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걸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드라마

piedbleu
작품등록일 :
2016.10.22 21:14
최근연재일 :
2017.10.24 00:18
연재수 :
265 회
조회수 :
63,676
추천수 :
1,206
글자수 :
1,636,485

작성
17.06.17 19:35
조회
165
추천
4
글자
9쪽

#34. 파탄

DUMMY

미르치스 글란데 기자가 미스트렌 미술대학 가을 전시회에 대한 단신을 실었다. 9월 8일자. 월간 ‘회화 세계’ 9월호. 젊은 화가 지망생들의 건투를 빈다는 내용이었지만, ‘일부 역량이 의심되는 그림도 있어 에드먼드 필리처 학장의 판단력이 흐려진 게 아닌지 걱정된다.’는 빈정거림으로 마무리되는 기사였다.

9월 9일 조간 ‘미스트렌 일보’. 미술계의 젊은 투사로 인정받고 있는 아메브 라이루스 교수가 문화면에 사설을 실었다. 미스트렌 미술계에 불고 있는 새 바람에 대하여.

조형, 개념, 구상이 회화에 신선한 피를 수혈하고 있다. 미스트렌 대학 1학년 라스카 양은 마법과 회화를 결합함으로써 인간 영혼의 새로운 측면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바로 예술의 목적이다.

시끄러워졌다. 가을 전시회는 유례없는 호황을 맞았다.

라스카는 수업에 들어가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수시로 호출이 왔다. 기자들이 불러대고, 교수들이 불러댔다.


“라스카 양, 전시 홀로 오세요.”


심지어 아파서 기숙사에 쓰러져 있는데도 호출이 왔다. 라스카는 기어가는 거나 다름없이 힘들게 전시 홀로 갔다.

플리우스 린톤 교수와 마고 엘리슨 교수가 서 있었다. 둘 다 평소와 달랐다. 항상 인자하던 린톤 교수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고, 부산스런 엘리슨 교수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표정이었다.


“갑자기 불러내서 미안하다만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죠.”


엘리슨 교수가 그녀를 노려보았다.


“도대체 왜 이런 그림을 그린 거죠?”

“예......?”

“나는 라스카 양이 재능은 없어도 성실한 학생이라 생각했어요. 학점도 잘 주고 싶었지. 그런데 이게 뭡니까. 나는 이런 걸 가르친 기억이 없어요. 마음 가는 대로 색깔을 흩뿌려 놓고 ‘파탄’이니 뭐니 그럴듯한 제목을 붙이면 그것이 회화입니까?”

“......”


라스카는 입이 굳어서 말이 안 나왔다. 그녀는 엘리슨 교수가 자기편이라 생각했다. 그녀에게 가장 호의적인 평을 해 주는 교수님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닌 모양이었다. 라스카의 그림을 전시하는 데도 반대표를 던진 게 틀림없었다.

재능은 없어도 성실한 학생.

재능은 없어도...... 그 말이 송곳처럼 라스카의 가슴을 찔렀다.


플리우스 린톤 교수가 입을 열었다.


“라스카 양, 나는 엘리슨 교수와 생각이 달라요. 예술에서 단점은 의미가 없어요. 표현하고자 하는 바! 바로 그것이 중요한 거야. 나는 이 그림이 회화가 아니라고는 생각지 않아요.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는 다음 문제이죠. 라스카 양이 아무리 노력해도 미엘 양이나 야닉 군처럼 그리기는 어렵겠지만 이런 그림이라면 어차피 기술은 큰 의미 없을 테고, 이것도 회화라는 거대한 강물의 한 지류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찬성표를 던졌나 보다. 하지만 고마운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일종의 동정표인가?


엘리슨 교수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듣기로는 마법은 도제식 교육을 한다는데, 그쪽에서 배운 기술입니까?”


라스카는 간신히 고개를 저었다. 엘리슨 교수가 다그쳤다.


“대체 누구한테 배운 겁니까?”


린톤 교수도 알고 싶어 했다.


“그래요. 마법 선생이 누구인가요? 라이루스 교수가 회화와 마법의 결합 운운했으니 마법 쪽의 입장도 듣고 싶군요. 사실 난 좀 혼란스러워서. 이 그림은 평가하기가 힘들어요.”


라스카는 선생님의 이름을 입 밖으로 낼 뻔했다. 유명한 이름이었다. 영향력 있는 이름이었다. 듣는 사람들의 입을 닥치게 할 수 있을 만큼. 그녀는 지난 3년간 여러 번 그 이름 뒤로 숨었었다.

그러나 그녀의 입 밖으로 나온 것은 이런 말이었다.


“제 마법 선생님은 이 그림과는 무관합니다.”


엘리슨 교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혼자 이런 생각을 하고 실천에 옮겼단 말입니까?”

“제 그림은 제 창작의 소산입니다.”

“겸손한 학생이라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틀렸군요. 배우는 입장에서 교만은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이죠.”

“죄송합니다.”


라스카는 선 채로 이어지는 훈계와 비판을 들었다. 두 교수가 떠난 후에도 한참이나 그 자리에 못 박힌 것처럼 서 있었다.

비명처럼 현란한 녹색. 라스카의 마음은 파탄나 있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미쳐버릴 것 같다고 생각했을 때 어깨에 부드러운 손이 얹혔다.


“라스카.”

“카티아 언니.”

“미엘이 너 여기 있다고 하더라.”

“이제 돌아가야죠.”

“너 괜찮니?”


라스카는 피식 웃었다. 그녀의 무릎이 떨렸다. 다음 순간 라스카는 균형을 잃었다.


“라스카!”


카티아가 그녀를 부축했다. 라스카는 겨우 홀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카티아는 라스카의 뺨과 턱을 타고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보았다.


“괜찮아요...... 배가 좀 아파서요......”


카티아는 미엘과는 달리 섬세한 사람이었다.


“너 생리통 비정상적으로 심하더라. 병원에 가자.”

“소용없어요. 견디는 수밖에.”

“스트레스 때문에 더 심한 걸 거야.”


따뜻한 두 팔이 뻗어 왔다. 카티아는 자기 가슴에 라스카가 기대도록 해 주었다.


“처음엔 나도 당황했는데, 보면 볼수록 네 그림 매력 있어. 난 새로운 미술을 추구하면서도 야닉의 그림만 생각했어. 그것도 고정관념인가 봐.”


라스카의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처음에는 가느다란 줄기였는데 곧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언니. 저 어떡해요.”

“전공 진입? 너무 걱정하지 마. 잘 될 거야.”

“아니요. 그게 아니에요.”

“그러면?”


너무나 오랫동안 가슴속을 불태우던 말이 입술마저 태우고 생명을 얻었다. 심장이 잿더미였다.


“보고 싶어요.”

“응?”

“선생님이 보고 싶어요.”

“선생님이 누군데?”

“아플 때 옆에 있어 주시는 데 너무 익숙했어요. 없으니까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겠어요. 언니, 저 어떡해요. 보고 싶어. 더 견딜 수가 없어......”


카티아는 라스카를 다독여 기숙사로 데리고 왔다. 301호에선 미엘이 또 우렁차게 코를 골고 있었기에 자기 방에서 재우기로 했다. 라스카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침대에 눕히자마자 기절해 버렸다.

피로가 누적된 거야.

카티아는 라스카의 몇 달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이 애는 무리하고 있었다. 늘 할 일을 만들고, 필요 이상 열심이고, 자기 자신을 숨기려고 들었다. 그녀의 태생에 대하여 미대에는 별 희한한 말들이 돌고 있었다. 하지만 카티아는 자기 자신이 본 것만을 믿었다. 라스카의 태생이 어떻든 그녀는 성실하고 품위 있는 아가씨였다.

그녀는 책상 위에 턱을 괴었다. 라스카에 대한 평가에 ‘재능이 있다’는 한 줄을 덧붙이면서.

재능이야말로 조각가 카티아 로즈가 인간을 판단하는 최고, 최대의 기준이었다. 친목의 대상을 넘어 마음을 나누고 싶도록 만드는 유일한 사유였다.

파탄.

젊은 화가의 영혼은 무엇으로 인해 파탄난 걸까.


카티아는 우편함에서 수거해 온 편지들을 책상 위에 쏟았다. 졸업 작품을 끝낸 후, 그녀는 전시회 때문에 정신이 없는 1학년들을 위해 우편물을 분류하여 가져다주고 있었다.

라스카 앞으로 온 편지가 하나 있었다. 발신인은 L. L.

카티아는 갑자기 엄청난 궁금증을 느꼈다. 뜯어보고 싶었다. 라스카의 정체가 밝혀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상식과 예의가 있는 사람이었다. 차마 뜯지는 못하고 애꿎은 주소 란을 노려보았다. 크렐라인 제3가도 15번지.

크렐라인이라. 어쩐지 언행이 세련되다 했어. 3번 가도 15번지라니 중심가겠네. 귀족 집안일지도 몰라. 그녀는 기억을 더듬었다. A. L. 과 L. L.에게서 편지가 온 적이 있었다. 성의 머리글자가 같은데 가족이려나?

A. L.은 7월에 라스카를 찾아왔었다. 그때를 생각하는 카티아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생전 처음 보는 미남이었어. 삼촌이라고? 안 닮았던데.

삼촌이라기엔 라스카는 그에게 격식을 차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 L. L. 일까? 그가 라스카의 ‘선생님’일까? ‘파탄’의 근거는 그에게 있을까?

카티아는 충동적으로 펜을 들었다.


-안녕하세요? 미스트렌 미대의 카티아 로즈라고 합니다. L. L.이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라스카의 친인이시겠지요? 저는 라스카의 과 선배입니다. 라스카는 지금 제 방 침대를 빌려 자고 있어요. 오늘 많이 아팠거든요. 편지를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제가 대신 씁니다. 라스카는 선생님이 너무, 너무 보고 싶다고 하네요. 더는 견딜 수가 없대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드림 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일정 공지 +1 17.10.25 118 0 -
265 #43. colors of life 17.10.24 135 3 16쪽
264 #43. colors of life 17.10.22 127 3 10쪽
263 #43. colors of life +2 17.10.16 153 3 20쪽
262 #42. 연애의 정석 17.10.11 94 3 15쪽
261 #42. 연애의 정석 17.10.09 99 4 22쪽
260 #42. 연애의 정석 17.10.06 79 3 14쪽
259 #42. 연애의 정석 17.10.04 105 3 17쪽
258 #42. 연애의 정석 17.10.02 125 3 28쪽
257 #42. 연애의 정석 +2 17.09.29 184 3 24쪽
256 #42. 연애의 정석 +2 17.09.27 173 2 12쪽
255 #42. 연애의 정석 17.09.25 79 2 16쪽
254 #41. Homecoming 17.09.22 108 3 13쪽
253 #41. Homecoming 17.09.20 113 3 10쪽
252 #41. Homecoming 17.09.18 122 2 10쪽
251 #41. Homecoming 17.09.15 113 3 11쪽
250 #41. Homecoming 17.09.13 92 3 17쪽
249 #41. Homecoming 17.09.11 114 4 19쪽
248 #41. Homecoming 17.09.08 86 3 9쪽
247 #41. Homecoming 17.09.07 123 3 8쪽
246 #41. Homecoming 17.09.04 129 4 8쪽
245 #41. Homecoming 17.09.01 113 4 16쪽
244 #41. Homecoming 17.08.31 120 4 9쪽
243 #41. Homecoming 17.08.30 112 4 10쪽
242 #41. Homecoming 17.08.29 118 4 9쪽
241 #41. Homecoming 17.08.28 127 4 14쪽
240 #41. Homecoming 17.08.15 129 3 10쪽
239 #41. Homecoming 17.08.14 110 3 8쪽
238 #41. Homecoming 17.08.13 111 3 14쪽
237 #41. Homecoming 17.08.12 121 3 7쪽
236 #40. 믿음은 수단이 될 수 있는가 17.08.11 113 4 12쪽
235 #40. 믿음은 수단이 될 수 있는가 17.08.10 114 4 13쪽
234 #40. 믿음은 수단이 될 수 있는가 17.08.09 125 4 12쪽
233 #40. 믿음은 수단이 될 수 있는가 17.08.08 141 3 9쪽
232 #40. 믿음은 수단이 될 수 있는가 17.08.07 117 3 8쪽
231 #40. 믿음은 수단이 될 수 있는가 17.08.06 146 4 11쪽
230 #40. 믿음은 수단이 될 수 있는가 17.08.05 159 4 12쪽
229 #40. 믿음은 수단이 될 수 있는가 17.08.04 120 3 10쪽
228 #40. 믿음은 수단이 될 수 있는가 17.08.03 126 4 7쪽
227 #39. 친왕 전하께 이 꽃다발을 17.08.02 155 4 14쪽
226 #39. 친왕 전하께 이 꽃다발을 17.08.01 90 3 8쪽
225 #39. 친왕 전하께 이 꽃다발을 17.07.31 106 4 8쪽
224 #39. 친왕 전하께 이 꽃다발을 17.07.30 131 4 13쪽
223 #39. 친왕 전하께 이 꽃다발을 17.07.29 236 3 12쪽
222 #39. 친왕 전하께 이 꽃다발을 17.07.28 144 4 7쪽
221 #39. 친왕 전하께 이 꽃다발을 17.07.27 208 5 9쪽
220 #39. 친왕 전하께 이 꽃다발을 17.07.26 137 5 10쪽
219 #38. 안녕, 내 사랑 17.07.25 146 4 9쪽
218 #38. 안녕, 내 사랑 17.07.24 133 5 7쪽
217 #38. 안녕, 내 사랑 17.07.23 129 4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