더위를 한 방에 날려준다. 평소 멋모르고 마시던 콜라가 이렇게 시원하게 느껴지기는 처음이다.


이윽고 나는 온 몸으로 시원한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나영이가 선풍기를 가져와서 내 앞에 틀어놓았기 때문이다.


뭐야 이건. 그렇게 날 실컷 부려먹고는 이제 와서 약 주는 거냐.


“힘들어?”


내 옆으로 한참 떨어져서 자기도 소파 위에 걸터앉는 나영이.


“힘든 건 둘째지고 덥지만 않았으면 좀 괜찮을 텐데. 더워서 더 힘 빠진다.”


“당연히 그래야지. 세상에 편한 벌이 어디 있어? 그렇지만 이건 알아 둬. 여자의 순수함을 이 정도에 쳐 주면 진짜 싸게 해 준거야.”

또 그 얘기. 내가 잘못한 건 인정하지만 계속 그러면 신경이 거스른다.


“얘들은 왜 안와.”


그러고 보니 심부름 나간 둘은 아직도 깜깜 무소식이다. 집안 청소하고 나무에 물도 줬으니 시간도 제법 지났거니 하고 생각하는데, 어디 길이라도 잃어버린 건지.


“아~ 심심한데 비디오 게임이나 할까?”


그 때, 자리에서 일어난 나영이. 비디오 게임?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가 의아해하던 그 때, 나영이가 TV앞 서랍장에 다가가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오오.”


절로 감탄사가 나오도록 만든 그것의 정체. 그 유명한 전자 오락기 브랜드의 최신작인 ‘PlayStayHome4’이다. 나도 관심이 있었던 오락기이긴 하지만 학생 신분에서 너무나 비싼 가격 탓에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던 녀석이다.


그나저나 이런 콘솔 게임을 좋아한다니 ‘의외긴’ 하다. 보통 이런 게임 같은 건 남자의 소유물이긴 한데.


“너 이런 콘솔 게임하는 거 좋아해?”


궁금한 마음에 모르는 척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나를 잠시 빤히 쳐다보던 그녀는...


“당신은 정말 여자에 대해 예의가 없네.”


이런 소리를 했다. 나는 살짝 속으로 뜨끔하면서도 모르는 척 말을 이었다.


“무슨 소리야?”


“발뺌하지 말고. 당신이 말하는 건 ‘보통 이런 게임들은 남자들이 즐기는데 더는 여자인데 왜 이런 걸 좋아하나?’ 이 소리잖아. 왜, 여자가 게임 하면 안 된다는 이유라도 있어?”


쳇, 눈치는 귀신 저리가라 할 수준이다. 누가 아영이 동생 아니랄까봐...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닌데.”


“그럼 됐고.”


그러고는 홱 TV 화면으로 고개를 돌려 버리는 그녀. 뭐야, 눈치 못 챈 건가.


그러는 사이, PSH4를 실행한 나영이가 망설임 없이 게임 선택 목록으로 향한다. 그녀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른 게임 타이틀은.

“오, ‘푸니푸니’네? 오랜만에 본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게임 이름이다. 블록인 ‘푸니’ 네 개를 모아서 연쇄로 터뜨리면 그 만큼 상대방 쪽에 ‘방해 푸니’를 왕창 떨어뜨리는 유서 깊은 퍼즐게임이다.


“당신도 해 봤나보네?”


“지금 이 버전은 안 해봤는데 구 버전을 어렸을 때 해 봤어.”


워낙 유명한 게임인 만큼 우리 세대에 모르는 사람들도 별로 없건만, 나에게는 개인적인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를 꺼내자면 소꿉친구인 수진이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이 게임의 초창기 버전이 컴퓨터로 나왔었던 초등학교 시절, 나는 수진이와 컴퓨터 앞에 나란히 앉아 키보드 하나를 반씩 나누어서 게임을 즐겼었다. 나중에 재미가 들어서 학교에서 점심시간 때 몰래 컴퓨터실에서 게임을 하게 되었다. 선생님께 걸려서 꾸중을 듣기도 하였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렇게 몰래몰래 숨어서 하는 게임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라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걸 잊고 있었다니... 나영이가 아니었으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모르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너 이거 잘하냐?”


잠시 든 생각은 이제 접어둔 채, TV화면으로 눈을 돌리며 말했다.


“그냥 보통. 나도 해 본지 아직 며칠밖에 안 돼서.”


TV에 눈을 떼지 않은 채 나영이가 곧장 게임을 시작한다. 이윽고 떨어지는 ‘푸니’들을 차곡차곡 쌓기 시작하는 그녀. 며칠밖에 안 해본 것 치고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이 게임에서는 연쇄가 중요하다. 연쇄 한 번 제대로 걸리면 상대방은 손도 못 쓰고 끝나는 게 바로 ‘푸니푸니’다. 멋모르는 사람은 무턱대고 깨기 바쁜데 나영이는 게임을 해본 솜씨라서 그런지 침착하게 한 줄 한 줄 쌓아나가기 시작한다.


“저기, 그러고 보니까.”


게임에 집중하면서 말을 거는 그녀.


“당신도 ‘내기 게임’ 좋아한다면서? 맨날 윤정이 언니랑 또 다른 언니 한명이랑 막 벌칙 음식 먹는 거나 쓰레기 치우는 거 가지고 내기하고 그러지?”


다른 사람이 우리 말하는 걸 들으면 서로 잘 알고 지낸 사이인줄 알겠다.


“그런 건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냐?”


“그야 안 봐도 뻔하지. 언니랑 어울리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다 그러니까. 원래부터 성격이 맞아서 어울리던, 아니면... 나처럼 항상 붙어있어서 성격이 바뀌던.”


“어, 방금 떨어진 건 먼저 터뜨려야 해.”


상대방이 방해 블록 몇 개를 떨어뜨린 거를 본 내가 무심결에 말했다.


“안 말해도 알고 있거든요.”


“미안.”


그러고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 블록을 제거하는 그녀. 괜히 이런 소리 들을까봐 그렇게 생각만 하고 앉아 있으려고 했는데 게임 보는 것에 빠진 나머지 입 밖으로 말이 나와 버렸다.


“넌 그런 게임하는 거 원래 싫어해?”


분위기를 추스르기 위해 나는 아까 하던 얘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딱히 싫어하기 보다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어. 원래는 그랬는데, 중학교 올라갈 때부터 언니가 동아리 활동 하면서 언니 친구 분들이랑 자주 우리 집에 와 가지고. 그 언니들 여동생 있다고 나 엄청 부러워하면서 막 잘 대해 주더라. 그래서 곁에서 앉으면서 얘기도 나누고 언니랑 친구 분들이 게임하는 것도 보게 되고. 아마 그 때부터 생각이 바뀐 걸 거야.”


그렇게 말하고는 마침내 쌓아놓은 탑을 연쇄로 터뜨리는 그녀.


“그럼 너도 아영이처럼 친구들이랑 게임 하고 그러는 거야?”


“지금은 그렇긴 한데, 언니 친구 분들이랑 어울릴 때만 해도 관심만 있었을 뿐이지 하지는 않았어. 원래는 그렇게 흥미만 갖고 손은 안 댈까 마음먹었는데. 작년 여름이었나. 그 때 윤정이 언니 만나고 나서 인생이 바뀌었지.”


“왜? 걔랑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일은 없고, 그냥 이 언니는 처음 날 만났을 때부터 계~속 놀자고 매달리며 부채질을 해가지고. 처음에는 귀찮아가지고 언니가 설마 이런 친구랑 어울릴까 해서 좀 있으면 서먹해지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한 한달 정도 지나니까 절친이라고 하면서 거의 매일 내 집에 놀러오더라. 윤정이 언니가 올 때 마다 보채가지고 결국에는 내가 손들었어.”


역시 윤정이답다. 윗사람에게도 서슴지 않는 그녀가 나영이에게는 오죽이나 할까.


“뭐, 덕분에 지금은 내가 친구들한테도 뭐 결정할 일 있으면 게임 한 번 하자고 하면서 제안도 하고 그렇게 됐지만.”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양 손을 뻗으며 쭉 기지개를 편다. 방해 뿌니가 산더미처럼 쌓인 상대의 게임 창이 폭삭 주저앉으면서 승리를 확정짓는 순간이었다.


“오오, 잘 하네?”


그렇게 쉬운 난이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제법 능란한 솜씨를 보여준 나영이.


“잘 하긴. 내가 보기에는 당신이 더 잘하는 것 같은데? 연쇄 나려면 어떤 뿌니 깨야하는지도 아는 거 보니까.”


“그래도 예전에 즐겨 해 봤으니까. 대강 어떨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어.”


“호오... 그래?”


묘한 목소리를 내며 다시 게임 모드를 선택하며 컨트롤러를 끄적거리던 그녀의 손이 갑자기 멈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렇게 잠시 아무 말도 없이 앉아있던 그녀는.


“모처럼 ‘내기 게임’ 얘기 나온 김에 내가 한 가지 제안하나 할까 하는데? 어때?”


그렇게 말하고는 자기 컨트롤러를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무슨 제안?”


되물어보는 나의 말에 바로 대답을 하는 대신 그녀는 다시 TV 앞에 있는 서랍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는 무언가를 그 서랍에서 꺼내 내 앞으로 가져온다.


“나랑 이 게임으로 승부할래? 이기면 특별히 한 달 동안 우리 일 도와주기로 한 거 면제해 줄 테니까.”


그렇게 말 하면서 내 앞으로 건네준 것은 다름 아닌 또 다른 게임 컨트롤러.


... 너랑 지금 이 게임으로 승부를 하자고?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길 확률이 있냐?”


이 말밖에 할 소리가 없다.


“뭔 소리야? 딱 봐도 엄청 많이 해본 솜씨인데.”


“그건 옛날 얘기지. 난 안 한지 몇 년이 됐는데 감이 있을 것 같아?”


“나는 이 게임 한 지 며칠밖에 안 됐거든요? 그리고 당신은 나 한 것도 봤잖아.”


“상식만 남아있지... 그리고 난 컴퓨터로 했었어. 비디오 게임은 손도 대 본적 없어.”


“이 까짓 퍼즐 게임이 컴퓨터로 하나 이걸로 하나 뭐가 다른데.”


여전히 컨트롤러를 손에 든 채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나영이. 왠지 쉽게 마음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 눈치다. 이 녀석,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내가 이기면 그렇다 쳐도 내가 지면?”


나는 마침 빼먹은 중요한 질문 하나를 그녀에게 건넸다.


“만약 당신이 지면... 내 방학숙제 하는 것 좀 도와줘. 더도 덜도 말고 딱 하루만 날 잡아서 ‘빡세게’만 하면 되니까. 어때?”


참 남의 일이라고 쉽게도 말한다.


“나도 숙제 있어서 바쁘거든요.”


“당신. 다시 말 하지만 이 정도면 싸게 해 준거야? 원래는 기회를 줄 생각도 없었어.”


“그러던가. 아무튼 난 안 할 거니까 너나 실컷 해.”


더 떠들어봐야 입만 아플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그녀에게서 스마트폰으로 눈을 돌리던 참.


“좋아, 그러면 잠시 연습할 기회를 줄게. 그럼 콜?”


...나는 그 말에 그녀에게 다시 눈을 돌리고 만다. 여전히 무덤덤한 얼굴로 컨트롤러를 든 채 서 있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너, 왜 자꾸 나한테 제안을 하는 건데?”


나는 결국 근본적인 질문을 꺼내들었다.


그 말에 나를 빤히 쳐다보는 나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응시하던 그녀가 곧 입을 열었다.


“당신이라면 사실은 이 제안에 거절 할 마음이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 가슴을 파고드는 그녀의 한 마디. 방금 전까지만 해도 겉으로 이런저런 이유를 들던 그녀가 기어코 속을 건드렸다.


화가 났다는 뜻이 아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정곡을 찔렸다.


“내가 뭘?”


나는 일단은 모르는 척 그렇게 되물었다. 이에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가는 그녀.


“당신이 이런 승부욕 있는 게임에 절대로 그냥 안 넘어갈 성격인거 안 말해도 다 알고 있어. 물론 내가 직접 옆에서 당신을 보거나 한 건 아니지만 그건 당신이랑 같이 동아리 활동하는 우리 언니만 봐도 알 수 있어. 당신 처음에 동아리 들어올 때 언니랑 말다툼 하고 막 싸웠었지? 그리고 나중에 언니가 들어와도 좋다고 당신한테 얘기해가지고 나중에 마음 바꿔서 온 거잖아?”


“야,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자매끼리 뭘 모른다고 생각해? 언니가 뭐 당신처럼 가리고 그러는 사이인줄 알아?”


김아영 그 녀석.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 이야기까지 터놓고 다니냐.


“당신도 한 학기 같이 지내봤으면 우리 언니 성격 알잖아. 언니는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성격이면 애초부터 금을 딱 그어놓거든. 원래 언니 성격대로라면 당신 같은 사람 나가던 말건 신경도 안 쓰는 사람이야. 그런데 언니가 굳이 왜 당신에게 기회를 주고 동아리까지 들어오게 한 건지, 정말 모르는 건 아니겠지?”


... 말투 하나하나가 아영이 판박이인 나영이의 말을 들으면서 그다지 수긍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마음의 추는 벌써부터 기울고 있었다.


“방학숙제 도와주는 거... 그렇게 무리한 제안이라고 생각 안 해. 무엇보다 당신 뿌니뿌니 제법 해본 실력 같은데. 설령 콘솔로 안 해봤다고 해도 당신 수준이라면 몇 판정도면 하면 충분히 실력발휘 할 수 있을 것 같거든. 당신이 언니랑 같이 얘기도 나누면서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면, 그리고 이런 '내기 게임'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면, 분명 거절은 못 할거라고 생각하는데?”


... 어쩌다 나는 이런 얘기를 무덤덤하게 넘겨버릴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일까.


“아영이나 너나 똑같구나.”


“그야 자매니까 서로 닮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자매끼리 서로 닮는다.


아니, 이런 승부욕 자극하는 모습에서는 얘나 아영이나 그냥 '똑같다.'


“뭐, 내가 당신에게 헛소리 한 거면 사과하고. 물론 기회는 이걸로 땡이지만.”


그렇게까지 썩 마음에 들지만은 않은 그녀의 돌발 제안.


마음에 들지 않은 구석이 있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이라도 거절할 수 있는 의향이 있다.


어차피 생각 그 자체는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니까.


“해봐.”


그러나 그 행동에 결정을 내리는 것은 결국 생각이 아니라 마음이다.


그 '사양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건 생각으로 만들거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네가 그렇게 정말로 나랑 할 생각이 있다면 더 이상 사양하지는 않을게. 내가 비록 이 게임을 별로 하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감만 잡으면 너랑 승부 볼 수 있을 정도는 될 것 같으니까.”


그것이 말로는 싫다고 하면서 진심으로는 싫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였다.


"오케이. 역시 당신이라면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어."


나영이는 아까 처음 제안할 때부터 컨트롤러를 든 채 내 앞에 서 있었다.


아마 그녀는 지금 내가 그녀에게 컨트롤러를 건네받는 그 모습을 이미 그 때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마침내 손에 잡힌 컨트롤러. 한 번도 콘솔 게임을 해본 적도 없는 주제에 손가락은 벌써부터 꼼지락거리기 시작한다.


“물론 당신이 지면 내 숙제 도와주는 것도 약속하는 거다. 아, 생각 바뀌었으면 지금 포기해도 좋고.”


조금씩 타오르던 승부 근성에 확 기름을 껴 얹은 그녀.


“아무리 내가 연습을 안 했어도 그렇지, 너무 쉽게 생각하는거 아니야?”


“난 당신 실력을 의심한 적 없어. 나도 긴장은 하고 있다고.”


딱히 그렇게 말해도 겸손하게 보일 건 하나도 없어보인다.


“내가 미리 말하는 거지만, 난 한번 승부 보면 절대 안 봐줘.”


나는 확실히 그렇게 으름장을 놓았다. 비록 이 게임에서 손을 뗀 진 오래이지만, 그렇게까지 말하면 진짜 이기고 싶어진다. 꼭 내기 이유에서가 아니라 '그냥 이기고' 싶다.


“일단 감부터 익히고 그런 소리를 해.”


오케이.


어차피 게임에 대한 이론은 다 알고 있으니까 지금 감만 잡아서 승부하면 충분히 승산은 있을 것이다.


- 꽈당 큐~!


...


어느새 화면 안에 가득 찬 내 블록들이 무게에 못 이겨 힘없이 주저앉는다.


나영이가 승부했던 컴퓨터와의 승부. 이걸로 세번 째다. 첫번 째도 아니고 두번 째도 아니고 세번 째다. 양치기의 거짓말도 안 통한다는 그 세번 째말이다. 물론 그 세 번을 내리 졌다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슬쩍 옆에 앉아있는 눈을 바라보았다. 바로 옆에서 과자를 먹으며 무덤덤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나영이. 그 표정만도 벌써 세번 째다.


“왜 실력을 자꾸 숨기는거야? 설마 쫄은건 아니지?”


... 무덤덤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어보는 그녀. 마음 같아서는 정말 얘 말대로 쫄아서 숨기는 거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아니, 컨트롤러가 서툰건 그렇다 쳐도 분명 이렇게 뿌니를 쌓으면 깨지는 걸로 알고 있는데 왜 안 깨지는 거냐. 컴퓨터가 잘 하는 건가? 아니, 나영이가 이긴 거 보면 분명히 그렇게 잘하는 건 아닌데.


도대체 나는 아까 무슨 생각을 한 거지. 무슨 자신감에서 제안을 허락을 한 거지.


...


“우리 딴 거로 내기할-”


“낙장불입.”


... 번복의 기회는 없어보였다.


안 되겠다. 다시 한번 연습을 해서 -


“그만해! 언제까지 연습만 할 거야. 이제 연습 기회 충분히 줬으니까 나랑 승부 해!”


내가 연습모드를 다시 켜자 자기 콘트롤러로 바로 게임을 꺼버리는 그녀.


“야, 진짜 딱 한번 만 더 연습하자! 그 다음엔 바로 할 테니까.”


나는 다급한 마음에 급기야 그녀 앞에서 사정을 하고 만다. 스스로 이런 모습이 구차하긴 하지만 그래도 한 번의 연습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그 정도는 의미 있는 딜이 될 것이다.




- 꽈당 큐~!


... 그 딜이 딱희 의미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가 고개를 돌리자, 나영이는 여전히 그 표정 그대로 나를 바라보며


“할 말은?”


그렇게 한 마디 툭 던졌다.


... 물론 다른 할 말은 없었다.


“하자.”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이제는 승부를 보는 수 밖에.





- (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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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17화. (3) 17.10.03 185 1 22쪽
54 17화. (2) 17.09.22 204 1 22쪽
53 17화. (1) 17.09.16 218 1 17쪽
52 16화. (4) 17.09.07 170 1 26쪽
51 16화. (3) +2 17.08.29 241 1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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